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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한 그릇의 거리
[티끌세상의 소리] 이 책은 티끌들이 모여 사는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의 요란함에서 자신을 지키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구도자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의 거리가 있어 접하기 쉽지 않은 중국작가의 이야기지만 생소함 보다는 따스함이 넘친다. 그것은 저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동질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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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세상의 소리
책을 접하며 첫 놀라움은 바로 그리 삶을 그리 오래살지 않은 작가의 깊은 수행의 가치이다. 실제로 에세이나 산문이라함은 오래된 삶을 살면서 일반인에게 이름이 널리알려진 사람이 누리는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 책의 저자는 그리 삶을 오래영위하지도 그리고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은 아니나 책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그 어느 유명인과 긴 삶을 살아온 사람이상의 가치를 안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본 책은 읽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작가의 아주 어릴적 회상부터 현재의 삶까지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page49 '고난은 재산이다' 병은 자비로움을 안고 찾아와서 내가 겉치레에만 머물지 않고 내면을 깊이 바라보게 해주었다. 실제로 건강한 사람은 병을 앓고 있으므로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어쩌면은 나 스스로 현재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중의 하나일 것이다. 병을 앓고서야 사람은 내면의 것을 보고 또 생각하게 된다.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잃은 것이니 말이다.
page139 '인생은 여인숙과 같고 우리는 나그네다.'
page170 '일단 좋은 일을 시작하면 앞날은 묻지 말라. 걱정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다.'
책 속에는 많은 부처님과 옛 성인들의 삶에 대한 좋은 메시지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는 이러한 가르침을 많이 받아서인가? 아마도 지금의 저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혼을 깨우는 맑고 깨끗한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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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또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순탄할 수만은 없는 인생에서 고통과 좌절을 맛보며 때론 실패앞에서 쓰러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겨낼 수 없을만큼 괴롭고, 힘이 들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위기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수련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든다면 인생은 그만큼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우리가 방황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인생의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추억은 더욱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는 목적과 과정이 가짜라고 말한다. 사리에 어두워 멍청할 때는 정신을 가다듬고 용기를 낼 필요가 있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는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어서 결국 현상따위에는 현혹되는 않는다는 것이다. 삶이란 바로 이런 감정과 깨달음 사이에서 영원히 흔들리며,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중용의 도를 걷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삶이라 말하고 있다. 시비를 가리는데 연연하는 것보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느끼고, 부딪혀 이겨내다 보면 그만큼 깨달음도 가까워진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저자의 아픔은 그 일이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일인것처럼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삶과 죽음의 과정이라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도 결국 그 과정속에 있는 일이다. 자신 스스로 직접 겪었던 아픔과 번뇌, 그리고 저자가 바라보는 삶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담은 구절들은 내 기억속에 오래토록 담아두고픈 말들이 참 많았다.
나 자신을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고민과 잡념으로 가득한 나의 마음을 깨끗히 정화하는 일일 것이다. 타인과 나를 비교해가며 큰 망상을 키우기보다는 스스로를 잘 단속하는 것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인가.. 티끌세상의 소리를 읽으며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많이 갖을 수 있었는데 수없는 방황과 고뇌로 보냈던 그 시간들은 이제 내게 많은 미련과 아쉬움으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그 과정들 하나하나가 내 인생에서 아무 의미없는 일들은 아니었으리라. 오래토록 나의 인생을 이루어가는 동안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여인숙과 같고 우리는 나그네다. 누구든지 무상함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별이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원망하지 말자. 아름다운 인생이 너무 늦게 온다고,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자. 지금의 순간순간이 가장 좋고 귀하며 훌륭한 삶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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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세상의 소리
동양사상의 아름다움이란 누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마음을 넓게 하고 삶의 내면을 진중하게 바라보게 하며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깊은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서양의 이야기들로부터 들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속으로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티끌세상의 소리는 청란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깊게 읽은 글들을 모아 책을 엮은 것이다. 도입부에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수 십 년간 자신이 써온 글들을 모아왔음을 밝히고 이것이 누구에게 보이고자 만든 글이 아닌 자신의 마음수련을 위해 써왔던 글임을 밝히고 있다.
글 전체를 통해 보건데 작가는 불교를 자신의 삶의 대강으로 삼고 불법에 준해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 불교를 삶에 실천하며 자신을 다잡기 위해 써내려간 글들이 얼마나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 그 감동은 잔잔하고 오래간다.
언젠가 장국영이 죽었다. 장국영이 나오는 영화들을 보며 자란 우리세대는 잠깐이나마 충격에 휩싸였고 그의 죽음 이면에 존재했던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미 그는 배우 장국영이 아닌 인간 장국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히 거기에 그 모습으로 있을 거라고 믿었던 배우 장국영은 없었다. 동성애라는 성정체성을 가지고 한 없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인간 장국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순간을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을 보지 못한다고 그렇다 사람을 현상적으로 바라보았지 사람의 본질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타라는 우리에게 만연한 현상에 대해서 우리가 의지하고자 하지만 스타라는 것은 빈 것이므로 우리의 기대는 빈 공간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사유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화려함이란 얼마나 사람을 어리석게 하고 허영에 들뜨게 하는지. 이 세상이 모두 화려함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책 안에 들어있는 한 편 한 편의 에피소드들이 가볍지 않은 사유들로 채워져 있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부터 우리 사회의 이야기까지 일상에서 발생하는 마음 닦기의 꺼리들을 상대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한 구석이 푸근해 지고 나의 마음도 덩달아 숙연한 진리의 길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눈에 보이는 가까운 곳에 두고 여러 번 꺼내 읽어야할 아주 훌륭한 책이다. 오래 읽을 책을 만나 기쁘기 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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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웃어른들이 불교를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선입견을 갖고 불교를 논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몰랐다. 후에 우연히 불교 도서관에서 불경 여러 권을 빌려 읽은 후에야 크게 놀라며 만약 불경을 읽지 않았다면 한평생을 헛산 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파위쓰라는 절에서 저자는 연지 대사의 글을 본다. 그녀는 경전에 근거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대사의 글에 크게 공감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때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불교를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 엉터리... 엉터리...
3 천 여년전 인도에서 발아한 불교는 중국에서 중국불교가 되고 한국에서는 한국불교가 되었다. 카피가 한번 될 때마다 원본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산출되었다. 그런데 이 결과물을 모두 인정하는 종교, 이것이 불교다. 바티칸이 존재하는 카톨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권의 성서를 가진 종교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늘 이점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최근 미국불교에 대한 관심도 이런 차원에서다. <청바지를 입은 부처> <할리우드 붓다> <왜 사는가> <만행> <배낭 속의 부처>와 같은 책들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린 미국불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와는 또다른 미국불교다.
티벹불교, 베트남불교, 일본불교... 원본과 카피...
과연 엉터리의 경계는 어디인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가. 진짜와 가짜가 존재하기나 하는가. 참 재미있는 화두다.
<티끌세상의 소리>는 중국 현대인의 불교 수행기라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책이다. 의례 중국불교하면 선종의 맥을 잇는 선사들의 일화, 즉 달마니, 혜능이니, 육조니 하는 그 이름도 쟁쟁한 선사들의 수행담만 떠오른다. 출판물이 이런 방면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정작 중국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어떻게 불교를 이해하는지, 어떻게 수행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저자는 드라마 대본을 쓰는 작가로 평범한 직업인이다. 그런데 그녀가 불교 수행에 기울이는 의지와 열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하늘이 나에게 이 뜨거운 열정을 준 이상 분명 무언가 뜻이 있을 텐데 그건 무엇일까? 운명을 향해 이렇게 묻고 있는 그녀. 자기완성을 향한 수행에 삶을 바칠 각오가 되어 사람이다. 그녀 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에 있는 수행자들이 다 그렇다.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문체로 저자는 말한다. 나는 운명의 어두운 밤에서 눈을 떴다. ... 손에 칼을 쥐고 아집을 베어 버리다. 대륙의 전통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이라고 할까. 이들의 자세는 한결같이 침착하고 고요한 가운데 의연하다. 그 부드러운 가운데서 결기가 느껴진다. 과연 그 옛날 선종 수행자들의 후손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전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삶은 고해의 바다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고통은 병과 죽음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잦은 병치레를 달고 살았다. 생사의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하지만 이 고통도 그녀를 꺽지 못한다.
도리어 그녀는 몸아, 수도할 때 나를 도와주는 자산아. 나는 너에게 맛서지 않겠다. 하고 말한다. 뒤이어 그녀는 그러나 몸의 꾐에 넘어가고 싶지도 않다. 나의 보리심이 너의 가상으로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몸아, 너는 아프거라. 나는 갈 테니! 하고 결연히 말한다.
죽음 또한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죽음은 그녀 주변에 항상 널려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고아였다. 친구들의 죽음도 이어진다. 서른 다섯 살의 즈제가 그렇게 가버렸고 스물 다섯 살의 징룬이 그렇게 가버렸다.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데....... 징룬의 죽음앞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그녀는 슬픔을 추스릴 수 있다.
이 책은 이해할 수 없는 중국사회의 단면을 엿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대학입학의 좌절을 안겨준 학교비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이처럼 어떤 부분에서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이런 면이 도리어 중국불교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붓다의 가르침은 이런 토양,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중국불교가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분위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인이 바라본 한국인, 티벹인이 바라본 미국인, 일본이 바라본 중국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에겐 모두 타인이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녀가 순례한 많은 절들. 거기서 만나는 많은 수행자들. 이들을 품고 있는 중국의 산은 도술과 비법도 함께 품고 있는 듯하다. 뭔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런 분위기, 이것이 중국불교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 이것을 나는 존중한다. 붓다께서도 한국불교, 중국불교, 미국불교를 똑같은 미소로 바라보고 계실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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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닮아간다는 뜻이다.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은 이런 배움과 닮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소년 어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마을의 큰바위 얼굴을 삶의 본보기로 삼아 살아간다. 부단한 자기성찰은 그를 점차 인자한 큰바위 얼굴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다. 배움의 성과는 결코 세속적 성공만으로 잴 수 없다. 억지와 강요가 아닌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배움은 겸손한 마음공부에서 시작한다. 큰바위 얼굴을 세계 4대 성인의 모습으로 바꿔보자. 공자,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이들의 언행을 실천하고 지향하는 바를 서로 일치시키려 노력하고 분발하는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결국 닮아있게 된다. 배움이라는 구도과정은 닮아가는 길이다. 저자 청란은 구도자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고 불교신자로서 10년 동안 정진한 마음공부의 단상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기나긴 세월의 씻김을 받아서 그런지 글이 맑고 글매가 우아하다. 불교적 선의 아포리즘을 맛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인생의 여러 화두를 드러낸다. 저자가 불교의 가르침과 자신의 일상적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드러난다. 시끌법적한 시장에서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기는 힘든 법이다. 그의 직업이 드라마감독이란 점을 고려하면 세속적 환락이란 여러 유혹들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런 유혹에도 불구하고 10여년간 자기수련에 힘썼다는 저자의 정력定力이 예사롭지 않다. 참고로 청란의 필명은 란뤄蘭若와 완충晚虫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으로 짓는 삼악이 있다. 바로 탐진치다. 탐이란 탐욕과 집착을, 진이란 화와 분노를, 치란 어리석음과 아둔함을 말한다. 저자가 일상에서 어떤 계율을 중시하고 실천해 나갔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가 드러내는 많은 번뇌와 유혹들은 삼악과 관계있다. 그리고 생과 멸, 상과 무상, 인과 연, 고통과 번민에 대한 그의 단상이 빚어낸 글귀들은 향기를 머금은 듯 청아하다.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 가는 여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성실함과 신중함, 그리고 시종일관한 용기다. ●운명은 어두운 밤에 우는 귀뚜라미와 같다. 당신이 미처 신경 쓰지 않을 때는 작은 소리로 낮게 읊조릴 뿐이다. ●살아가는 데 즐거움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 것은 정신과 마음을 수련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핑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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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별, 고통...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휴식 같은 영혼의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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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책을 고르는 기준에서 많이 차지 하는 비중은 책 제목이다. 티끌세상의 소리!! 이 책도 역시 제목에 이끌려서 읽게 되었다. 불교적인 느낌이 나는 책이라는 예감이 맞았다. 작가의 지난 십년 동안 성장 과정에서 써온 글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을 통해 ,구도자의 길을 가는 과정을 통해 저자가 느낀고 행한 마음수련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게 되었다 저자는 한 사람이 삶을 사는 것을 ‘길을 걷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실하게 걷는 법을 배우면서 걷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계속 걸어나가는 삶. 혼자 걷기도 하고 서로 부축하면서 걷기도 하며 곧장 걸어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돌아가거나 방향을 바꾸는 사람,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제자리에 머물러 허송세월 한다는 사람들로 나누고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따지자면 천주교 신자이지만 나는 이런 불교의 가르침 또한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하느님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씩 부처님에 대해서 어떤분인가 호기심도 생기고 불법을 설하는 내용에도 기울이는 내게 이 책은 여러모로 도움을 받게 되었다. 딱딱한 불교용어가 아닌 일상의 삶을 커다란 수행의 범주 안에 넣고 저자가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 내려오는 이 책은 잔잔한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불교하면 연꽃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여러 단련을 거치면서 수승하고 맑게 피어난다. 주변을 정화시키는 그런 매력을 지닌 연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더욱더 크게 만들어 주었다. 근본에는 사랑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가능할거라는 확신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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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세상의 소리, 우리들이 아프고, 속이 뒤집히고, 죽어도 용서가 안될때... 나는 이때 티글세상의 소리가 필요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가끔은 세상의 어긋난 이치들에 몸서리가 쳐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풍파에 시달리는 삶을 살고 또 쓰러지기 직전까지 나를 몰고 가는 세상에 이러지 마!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울부짖음도 있었다.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나? 이대로 참아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내 맘, 우리들의 맘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때는... 이럴 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티끌세상소리는 내 맘을 알아주는 글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더 정이가고 애착이 간다. 마음 잡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읽으면 좋은 성찰의 책. 그럼! 이 깊은 성찰과 위로를 들어보자.
글과 생각이 모두 아름다워 영혼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깨끗이 씻기는 느낌이다. 괴로움은 일종의 약이다... 괴로움을 안정시키는 데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많은 약을 먹어도 약 따로 병 따로이다. 불인 스님의 "부처에게 구할 바에야 자신에게 구하시오.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망상이 눈 녹듯 사라벼 버렸다. 저자는 이 글이 자신이 보기 위해 쓴 글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글 하나에도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굴 위해 쓴 글이 아닌 자신을 위해 쓴 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괴로움을 안고 산다. 그리고 사랑과 이별도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을 당연하듯 이겨낼 수 있수는 없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 그 고통에 내 몸의 절반이 빠진다해서 내 몸을 일으킬 길이 없다. 윗글을 보자. 괴로움을 안정시키는 데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불교서적에서 나오는 표현들이지만, 소탈하면서 진솔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믿음과 인내가 없다면 살 수 없으니까... 때로는 지나치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도 한순간에 정리해준다. 자신에게 구하라는 글로 말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내가 나를 믿고 가는 것이 진리이지 않겠는가.
마음속이 깨끗하다고 하면서 어찌 더러운것이 눈에 보일 수 있나요? 나도 안다. 좋고 나쁨, 괴로움고 즐거움의 구분도 나의 망령된 집념이라는 것을, 마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괴로움고 즐거움도 그렇다. 나는 아직도 고집스럽게 무명의 불을 활활 피우고 있다. 스님은 "입문할 정도가 되었다면 법문에 들도록 하라"라고 대답했다. 나는 또 물었다. "입문할 정도라는 것은 어떤 기준을 갖고 말하는 것인가요? 스님이 말했다. "먼저 마음에서 멀어진 다음 다시 불도에 들어가 참다운 도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스님이 말했다."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바로 잣니의 삶에 새로운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오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해탈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런 기초위에 보리심이 생기는 것이다. 부처는 더 많은 편의와 기회를 제공한다고 저자는 썼다. 악행에 의해 온 이들을 거부하지도 탓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아니던가.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 지도 모르고 그냥 이기기 위해 작은 잘못까지 책을 잡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윗글의 마지막을 보자. 기초위에 보리심이 생긴다. 어찌 깨끗한 마음이 없는데 도가 생기고 해탈이 생기겠는가. 어찌 깨끗한 마음인데, 더러움이 보이겠는가. 세상이 깨끗한 것이 아니라 내 눈과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몇년동안 더러움을 보고 살았다. 내가 받은 상처와 모욕, 이 세상에 바꾸어야 될 많은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더러워져 가고 있었다. 글을 보면 나는 아직 기초를 세우지 않았다. 아니 세우려면 아직 멀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반성일기처럼 나도 내가 가진 죄와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하고 싶다. 그리고 체현이란 것도 말이다. 이 책은 깊은 성찰과 자기내면을 보게 한다. 외부의 요청에 으해서도 아니고 내부의 자발성에 의해서... 안정을 찾고 싶다. 어둠에서 밝음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자. 내 안에서 나를 보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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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세상이라? 티끌이 티와 먼지를 말하는 건 알겠는데... 암튼 궁금해서 검색해보게 되네요. 요즘은 다들 사전을 안 쓰죠? ^^; 예전엔 두꺼운 국어사전 펴놓고 단어 찾는게 힘들긴 했어도 나름 종이냄새가 좋았는데...ㅋ 티끌세상: 정신에 고통을 주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 이라고 나오네요. 그러고 보니 이 책이 저자인 청란씨의 10년간 수련의 기록이라니 제목이 너무 멋있어보이네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에 울려퍼지는 소리라 그건 아마도 맑고 깨끗하면서도 깨달음의 소리일수도 있고, 어지러운 고통의 소리일수도 있겠죠. 한 개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같다는 거겠죠. 10년간 마음을 수련하면서 깨달은 생각을 편하게 책을 읽으면서 공유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게 조금은 미안하면서도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사실 깨닫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죠. 좌절 뒤에 얻은 성공이 값진 것처럼 인생의 실패를 통해서 얻어낸 철학이나 깨달음이 더욱 빛나는 것 같아요. 저자도 결코 평탄한 인생은 아니더군요. 어려서 몸이 병약했고, 시험에서 좌절하고, 첫사랑에 실패하고,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는... 비단 인생에서의 어려움은 모두 각자에게 수많이 많을 거에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누군가는 술에 의지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단적인 일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라 짧고 간략한 글 하나에 저자의 수년간의 결실인 깨달음이 녹아있어 자칫 그냥 읽어가다가는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읽을 때의 느낌이랑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때의 느낌이 조금씩 다른게 마음이 점점 평온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가끔 읽다가 눈물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린시절의 체험도 있고, 죽음에 대한 생각, 여러가지 감정들(집착, 사랑 등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중국에 있는 불교 성지를 순례하는 과정. 책을 덮고 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인 것 같아요. 바쁜 시간 속에 잠시나마 조용한 숲 속에서 한가로이 산책하는 느낌이랄까? 티끌세상의 소리에 잠시나마 귀를 기울여 보실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