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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누나방 서재에 꽂혀있던 이 얇은 책을 뺐다가 아래아 한글 1.5보다 빡빡한 글씨에 덮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아이보리색 책이 기억나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다. 이런 단순한 사실 이후 관심분야의 역사책을 몇권보다 다시 이 책을 다시 잡고 보게되었으니 비록 사회적 가치판단의 범주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역사엔 하나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새롭게 역사책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에 역사책을 보면서 일정부분 저자를 고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선택이 나의 취향과 선호에 많이 따랐던것 같다. 요즘은 많이 확인하게됬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조금 변화한 것은 세상사람들이 보편적이라고 하는 책들, 시대의 흐름을 크게 인식하기에 좋은 책들을 보다, 그 후엔 역사적 사건과 현재의 맥락이란 부분을 한국의 근현대사 기록물들을 보면서 점점더 고려해가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마땅히 읽을것이 없다기 보단, 읽고 싶은 것이 적어질때에 "E.H Carr"(E가 Edward인지 이번에 알게된것도 소득이네요)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들고 내가 해오던 생각과 저명한 학자가 말하는 것을 다시 이모저모 생각하게된것 같다. 다만 책의 내용이 언문에 능통하다는 개인적인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고, 그렇다고 딸려온 영문판을 보며 읽기에도 그리 자신감이 충문하지도 않다. 내용이 세계사나 직역의 번역에 충실하다보니 이중부정의 표현이 많아 읽기에 수훨하지는 않은듯 합니다.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지 못하는 독자일수도 있습니다. 6개의 강의를 집약한 이 책에서 사실과 역사적 사실의 구성, 사회와 개인의 상호작용, 역사와 과학의 비교와 간과할 수 없는 도덕, 인과관계에 대한 우연과 결정론, 진보로서의 역사, 그리고 지평선의 확대라는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속의 출간 40주년 런던연구소의 심포지엄부분은 그 의미를 정리하게 충분한것 같습니다. 과거의 사실과 역사적 사실이 되기 위한 역사가의 해석은 역사가 단순한 기록과 왜 다른 의미를 갖게되는지를 알게됩니다. 그리고 why라고 시작된 질문부터 역사가 또는 역사적 사실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해석이란 그 시대의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역학관계를 이해해야하기 때문에 분명 명확한 과거의 사실에 기반하지만 그 해석을 주도하는 역사가는 분명 현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현재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다방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개인과 사회의 장은 또한 새롭게 역사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선택에 따라 과거의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될 개연성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과감하게 답을 제시하는 저자의 통찰이 놀랍습니다. 마치 근대를 넘어 현대를 지향하는 인류의 발전만큼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뜻을 이어 2장에서 기억남는 말은 역사가가 선택할수 있는 제한 자체가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말과, 역사가가 개인으로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를 끊임없이 연결해야한다고 이해되었다. 이 두장을 읽고나서부터 내가 읽은 역사책들을 다시금 훑어보게되는군요. 3장의 역사와 과학, 도덕을 논하는 장에서는 과학과 역사의 차이점을 5가지로 제시한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과학과 역사의 차이점 이후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인간의 자기환경에 대한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진시키는 공동의 목적을 말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참 쉽게 서로 다른것과 큰 그림 아래에서 다시 묶어내는 능력도 대단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끊임없이 과거와 대화하고 과거의 사실에 왜라는 질문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로 재해석하고 의미있는 가치를 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4장에서는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원인의 상호관계를 정리하고 그 중 가장 의미있는 원인으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함으로, 역사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것 같습니다. 진보로서의 역사로 장을 이어가면서도 "객관적인 역사가란 이 사실과 가치가 서로 얽히는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다시 사명감을 강조합니다. 분명 역사의 매일의 현대사이고, 객과적 시각을 갖은 역사가를 통해 과거와 끊임없이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교류하는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해석에서 종결되고 이후 세대로 좋은 가치과 교훈을 넘겨주지 못한다면 무의미한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자의 말처럼 역사가는 반드시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지만 지향점도 있어야한다는 말은 개인과 그가 속한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배경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이후 다시한번 역사책의 저자가 지향하고,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알고 책을 보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분명 이런저런 책을 느끼던 점들이 있지만 조금 더 명확해지고 제가 보아왔던 책들중 좀더 소중한 책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것 같습니다. 사회적 배경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또 독자로써의 상호작용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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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1과 권2로 분책되어 있습니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 편집: 그냥 책띠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책 편집방식은 다음과 같은 장단점이 있다고 합니다. 휴대성, 단 1곳 부분.)
■ 편집 외부: 북디자인. 70년대 해오던 "분책" 방식입니다. 1개를 2개로 나눈 것. 번역서 책 안팔릴 때 많이 쓰죠. 가격은 2배, 책 내용은 1배. : 50% 할인가 이유 있었습니다.^^;
■ 편집구성 : 저는 영한대비라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결과는 반대편. 영한대비 아닙니다. 일일히 대조해야 합니다.(분책).
■ 편집 내부: 원저자의 '2판 노트' 전혀 없습니다. 그냥 본문내용 2개 민 것 뿐입니다. 이것 유작이거든요. 본문의 각주도 전혀 없습니다. 개정판을 기대해 봅니다.
■ 종이질: 한글 번역만 고친 것 같구요, 원서부분은 갱지 종이질 입니다.
■ 원서부분: 원서만 원하신다면 가격대비로 추천합니다.각주 전혀 없습니다. (원서 종이질이 갱지 였습니다. 각주도 못쓰잖아. 슬픔 ㅠㅠ; )
■ 가독성: 번역은 수능대비/ 논술대비용 입니다. 가독성은 매끄럽습니다. 문단 띄워쓰기 편집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읽기는 쉽네요.
■ 사관 논점: 번역후기에 첫머리가 '대학생 여러분...' 되어 있습니다. 미리보기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입한 것.
한국사학에 영향도 미쳤고, 논란도 많은 이 책은 각주가 중요합니다. 유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자에게 물어볼 수 없습니다.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다시읽기)" 라는 책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유작이기 때문에 나온 다음과 같은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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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출발점에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책이 한 권있다. 1961년에 에드워드 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란 책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도 온갖 난무하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 속에서 혼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때였다. 국사 선생님께서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 주겠노라시며 <역사란 무엇인가>, <포스트 모더니즘>, <오리엔탈리즘>, <옥시덴탈리즘>을 프린트해서 나눠 주시고는 조별로 스터디를 시키셨다. 그때 받았던 종이 뭉치에 새겨진 지루하면서도 의미를 알수 없는 만연체의 괴문서를 바라보며 전교생이 벙쪄서는 스터디 시간마다
이 책은 2009년 4월 20일에 초판 인쇄된 것으로 불과 인쇄 후로는 보름, 발행 후로는 열흘 정도만에 내 손에 들어오게 됐다. 어쩌면 정확히 이 시점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이화승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에 내심 반가워하며(?),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본 순간 냉큼 질러버렸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출판된 20여권 이상의 번역본을 두고도 새로운 번역서를 내게 된 것은 그가 대학 시절에 이 책을 접하면서 느꼈던 난해함과 조악한 필체로부터 독자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였다고. 정말 공감하는 부분인 것이, 우리나라에 출판되어 있는 인문학 번역서들 -특히 옛날에 출판된 책들- 중에는 읽고 싶은 욕심이 있다해도 감히 읽을 수 없는(?) 책들이 꽤 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면서도 밋밋하게 번역된 암호를 해독하고 있자면 '내가 차라리 원서를 읽고 말지!' 라는 헛소리를 가끔 하게 된다지.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가운 것이다. 나와 이 책이 가진 묘한(?) 인연 이상으로, 읽고 싶었던 책을 소모적인 해독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조금만 더 늦게 출간되었더라면 다른 번역서를 들고 끙끙대고 있었을런지도 모르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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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는 E.H 카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동안에 역사는 늘 승자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이 조금 움직였던 것 같다.
그가 주장했던 역사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그대는 분명히 아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나조차도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해서 더 좋은 의미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이런 중요한 역사를 보다 정확히 잘 아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혼란스러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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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E. H. 카’ 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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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책 많이 읽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다가 불현듯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나 읽어보았다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바라봐야 하며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여 준다
본문에 역사란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 자꾸 곱씹어 볼수록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삶의 지혜와 방식을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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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는 익히 알고계시듯이 명저중에 명저랍니다. 역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약방의 감초식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점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계속해서 출판사를 달리해서 출간되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 책은 한글판과 영문판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본으로 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두마리 토끼를 잡을수 있는 책이랍니다. 역사에 대해서 관심있으신 이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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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5)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事實)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은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로 나뉘어진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史實)이라고도 하는데,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는 것은 순전히 역사가의 손에 달려 있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 가운데서 역사과정 상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뽑아 해석함으로써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과거 사실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선택하고 여기에 해석을 가할까? 여기에서 기준은 순전히 역사가의 주관적인 견해에 좌우되는데, 이 주관적인 견해를 고상하게 표현하여 ‘역사철학’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역시 한 시대와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개인일 뿐이므로, 그의 견해는 반드시 시대적, 공간적 한계와 사회적 위치에 따른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까닭에 하나의 과거 사실을 가지고 역사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평가와 해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 볼 수가 있다. 또한 역사가가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파시즘에 동조하여 복무할 때에는 역사가 오히려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 공정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선택하고 평가, 해석하는 것이 역사라고 모두 인정해버린다면 주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져 비현령이현령(耳懸鈴鼻懸鈴)의 함정에 떨어지게 된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세우고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먼저 역사의 의미와 필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방책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당면 과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과거 사실에 대한 역사 해석 속에 투사함으로써 역사가 서술된다는 말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서 기술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역사는 훌륭한 역사가 있고, 해악이 되는 역사가 있다. 이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에드워드 카는 ‘목적의 타당성’에 의해 올바른 역사를 구분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목적의 타당성의 기준은 바로 ‘진보로서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찰해보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굴곡은 있었지만, 인간의 생존권, 천부적 인권, 개인의 자유, 평등, 인간답게 살 권리 등이 끊임없이 확충되어 왔다. 이것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역시 추구해야만 할 가치들이다. ‘진보로서의 역사’는 여기에서 열거하고 있는 덕목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역사를 말하며, 이것이 바로 좋고 올바르며 훌륭한 역사이다. 에드워드 카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역사 기술에 중요성의 기준을 주고, 참된 것과 우연한 것을 구별하는 표준을 마련해 주는 것”(p.193)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덕목을 추구하는가의 여부는 역사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단편적인 예로 현 정권이 과연 역사 기준으로 보아 미래지향적인 정권인가 아닌가는 이 덕목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닌가로 판단할 수 있으며, ‘진보로서의 정권’이 아니라면 사실 우리는 좋고 올바르며 훌륭한 정권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질문해보자. 우리는 과연 참된 정권 하에 있는가, 우연한 정권 하에 있는가? 에드워드 카는 “미래를 향한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버린 사회는 곧 과거에 스스로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무관심해 질 것”(p.205)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한 줄의 말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지어보면,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p.245)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도움이란 ‘진보’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을 뜻하며, ‘진보’는 이성의 확장과 인권의 보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성의 확장과 인권 보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역사는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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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간 사학 이론서인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특히 국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국내에 소개되고 진보적, 발전적 역사관이 자리를 잡으면서 민중 사학,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책에서는 E. H.카가 역사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개관하고, 현대문명에 대한 그의 시각을 조명하였다. 역사 서술의 방법론에 중점을 둔 비판적 역사철학으로서의 카의 현대문명에 대한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 H. 카는 외교관, 언론인으로서 쌓았던 다채로운 실제 활동 경험이 역사와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학문적인 견해를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카는 언제나 이론과 실제, 이상과 현실의 양극단을 거부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것이 국제 정치 질서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도덕적 합의와 더불어 힘의 요소에 대한 강조로 나타났으며, 역사 인식에 있어서는 과거와 미래, 사실과 해석, 객관과 주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역사란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보하지만 그 처음과 끝을 말할 수 있는 법칙이나 목표는 없다고 한다. 역사가는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그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이 기준은 역사가의 관점, 또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성이나 윤리에 관하여 말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카도 이성의 확대를 진보로 보았지만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승리한 사람들에의해 쓰여진 기록이기 때문에 항상 그 반대편의 약자의 입장은 무시해온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의 기록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펴보면 왜곡의 여파가 아직까지 내려온다는 사실, 겉만 다르지 근본적으로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역사를 선인들의 지혜와 과오를 이해하여 개인적으로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는 더 옳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릇 역사가는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고, 그 의미에서 역사가에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요구된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도 누군가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는다면 이 책이 말하는 여러 보편적이고 절충적인 사관이나 사고방식을 하나의 지식으로 접했을 뿐으로내 자신이 명확한 답을 내리긴 어렵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이 책은 결코 읽혀지기가 싶지 않았다. "역사란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결론을 얻는데 그쳐야 했다는 점에서 나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이해폭이 너무도 좁다는것에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던 책읽기 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