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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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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서 네 개의요소를 발견하는 것 ? 반휴머니즘, 반자연주의, 반역사주의 그리고 역사적 비관주의가 바로 그것이라는데 대해 책을 다 읽은 아직도 믿어지지도, 이해가 가지도 않는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작가가 말한 이 네가지 말고도 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에는 이 책을 더 읽어야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이 한사람에게서 시작되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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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서 네 개의요소를 발견하는 것 ?

반휴머니즘, 반자연주의, 반역사주의 그리고 역사적 비관주의가 바로 그것이라는데 대해 책을 다 읽은 아직도 믿어지지도, 이해가 가지도 않는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작가가 말한 이 네가지 말고도 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에는 이 책을 더 읽어야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이 한사람에게서 시작되고 마무리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단순한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삶이 별반 겉으로 들어나는 것이 없다. 단도직입적이지도 않고, 사건을 나열해 시대 순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도 않으며 유명한 일화가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이 책의 대부분은 주인공 샤르트르의 삶이 아닌 그의 주변인물들과 작품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 책은 솔직히 좀 버겨울 수도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나또한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구토’를 찾아야 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독서라는 것이 개인의 수준에만 의존한다면 재미도 발전도 더디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도전해본다면 확실히 새로운 부분이 눈에 들오는 재미와 샤르트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가 프랑스의 지성인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았는 지를 통해 한 시대를 여행하는 그리고 객관적인 잣대를 가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샤르트르라는 이름은 프랑스 북서부 파리의 남서쪽, 상트르 지방 외르에루아르 주의 주도의 이름과 같다. 어쩌면 그의 삶도 이 주도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강 한편에 대성당의 첨탑들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느룹나무 가로수가 외곽을 꾸며주며 가파르고 좁은 도로들이 강가의 집을 연결해주고 있으며, 한 쪽은 다시 도시로 연결된 샤르트르란 도시가 마치 그의 책속에서 그의 삶의 여정에서 보이는 샤르트르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 인생은 눈물의 계곡이 아니다.

철학은 눈물학의 변종이 아니다.

샤르트르는 1940년에 이렇게 말했다. “ 내 인생에 어떤 통일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내가 진진하게 살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결코, 결단코 나는 진지한 태도를 알지 못했다. 내 모든 삶은 단지 유희였을뿐이다. 종종 길고도 진절머리 나는 것이었을지라도, 종종 악취미였을지라도 어쨌든 유희 였을 따름이다”

p79-80

여기에 대해 보부아르가 이야기 한 바 있다. 그것도 단 한 문장으로 말이다. 그녀는 몇 번에 걸쳐 이 문장을 반복했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이야기는 이 초기 샤르트르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 스피노자와 스탕달. 내가 당신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 스스로 스피노자이면서 동시에 스탕달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했지요” p 129

그의 삶은 그렇게 금욕적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문란함에 가깝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그와 계약결혼을 한 보부아르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는 평범하거나 안락한 삶을 보낸 듯 하지는 않다. 거기다 공산주의를 표방하기도 했다. 그의 극과 극의 삶을 보는 중간중간 특히 드골과의 관계나 카스트로와의 관계를 보면 그의 성격이나 시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밖에도 그가 있었던 곳, 그가 지나간 사람들, 그를 거쳐간 사상들을 보다보면 과연 이것이 한사람의 삶인가 하는 의심, 그의 작품들이 과연 그가 혼자 만들어 냈는가하는 물음표들이 뭉개구름처럼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그가 개종을 해서 모든 것을 바꾼 후 쓴 크리스마스를 위한 극작품 “ 바리오나”의 개략적인 줄거리를 봐도 그렇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도 혼란은 남아있다. 아니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것중 하나는 개인적으로는 그의 사상을 아직 전부 혹은 일부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의문점들이 남아 있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다는 것과 다른 또하나는 다른 평전과 다르게 연대기순이 아니라서 오는 오류들이 뒤엉켜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독자가 해결해야할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몇 안되는 단점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가지는 위치, 그리고 샤르트르가 가지는 위치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이런 감정은 기존의 다른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삶 자체가 주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삶 안에서 역사를 찾고 사상을 찾고 문학을 찾기도 할테지만 그의 삶 자체만을 보는 것 또한 내게는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프랑스의 샤르트르란 곳을 둘러보듯 , 20세기 역사를 산책하듯 그렇게 이 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들이 어쩌면 오류와 의문점들로 엉켜서 고민할 지라도 그것 또한 샤르트르,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그를 만나는 또 다른 길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산책을 하듯 그렇게 이 책을 열기 바란다.

그런 그를 ‘위대한 샤르트르, 관대하고 빛나며 별볼일 없는 자들과 셈에 들지 못한 자들, 정의와 권리를 빼앗긴 자들 자유와 박애를 빼앗긴 자들의 친구 샤르트르, 항상 업압당한 자들의 대의명분을 위해 불꽃을 태울 준비가 되어있는 태양 샤르트르, 종종 시대가 이기주의 애 빠져 있을 때 불타오르는 샤르트르(P662-663)’

s******3 2009.07.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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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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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인구가 50억 아니 60억이라 했던가. 지금 이순간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긴 시간 세상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그 불꽃을 사그러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고 있다. 왜 살까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의 일이 아니라고 평소 느끼지는 못하고 있기도 하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해 놓은 이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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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인구가 50억 아니 60억이라 했던가. 지금 이순간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긴 시간 세상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그 불꽃을 사그러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고 있다. 왜 살까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의 일이 아니라고 평소 느끼지는 못하고 있기도 하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해 놓은 이치이기에 원한다고 이루어지지도 막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결국 어떻게로 물음의 돌리고 오늘도 화이팅을 외치고 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았다 말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답을 알수 없다.

 

그렇기에 다른 이의 인생을 자꾸 들여다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환경 다른 결정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삶에 지표를 삼기도 하고 방향을 정하기도 하며 고민의 답을 끌어내기도 한다. 주로 자신의 일상을 써 내려가거나 과거의 힘겨움을 극복하는 과정들을 열거하는 형식의 글을 빌린 수필들이 대 다수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동감이나 동조의 감성적인 면만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울고 웃게 되는 경우가 다이다. 이에 반해 한 인물의 태어남부터 자라온 환경 그리고 인물의 사상과 삶을 모두 아우르게 되는 평전이나 전기는 조금 더 딱딱하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장폴 사르트르[1905~1980)을 만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뜨악이었다. 워낙 철학이나 사상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기에 그 유명한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아는 것 하나도 없던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자그만치 900페이지도 넘게 펼쳐져 있다는 것 부터가 책을 펼치기 전에 겁을 먹게 만들었다. 게다 프랑스판 판 부제인 '찰학적 탐구' 에 걸맞도록 처음부터 여지껏 읽어본 평전과는 다르게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건너뛰어지고 있다. 보통 인물의 성장과 완성은 자라나는 배경과 환경에  있으니 그 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확 무너뜨리며 처음부터 40살의 사르트르와의 조우가 시작된다.

 

20세기의 대사상가이며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르트르의 면면을 파헤치는 책을 읽다보면 위대하다 아니 모순덩어리이다 아니 여성편력이 심했던 한 남자일 뿐 이구나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사르트르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보이는 이 책은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저자 레비가 2005년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콜로키엄에서 한 발표였던 <한명 혹은 두명의 사르트르>가 책의 집필동기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구토>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문학가로서의 사르트르가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의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정치가가 되고 , 열렬히 이스라엘을 지지하던 그가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사건의 지지로의 너무 쉬운 돌변등의 이중적 행보속에 한 사람이 아닌 두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 여지껏 알쏭했던 두 명의 사르트르에게서 발견한 공통된 사상으로 반휴머니즘과 반자연주의, 반역사주의, 역사적 비관주의 를 말할 수 있다. 아직도 그의 사상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피노자와 스탕달이 동시에 되고 싶었던 젊은 사르트르는 결국 시간이 흐르며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못하고 자꾸만 변하게 된다. 인간 스스로의 창조성을 강조한 반휴머니즘과 만들어져 있는 환경속의 존재로서 인간을 탐구한 반연주의자였으며 아직도 어렵기한 헤겔과 모택동주의에 빠져드는 반역사주의와 역사적 비관주의가 핵심사상이다. 정말 한 인물의 사상과 문학을 따라가다 보니 역사의 소용돌이와 시대 사상사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힘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두껍다는 것이 핸디캡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두꺼운 반면 술술 읽혀 나간다. 저자의 사르트르의 면면에 대한 까발리기 속에 들어 있는 대선배로서의 존경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잘 몰랐던 역사적 인물이지만 인간으로서 변질되어져 가는 사르트르와 함께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건드릴 수 없던 신성 불가침 영역같던 사생활을 속속들이 풀어헤쳐놓은 대다 개인 사생활과 학자 정치가로서의 생활은 분명 다르게 해석되어야 함을 내세워 칭송을 하기도 하고 칼날같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우리에게서 발견 할 수 없는 한 인물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비판이 담겨져 있다는 데서 서구사회의 자유스러움이 부러울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다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에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더불어 20세기 사상가들을 총 아우러 만나볼 수 있기도 했다.

n***y 2009.07.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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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이 아니다. 샤르트르의 사유에 대한 길고 긴 고찰
"평전이 아니다. 샤르트르의 사유에 대한 길고 긴 고찰" 내용보기
원제는 ‘샤르트르의 세기(Le Siecle De Sartre)’이다. 20세기 서구사회의 유명한 지식인인 샤르트르를 다방면에서 살펴보았다. 만년체의 문장으로, 상념이 흐르는 대로 자세히 설명했다. 다양하게 펼친 이야기들을 통해 이미지를 만든다. 샤르트르의 행적과 저술을 살펴보면서, 다기한 동시대 인물들을 논의에 끌어들였다. 그래서, 수많은 논쟁과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저자의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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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샤르트르의 세기(Le Siecle De Sartre)’이다. 20세기 서구사회의 유명한 지식인인 샤르트르를 다방면에서 살펴보았다. 만년체의 문장으로, 상념이 흐르는 대로 자세히 설명했다. 다양하게 펼친 이야기들을 통해 이미지를 만든다. 샤르트르의 행적과 저술을 살펴보면서, 다기한 동시대 인물들을 논의에 끌어들였다. 그래서, 수많은 논쟁과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저자의 주요관심은 개인적인 삶과 자유를 강조하던 젊은 시절의 샤르트르와 소련과 모택동을 지지한 중년 이후의 샤르트르가 주는 혼란에 대한 이해이다. 가볍게 읽었다.

책의 내용이다. 샤르트르는 세기의 인간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큰 영광을 누렸다. 동시에 많은 이들의 증오도 받았다. 사회참여에 거침이 없었고, 많은 여인을 만났고,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모든 쟝르에 관심을 가졌고, 모든 문제에 의견을 표명했다. 젊은 시절 적극적 사회참여를 주장한 지드를 추종했다가 결별했고, 독일계 철학자인 베르그송, 니체와 교감했다. 20세기 서구의 지식인들은 위대한 철학사상을 전개한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한 것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 독일 치하에서 샤르트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혼란을 주지만, 분명한 것은 반휴머니즘 실존주의자이면서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가였다는 것이다. 2차대전 후에는 스탈린을 지지하고 소련을 옹호하였으며, 모택동주의와 교감하고, 쿠바혁명에 동조하였다. 그의 이러한 변신은 독일 수용소에서의 체험이 알게 해준 공동체의 편안함에 기인했다. 문학과 이별했고, 거의 장님이 된 말년에는 유대주의에 귀의하여 다수의 추종자들을 괴롭혔다.

저자는 대비되는 생각 중 어느 쪽인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참여와 순수,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신앙과 무신론, 정신과 물질, 사물과 인간 등으로 생각을 나누고, 어느 쪽인지 천착한다. 허나, 대비되는 것들은 동전의 양면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어느 한 쪽이 답일 수 없는다. 종합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저자는 원심력으로 흩뿌린다. 저자가 깊이 파악할수록 샤르트르는 모순된 인물이 된다. 결국, 저자의 그림 속에 남는 샤르트르는 참여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고, 어제의 자신을 과감하게 부정하는 사람이며, 찰나의 인생과 현재에 충실한 인물이다. 허나, 숙고없는 참여는 혼란을 가져올 뿐이지 않는가. 샤르트르는 자신도 모르는 소리를 하며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의 불행한 지식인들의 전조였단 말인가.

이 정도에서 멈춘다. 샤르트르가 아닌 이 책의 저자가 그린 샤르트르일 수도 있으니까. 기존에 알았던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 이 정도의 이해가 더 맞을 수도 있으니까.

k*****e 2021.10.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