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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스튜어트 코니스버그. 우리가 우디 앨런으로 알고 있는 미국 유대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 꼽는 감독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35살이나 차이가 나는 순이 프레빈과의 결혼으로 인해, 파렴치한 노인네로 평가절하 받고 있지만. 나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한 편도 보지 않고서 말이다. 하지만 <마이티 아프로디테>, <한나와 그 자매들>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쏴라> 같은 그의 걸작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우디 앨런 특유의 걸출한 수다의 입담, 냉소적이 블랙 유머와 그의 현학적인 잘난체에 반해 버렸다. 어찌나 유식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지 <한나와 그 자매들>을 통해 배운 “hypochondriac”(자기 건강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란 단어는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 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통해 처음으로 우디 앨런의 글과 만나는 즐거움을 갖게 됐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활동적으로 영화판을 누비고 있는 이 노친네는 저명한 잡지인 <뉴요커>에 기고한 18편의 단편들을 모아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니체의 유명한 저서를 팔아 타이틀로 삼았다. 평생 뉴욕을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아온 우디 앨런은 뉴욕 그 중에서도 여피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맨해튼에 서식하는 오만가지 인간군상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교육 경쟁의 단면을 그린 <탈락>에서는 유명 사립유치원 면접에 떨어진 아이를 둔 부모의 고뇌를 스케치해낸다. 이 장면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내니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타이틀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였다. 니체의 그 유명한 철학 산문시를 교묘하게 비틀면서 뉴요커들의 섭생의 미학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잘난 현학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로 인한 무지한 독자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데 있어 일말의 양심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사이비 종교와 보통 사람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건설업자 그리고 자신의 주 무대인 영화판 역시 우디 앨런의 냉소로 가득 찬 독설을 피해갈 수 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유사 이래 새로울 것이 없다는 영화판의 (우디 앨런이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천재적 창조성’의 부재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여과 없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열량을 섭취할 재화를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겠지? <오, 친애하는 유모여>에서는 자신들이 고용한 유모가 소설의 주인공 부부를 모델로 해서 쓴 글에 대한 경악과 분노를 다루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디 앨런의 전처가 그들의 사생활을 책으로 출간을 해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우디 앨런식 패러디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딸 같은 순이 프레빈을 12년째 데리고 사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처럼 들린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는데, 글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분명 다른 스타일의 번역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흠, 그 정도로 무지했던걸까. 책의 판형도 보통 책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일러스트를 맡은 이우일 씨의 그림들이 마치 엽서처럼 책의 곳곳에 끼워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특히 니체와 같은 식탁에 앉은 우디 앨런의 그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밀레니엄 캐피털 뉴욕을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글들이 너무 재밌다. 역시 영화에서처럼 그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다들은 유쾌하기만 하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뻔뻔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이렇게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작가적 능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디 앨런 특유의, 비꼼의 미학이 아주 마음에 든다. |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패러디한 제목은 우디 앨런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지은 거 같지만, 제목이 제법 매끈하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단편소설집은 과연 어떨까. 예전에도 그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어서 대충 짐작은 했지만 역시 우디 앨런이었다. 사실 그의 단편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에서 느껴지듯 이 영감은 수다쟁이다.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순이와 결혼한 정체불명의 미국감독이며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우디 앨런식 삶의 철학이 깃든 책으로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중간에 조금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재치있는 이야기는 웃음의 샘이 퐁퐁 솟게 하는데 충분했다. 문학, 건축, 미술, 음악 등 전방위 예술혼을 가진 영혼이라 그런지 이야깃거리가 넘쳐 그의 수다는 끝도 없다. 속사포처럼 빠른 진행은 수다스러움을 분출하는 활화산 같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우디 앨런식 화산의 건재함에 불똥이 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오죽하면 아이디어를 풀어낼 시간이 없을까 봐 우주의 멸망을 겁낸다고 할까. 재빠른 입담은 그의 꺼질 줄 모르는 열정이기도 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특징이 되었다. 이쯤 되면 이 사람 풍자 한 번 맛 들어지게 한다 하겠다. 명문대학도 아니고 명문 사립유치원에 아이가 떨어지자 이후 삶의 모든 게 변한다는 첫 이야기는 탈락이란 제목이다. 고작 돈 펑펑 쓰는 명문 사립유치원에 못 들어갔다고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가족 또한 뇌물을 써서라도 들어가고자 노력하나 실패한다. 노숙자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셔야 무언가를 깨닫는 마지막 대사를 읽으며 그저 웃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우리 사회를 보자. 명문학교에 들어가고자 밤낮으로 애쓰지 않는가. 게다가 뇌물, 촌지, 인맥. 그리고 노숙자, 사회복지시설 등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의 소재가 여기서도 통한다는 것은 그가 그리는 세상이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지금 이 세상이기에 거울처럼 현실을 반영한다. 그것도 살짝 비꼬아서. 그래서 약간 굴곡이 있지만, 한층 재미있다. 사회만연에 퍼진 이슈를 가져와 가볍지만 제법 꾹꾹 눌러 짜서 풀어두니 독자는 가볍게 책장만 넘기면 될 뿐이다. 강박증이 떠오르는 우디 앨런. 정신분석학적 혹은 심리학 관점에서 보여지는 그는 어떨까. 내성적이며 강박을 지닌 그의 세계에서 수다를 한 꺼풀 벗겨 내면 고요함이 있다. 그가 계속 풀어낼 자유변주곡을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다. 삽화가 엽서인 줄 알고 처음에 잡아당겼는데 책에 붙어 있었다. 이우일 하면 예전에 <이우일의 그림동화>라는 엽기동화를 낸 사람인데 우디 앨런과의 조합이 정말이지 잘 어울렸다. 요즘처럼 날씨 좋을 때 밖이나 시끄러운 곳에서 읽어도 좋을 책이었다. 몸에 좋다는 저염식의 다소 싱거운 음식을 즐긴다 해도 가끔은 이렇게 톡 쏘아주는 양념을 가득 쳐서 먹어도 좋을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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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앨런의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독특하고 유쾌할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책은 처음이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먹었다고 살짝 패러디하면서 이책은 정말이지 유쾌할수 밖에 없다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했다.
우디앨런의 지식과 상식은 목마름을 느끼기가 무섭게 쏟아진다. 여기 책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여겼던 문제나 우리사회에서 이슈될만한 작은 이야기들을 크게 혹은 작게 비틀어서 보여준다. 블랙코메디라기 보다는 유쾌상쾌 통쾌에 가깝다. 이런식으로 생각할수도 있겠구나 싶다.
짧은 단편이 소설이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영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 같다. 그래서 지루하지않고 단숨에 읽어낸다. 그리고 한편씩 읽어낼때 마다 입가엔 피식 하는 웃음과 머리는 제빨리 먼가를 찾는다. 이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평소에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것들. 그런것들에 대한 고정적인 시선이 아니라 꽈배기 처럼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 볼수도 있는 세상. 그게 우디앨런이 내게 보여준 것이다.
이번주 날씨는 맑았다가 더웠다가 하루종일 강풍에 비가 몰아쳤다가 낮은 기온에 코를 훌쩍거렸다. 우디앨런의 단편소설은 이런 다양한 날씨만큼이나 다양했고 독특했다. 우디앨런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의 독특함을 책에서도 이렇게 만날수 있어 너무 신났던 시간이었다. 중간 중간 고리타분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책 한권 분량에 비한다면 재미있게 본것 같다. 어떤이는 자뭇 진지한 내용의 책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하고 어떤이는 가벼운 이야기 하나에도 마음의 파장이 커지기도 한다는데 이책은 짧고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그러면서 또한번 생각을 하게 하는 ..그래서 더 좋았던것 같다. 하나더하기 하나를 둘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라 생각할수 있고 셋이된다고 생각할수도 있는 자유분방함 그 자유분방함을 나도 이책을 읽으며 맘껏 즐긴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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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디 앨런이 영화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도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드러내고도 남을 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는 철학, 역사, 과학 심지어 유명인들의 일화에까지 못 말리는 박식함을 발휘한다. 그 박식함이 그의 단편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참고지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유의 비판적이고 해학적인 위트라는 필터를 통해 재생산된다. 표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에서 이 필터는 세게 작동된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계보를 따라 내려오면서 철학자들의 사상에 걸맞는 체중과 음식의 견해를 능청스럽게 적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과 악을 넘어선 팬케이크’, ‘권력 의지를 지닌 샐러드드레싱’등 여러 가지 우디 앨런식 레시피들도 선보인다. 이러한 기발한 이야기들이 그만의 수사학을 거치면서 우습지만 진지하고도 가능한 이야기들이 되며, 현실에 대한 비판이 숨겨진 이중적 텍스트로 변한다. 학벌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부모들의 집착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지 <탈락>이라는 작품 속에서는 아이가 명문사립유치원 입학을 위한 안달복달 하다가 전 재산을 날리고 노숙자가 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연이 겹치고, 과장이 심한 면이 없진 않지만 앨런식의 과장된 사회풍자이다.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장되고,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작품들을 패러디하면서 코믹하게 진행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능청스럽게 단계를 올리며 진행되는 과장을 이야기가 끝나기 까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궂은 날 , 영원히 볼 수 있으리>에서 새 집을 건축하면서 점점 더 사기극에 휘말리고,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는(역시 이 주인공도 전 재산을 잃는다) 희생자가 나온다. 허영이 생활화된 상류층, 대역배우,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작가, 자신이 고용한 유모가 집필하는 이야기의 소재가 된 부부...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이 뒤틀리는 것은 모두가 비슷하다. 뒤틀리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세상의 잔인함을 우리에게 알려주며 상황의 희생자들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독자들에게 씁쓸한 어떤 느낌을 남긴다.
작품과 별개의 페이지로 끼워 넣은 일러스트도 특징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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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알렌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영화감독이자 작가인것 같다.. 그가 뉴요커에 연재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는 수많은 뉴요커를 열광시키고 파리지앵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오랫동안 뉴욕타임즈의 베스트 셀러에 올라 있었다고 소개한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늘 유쾌한 코미디와 인생에 관한 진지한 성찰 따뜻함이 함께있어 난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기 이책은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다양한지 여실히 보여준 책이다.. 17개의 짧은 단편들은 그의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것 같은 캐릭터들의 웃지 않을수 없는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있다.. 정말 우울할때 읽어도 웃음이 나올것 같은 마구마구 웃고 싶을때마다 꺼내서 보고 싶은 책이다.. 웃음과 풍자 그리고 동시에 지적인 이 책은 그의 영화를 많이 닮은 책이였다..
탈락 中 - 난 이제 뭔가를 믿게 됐어.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걸...그리고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간에, 모든 인간은 결국 신의 도시에서 살게 될거야. 왜냐하면 맨해튼은 점점 사람살기 힘든 곳이 돼가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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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희극적인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 우디 앨런이 쓴 단편소설을 막상 읽으려고 하니 그가 만든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무렴 어떠랴. 그가 쓴 소설이라도 이렇게 먼저 읽으니 다행이지 아니한가. 최근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웅진지식하우스, 2009년)는 우디 앨런의 단편 18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의 단편들은 짧고 명쾌했다. 단편 중에서도 단편이라 할 만하다. 짧은 소설 형식에서부터 일기글, 편지글, 여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내용 또한 작정한 듯 이 사회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가득했다. 평소 그의 기질을 토해낸 것일까. 영화들을 보지 못했기에 궁금증이 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의 글을 통해서나마 어렴풋이 그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에 대한 조롱과 풍자는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글이 짧기에 구성 또한 간단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단면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한 번쯤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사뭇 진지하다. 아이를 일류학교에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부모들의 모습(탈락)이나 기도문을 낙찰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이를 활용하는 현실(할렐루야, 매진입니다)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이지만, 상류사회의 모순 혹은 그에 편입하려는 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면모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우디 앨런의 의도였는지 아니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책에는 글의 성격을 부각시킬 수 있는 그림들이 삽지 형태로 첨부되어 있다. 우디 앨런의 얼굴이 갖가지 표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글만큼이나 재미있고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우디 앨런의 메시지를 전한다.
짧은 시간 우디 앨런의 글 덕분에 유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 현실에 대한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은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by 꽃다지, 2009년 6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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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우디 앨런이 또 한 건 해내었구나. 매년 영화 소식란에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쉼없이 일 년에 한 편씩 뚝딱 영화를 만들어내는 우디 앨런의 왕성함을 볼 때면 '저 할아버지 올해도 건재하시구먼' 하고 혀를 내두르곤 했는데, 올해는 우리에게 영화(2008년 작)와 단편집(2007년 작)을 내려주시니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이번 단편집은 역시 그가 오랫동안 뉴요커에 연재해오던 것을 묶은 것이라 한다(예전에 그의 다른 단편집이 한국에 출간된 적이 있는데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도 구하기가 어렵다). 그가 뉴요커에 연재를 중단하면 독자들이 불같이 항의할 정도로 우디 앨런은 뉴요커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라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 넘치는 유머와 비유와 지적 풍성함은 한 군데도 나무랄 데가 없다. 그는 다소 과장되고 만화 같은 설정으로 현대인과 도시 생활을 절묘하게 비틀고 풍자하고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썼을 것이 분명한데 <탈락>이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할렐루야, 매진입니다!> <오, 친애하는 유모여> <실수는 인간의 일, 공중 부양은 신의 일> 등등의 단편은 우리 사회와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뜨끔해지기도 한다. 우리 '인생'에 대해 이렇게 달콤쌉싸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가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지 않고 영화를 선택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드문드문 그의 멋진 소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참, 다소 괴짜 같은 우디 앨런의 특성 때문일까? 이 책은 모양새도 몹시 재미있다. 세로로 길죽한 판형과 엽서처럼 중간중간 만화가 이우일의 그림을 넣어 독특한데, 각 그림에 모두 우디 앨런이 주,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이 꼭 우디 앨런의 영화 같다. 특히 <법 위에 사람 없고, 침대 스프링 밑에 법 없다>에 삽입된 그림은 영화 <졸업>의 한 장면을, <핀척 법>은 영화 <배트맨>을 패러디한 것이지 않은가! 내용과 디자인 모두 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이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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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정말, 이 할아버지! 못 말리는 유머쟁이다. 책장만 잡으면 사람을 킥킥대게 만드는 재주라니! 블랙유머도 이만하면 고급이다.
표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는 무분별한 다이어트 비판에도 엄연한 '품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이거나, 한 실체의 본질이거나, 또는 그 본질의 양태이다. 다만 그것이 그대의 둔부에 쌓일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 아테네 사람들은 이상적인 육체를 추구하는 데 집착했다. 그 예로 아이스킬로스의 소실된 희곡에는, 클리템네스트라가 간식을 절대 먹지 않겠다는 맹세를 깨버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에 입던 수영복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양반은 늘 이런 식이다. 날카롭지만 간결하게, 핵심을 찌르며 사람을 웃기는 기발한 재주가 있는 것이다. <법 위에 사람 없고, 침대 스프링 밑에 법 없다>를 보자.
재판을 받게 된 스텁스는 따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대신 자신이 자기변호를 맡는 쪽을 선택했는데, 변호사 수임료를 놓고 갈등이 생겨 결국 자신에게 악감정을 품게 됐다.
나는 사형수 감방에 수감된 스텁스를 면회하러 갔다. 그는 끝없는 항소를 통해 십 년째 교수형 집행을 미뤄오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감방을 공부방 삼아 무역을 공부했고, 일급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땄다. 드디어 최종 선고가 내려지던 날, 나도 방청석에 앉아 결과를 지켜보았다. 스텁스는 나이키와 교수형 집행 텔레비전 독점 중계권 계약을 맺고 엄청난 돈을 챙겼으며, 마침내 사형 집행일이 당도하자 정면에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검정 두건을 쓰고 교수대에 올랐다.
누가 감독 할아버지 아니랄까봐, 우디 앨런은 마치 코미디 영화같은 깔깔거림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바로 그때 엄청나게 크고 불길한 그림자가 벽면에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순간 그녀의 피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심장은 심하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막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벌리는 찰나에 토비아스는 그 그림자가 자신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다이어트를 좀 해야겠군.
이런 깔깔거림이 식상하다면, 조용히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유머는 어떠하신지?
운전자의 오른쪽 팔뚝에는 '평화, 사랑, 명예'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왼팔 소매를 걷어 올리자 또 다른 문신이 보였는데, 그 문구는 이러했다. '새김 오류: 내 오른쪽 팔뚝을 무시하라.'
마치 만담꾼처럼, 걸쭉한 입담으로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하는 이 할아버지의 재주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야 말았다. 우디 앨런의 팬이라면 더 좋고, 그의 팬이 아니어도 기분 좋게 킥킥댈 수 있는 책. 더불어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지도 살펴볼 수 있다.
ⓒ Hyang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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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우디 앨런의 단편소설집이다. 우디 앨런은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만큼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우디 앨런의 단편소설집을 접하였을 때 약간 의외였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표지 안쪽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우디 앨런에 대한 소개에서 영화 촬영이 없는 날에는 7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다는 말과, 그의 글은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통해 우디 앨런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우디 앨런은 대단하다는 생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다는 의미는 유쾌하고 활발한 면과는 거리가 멀다. 쓴 맛이 나는 웃음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우디 앨런은 인간의 불완전성, 비논리성과 부조리함 그리고 삶의 무의미성을 직시하면서 현대 사회와 현대인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대신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먼 거리에서 바라본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웃음 뒤에 가려져 있는 현실은 우스꽝스럽고 우매해서 보고 있기가 참 불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애처로워서 그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서고 싶어진다. 우디 앨런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으냐고 묻는 것만 같다. 잘잘못을 하나하나 따지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더 빨리 깨닫고 인정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우디 앨런은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느낀 나 역시 그의 생각이 옳았다고 동의한다. 우디 앨런의 글은 인간의 불신과 불안을 정확하게 묘사해 내는 날카로움을 지녔다. 날카로운 칼에 베이면 쓰라리고 따갑지만 그의 글에서는 아픔을 느낄 수 없다. 우디 앨런의 글은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디 앨런의 장난스런 농담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도 분명히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와 함께 첫 맛은 쓰지만 끝 맛은 달콤한 우디 앨런의 글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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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디 앨런 영화의 팬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 이 책에서는 우디 앨런표 영화 특유의 witwist (wit + twist / 제가 방금 만들어 낸 말입니다.)를 느낄수가 없습니다. ending credit 이 올라갈 때 터지는 그 감탄사가 이 책에서는 튀어나오질 않습니다.
말도 안돼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만들어내는 우디 앨런의 능력은 놀랍습니다만, 어떤 단편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어떤 글들은 그저 말장난 같기도 합니다. Amazon.com의 독자리뷰를 봐도 그다지 재미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영어권 독자들의 반정도가 재미없다고 한 그런 종류의 유머가, 비영어권인 저에게 재미있게 다가올리는 더더욱 없겠죠.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산 책이, 우디 앨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에게 실망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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