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을 거리가 많은 책임과 동시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Anthology. 시나 문장을 추려 모은 책이다. 생텍쥐페리 작가가 쓴 여러 책들의 글귀들을 모아 낸 책이다. 어린왕자를 필두로 야간비행, 성채, 인간의 대지, 사색노트, 젊은날의 편지, 남방우편기,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평화인가 전쟁인가 등 그가 여태 펴낸 소설 등에서 가져온 글들이 목차에 따라 가득 자리하고 있다. 글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사진과 삽화가 가득 들어 차 있어 책을 읽으면서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책이다.
토파즈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데 '탈무드 잠언집'과 이 책이 대표적이다. 두 권 외에도 해당 출판사 책을 읽었지만, 이 두 권이 단연 좋은 책이고, 읽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글과 사진이 잘 어우러져 있어 문장들이 더 잘 사는 느낌도 든다. 읽어 보면 안다. 얼마나 좋은 책인지.
나온 것을 알자마자 바로 사봤다. 지난 2010년 7월에 처음 읽었다. 책은 2009년에 초판이 나왔지만, 손에 들어온 책은 2쇄인 것을 봐서는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소위 말 같지도 않은 힐링을 강조하는 지금 시대에 책이 나왔으면, 불티나게 팔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본 이후 책장 깊숙한 곳에 있다보니 좀처럼 보지 못했다. 책장에 책이 가득 차 있고, 이후에 또 채운 만큼 다른 책을 꺼내야 이전에 꽂혀 있던 책을 알 수 있었기에 한 동안 잊고 지냈다.
지난 여름에 중고서적을 정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보지 않는 책 약 100권을 처분했다. 30권 정도는 버려야 했고, 70권 정도는 중고로 매매했다. 책장을 한 번 싹 정리하면서 다시 알게 됐고, 이후에느 깊숙한 곳이 아닌 그나마 꺼내보기 쉬운 쪽에 내놨다. 최근 수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국제에 대한 책을 두루 봤던 만큼 한 동안 문학 서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름에 모처럼 집에 들린 이후 책을 꺼내 들어 내용을 살펴봤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라면 습관이다. 이따금씩 오후나 저녁 때 할 일을 다 한 이후 특별하게 해야 할 것을 찾지 못한다면, 책장을 보며 이 책 저 책을 꺼내 보곤 했다. 그 어릴 적 책이 몇 권 없던 시절부터 그랬던 것이니 오래된 행동의 발아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손에 잡힌 책이 '생텍쥐페리 앤솔러지'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이다. 오랜 만에 책을 보면서 옛 생각에 잠기면서도 유려한 문장을 보면서 진짜 치유를 느꼈다. 책을 훑어 보는 와중에 마음이 편안했고, 와서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그것이 진리가 되려면 '이야기 속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은 부조리하다. 이야기는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질서가 생긴다. 마치 나무나 어떤 위대한 생애처럼. 그럼에도 그들은 질서를 만들어 내어 그 질서를 유지하는 비결을 찾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질서는 자연데 대한 표현 그 자체이다.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 사람들이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렇다, 그런데 그러한 명확함은 풍부한 개념에서 파생된다.
진정한 의미의 창조는 개념적이다. 창작은 기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표현한 진리에 대해 그들에게 의견을 물어봐라. 아마도 듣기 좋은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직 진리가 아니다. 그것이 진리가 되려면 당장신이 능력을 발휘해 그것이 위력을 갖도록 해야 하고, 당신이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위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진리는 교과서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과서의 '형태' 속에 있다.
진리는 잘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효능을 지니고 있다.
- 사색노트
'진리는 효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 정말 그래야 한다. 고고한 척 먼나라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이들은 굳이 꼭 이론에 목을 맨다. 목을 매지 않더라도 강조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이해는 된다. 그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였을 테니, 그 이론을 강조하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낸 것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테니.
그러나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이론의 틀이나 준거로 인해 세상을 바라볼 경우 자칫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이론으로 보는 게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이론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만 강조하는 이가 있다. 결국 그 이론에 갖히는 꼴이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론은 현상을 파악하는 도구라고 여겨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미래를 건설한다는 것은 곧 오늘을 이룩하는 것이다. 즉 오늘을 위한 소망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내일을 향한 오늘의 소망, 그것이 꼭 내일을 위해서만 의미를 갖는것은 아니다. 그대 몸의 기관이 현재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대는 죽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인생이란 현재에 적응하는 것이며, 현재 속의 실존은 언어로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유대 위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균형은 또 다른 균형으로 수없이 형성되고 있다. 혈관들 중에 단 한 개만 잘라도 곧 죽어버리는 코끼리처럼, 아무리 거대한 생명체도 그대가 추상적인 증명을 계속하면서 그 중 단 한 가지만 잘라낸다면 균형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 경우 그대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를 원한다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대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친 황야를 삼나무 숲으로 만들 수도 있다. 문제는 그대가 삼나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순간마다 그 자체나, 혹은 씨앗을 움트게 할 요인이 현재 속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성채
추구하는 게 있다면 시작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2010년에 읽을 당시 감명이 깊었던지, 책 끝이 접혀 있었다. 그 시작이 있어야 추구하는데 얼마 만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는 것. 시작하기 두렵다면, 접근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도박이나 나쁜 것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고 있는 무엇인가에 도달해야 한다면, 이에 앞서 할지 말지 주저하고 있다면, 종국에는 그 목표에 다가서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승리자가 되어 있다.
책 중간에 석양이 지닌 그림 가운데 나와 있는 문장이다. 꼭 어디서 따왔다기 보다는 그냥 적힌 글 같다. 석양을 바라보는 소녀가 양팔을 벌리며 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더욱 인상적이다. 그렇다. 승리자로 살아야 승리할 수 있듯,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설사 승리자는 아닐지언정 패배자는 아니다.
책의 표지 맨 뒷면에 나와 있는 글을 소개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과, 누군가와 함께 마음을 나누고 행동하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는 힘이 된다.
소통.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구축하면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호흡하는 것. 자주는 보지 못하더라도 1년에 한 두 번이라도 만나고, 전화라도 가끔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살아가는데 있어 관심 분야와 살아가는 것에 대해 논하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래야만 다소 따분할 수 있는 삶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고, 재미를 느끼는 삶에 행복감이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blog.naver.com/seung4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