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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그 해는 우리의 유 관순 누나가 삼일만세운동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에 잡혀 들어가 천인공노할 고문에 사지가 찢겨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 때이다. 같은 해 영국의 수학자이자 사상가인 버트란트 러셀은 중국 북경에서 근 2년동안 강의를 한다. 이후 그간의 강의록을 모아 1922년 출간된 책이 바로 [러셀, 북경에 가다 / The Problem of China]이다. 이 책은 이제껏 서구열강 중심의 세계관에 경종을 울리고 오만한 서구적 사고관을 수정하여 앞으로 변화의 흐름에 우뚝 설 중국을 연구하라는 강렬한 미래적 메시지가 담긴 글이다. 1920년대에 다가올 21세기의 거대한 파도를 예감한 천재 사상가의 매서운 안목과 탁월한 동양관에 무릎을 치는 구성이 주목할 만하다.
만일 중국인들이 발견하고 수백년 동안 실천해 온 생활방식을 받아들인다면, 전 세계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그런 생활 방식을 체험하지 못했다. 서구의 생활 방식은 투쟁과 착취, 끊임없는 변화, 욕구 불만 그리고 파괴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파괴를 위한 능률주의는 결국 인류를 전멸시킬 것이다. 만일 동양의 지혜를 배우지 않고 멸시한다면, 서양문명은 종말로 다가갈 수 밖에 없다. [p29]
유럽인이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군사적 우위는 영원불멸의 자연법칙이 아니며, 서구 문명의 우월성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중해 연안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서구의 역사서는 대단히 그릇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p41]
지구본을 돌리다 보면 지구에서 가장 큰 대륙인 아시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중국의 급부상은 이제 한 시절을 이끌어가야만 할 위치에 당면해 있고 동양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에게도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해야만 할 숙명을 안고 있다. 한자문화권에 자리 잡은 한반도는 역사가 말해 주듯 유학을 비롯한 중국문명에 대체적으로 익숙하다. 전통적 정서와 고유 질서가 천박한 서구 패권주의에 정신을 내주는 현 시절을 보고 있노라면 바닥으로 내몰리는 우리네 식견이 측은하기 짝이 없다. 형이하학적 정치 소통방식과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조장하는 주요 언론기관의 왜곡된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지 의문이 든다. 비좁은 땅에서 이제는 서서히 위로 위로 부양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20세기 초 유럽인인 러셀의 세계관은 이미 중국문명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바라본 중국과 세계의 운명은 21세기 초 현재의 세계관에서 벗어남이 없어 보인다. 중국이란 나라는 정치적 실체가 아닌 문명자체라는 점,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아 건재한 문명은 중국밖에 없다. 공자의 시대 이후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중국문명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중국인을 인도인으로 바꾸지 못했고 서양 과학이 들어왔지만 그들을 유럽인으로 바꾸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맹목적으로 서구 문화를 찬미하지 않았고 잔인하고 침착하지 못한 서구적 태도를 싫어한 반면 그들의 과학적인 우월성은 받아들이고 싶어했다. 아울러 태생적으로 같은 위치에 놓인 일본과의 역사적인 충돌과 투쟁은 그 중간에 위치한 한반도 상황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문명의 겉과 속을 훑어주는 영국사상가의 기백넘치는 문체가 아시아인이면서 일본문명의 역사성을 따지거나 학습하지 않았던 현재의 내 모습을 반성하게도 했다. 왜 일본은 유럽으로, 서구로 진출하고 싶어했는지, 그들은 대체 왜 역사와 문명을 서구인의 시각으로 탈바꿈하고 싶어했는지, 외모 자체부터 아시아의 모습보다는 백인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고 싶어했는지를(물론 유럽인들에게는 먹힐 수 없는 소리였겠지만) 들려준다.
이제는 "아마도"가 아닌 "분명히" 빠른 시간안에 중국이 세계적 판도를 변화시킬 것이다. 잘 가꿔진 정원에서 깔끔한 식사를 즐기는 유럽식의 단정한(?) 문화에서는 거대한 문명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 종교가 관광상품이 된 지 오래되었고, 그래서인지 유럽인들은 종교가 있으나 비종교적이다. 공자의 유학이 변질되었다고 하지만 중국인에게 유학은 일상에서 수시로 지켜야 할 규율이자 종교적인 그 무엇이다. 시종일관 시끄럽고 냄새 풍기는 북경의 재래시장에 한걸음이라도 내디뎌 본 자만이 미래의 문명을 이끌어 갈 수 있음을, 그 안에 내재된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음을 러셀은 강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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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불황 속에서도 인도와 중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보유한 풍부한 노동력은 이미 세계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다가 이 국가들은 역사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비록 지금은 후발 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나 역사상 축적된 문화의 힘이 결정적일 때 이들을 앞서 나가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는 나의 바람이자 믿음이다. 실제로 어떻게 될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래에 먼저 가볼 길이 없는 우리로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대신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으니, 거꾸로 과거를 향하는 것이다. 많은 기록들이 지금의 우리가 가능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잦아졌다. 과거엔 그렇지 못했다.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버트런드 러셀이 살아 있던 시절엔 그 정도가 아마 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 땅을 밟았다. 문명간의 대화가 적던 그 시절, 그의 경험은 드문 것이었을 게다. 그가 중국으로 향했던 1920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전세계는 이미 한 차례의 전쟁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중국은 당시 전쟁의 승전국이었다. 패전국에 비한다면 핑크빛 미래를 구상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각종 이권을 서양 세력에게 빼앗긴 터였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아시아 종주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곳곳에서 밀려오는 강력한 도전 앞에서는 종이호랑이와도 같았다. 특히 서양인들의 눈에 드넓은 중국대륙은 점령하기 좋은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게으른 사람들,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 한없이 얕잡아 보아도 되는 곳으로 당대 서양인들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을 인식하고 있었다. 러셀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공간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했다. 그는 그 긍정적인 특성 때문에 중국이 세계에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거라 믿고파 했다. 그는 중국의 저발전 상태를 도외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발전하지 못했다는 판단은 지극히 서구적인 잣대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전혀 다른 가치관에 입각해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정신적인 면모가 바로 그것이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피까지도 부르는 것이 바로 서양의 방식이었다. 승리한 자는 패한 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러셀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전쟁마저도 평화로웠다. 이러한 평화로움은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자’는 서양의 어떤 종교와는 다른 작동기제를 구사한다.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몰고, 그렇기에 개종을 권유하는 것이 기독교의 방식이라면 중국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 그 외의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상대적으로 평온한 상태로 공존하고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 속에서 중국의 위치는 매우 특수하다. 인구로 보나 잠재력으로 보나 중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이지만, 당장의 현실적 힘으로 보면 약소국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국제적인 문제들은 워싱턴 회의 덕분에 국제 정치의 전면에 대두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 예견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명백한 사실과 원칙이 있다. 나는 다음에 이어지는 장에서 그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사실과 원칙을 간단히 짚는 일부터 시작하겠다. 첫째, 중국인은 아직 정치에 무능하고 경제 발전에 뒤처져 있긴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서구 문명에 뒤처지지 않는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서구에 의해 파괴되어버린 요소도 있다. 둘째, 열강은 중국에게 숱한 굴욕과 강압을 행사하면서 그 구실을 중국의 악덕에서 찾고 있지만, 열강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참된 이유는 오직 하나 중국 육해군이 약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중국이 관계를 맺고 있는 열강 가운데 가장 우호적인 상대는 미국이고 가장 나쁜 상대는 일본이다. 영국 자신의 권익을 위해서나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나, 영국이 일본에 대한 지지를 중단하고 미국이 중국의 자유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미국의 우방이 되기로 방침을 밝힌 것, 그리고 일본의 자유가 위협받지 않는 한 영국의 방침을 바꾸지 않기로 한 것은 엄청난 정책의 진전이다. 넷째, 결국 중국이 군사 국가가 되거나 외국 강국이 사회주의화되지 않는 이상, 중국은 외국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제도는 본질적으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약육강식의 약탈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군사적으로 강력해진다면 큰 참변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해결책은 단 하나, 유럽과 미국에 싹트고 있는 사회주의에 있다. -p84,85 세계의 자본이 몇몇 나라에 집중된다는 것은 그 몇몇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에게서 부를 뽑아낼 수 있고 가난한 나라들을 완전히 예속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히 항구적 평화를 보증하는 체제가 아니다. 결국 중국은 공업으로 얻은 이윤을 다른 나라에게 넘겨줘야 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에는 외국 자본에 종속되어 굶주리고 있는 러시아 역시 기회가 무르익으면 재정적인 세계 제패에 맞서 새로운 반란을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워싱턴 회의로 기업 합동이 결성된 결과, 안정적인 세계 기구가 설립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아시아가 우리의 경제 체제를 똑같이 모방하면, 아시아와 서구의 전쟁이라는 형식으로 마르크스류의 계급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옹호자로, 러시아는 아시아와 사회주의의 옹호자로 서로 나뉘어 이 전쟁에 참가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아시아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겠지만, 인류에게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아시아의 독특한 문명을 보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 전쟁은 어떤 문명도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지상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p221,222 그가 이상적으로 보았던 사회주의는 이제 케케묵은 사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세상을 폐허로 만들고, 한 국가의 이윤 추구가 다른 국가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그의 분석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안타깝게도 중국은 러셀이 기대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택하고 있으나 뼛속까지 받아들인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자국의 결속을 위해 소수민족의 역사마저도 자국의 것으로 편입시키는 시도의 이면에는 자국의 힘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문득 오늘날 서울은 러셀의 눈에 어찌 보일까가 궁금해진다. 서울에서 그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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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버트런드 러셀은 북경에 1년간 생활을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중국이란 거대 문명을 인정하고 서양인이 중국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1920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로 서양의 제국주의가 팽팽해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서양인은 동양을 하나의 문명으로 보기 보다는 미개한 인종으로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그런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나 수천 년간 공자의 도와 덕을 숭상해온 중국의 문명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서구는 스스로를 우월한 문화를 전파하는 설교사로 여기는 태도는 물론이고, ‘열등한’ 중국인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등골을 우려낼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벗어던져야 한다.‘ ( 본문 22 쪽 ) 하지만 러셀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너무 미화시킨 경향이 있다. 더욱이 우리처럼 중국 옆에 붙어 있는 약소국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러셀의 표현에 결코 동의 할 수 없다. 어떤 사회를 판단할 때는 내부적으로 선이나 악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선이나 악을 증대시키는 데 그 사회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 사회가 누리고 있는 선은 다른 사회에 존재하는 악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략-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에 해를 끼칠 만큼 강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그들 자신의 힘과 노력에만 의지해서 확보되는 것이다. -중략- 중국인은 서구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진보와 능률에 무관심한 덕분에 평화로운 삶과 인생의 기쁨을 누렸다. ( 본문 24~25쪽) 러셀은 이처럼 중국에 대해선 호의적인 반면에 일본에 대해선 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내 보기엔 러셀이 중국에 보다 일본의 실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현대의 일본은 서구가 만들어낸 작품임에 틀림없다. 일본이 중국에게 하고 있는 행동들은 따지고 보면 일본을 가르친 백인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유럽이나 미국과는 크게 다르고, 일본이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야심은 유럽이나 미국의 야심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중국이 하나 혹은 두 개의 백인 국가에 종속된. 둘째 중국이 일본에 종속된다. 셋째, 중국이 자유를 되찾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일시적으로 보면 네 번째 가능성, 즉 일본과 서구 강대국들의 연합체가 중국을 관리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일본은 궁극적으로 영국.미국과 협조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영국.미국과 협조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은 극동을 지배하거나 아니면 패망할 것이다. 만일 일본인이 지금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예상을 빗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야심의 속성 대문에 배타적이고 비우호적이다. 나는 중일 관계를 다룰 때 이런 관점을 근거로 삼을 것이다. (본문 25~26쪽) 러셀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이계라는 사람이 쓴 표의문자인 한자에 대한 칭송을 소개하는데 이른다. 중국어는 표음문자 어족에 속하지 않는다. 중국어에는 표음문자 언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이 없다. 그러나 중국어는 간결하면서도 최종적인 진리를 구현학고 있기 때문에, 폭풍과 스트레스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어는 4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 문명을 보호해왔다. 중국어는 그 문자가 대표하는 정신만큼이나 정연하고 확고하며 훌륭하다. 정신이 언어를 만들어 낸 것인지, 언어가 정신을 강화시킨 것인지 확실치 않다.( 본문 52쪽 ) 이 글을 읽으면서 표의문자인 한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한자 문화권에 살면서 이제야 비로소 표의문자인 한자에 대한 긍정적인 근거를 찾아낸 것이다. 다음 글에서 러셀은 중국은 애국보다 효를 강조하는 나라라고 소개하면서 중국의 효 사상에 관해서는 서구의 애국주의와 견주어 우호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서구의 애국주의에 비하면 중국의 효는 그다지 해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효와 애국심은 모두 인류의 일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 전체를 배제하라는 의무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잘못이 있다. 그러나 애국심은 인간의 충성심을 전투 부대로 향하게 하지만 효는 (아주 원시적인 사회의 경우를 제외하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애국심은 아주 쉽게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살인이다. 자기 가족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부패와 음모다. 따라서 가족의식은 애국심에 견주면 덜 해로운 것이다. 중국의 역사와 현 상황을 유럽에 견주어 보면 이런 생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 본문 56~57쪽 ) 이글을 보면서 러셀이 애국주의와 가족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라웠다. 그런 그의 탁견이 있었기에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일본인의 속성을 읽어낼 수 있었고 그들이 제국주의 야심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셀은 당시 일본인들의 태도에 대해서 세세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일본인들의 비열하고 잔인하며 교활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식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역추적이 가능하다는 거다. 외국인이게 속을 내주지 않고 실익만 챙기는 외교전술 (본문 159~160쪽) 상징적인 인물인 천황을 내세워 국민에겐 애국주의 강조하면서 막후 실세를 휘두르는 고도의 정치술(본문 136~137쪽), 오래전부터 집요하게 이루어진 역사외곡의 실체(본문 133~134쪽)까지 흥미롭게 기술되어있다. 이 책은 1926년에 발표된 글이기에 그 후 중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청나라의 붕괴와 외세의 침략으로 무정부상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대한 우려로 러셀은 중국이 군사 국가가 되거나 외국 강국이 사회주의화되지 않는 이상, 중국은 외국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 본문 85쪽 ) 하지만 중국은 스스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당시 러셀의 강연을 경청하던 모택동 학생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면서 자신들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유산계급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 방법을 사용하면 자유를 제한하거나 전쟁과 유혈 혁명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셀의 의견에 대한 나의 반박은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교육을 하려면 돈, 사람, 수단이 필요하다, 현대 세계에서 돈이란 돈은 모두 자본가들이나 자본가의 노예들이 장악하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중요한 두 가지 교육 수단인 학교와 신문 역시 자본가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 세계의 교육은 곧 자본주의 교육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본주의를 가르친다면, 이 아이들은 자라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다시 자본주의를 가르칠 것이다. 결국 교육은 자본가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본문 9~10쪽) 모택동의 반론은 공산주의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은 러셀의 견해에 비해 올바른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을 생각한다면 모택동은 중국이 지닌 힘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 생각을 할 것이다. <러셀 북경을 가다>는 내가 감당하기엔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엉킨 당시 국제정세 부분이 그렇다. 이 부분은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 같다. 끝으로 90년 전에 가졌던 러셀의 해안과 진보적인 사고에 놀랐고 그이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기술 방식에 놀랐다. 아쉬운 것은 나의 역량부족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었을 땐 이런 아쉬움이 없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