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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인간=남자)이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계몽주의 사상이 팽배하던 시대에 여전히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던, 단지 남성의 소유물이자 남성의 보조역할로만 보는 기존 사회의 관념에 도전하여 여성도 인간이며 당연히 누려야할 인권이 있으며 여성의 자각과 여성의 교육적.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며 "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곧 자연법" 이라고 주장한 장 자크 루소의 의견에 저항하며 "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理性)이라고 주장하며 1792년[여성의 권리옹호]라는 책에서 기존의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과 도적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여성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인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위대한 패미니스트 울스턴크래프의 삶은 여성들의 삶이 남성과 동등한 이성으로 대접받기위한 반석위에 올려놓은 위대한 패미니스트임에 분명하다.
 
남성에 의해 삶이 짓 밞히고 자유를 박탈당한 여성의 억압된 트라우마는 그녀의 가족사에도 비켜갈 수 없는 도전이었다.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남아선호 사상은 장남에대한 집착을 넘어서 편애였으며 도도한 산업혁명의 물결을 따라 직물공장을 상속받았던 아버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술독에 빠져 폭력은 나날이 어머니에게 더해 가면서 불평등한 남녀관계에서의 결혼관에 대해 고민을 뼛속깊이 새겨둔다.
그 당신 아내는 남편과 법률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단지 남편으 법적인 소유물이었던었기 때문에 남편을 거부함은 곧 굶어 죽어 수 밖에 없는 사회였던 것이다.
 
값싼 지방 학교를 얼마간 다닌 것 외에는 정식 교육이라곤 받은 적이 없는데도 독학으로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당시 영국의 지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실과 이론 사이의 괴리와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며 모성을 지적인 삶과 성적인 욕망에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문제,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의 스스로 경제권을 가져야 함을 깨닫고 여자 혼자 몸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사업상 여행을 떠난 점, 그녀의 여동생 엘리자가 폭력적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위해 서둘러한 결혼은 폭력적인 남편으로 부터 탈출시킨것은 그 시대적 상황에서는 담대한 행동으로 받아져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최 상류층 귀족 자녀들의 가정교사로 일하며서 얼마간 경제적 자립을 누리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계층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불평등하다는 사실은 체험한 그녀는 18세기 모든 여성은 상류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성적 대상,가정부,남성의 장식품이었기에 오직 여성들에게 걸 맞는 교육만이 불평등을 해결하기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끊임없이 남성에 저항하며 여성을 일깨우기위해 몸부림치면서 성(性)에 대한 마음의 변화가 찾아온다. 성적인 욕구를 여성들에게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보았으며 ’정숙함이란 절정에 있으며, 부정은 동시에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 이라고 단언하는 단계로 발전하면서 그녀의 가치관에 놀라움 변화를 가져오면서 결혼의 여명이 다가온다.
미국 출신 사업가이자 작가인 길버트 임레이와 사랑에 빠지는데,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육체 관계를 맺게되면서 형식상 임레이의 아내로 등록하지만, 임레이의 떠돌아다니는 사업과 또 다른 여자관계에 대한 비애를 뒤로한채 아기(패니)를 출산하지만 변함없는 임레이에 대한 배신감으로 템스 강에 몸을 던지며 자살을 기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1796년[스웨덴에서 온 편지]를 출간하고 그 해 가을 윌리엄 고드윈을 만나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기존의 결혼 제도에 반대하면서도 아기가 생기자 결혼을 한다. 생활하기 위한 방편이나 예속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서의 결혼은 울스턴크래프트가 동경해오던 가정생활이었다. 또한 자신의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비추어보면 늘 그려왔던, 감정적인 신뢰와 안락함을 줄 수 있는 가정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두 사람의 결혼이 곧 스캔들이었다. 그 때까지 울스턴크래프트는 임레이 부인으로 통하고 있었으므로, 고드윈과의 결혼은 이전에 임레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거나 고드윈과의 결혼이 중혼이라고 여기게 했기 때문이다. 세간의 시선과 무관하게 자유롭고 대등한 동반관계로 시작된 고드윈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너무나도 짧았다.1797년 둘째딸(메리)을 출산했으나 출산 후 산욕열에 걸린 울스턴크래프트는 제대로 처치를 받지 못해 열흘 만에 38세의 일기로 짦은 생을 마감한다.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의 진보적인 여권신장운동은 거대한 남성의 장벽에 철저하게 갇혀 철저하게 왜곡되었고 조롱의 대상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시당했지만 역사의 진실은 언제나 사실이 들어나듯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인고의 고통의 견뎌내며 만들어낸 20세 이후의 여성의 권리와 자유, 비 대칭적인 결혼관을 바로 잡은 위대한 패미니스트의 희생의 산물위에 지금 우리 여성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이 인간이 아니었던 암울한 시대에 고독히 써내려간 작가로서 친구들이나 임레이,고드윈에게 보낸 수 많은 편지와 저작물에서 그녀가 토해낸 숭고한 여성인권에 대한 삶의 철학은 그녀가 표현하듯 " 나는 평범한 길을 가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 전 단지 약간의 평화와 독립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받는 모든 의무는 새로운 속박이고, 타고난 자유를 약화시키며,정신을 저하시키고, 우리를 하찮은 벌레로 만들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라는 자유에 대한 열망과 " 여성들은 허영심이라는 신기루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자신을 스스로 발전시켜야 한다.
여성들이 그것을 깨닫고 나면 다음엔 여론을 바꾸어야 한다. 라는 남성들의 억압에서 서서히 걸어나오는 여전사들의 중심에서 여성인권을 진두지휘했으며, 제가 기꺼이 지키고 싶어하는 가슴에 상처 줄 가시를 예리하게 하지 않도록 감수성을 계발시키고 감정의 섬세함을 품도록 하겠어요. 자신이 살게 될 세상에 순응하기 위해서 그 아이가 마음을 털어놀을까 두려워요. 아, 불행한 여성이여! 그대의 운명이란! 강렬한 여성혁명과 열정의 한 가운데서,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소설들의 장점은 좀더 섬세한 감정들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제가 계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교육받은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똑같이 억압받고 있는 서로 다른 계층의 여성들이 겪는 부당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라는 그녀의 불멸의 여권신장의 언어의 힘은 한 세기를 넘어서 세상을 가로지르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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