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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악기에서 실패한 연주자가 최종에 선택한 악기라는 오명을 가진, 비행기로 이동할 땐 한 자리 더 예약해야 하는 번거로운, 주목받지 않은 악기 연주자를 그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악기는? 그렇다. 콘트라베이스다. 더블베이스라고도, 줄여서 베이스라고 불리는 악기.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쉽게 베이스의 음색을 찾기란 참 어렵다. 대개의 연주자들은 앉아서 연주하지만, 타악기 연주자는 앉아 있다 자기 연주가 들어가는 부분에서만 일어나지만, 연주하지 않을 때조차 서서 있어야 하는 꽤 피곤한 악기. 느려터진 저음을 가진, 거대한 몸집의 여인을 왈츠를 신청하고픈 숙녀로 탈바꿈시킨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있다. 베이시스트 성민제. 그의 연주를 2010년 봄 조수미 독일가곡콘서트에서 처음 들었다. 조수미 앨범 <독일가곡집>에 참여한 인연으로 선배 아티스트 무대에 오른 것이다. 슈베르트 가곡 ‘음악에’를 연주했는데, 저음의 매력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이후 인천시향과 협연으로, 피아니스트로 다시금 돌변한 정명훈을 주축으로 우리나라 대표 솔리스트 7인으로 구성된‘7인의 음악인들’공연으로 그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슈베르트 피아노5중주곡 ‘송어’에서 유감없이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이 품어져 나왔는데, 마치 오랜 세월 금덩이를 감추고 있던 흙이 비바람에 흩날려 우연찮게 발견이라도 한 듯 뜻밖의 횡재에 들뜨게 했다. 저음의 색깔을 확연하게 보여주면서도 현장감을 더해 주었다. 그의 연주 스타일 덕분이다. 점잔을 빼지 않고 바투에 놓인 악기와 왈츠를 추는 듯했다. 그런 까닭에 펑퍼짐한 아줌마는 사랑에 달뜬 소녀가 되었고, 나는 볼품없던 악기의 몸체의 감춰진 유려한 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첫 앨범 <더블베이스의 비행>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도이치그라모폰 노란빛 레이블의 수놓는 앨범의 첫 곡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이다. 벌의 날갯짓과 베이스의 숨 가쁜 저음이 이리도 절묘하게 맞을 줄을 몰랐다. 황제쯤의 커다란 벌이 비행하는 것을 떠올려도 좋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연주하는 샹키의 ‘카르멘 환상곡’을 곧잘 듣곤 했다. 화려한 보잉과 이에 맞물려 쏟아지는 폭포수 같은 열정에 반했기 때문. 성민제가 연주하는 ‘카르멘 환상곡’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은은하면서도 묵직하게 밀려온다. 활활 타오르는 산불의 온도를 가두어 겨우내 따뜻하게 보내도록 온풍으로 실내를 덥힌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도 이와 흡사한 감응을 준다. 보테시니나 파가니니의 곡도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이 가진 매력을 발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흔히 첼로를 사람의 음성과 가장 흡사한 악기라고 한다. 콘트라베이스는? 삶의 깨달음을 얻은, 자신을 성찰한 자의 음성과 같다. 혹여 의심된다면 베이시스트 성민제의 음반을 들어보기를. 그의 프로필을 읽다가 낮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2008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관람했는데, 그가 최연소 단원으로 참가했단다. 100여 명이 연주하는 악기군 속에 그가 연주하는 악기의 울림도 내 귀를 파고들었을 터. 눈은 기억하지 못해도 귀는 기억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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