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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을 한다. 허뜨러진 몸부림 같다. 그 언젠가......... 예전에 본 이질적 전부함을 보는 듯하다. 전부이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슬플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을 것을.... 어두운 터널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그것은 분별없는 집착...... 착시된, 굴절된 환영. 각본없는 연극 같다.
번외의 눈물....... 그러할 수 없기에 멀리 바라다보는 이른 새벽 나팔꽃처럼 피어나길 바란다. 나로 인해 내팽겨쳐진 시련을 모른척 한다. 아픔과 회의의 눈물이 된다. 남 몰래 훔치는 눈물은 나를 평정하여 완숙한 추스림 다음에도 흐르는 것.... 그것은 번외의 눈물이다. 가까이 그리고 간직할 수 있음으로 나를 위안하며 소유치 않은 배려로 자신을 삼키는 눈물이다. 수순의 망덕으로 소홀히 지나가는 그림자를 원망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림자 아닌 번외의 그림자. 나에게 스스로의 흡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핀 나팔꽃 처럼 활짝 피어나기 만을 소원하여 그리움을 부린다. 난 떠나지 않치만..... 스스로 일어 설 수 없다. 우리의 이름은 나팔꽃..... 아랑 아랑 담벽에 달라붙어 그리움과 간직함을 피운다. 넌 머물지 않은 질주로 치닫지만 다가 설 수 없다. 밤새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나팔꽃 처럼 우린 번외의 눈물을 훔치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그러하지 않은 것처럼 푸념은 상처를 남긴다. 시작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빗장의 문을 넘으려고 한다.
그 만큼만.... 그 만큼만으로도 나를 위로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 오래 불신 당하며 위선된 자취들을 밝히어 올때. 왜? 왜? 그러한다. 난 아무런 기억이 사라지려 한다.
앞번부터 나는 번외의 훔친 사과를 숨겨 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쁜 접시에 담을 그릇은 없다. 그건 담지 못 하는 것이 아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의 결과는 자신의 흔적이 행 한 전부이지만...... 항상 많은 흔적과 이유를 남긴다. 시작은 배열의 이치에 따라 흐르기도 하고 우연히 상응한 합치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물과 기름이 쉽게 융화 되지않듯 그만한 희석의 시간과 불가능을 넘어 서야 하는것이다. 최소한 번외의 눈물은 그리 태어난다. 오늘 무슨말을 하는지 미리 알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건 내가 건널 강이 아니었다. 너무도 명분이 부족한 번외의 사설이다. 만남이 스스럼 없으려면 원인을 만들지 마는 것도 중요하다. 왜 나를 소홀히 그리고 무관심에 두고 기만됨으로 마음을 붙들고 있는지 묻는다. 그래..... 팩트가 빗나간 화살 같다. 번외의 눈물은 간직함으로도 충분하다. 다음은 자신과 또 다른 시름과 고뇌와 싸워야 한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기약된 이별의 갈림길을 만날지 모른다.
언젠가 아무일 없던 것 처럼.....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이른 새벽의 나팔꽃...... 밤새 훔친 번외의 눈물.... 번외의 눈물은 시련과 아픔을 먹고 산다. 항상 음지에서 항상 저 멀리서...... 그러나 한땐 행복 할 수 있고 한숨 눈물로 나을 위로 할 수 있다. 인생도 간직함도 자신을 뒤 돌아다 보지 않은 맹인으로는 실책을 범하기 일수이다. 넘어지고 갑갑하고 마음이 앞서 가니 말이다. 번외의 눈물은... 아마 자신의 완벽한 처신으로 튼튼한 성벽을 쌓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난공불락의 수성으로 아무것도 잃치 않고도 승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 이다. 배려라는 말 중에..... 왜 라는 말은 없다. 왜 라는 말은..결국 자신은 있고 남은 없다는 얘기나 같으니 말 이다. 후회도 미련도 여한도 없는 나 아닌 또 다른 번외의 눈물은 남 몰래 훔치는 것이다. 아프다. 힘들다. 나아 갈 수 없는 중간계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다. 동경은 같고 이상은 비슷하나 본질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너무 많은것을 바라지 않았음 좋겠다. 그래 나도 더이상 바라지 않는 것이고 수렁에 빠지지 않게 살피는 것이다. 더 이상 시련은 싫다. 아픔도 그렇다. 나로 인해 남이 가슴 아파하는 것도 싫다. 나로 인해 아무일 없 듯 행하여 지는 안개속 오류가 다시금 나에게 흔혼의 상처가 되지 않길 빈다. 번외의 눈물은 남이 나태 하거나 변하여 버려진 다음에도 구석진 응달에도 슬피 울 수 있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피는 나팔꽃 처럼.... 이미 자신이 슬프고 외롭게 느끼어져 올 때 번외을 잊는다. 당연한것 처럼.... 번외의 눈물은 촉촉한 그리움으로 소외되어 우는 것이다. 그러나 번외의 눈물은 더욱 당당해 지어 자신을 굳게 추스려야 하지 않을까? 백년만의 간직함이나 그리움이 끝내 꽃 피우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또 다른 나의 심장이 살아날때 그리움과 갈망은 피어 오를것을 ........ 그러함으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란과 가로 닫힌 벽이 번외의 눈물을 바라다 볼 뿐 이다. 난 어찌하면 좋단 말 인가? 진실을 열면 다시 닫히는 갈구와 불신....... 성숙치 않은 마른 몸부림. 그럴만한 명분과 이유을 모르겠다. 동경과 희망은 그만한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것...... 나에게 그러한 모순의 양심앞에 서란 말 인가? 그러한 것인가? 그런것이 전부란 말 인가? 그 다음 다음은 또 무엇이런가? 모른척 아무일 없이 지나치는 것도 성숙한 소홀함이 될 때가 있으리라. 아무일 없이 스스럼없이 살고픈 내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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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주는 사랑을 내리 사랑이라고 한다. 대가를 받지 않고 한없이 퍼주는 사랑이 바로 이 내리 사랑이다. 그리고 정말 훌륭하신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주는 사랑도 내리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생님은 부모님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내리 사랑을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헌신적인 선생님 말이다. 하지만 난 생각지도 못하게 책을 통해서 이런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실제 이런 선생님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더 앞섰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비록 현재 살아계시지는 않지만 그 분의 아드님이 책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50대 방송작가인 저자가 무명의 시골 초등학교 평교사로서 페스탈로찌와 제 2의 방정환으로까지 불리었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토대로 이 책을 쓴 것이었다. 책의 주인공은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힘겹게 중등 교육까지 마치고 해방 후부터 30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모든 아이들 고무신에 이름을 새겨주고, 날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갖고 가서 아이들과 바꿔 먹었으며 굶주린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가 씻겨주고 먹이고 재워 주는 등 아이들에게 정말 헌신적이셨다. 그 행적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감동적이다. 일생에 이런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그 자신에게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실제 저자의 아버지가 쓴 일기를 그대로 옮겨 보여준 것이었다. 그 일기를 통해 일제시대, 그리고 5, 60년대 농촌의 생활모습과 교육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시대를 경험했던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은 정말 크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아버지가 계신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 현재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은 깊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여 삭막하기만한 이 때에 한 번쯤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
![]() (저자 박원석)
아버지의 신발....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다. 그동안 도시에 시달리면서 메말랐던 가슴이 시원하게, 촉촉히 젖어든다.
강한 나무는 땅 속에 숨어 있는 뿌리의 힘이 있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런 귀한 분이 실제로 교직에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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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아버지의 신발 | 꽃이피는 날 http://blog.naver.com/yoon6475/30047961725
사람은 비싼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지 않라도 아름다워야 한다. 인격 하나로 빛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50대의 방송작가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쓴 사부곡이다. 무명의 시골 초등학교 평교사로서 페스탈로찌와 제 2의 방정환으로까지 불리었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토대로 쓴 감동적인 사도실천기이자 불효를 뉘우치는 아들의 뼈아픈 상념을 담았다 .
정작 글을 읽은 사람은 큰 감동으로 어찌할바를 모른다. 敎만이 아니라 育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마음을 묵묵하게 실천하셨던 분. 하늘이 내린 사랑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의 교직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열과 성을 바쳐 아이들을 사랑하고겠시느냐고.
존재 하나으로 향내가 나는 사람.....포기를 모르는 희망.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 아름답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신비한 시간을 경험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걸 경험했다. 눈물과 벅찬 감동으로 밖에 읽을 수가 없는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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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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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박원석님의 거짓말 같은 실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 일기장을 읽어가면서 어린시절 부터 되새겨지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는 왠지 어딘가 무뚜뚝하고 사랑늘 내색하지 않으며, 강인하고 우직한 분으로 인식이 되어진다. 흔히 어머니의 사랑은 많이 이야기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라는 분이 아니 부모라는 분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한한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절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했다. 자식은 언제나 고인이 된 부모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책을 보면서 박원석 작가의 아버지가 보여준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제자들의 사랑... 이 사랑은 어디에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아이와 순수와 올바른 교육만이 참된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우직하게 살았던 아버지의 삶이다. 책에 소개되어지는 아버지의 일기 속에는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그려져 있다. 또한 적적해 하실 아버지를 위해 일부러 자신의 아들을 시골에 맡기고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게 했던 박원석 작가. 아버지가 보여준 사랑은 자식 뿐만이 아니라 손주에게 보여준 사랑 또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어버이날 마다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백일 동안 천 기적귀를 쓰고 코를 흘려도 코 밑이 헐까봐 혀로 핣아서 닦아주셨다는 아버지 또한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을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과 든든함을 깨달은 순간 아버지는 이미 고인이 되셨다. 자식은 언제나 이렇게 한발자국 늦게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을 자식에게 물려준다.
힘든 시절 태어나 온 갖 세월의 역경을 다 겪으시고 한 평생 교육자로써의 삶을 사시면서 부끄러움이 없이 사셨던 아버지. 자신의 아들보다 손주를 위해 더 애쓰시고 사랑을 나눠주셨던 아버지. 이 모든 은혜를 갚으려 하니 이미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신 아버지. 책에서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가슴이 아프면서도 따뜻했던 책이다. 다시 한번 부모님의 사랑을 일깨워준 이 책이 여름을 더욱더 따뜻하게 해 주어서 너무나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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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때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막내고모 이후로 없던 첫 아기여서 할머니뿐만 아니라, 삼촌들, 고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는 할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해서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나 마찬가지인 우리 할머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모님과 할머니가 머리 속에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일기 덕분에 아버지의 일생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부모님의 일생에 대해서는 술 한 잔 하며 가르쳐 주신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대학교 '노년심리학' 수업때 노인의 일생을 인터뷰하고 심리학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수업 덕분에 대략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아버지의 일생을 알게되는 걸 보니,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유아기와 청년기를 보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조금 더 내가 연륜이 들고 부모님과 술 한 잔 곁들일 때 더 많은 얘기를 들을 날이 올 것 같다.
『아버지의 신발』을 읽기 전에 사실 지루하진 않을지, 앞에 읽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책처럼 억지 울음을 자아내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며 책을 넘겼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억지 울음따윈 없었다. 진정으로 작가는 마음으로 글을 썼고 눈물로 글을 썼다. 보는 내내 가슴깊숙한 곳에서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참아가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그 진달래꽃 같은 그리움을 절절하게 그려냈고 마음을 울리도록 써낸 이 책은 나의 부모님과 할머니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책을 2판을 내면서 작가의 이름을 들어냈다. 첫 판에는 아버지의 얘기를 쓰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겹쳐서 도저히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주변인들의 말로 인해, 이렇게 이름을 밝히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의 신발』은 저자와 아버지의 이야기와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버지의 일생을 담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보는 내내 어떻게 이런 분들을 내가 알게 됐는지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다. 저자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존경한다고 했지만, 저자 또한 그 성품이 남다르지 않다는 것은 남동생이 군대에서 다쳤을때의 처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감동을 위해 자세한 내용은 얘기하지 않겠으나 그의 마음 씀씀이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게 아닌가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아이들을 좋아했다. 아이의 코가 흘러나오면 헐까봐 혀도 핥아내 닦아내고 그것마저도 아깝다며 뱉지않고 삼키셨다.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해서 길 가다가 어린 아이들만 보면 앉고 얼굴을 비비고 뽀뽀를 하곤 했다고 한다. 아이 사랑이 정말 다른 분들과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가 교직에 30년간 있으면서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고 집에 찾아가 새벽 수업도 하고 주말마다는 청소 점검도 하였다. 점심시간이면 꼭 아이들과 교실에서 먹었고,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 중 가장 못싸온 도시락과 자신의 도시락을 바꿔먹었다고 한다. 그걸 30년 내내 하셨는 분이니 어찌 그 성품을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한 저자의 아버지의 징집생활에서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곧은 성품으로 인한 복이라고 밖에 못하겠다. 그 외에도 고무신에 이름을 써넣은 일들 하며, 아버지의 일생은 높고도 높아 우러러보였다.
나 역시 저자처럼 저자의 아버지 같은 곧은 성품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수 없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보지 않으면 쉬게 되고 농땡이를 피게 되는 건 내 성품이 그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겠지만 언제나 노력하고자 하는 건 이러한 분들이 있기 때문에 나 또한 닮고자 한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부끄러움이 너무나 들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하는 것, 노력한다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정말 아버지의 그리움의 절절함과 그 아버지의 강직하고 곧은 일생을 담은 이 책은 그 어떤 누구에게라도 추천함이 모자르지 않다. 마음이 충만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신발』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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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식과 손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그리고, 또 그분의 선생님으로서의 제자들,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느끼게 한 책, 아버지의 신발을 읽었다.
이 책은 같은 제목으로 2005년에 출간되었다가, 많은 사람들의 권유로 원 작가명을 밝히고 다시 2009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방송작가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원석님의 책으로 제일 먼저 읽어본 책은 물음쟁이 생각쟁이 논리쟁이라는 아이들을 위한 전집이었다. 그 책을 읽으며 참 박학 다식하신 분이로구나 생각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자서전 격인 아버지의 신발을 읽게 되어.. 박원석님과 그 아버님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일기장을 읽다가 자신의 어릴 적에 받은 사랑과 일기장의 내용을 같이 더불어 기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의 아버지분은 정말 참 스승이라 할 만한 분이셨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제때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해.. 일본으로 건너가 초등교육 2년과 중등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바로 일제 징집명령을 받기 위해서였다. 어린 나이에 사지로 내몰린것이나 다름없는 군대로 끌려가 훈련소부터 시작해서 처절한 고생을 하였으나 고지식하고 무던한 성격 덕에..아니 사실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호 아래에 남들과는 다른 편안한 군대 생활을 하고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을 맞던날이 바로 전장터로 끌려갈뻔한 바로 그 날이었던 것.
우여곡절끝에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 또한 천직이라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정말 남달랐다. 어려운 형편에도 도시락을 더 싸다가 아이들과 나눠먹고, 아픈 아이들은 약을 발라주고, 씻지 않은 아이들(어려운 때라 부모가 아이들을 챙길 여력이 없는때였다한다.) 은 냇가에 가서 손수 씻겨주었다.
우리 아버지 또한 평교사로 올해 정년퇴임을 맞으셨다. 총각교사시절부터 결혼 후까지 시골 아이들을 챙기시느라 밥도 거둬 먹이시고, 학교 숙직실에서 늦은밤까지 아이들을 가르치시느라 아버지 반 아이들은 항상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였고, 적은 월급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따로 학비를 보태주실 정도로 아이 사랑이 남다르셨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한 터에 모든 것을 아이들을 위해 바치다가, 어쩔수없이 사표를 제출하고서는 거의 삶의 낙을 잃어버리신 작가분의 아버지. 평생을 교단에 서계시다가.. 올 초에 퇴직하시고서, 그만 쉬셨으면 좋겠는데도.. 하루하루 매일같이 일을 찾아서 하시는 근면하신 우리 아버지.
두 분은 천생 선생님으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신가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그 맘도 너무나 같이 느껴졌다. 작가의 아들 환이를 정말 금자동아 은자동아 돌보셨다는 작가분의 아버지처럼..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첫 손주인 채성이를 예뻐해주셨다. 아니, 지금도 채성이가 거의 유일한 낙이라 하신다.
백일까지 낮에 천기저귀를 썼는데.. 어느날 똥을 싼 그 천기저귀를..아버지께서 묵묵히 손수 손빨래를 하셔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손주의 똥기저귀인데.. 그마저도 예쁘다 하셨다. 우리 손주 똥도 예쁘게 잘 눈다고.. 워낙 엄하신 성격이셔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시는 법이 드물었기에 우리가 자랄때는 아버지의 남다른 사랑을 직접 느껴보진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손주에 대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젖이 부족해 달래지지 않은 아이의 칭얼거림이 심하던 백일 즈음의 무렵에도.. 너무 어려 업기도 힘들었던 그때에.. 오로지 아버지 품안에서만 희한하게 안겨서 잠이 들었다. 몇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아기를 안고 계시는게 무척 힘드셨을텐데도 고단하다 한마디 안하시고 같은 자세로 아기를 안아 재워주셨다. 내려만 놓으면 바로 깨는 민감한 아기였기때문에 재우기 위해서 몇시간이고 아버지께서 안고 계셨다. 사실 손주가 예뻐서기도 하셨지만, 매일같이 날을 새워가며 아기를 봐야했던 딸에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해주셨음을 내가 왜 몰랐을까.. 나중에 좀더 커서는 할머니 등을 워낙 좋아해서 어부바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재울 수 있는 분이셨다. 엄마 쭈쭈를 제외하곤 말이다.
양가어머님들도 아버지의 그런 손주 사랑이 신기하다 하셨는데.. 작가분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으며.. 아, 이런 분이 또 계시구나..하였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 어릴적에 말 않고, 표현 안하셔서 그러시지..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을까..
지금 손주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눈길을 보면서.. 그 사랑을 대신 가늠해본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아버지께 더욱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신발을 읽으며..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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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박원석님은 50대의 방송작가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1985년 이후 지금까지 지난 20여년동안 여러장르의 방송대본을 썼지만 그가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체 혼자서어루만져왔던 평생의 숙제같이 여기던 글쓰기가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저자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눈물겨운 사부곡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그 그늘속에서 자신을 겸허하게 또 가감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글로 읽는 내내 감동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조국의 독립과 6.25 그리고 근대화라는 격동의 시대를 선생님이라는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스승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회상하는 아버지는 한 평생을 이름 없는 평교사로 살아오면서 너무나도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식이전의 인간의 참사랑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 분이시다. 25년 동안 코흘리개 아이들의 고무신 바닥에 이름을 새겨주신 선생님으로 어려서 코라도 흘리면 코밑이 상한다고 휴지나 걸레로 닦지 않고 입으로 빨아주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돌아가신 후에야 깨달은 아들의 통한을 감동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분명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기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란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버지는 살고있다. 아들은 가장이 되어 처자식을 부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딪히며 살아봐야 아버지의 마음을이해할수 있다고들 한다.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게 꼭 찾아온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수많은 아버지들은 가족들을 벌어 먹이기 위해 묵묵히 생활전선으로 나간다. 그들의 양어깨 위에는 분명 가족을 얹고 나갈것이다. 가장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삶은무엇일까?라는 평상시의 의문에 대해 나 또한 아버지로서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가슴의 문을 활짝 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효의 의미가 날로 퇴색해가고 있는 이 시대를 사는사람들이 꼭 함께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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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모든 아버지들(부모님들)에게 머리숙여 감사의 표시를 대신해본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늘 자식의 걱정과 보살펴 주심에 늘 감사함을 다시 느끼는 귀한 시간이였다. 「아버지의 신발」이라는 책은 저자 박원석씨의 아버지를 그려낸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어려운 환경가운데 자기자신을 이기고 배울려는 열정, 수 많은 억압과 전쟁가운데도 자신의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아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교직생활을 하고 자기의 자식들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던 모습,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아이들을 돌보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매정한 사회현실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은 모습, 교직생활은퇴후에도 그 곧은 정신과 사랑으로 동물과 식물을 사랑했던 모습, 정한수를 떠놓고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기도했던 정성, 마지막으로 저자의 손자와 함께 하면서 나눴던 그 사랑을 일기로 남겨 놓은 것을 저자 박원식은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느끼며 책을 써보았다. 이 책은 배경이 보성쪽으로 그 지방의 사람들이 정겹게 나눴던 구수한 사투리이며 일제강점기시대, 6/25사변시대, 5/16군사정권시대 등 우리나라 억압과 고통의 세월의 역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철이 뜨거운 불길에서 치면 칠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억압과 고통이 있고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지만 그것으로 쇠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큰 희망의 불씨가 되어 서로가 힘을 하나로 모아 지금에 더 강해진 대한민국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 시절을 비록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느끼며 스스로 자부해본다. 또한 현 시대에 교육의 모습만 봐도 교사들의 부정부패와 교육감의 비리, 교사들의 성추행 등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 환경은 점점 썩어져 가고 있고 그들의 환경은 점점 사라져가 있다. 박원석씨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 현실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지만 이러한 분이 계시다면 정말 더러움을 얼룩진 교육환경을 다시 한번 정화하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내 자식을 가르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현 교육실태는 많이 호전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했던 페스탈로찌라는 별명과 제 2의 방정환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자식과 학교에서 뛰놀고 공부했던 아이들의 대한 깊은 사랑을 직접 실천했던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젊은 사람들도 자식이였던 위치에서 아버지의 위치로 바뀔 것이다. 지금껏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절대 잊지 말고 그리고 그 받은 사랑을 지금의 자녀나 먼 훗날의 자식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자. 마지막으로 모든 자식들 대신하여 이 말을 드리고 싶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