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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서고사이를 유랑하다가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를 만났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의 결과물이 책으로 탄생된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면 고미숙의 재미난 책들과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만나면서 낯설지 않은 곳이어서 더욱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되었다. 직업적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자신이 쓰는 글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결여가 아니라, 넘치는 잉여적 행동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이기보다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뿜어내려는 긍정적인 노력이다. 남아도는 에너지이고 즐거운 질주다." 우리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유쾌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니 너무 불친절한 것일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해야할 것들은 가르쳐 주고 있다. 평소 깊은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느끼는 소재에 대해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 실질적 정직성과 나만의 개성적인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즐거운 필독도서 1000권을 읽자. 다행인 것은 흔히 말하는 권장도서가 아니라 본인의 주제의식에 따라 책을 읽는다. 사람마다 읽어야 하는 책이 다 다른 것이 전태일 열사의 인생을 바꾼 운명적인 단 한 권의 책은 근로기준법 해설서였다니...
"오늘도 보람없이 하루를 보냈구나.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이야." 전태일의 67년 2월 14일자 일기이다. 깨어 있는 한 영혼이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나서도 더 몰입하고 더 전념하여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며 자신을 각성시키는 글쓰기를 했다. 글쓰기란 이렇게 나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다.
"'일반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시선을 중시하며 살아가지만, '예술가'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시선과 생각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글쓰기에 있어 타인을 의식해야할 거의 유일한 부분은 오직, '내가 쓴 글이 내가 의도한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감상적, 도식적, 윤리적, 일상적, 상투적,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좋은 글을 쓰는데 지름길은 없다. 구양수의 말대로 다독, 다작, 다상량의 정직한 길을 가야 한다. 당장 실천해 볼만한 것은 운명적으로 만나는 책(씨앗도서)에서 충격이나 감동을 주는 핵심 부분(씨앗 문장)을 재독, 따라 쓰기, 묵상, 변주, 암송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중에 고요한 침묵의 시간을 가지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솔직하게 메모나 낙서로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 공부는 단순히 직업적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다. 한결 본질적이고 다층적이고 활용적인 훈련이다. 실질적 정직을 통해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시각과 강도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기성질서 및 일상감각을 전복하고 자기만의 새롭고 자유로운 감각, 사유, 상상을 펼치는 일이다. 언제나 인식적이고 언제나 실천적인 행위이다...글쓰기 훈련을, 자신의 감각과 인식과 상상까지도 새롭게 만드는 근원적이고도 전복적이고도 생동적인 욕망으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 새롭게 기꺼이 다시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문장 하나가 좋아지는 그만큼 나는 어쨋거나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상당한 부분을 소설쓰기에 할애하고 있지만 깊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소재에 대해 정직한 글쓰기를 해야한다는 것과 인생에서 글쓰기 공부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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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들때부터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다. 고등학교 이과부터 친다면, 26년의 삶을 과학 분야에서만 지내고 있는 필자와, 문과부터 친다면 역시나 26년의 삶을 국문학 분야에서 살고 있는 아내가 같은 방을 쓴지 거의 15년이 되었는데, 아내가 과학 분야를, 그리고 필자가 문학 분야의 책을 읽는 경우는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그나마도, 어렵사리 상대방 분야의 책을 읽고나서의 반응은 "잘 모르겠다" 의 포기부터, "그래서 어쩌라는거야" 라는 비아냥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거기에는 "참 재미있다" 라는 상대방의 분야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감동은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었다. 그런 과거가 20여년 정도가 흘렀으니, 이제 거의 본능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는 수준인데도 가끔씩 아내의 분야에 대한 책을 드는 이유는, 그저 잘 보이고 싶은 인간적인 이유와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지식인인 듯한 겉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20여년간의 각인을 일거에 날려 버린 책을 이제서야 처음 접하였고, 그 책이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라 하고 싶은데 조금은 쉽게 감동하는 필자의 성격을 고려해서 좀 더 직설적으로 필자의 변화를 옹호하는 이야기를 한가지 첨가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필자의 몇가지 발언들이 아내의 파안대소와 함께 "야, 책 한 권 읽고나더니 말하는게 180도 달라졌네" 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정도면 일상에서, 이 책이 필자에게 특별하다는 증거로써 충분하지 않을까? ![]() 과학이나 정치, 사회분야의 책 이외의 책을 건드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무척 적고, 소설이라는 분야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자주 접하지 않는 필자에게, 이만교라는 작가 역시 어쩔 수 없이 낯설었다. 그의 대표작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영화로 알고있으니 말다했다. 어쩌면 그의 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가식적인 지식인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세속적 욕망때문이 아닌가 우려하면서 책을 들었다. 책의 첫 부분, "글쓰기와 꿈"에서 그가 인용하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잠입자』, 시인 김수영, 성철 스님, 노동자 전태일은, 글쓰기의 첫단추가 실질적 정직이라는 그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제시해 주는데 적절한 예시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직한 글쓰기가 쓰여진 글을 훨씬 설득력있고 풍부하게 해 준다는 그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있게 해주는 일화가 제시되는데 가슴에 다가오는 정도가 예사롭지 않다. "주은 지갑을 정직하게 돌려주는 도덕적 인간보다는, 자신이 슬쩍 차지하더라도 차라리 그때 체험되던 일련의 인간적 느낌들 - 가령 자신이 슬쩍 챙기고 싶은 욕심과 돌려주고 싶은 선량한 의지 사이의 갈등, 지갑을 획득한 순간의 짜릿한 즐거움과 그것을 돌려주지 않고 차지해 버린데 따른 죄책감 등 - 을 정직하고 자세하게 진술하는 태도가 글쓰기에 더 바람직하다". 마음의 울림이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이 정도의 정직은 조금 연습하면 될 듯도 하다는 건방진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태일의 일기에서 발췌된 한 문장 "오늘도 보람없이 하루를 보냈구나.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이야". 자기 차비로 여공들 점심을 사주고 걸어서 돌아오다 통행 금지 조치 위반으로 파출소에서 잠을 자고, 하루 열네시간의 노동과 허기에 지친, 학벌이라고는 중학교 중퇴가 전부인 젊은이가 통신 강의록으로 검정 고시를 보기 위해 공부하며 전하는 솔직한 고백이다. 이 문장을 인용한 이만교가 이야기하는 정직한 글쓰기는, 전태일의 소회처럼 치열한 고민과 강렬한 열정이 뒷받침되어야하는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책의 시작 부분부터 필자를 이렇게 공감시키는 그의 정직성에 감탄할 뿐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실질적, 그리고 치열한 고민이 뒷받침된 정직이라는 이야기를, 학교 시험때 중요한 수학공식을 시험 전날 외우듯이 가슴에 꼬옥 간직하고 책의 말미에 도착하였을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정직을 실천하고 있는 작가 이만교의 고백에 접하게 된다. 에필로그인 "본질적 감수성"은 그 부분만 읽더라도 핵심적인 주제를 전달하기에 충분한, 잘된 에필로그이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부터 공명이 있는 문장이나 문구를 접하였을때 그 부분의 페이지를 접어 두는 버릇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22쪽 분량의 에필로그를 살펴보니, 8군데나 페이지가 접어져 있었다. 필자에게 이 정도의 울림을 야기하는 에필로그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이후에 처음인 것 같다. 에필로그에서 이만교의 월악산에서의 명상 수행과 관련된 일화가 소개되는데, 예사롭지 않게 그는 명상 수행을 망상 수행이라고 자신을 질타하며 정직한 고백을 늘어 놓는다. 그가 망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세상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의 명상 조차도 망상의 연속일 것이라는 생각도 매우 설득력있어 보일 정도이다. 무한한 우주가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있는 구형의 표면과 같은 구조를 취한다는 최신 우주학의 결론과 같이, 책의 첫부분의 저자의 주장을 말미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이 얼마나 느낌이 남다른 끝맺음을 하는지 보여준다. 글쓰기를 위해 정직함을 유지한다면 허구의 사실도 꾸며내어 주제 자체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글쓰기의 정직함이 일상에서의 기계적인 정직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실질적이고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전태일의 에피소드를 제시한 이만교의 글쓰기 정직이 더욱 가슴에 다가온다. 책의 첫 부분과 에필로그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들은 글쓰기를 더욱 충만하게 하는 기술들이 많은 예들과 함께 제시되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정직을 유지하면서, 이런 기술들을 몸으로 습득한다면, 시속 150Km의 공을 쳐내는 야구 선수의 노력에 의한 조건 반사 기술과 같이 글쓰기 자체의 정직한 습관이 자리 잡을 듯 하다. 사실, 이런 기술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상 언어에서 탈피하여 출판 언어를 사용하고, 낯설게 쓰기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거의 공감하는 상식적인 내용의 글을 쓴다면, 국어 시험 공부하는 나른함과 무료함 이외에 무엇을 전달해 주는 글도 아닐 것이다. 적절한 예시와 함께 낯설게 쓰기라는 기술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하였다. 정직을 유지하면서 출판 언어를 이용하여 낯설게 쓰는 것. 필자가 이 책에서 이만교에게 배운 내용의 글쓰기에 관련한 한 줄 요약이다. 저자에게 채점을 받는다면 몇 점을 받을까? 그리고 실질적으로 필자의 글쓰기가 바뀔까? 참으로 궁금하다. 무엇을 알았냈을때 더 많은 질문이 생기는 과학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아내의 분야에서도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네 학문들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향해 나아가나 보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식한 공돌이라는 농을 조금이라도 덜 듣기 위한 한 걸음으로서도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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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두렵다. 오만 가지 생각이 들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첫문장 아니 첫 단어조차 시작하기 힘들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어떤 감각이 느껴지고, 생각이 펼쳐진다. 보는 것, 듣는 것, 심지어는 눈을 감아도 감정이 만들어지고,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나만의 느낌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이 글쓰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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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작소의 제2편이랄 수 있는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 출판기념 강연회에 다녀왔다.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가 출판되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도 못한채로 참석한 강연회였다.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를 감동하며 읽었던 기억은 물론 지금까지도 잊지않고 있는데, 사실 그 내용이 어땠는지는 이미 싸그리 잊어버린 후였다. 다만 이만교의 글쓰기 강의가 탐났기에 참석한 강연회였다. 강연회를 주의깊게 들은 나는 현장에서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이마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가며 빠져 읽었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강연회와 서문읽기를 통해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듯 했다. 나는 단지 글만 잘 쓰고 싶었던 것이아니라 깨어있고 싶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를 덮어두고, 전편이라할 수 있는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를 찾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2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빼곡하게 밑줄이 그어져있는 책이 마치 처음 보는 것인양 새로웠다. 이렇게 많은 밑줄을 그으면서 나는 도대체 그시절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지난 독서 기록을 살펴보니 이 책을 처음 읽고 감상을 남긴것이 2010년 7월. 이 책을 읽는 내내 설레였던 나는 그 느낌을 남의 눈에 모나지 않게 살고자 애쓰는 동안 잊었던 담배맛을 기억하는 느낌이었다고 적었드랬다. 사실은 이런 나의 감상글조차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글을쓰고 싶은 욕구로 읽었던 책에서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듯한 기쁨을 느꼈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그동안 깡그리 잊고 살았을까.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을 대하는 태도, 글을 쓰는 방식....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잠든 나를 깨우는 작업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도 깡그리 잊어버렸을까.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러나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책을 한권 쓰고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작가는 아니어도 나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낼 수 있을만큼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를 풀어내고, 나를 이해하는 일이 될테니까 말이다. 남과 같은 외양으로, 남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이다. 나의 글로, 나를 온전히 정직하게 표현해 보고 싶은 것이다.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다른 색깔의 볼펜으로 밑줄 치거나, 혹은 새로운 부분을 발견해 내기도 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꼼꼼하게 다시 읽어내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도 처음보는 책을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어쩌면 몇년 후에도 나는 이 책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책을 처음 읽은 2년 전보다는 분명 나는 이만큼(글쓰기 강연회를 쫓아다닐만큼, 서평이랍시고 감상문을 500편 이상은 써왔을 만큼) 하루하루 손에서 책을 놓는 일없이 2년간을 지내올 만큼)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384) 나는 언제나 옳다. 나의 느낌은 언제나 옳다. 나의 글은 언제나 옳다. 나의 행동은 언제나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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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글쓰기다. 글을 쓰면 되지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언제나 마음뿐인 그게 문제다. 정작 글을 써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언제나 딴짓만 하다가 결국 포기를 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계속 글은 쓰고 싶다. 그래서 보게 된 책이 바로 <글쓰기 공작소>이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검색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이 책을 추천하고 있어 읽게 된 책이다. 처음 시작부터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에 관한 작가 자신의 평소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도, 스스로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 때문에 더 열심히 강의를 준비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도 믿음이 가게 만든다. 무지막지하게 이론적인 면을 밀어 부치기보다 먼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글이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도 생긴다. 가르치는 사람도 분명 잘 모르고 힘에 부치는 일이라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하는 글쓰기 강의라니.. 그래도 서로 열심히 잘해보자는 말에 왠지 같이 해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지 이론적인 면을 강조한 글이 아니라, 습작생들의 글을 예로 들어 놓고, 그것을 다듬은 글을 보여주고 그 차이를 직접 느끼게끔 한다. 아니면, 그 글에서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지적해 주거나,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방향을 설정해 준다. 그런 글을 읽고 있으니 뭔가 마음으로 다가오는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조금씩 바꾸어 놓았을 뿐인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글을 보며 아!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생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인데, 어쩌면 글을 쓰는 작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태도도 배우고 있는 느낌이다. 인생을 논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냥 한번 보고 말 책이 아니라,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읽는게 더 어울릴 책이다. ‘초심’으로 마음을 다잡아 글을 쓰고, 글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펼쳐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시금 초심을 되돌아 봐야 할때도 읽고... 그렇게 두고두고 교본으로 삼기에 좋을 책이었다. 우리의 글쓰기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결여가 아니라, 넘치는 잉여적 행동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이기 보다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뿜어내려는 긍정적인 노력이다. 남아도는 에너지이고 즐거운 질주다. (p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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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작소]라.. 이런 류의 책에 대해서는 서평쓰기가 조심스러울 뿐더러 무척 어렵다. 감히 글쓰기 강의록에 대한 서평이라니..! 글쓴이가 보면 하품이 날 정도의 어줍잖은 글솜씨로 말이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늘 글쓰기가 두렵지만 특히나 이런 책은 더 그렇다. ""꽃이 '아름답다'는 말은 온 세상 어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아름다움을 나타낼 줄 모른다면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다."(이호철, [살아있는 글쓰기])" 글쓴이가 인용하고 있는 이 문장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멋드러지게 글로 표현해보고 싶지만, 결국 "아름답다." 이상의 표현을 찾아내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사실, 글쓰기는 "타고난 재주"에 기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글쓴이는 단호히 말한다. 타고난 재주보다는 부단한 노력이라고...! 그 말 믿고 나도 써본다. 자꾸 쓰다보면 더 괜찮은 글을 쓸 수 있겠지 싶어서.
글쓴이는 이만교.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쓴 작가로 "현재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연구공간 수유 + 너머>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책앞날개)고 한다. 이 책은 "등단 지망생과 다만 글쓰기 자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일반 수강생 비율"(p4)이 5대5 정도인 <연구공간 수유 + 너머>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의 강의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1.글쓰기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되는 글은 "10. 단계별 글쓰기"까지 총 열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앞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덧붙여져있다.
사실 이 책은 글쓰기에 큰 관심은 없지만, 습관적으로 쓰는 서평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서 펼쳐들었던 책이다. 하지만 프롤로그 "글쓰기와 꿈"이 가슴에 와닿아서 끝까지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던 책이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자기 인생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과 조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p272) 내겐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이 그랬다. "정말이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즈만 취하고 있다. 말로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고, 또 실제로 의식적으로도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글은 한낱 명분이거나 핑계일 뿐, 정작은 다른 욕심을 취하고 싶어한다."(p40) 비단 글쓰기뿐이랴. 프롤로그에서 글쓴이가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내 삶의 계획들, 그리고 "꿈"에 적용시켜 보아도 너무나 절실히 와닿는 말이었다.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다가는 벌떡 일어나 앉을만큼!
이 책의 핵심인 글쓰기에 대해서는, 간단한 정리가 힘들다. 직접 읽어보시라! 등단을 염두에 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글쓰기에 대한 설명이 많았는데, 그 부분이 내겐 도움이 될 것 같다. 읽기 좋고 오랜 여운을 주는 글은 하루 아침에 뚝딱 씌여지지 않았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는다. 논술지도 받듯이 첨삭이 이루어진 다양한 글을 보며, 좋은 글을 보는 안목 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마음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책으로 내겐 기억될 것 같다. 이 책 [글쓰기 공작소]가... 글쓰기, 책읽기 생초보인 내겐 글이란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던 시간.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내면세계 전체로 변화를 꿈꾸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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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욕심이 생겼다. 책을 보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심. 현재의 삶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사람들도 욕심내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가 있겠지만 특히 현대인들에게 그런 분야가 있다면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최근 대학은 물론 기업에서도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여서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현실이니까. 글을 쓰고 싶다는 동기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다. 책을 통해 느꼈던 감동이나 일상에서 기억하고 싶은 일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다. 즉,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럴 때 감정 순화는 물론, 기쁨, 감동이 배가 된다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맘을 잘 알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 글쓰기 관련 책들도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우선 성찰을 말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둘째 씨앗 문장과 씨앗 도서의 필요성을 말한다.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이지만 밑줄 긋고, 마음에 담아 두고 싶은 문장이 없다면 자신만의 느낌이라 말하기는 어렵다.(씨앗 문장과 씨앗 도서 찾는 방법도 알려준다.) 셋째, 글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글쓰기 책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독자가 비교할 수 있는 다양한 예시 글을 보여주어 독자 스스로 체감할 수 있게 한다.(글을 쓸 때 가끔 읽어보면 자기 글의 현주소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뒷부분은 글쓰기를 목표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다소 어렵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론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고, 글쓰기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하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글을 써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p40) 글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을 성찰하게 하는 말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 관련 책을 찾는 방법도 다양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인기 작가의 글 스타일을 따라 하기도 하고, 명사들의 방법을 엿보기도 하고, 직업과 관련된 이의 글을 보기도 한다. 또한 작가는 아니지만 블로그에 올라온 독서 고수들의 글을 보기도 한다. 흔히 글쟁이라 말하는 자들의 말이나 글쓰는 방법에 대해 먼지만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짬짬이 책을 보는 것, 메모든, 좋은 글귀든 자신만의 노트에 글을 써보는 사람보다 말로 글을 쓰지는 않는지, 씨앗 문장과 씨앗 도서(p68)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뒷전이고 흉내만 내지는 않는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도덕적 정직이 아닌 실질적 정직이 존재할 때 글쓰기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질적 정직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정직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이야말로 성찰, 바라봄, 사티(주시)의 근본이고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글쓰기란 타자의 느낌이 아닌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시작인 이 느낌이 있기 위해선 관찰이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사유, 상상할 때 글쓰기는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행동은 결코 늦는 법을 모른다.’(p382)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p383)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p384) 글쓴이가 인용하고 있는 이 문장이 나에게도 화살처럼 꽂혔다. ‘써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쓰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하고 싶다. 성찰하고, 관찰과 사유를 통해 독서하고, 씨앗 문장을 찾아 더욱 부지런히 나만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지금보다 더 손이 바빠야 한다. 부지런히 책을 찾고, 책장을 넘기고, 씨앗 문장을 기록하고, 느낌을 써야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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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글에 이르는 길, 글로 가게 될 길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소위 잘 쓰는 것은 다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글쓰기를 진정 좋아하면 글을 잘 쓰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해서 잘 쓸 수는 없지만, 좋아하고 그것을 주구장창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다.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리 될 것이다.
하지만 ‘글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막상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고통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내 글이 과연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니 한 문장 쓰기도 힘들다. 왜 그런고 생각해보니, 나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잘 쓴다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고작 한 문장을 쓰기 시작한 순간, 벌써부터 내 글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어찌 여길까 걱정이 된다. 심지어 그 글이 미칠 파장을 걱정하기조차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식적으로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할 말을 다 쏟아낸다. 술술 물꼬가 트였던 것 같다. 한 마디로 뻔뻔해진 것이다.
솔직하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웠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 특히 솔직한 글쓰기의 경우 – ‘창피할 것 없다.’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사는 인생 다 그렇고 그렇게 열심히 살다 가는 것뿐이다’ 라고 마음을 먹었다. 나 또한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지면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이왕지사 글쓰기로 삶을 정화해보기로 한 이상 그 정도 창피함은 무릅쓰자. 부끄러운 인생을 살기 보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으로 당당한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진작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회사에서 매주 에세이를 써서 전 직원에게 보낸 경험이 있다. 신입 2년차가 전 직원을 상대로 당돌한 글을 써대기 시작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직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감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회상한다. 물론,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나의 에세이를 통해 다시금 인생과 직장생활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4년 동안 지속했다. 하지만 반 정도 지나자 내가 쓰고도 내가 읽기 싫은 글이 써지는 일이 생겼다. 읽는 사람이 많아지니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 그 당시의 글은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슬럼프를 딛고 원래의 글로 돌아와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마쳤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나 스스로도 엄청난 성장을 했다고 평가한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내 마음이 느껴진다. 글을 썼던 시기와 내용을 보며 가끔은 ‘지금 쓰라 그러면 도저히 못 쓰겠다.’라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 따위 글을 감히 전 직원에게 보냈단 말인가?’라며 어디 동굴 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도 하다. 감탄했던 글들은 그야말로 내 마음의 심해에서 끌어올린 듯한 짜릿함이 있었다. 부끄러웠던 글들은 그야말로 의무감에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썼던 포장지에 불과했다. 『글쓰기 공작소』를 읽으며 수많은 예문들이 나오는데 나는 동시에 내가 쓴 글들의 몇 몇 구절들이 또 다른 예로 떠올랐다.
몇 년이 지나 나는 지금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글에 이르기 위해 나를 돌아봤고 아직 한참을 더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글을 통해 드러나기까지도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고된 성찰과 탈각의 시간을 거치면 삶이 글에 이르게 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가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글에 이르기까지의 고귀한 도전과 경건한 성찰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끊임없이 사고를 하고 사유를 하는 이상 삶으로써 글에 이르고 글로써 삶을 증명하는 여정은 본능과도 같다.
‘글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글로 가게 될 길’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이전과는 달라진 나, 이전보다 한층 성장한 내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글에 이르는 길에 서서 애쓰는 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도 있고, 글을 통해 계속해서 삶을 정화해가며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이라는 정거장이 우리 삶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풍경을 가진 정거장일지, 얼마나 많은 정거장을 거치게 될 것인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에겐 각자의 정거장이 존재한다. 각자가 가고 싶은 곳이 다르듯, 우리가 지나갈 정거장도 내릴 정거장도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은 술에 취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잠을 자다 종착역에 이르러 겨우 눈을 뜨는 일만큼은 막아줄 것이다. 삶의 방향과 속도, 깊이를 저마다의 꿈과 신념에 따라 알맞게 조절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글이 아닐까 싶다.
글을 잘못 쓰면 속된 말로 ‘골로 간다’고도 간다. 말은 쉽게 잊혀지지만 글은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뱉은 말이 쏘아놓은 화살이라면 써버린 글은 되돌아올 화살과 같다. 그러니 글은 말 그대로 ‘잘 써야’ 한다. 용기만으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도리어 힘을 발휘할 기회마저 강탈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매일 글쓰기를 하며 좋을 글을 쓰기 위해 수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솔직한 글일수록 신비롭다는 것이다.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용기를 냈다는 것이고, 그 용기를 감당할 또 다른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다 드러냈는데 더 궁금하다. 글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 쓴 글만큼 강한 글은 없다.
이 책, 『글쓰기 공작소』를 읽었다는 것만으로 글을 잘 쓰게 될 리는 없다. 내가 지금 쓰는 이 글도 책의 내용을 진정 내재화했다면 기록되지 않았을 거창한 표현과 수식, 엉뚱한 논리와 비약, 뒤죽박죽 엉켜버린 전개들 투성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쓴다. 나는 아직 글에 이르는 중이니까.
창피한 것 차치하고, 일단 쓰련다.
2015.05.18 쓰고 싶어는 하니 그것 참 다행이다
1. 저자 소개
이만교
1967년 충주 중원에서 출생하여 배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92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1998년에는 <문학동네> 동계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제2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 』,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와 『나쁜 여자, 착한 남자』가 있으며, 글쓰기 교본인 『글쓰기 공작소』를 썼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가벼운 터치의 단연코 젊은 소설이지만, 주제와 문체와 대화와 행동과 정신을 아우르는 예외적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은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시나리오 기법을 도입한 글쓰기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도 주며 무엇보다도 잘 읽힌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문예중앙』에 시가, 『문학동네』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머꼬네 집에... 1967년 충주 중원에서 출생하여 배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92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1998년에는 <문학동네> 동계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제2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 』,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와 『나쁜 여자, 착한 남자』가 있으며, 글쓰기 교본인 『글쓰기 공작소』를 썼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가벼운 터치의 단연코 젊은 소설이지만, 주제와 문체와 대화와 행동과 정신을 아우르는 예외적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은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시나리오 기법을 도입한 글쓰기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도 주며 무엇보다도 잘 읽힌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문예중앙』에 시가, 『문학동네』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 』,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등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에서 섹스, 연애는 단지 욕망을 드러내는 기제로 작용할 뿐이다. 이만교는 욕망과 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들의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고 노력하기에 그의 창작집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한결같이 냉소적이다. 착함, 올바름, 인간에 대한 믿음 등 평소 사람들이 절대 선(善)으로 굳게 믿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작가는 오로지 차가운 시선만을 보낸다. 스스로 "인간 본성에 내재돼 있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해 결코 가식적인 덧칠을 하지 않겠다"는 창작관에 따라, 따뜻하고 착한 심성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착한 심성으로 이처럼 천박하고 냉혹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속이지는 않겠다고 이야기 한다.
현재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남산강학원, 아트앤스터디 등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2009),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2012)를 출간했으며,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에 대한 강의를 아트앤스터디(artnstudy.com)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강의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관련 서적들을 뒤적여 보았다. 글쓰기 개념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간명하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것은 아무래도 초등학교 교과서였다.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두 가지 층위가 제일로 중요하다. 먼저 '자신의 느낌일 것'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할 것'!”
2. 내용
책을 내며
프롤로그 글쓰기와 꿈: 글쓰기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꿈은, 이루어진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잠입자」 성철, 몽중일여 어떤 선승 이야기 정직과 자유의 시인, 김수영 도덕적 정직과 실질적 정직 실질적 정직과 산문적 글쓰기 전태일, 타락한 정신 전념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
1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글쓰기란,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2 글쓰기의 입구, 씨앗 문장과 씨앗 도서: 독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양이 우화 글쓰기를 선택하는 세 가지 층위의 동기들 나의 경우 씨앗 문장 사무사思無邪 즐거운 필독, 1000권 줄탁동기 읽다 지루하면 접어라 씨앗 도서 지도 만들기 뷔페식 독서 열 권 이상 펼쳐 놓기 집중력 높이기 밑줄의 빈도와 공명의 강도 묵상, 재독, 따라 쓰기, 변주, 암송 운명적인 단 한 권의 책 과정을 즐겨라
3 새로운 창작 강의를 꿈꾸며 습작생이 경험하는 일반적 과정 지금·여기에서 창작하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기
4 언치와 언어적 감수성 대부분이 언치다 소설가 지망생들조차 언치가 부지기수다 언어적 감수성, 글쓰기의 필수요건 언어 맛보기 언어로 존재하기
5 일상언어와 출판언어 말재주와 글 솜씨는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다 일상언어와 출판언어 역시 같으면서 다르다 차이는 사소하지만 울림은 크다
6 일상언어 탈주하기 일상언어를 경계하라 관용구를 피하라
7 주인공 및 화자 되기 표현한 내용과 해석한 내용은 다를 수 있다 표현한 내용과 표현된 내용은 같아야 한다 주인공-되기 ‘주인공-되기’, ‘화자-되기’, ‘주인공 및 화자 되기’ 개성적 자아와 성찰적 자아 ‘주인공 및 화자 되기’의 또 다른 일례들 문체 개인적 감수성
8 다수언어와 창작언어 감수성이 무디어지면 다수언어가 된다 상투적 문장과 평이한 기록문 기성작가들의 창작언어 창작언어, 소수자 되기
9 구현적 글쓰기: 실질적 사실을 보여 주기 전달 방식으로서의 구성 스토리와 플롯 구현으로서의 글쓰기 일관된 주제의식 은유와 환유 모티프 강렬한 문제의식으로 글쓰기
10 단계별 글쓰기: 장르탐색 탐색과 모험으로서의 글쓰기 장르 이전의 글쓰기 낙서와 메모, 글쓰기의 시작 하이쿠와 아포리즘, 그리고 시 실질적 정직과 산문정신 사생글 산문화 산문 에세이 습작생 산문의 문제점 낯설게 하기와 정직하게 하기 서술 방식, 비유와 대구 단락 만들기 생활글 서사적 글쓰기 단락장 만들기 소설 글쓰기 기본훈련
에필로그 본질적 감수성 좌충우돌의 글쓰기 호흡지간의 글쓰기 개인적이면서 사무사한 글쓰기 전도몽상의 연쇄작용 본질적 감수성 지금·여기에서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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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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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책이 가득하다. 올해에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책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고, 내가 그동안 이렇게 좋은 세상을 모르고 살았었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책을 많이 볼수록 그에 대한 느낌을 서평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서평을 쓰면서 점점 글쓰기에 대해 잘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제대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를 읽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론적인 정리를 하는 것 정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실 본격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전, 프롤로그에 담긴 글쓰기와 꿈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의외로 나는 내 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글은 이렇게 써야되겠구나! 이렇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주는 것이 좋은 글이겠구나! 그리고 이 책은 예시가 많이 담겨있어서 좀더 실전적인 글쓰기 교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 담겨있는 글을 보고, 조금 다듬은 글을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약간만 다듬으면 더 눈에 확 들어오는 좋은 글이 되어버리는 변신이 놀라웠다. 책을 보며 글쓰기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읽고 싶고, 쓰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