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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족으로 살다 돌아간 반려견의 이야기
현관문을 나서기 전 난 아침의 기분에 따라 몇 개의 향수 중에서 하나를 골라 손목에 뿌린다. “칙~치잇” 양 손목을 비비고 귀 뒤 언저리에 톡톡 갖다 대면서 세상을 나설 준비를 마친다. 내 흥에 맞는 향수를 뿌리고 나면 난 검은 먹구름이 잔뜩낀 날 이거나, 후두둑 비가 오거나,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빛이 쏟아지는 맑은 날이거나 하늘만 아는 날씨에 기분이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좋았던 그날의 느낌을 온전히 기억하려 스스로 향수를 찾는 경우도 있으니까. 내 기분은 내가 만든다. 밖을 나서기 전 내가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내가 만드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나름의 아로마 테라피Aromatherapy, 향기치료인 셈이다.
독립해서 혼자 지내다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환대’였다.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를 외쳤을 때, 누군가 나의 귀환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 어떤 하루를 보냈던 무사히 돌아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 따뜻하고 행복한 일이다. 독립의 장점이 자유롭고, 조용함이라면 본가와 결합한 장점은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난 따뜻한 구속과 외로운 자유를 맞바꾼 것이다. 날 반겨주는 이들 중에서 현관문을 열면 탁탁탁 바닥이 아픈 줄도 모르고 꼬리를 치며 앉아있는 여섯 살난 시츄종 찌비는 단연 으뜸이다. 왕방울만한 촉촉한 눈으로 나와 시선을 맞추고 “어유~ 우리 찌비가 오빠를 기다렸어?”하고 얼루려고 하면 배를 네 다리를 하늘을 향해 배를 뒤집는다. 꼬리는 여전히 부채꼴로 흔들면서. 네 발 달린 이녀석은 내 가족이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면 바깥의 시름과 피로는 잠시 날아가 버린다. 이건 필경 애견 심리치료다.
난 반려동물의 의미를 수의사인 그녀가 어제 말해주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아니 정반대의 개념으로 알고 있었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반려동물의 ‘반려’를 회사에 사표를 냈는데, 돌려받을 때 쓰는 ‘반려’와 같다고 보고 ‘유기견’의 다른 표현으로 알고 있었다. “바보야, 그건 애완견이라는 단어보다 더 격상해서 부르는 표현이야. 배우자를 동반자, 혹은 반려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반려동물이란 가족에 준하는 평생 나와 함께 할 동물을 말하는 거라고.” 그동안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측은지심’이 들었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여섯 살난 시츄종 ‘찌비’는 내 반려동물이자, 심리치료사다.
사랑스런 반려동물은 이 시대를 사는 도시인들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반려동물을 통한 애견 심리치료를 통해 사람과 미처 나누지 못한 교감을 동물과 나누려 하고 있다. 그 중에서 ‘평생 아부를 떨어야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개는 외로운 도시민들의 좋은 친구이자 반려자가 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울려 사귀지 말라. 미운 사람과도 어울려 사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은 고통,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것 또한 고통이기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은 괴로운 일이기에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그 얽매임이 없다.
사랑 때문에 슬픔이 일어나고 사랑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난다. 사라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기에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법구경 16장- ‘쾌락의 장’ 중에서)
이쯤에서 독자들은 반려동물을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법구경을 운운하는가 의문이 들테다. 그렇다. 난 오늘,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피로 맺어진 가족을 떠나 보내는 슬픔이야 지극히 자연적이고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지만, 가족과 같이 생각한 반려동물을 떠나 보냄은 처음 입양하면서 ‘식구로 여길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어서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슬픔’을 당하는 것이 싫어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 ‘녀석이 없고 나면 그 허전함과 괴로움을 가족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생체나이로 치면 나보다 더 늙었고, 앞으로 더 빨리 늙어버릴 녀석을 보면 그 걱정이 앞설 때가 요즘 들어 많아진다. 책 <굿독Good Dog - ‘보’와 함께한 아름다운 날들>을 읽은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명칼럼니스트인 애너 퀸들런Anna Quindlen 의 반려동물이었던 ‘보’를 떠나보내는 이야기다. 원제목은 Good Dog Stay다.
이 책에는 ‘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성격이 어떻고, 얼마나 먹으며 어느 만큼 잘 노는지 말하지 않는다.‘아기를 키우는 엄마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족은 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있듯 그런 기술들은 아이가 크고, 반려동물이 자라면서 펼치는 에피소드를 모두 제 3자적 입장에서 나름의 해석이 뭍어난 것이 아니던가? 그런 말로 한 권을 채우기란 무리가 있고 의미도 없다. 또 그것을 듣고 읽기는 고역스러운 일이다. 어차피 화자의 소설일 테니까. 저자는 가족들의 삶 속에 존재했던 ‘보’를 큰 숨으로 읽어야 할 한 편의 에세이형식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보’일 수 있고, ‘찌비’일 수 있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아무개일 수 있는 애견들의 사진을 중간마다 넣었다. 재미있는 대목에서는 그 사진 때문에 더 재미있고, 가슴 아프게 슬픈 대목에서는 그 사진 때문에 더 슬퍼진다. 다양한 표정들, 모습들. 이 책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 조연이었다.
퓰리처상 수상자답게 애너 퀸들런의 문체 역시 뛰어나다. 그녀가 말하는 가족의 이야기 속 한 켠에는 ‘보’가 함께 있었고, 보가 움직이는 행동반경엔 가족들의 사랑이 뭍어났다. 내 부모 내 형제를 떠나보냄이 ‘절망‘이라면, 반려동물을 보내는 마음은 ‘깊고 깊은 슬픔’처럼 느껴진다. 내 생애보다 앞서갈 것을 알면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마음은 어쩌면 그만큼 ‘버틸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녀는 ‘보’를 지켜보며 부모된 자신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개의 역할은 어떻게 보면 엄마, 아빠의 역할과 비슷하다. 뭘 해주는 게 아니라 있어주는 것,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존재해 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평소에는 없는 취급을 하다가 힘들 때나 무서울 때, 그리고 가끔은 행복할 때 찾는 주춧돌이자 배경이고 풍경이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개, 집은 마음 내킬 때 언제든지 떠났다가 다시 찾고 또 다시 떠날 수 있는 존재이다.” (30-31 쪽)
한숨을 내리 쉬던 어느 날,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찌비’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한없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사랑스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그래,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다). 그 눈에 위안을 얻는다. 쓰다듬는 녀석의 털에 따뜻함을 위로 받고, 어깨를 두드리는 대신 팔뚝을 핥아주면서(염분 흡수를 위한 행위라고는 하지만) 날 다독였다. 어떤 날은 단 둘이서 오랜 시간 동안 멍하니 쳐다본 적도 있고, 어느 날 밤은 녀석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가끔이지만 이럴 때는 ‘키운다’기 보다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녀석도 살아온 시간만큼 지나면 떠날 것이다. 난 대충의 시간을 알지만, 녀석은 제 온몸에 있는 감각을 통해 밥을 먹어야 할 때와 ‘제 가족’이 와야 할 시간을 알고 문앞을 서성이고, 창문 밖을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 난 녀석이 떠날 어렴풋한 미래의 시간을 걱정하지만, 녀석은 오늘 제 가족이 들어와야 할 시간을 알고 편하게 잠들어 있다. 해가 넘어가 저녁이 되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현관 앞에서, 창가에서 가족을 기다릴 것이다. 찌비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 있다. 아무생각 없이 사는 듯한 녀석은 오늘을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내게 그것을 알려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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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동물을 좋아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정말 우울에 빠져 있어서 외숙모께서 하얀 강아지 한 마리 갖다 준다고 하셨는데...
ㅡ,.ㅡ 울삼촌이 델꼬 오기만하면 된장 바른다고 하셔서 ㅠㅠ 흑...
하긴 울집이 아파트니까 이해는 한다.
그래도... 된장은!!!! 그건 아니잖아~ 그건 아니잖아~
무튼...
참 작고 얇은 책이다.
굿독...
이 책은 지은이가 함께 14년을 넘게 살았던 보라는 개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개엄마나 개아빠, 개누나, 개형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보면 알겠지만, 개는 동물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동두천에서 주택에 살 때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웠던 적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난 금요일 밤 늦게 동두천에 올라갔다가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출근했다.
그 늦은 밤에 그 추운 겨울에도 내가 타박타박 걸어서 가면 이미 저 멀리서부터 우리 아린이가 좋아서 낑낑거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추운 날 자기 담요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다가 내 소리를 듣고 그 따뜻한 온기가 있는 몸으로 나한테 기대서 비벼주는, 그렇게 체온을 나눠주는 예쁜 아린이...
물론, 뽀뽀하려고 하면 자꾸 고개를 돌리는 얍삽한 면도 있었지만, 어찌 그 녀석을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강아지를 정말 막 태어났을 때 11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을 때 데려와서 15년을 미처 2주 채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보낼 때까지 함께 했다는 것은 정말 그 개를 개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2쪽
인간들은 개를 키우면서 나중에 다른 누군가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어렸을 때는 연인과 그런 식으로 완벽하게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이 들어서는 아이들과 그렇게 공생의 관계가 될 수 있을거라고 착각한다. 한없는 사랑, 흔들림 없는 관심, 조건이나 비판 없는 우정. 예전에 '나는 우리 집 개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고 쓰인 베개를 본 적이 있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문구다.
28쪽
아이들에게 있어서 개의 역할은 어떻게 보면 엄마, 아빠의 역할과 비슷하다. 뭘 해주는 게 아니라 있어주는 것,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존재해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평소에는 없는 취급 하다가 힘들 때나 무서울 때, 그리고 가끔은 행복할 때 찾는 주춧돌이자 배경이고 풍경이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개, 집은 마음 내킬 때는 언제든지 떠났다가 다시 찾고 또 다시 떠날 수 있는 존재이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 있다면...
내 역사 깊은 우울증도 사라지지 않을까?
아파트라... 아주아주 작은 강아지였으면 좋겠지만, 난 원래 누렁이나 흰둥이를 더 좋아한다는 것... ㅎㅎ
강아지들의 서글서글한 눈망울이 참 마음에 뭔가를 얘기해주는 그런 따뜻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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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너 퀸들런이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검은색 반려견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보’의 죽음을 앞두고, 그녀의 삶과 함께‘보’와 가족으로 생활하고 사랑하게되고 보와의 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 나는 아침마다 늙은 친구 보가 아직 숨을 쉬는지 확인했고, 날마다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아플까? 행복할까? 쇠약한 몸으로나마 살아 있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 나 스스로 똑같은 질문을 할 때가 찾아오겠지만, 적어도 예전에 한번쯤 고민했던 질문이 될 것이다. 가끔은 늙은 개가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90쪽)
저자는 반려견 ‘보’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했다. 반려동물이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애완동물을 사람의 장남감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가족도 사랑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도 서로를 맞이하는데는 실로 엄청날지도 모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로인해 얻어지는 추억과 사랑 그리고 행복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 인간과 ‘반려동물’ 간 삶의 길이가 다르기에 ‘영원한 이별’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이 다를 뿐, 개의 삶은 사람의 삶과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보’가 늙어가는 과정을 주욱 지켜보면서 많은 삶의 교훈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반려동물’의 죽음이 주는 상실감은 사람이나 동물의 구분이 의미 없음을 알게 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반려동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우리 곁을 지켜주기 원하지만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삶이 소중하다는 것이므로 ‘지금 행복하라.’고 ‘항상 사랑하라.’고 동물들에게 배운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반려견은 우리 인간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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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는 유사유래로 사람과 가장 친밀한 애완동물이다. 미국은 애완동물의 수가 인구수를 앞지르고 있다고도 한다. 일본도 1천만 가구가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 발달된 문명과 복잡한 사회환경으로 인간의 감성은 점차 자기중심적이고 따듯한 마음은 고갈되어 가고 있다. 갈 수록 메말라져 가고 있는 이시대에 인간은 더욱더 외로운 소외감과 정서적인 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완동물은 사람의 마음에 위안과 깊은 애정을 주며 인간과 가장 가까이서 함께 살고 있는 친근한 동반자로서 복잡한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순수한 우정과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생각하고 반려견이라고 부르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이 책 '굿독'은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너 퀸들런이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개인 ‘보’의 죽음을 앞두고, 그녀의 삶과 함께 ‘보’의 삶과 죽음을 회상하며 적은 글을 모은것이다.저자는‘보’가 늙어가는 과정을 주욱 지켜보면서 많은 삶의 교훈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반려견은 우리 인간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나도 어렸을때 부터 강아지와 함께 생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동한 여러마리의 강아지와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고 처음으로 헤어짐이란 아픈감정을 것을 가르쳐준것도 강아지들이었다. 나의 삶에 있어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또한 지금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것을 보면 강아지에 대한 사랑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는것 같다. 언젠가는 먼저 보내야할 반려견 떠날때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도록 나이가 들어가는것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별이 가져올 아픔보다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들이 더 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가족으로 친구로 맞아 살아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사람과 개의 행복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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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는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짧은 책이다.
한마리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인데 이 짧은 책을 통해서 잔잔한 미소와 애잔한 슬픔을 왔다갔다 하게 만드는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새끼때 데려온 강아지가 이젠 나보다 늙어 먼저 갈 날만 기다리는 주인의 마음을 너무 자연스럽고 공감되게 잘 표현해 놓았다.
가벼운 책이지만 그 감정의 여운만큼은 가볍지 않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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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7년째 키우는 애완견 시츄가 있다. 녀석의 원래 이름은 '보보'이나 아무도 녀석을 '보보'로 부르지 않는다. 개 이름은 개다워야 한다는 내가 녀석을 '개순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 가족들도 덩달아 '개순이'라고 부른다. 녀석도 '개순아'라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지만, '보보'라고 부르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2년 전부터 녀석과 하루 종일 같이 지내면서부터 우린 많이 가까워졌다. 녀석은 내 그림자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전에는 남편을 주인처럼 따랐으나 이젠 나를 주인으로 섬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의자 절반을 차지하고 코를 골면서 자고, 주방에서 일을 하면 내 발치에 앉아서 먹을 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누워서 잘 때도 내 팔을 베고서 자고, 남편과 내가 동시에 부르면 내게로 달려오고, 외출할 낌새를 느끼면 데려가달라고 펄쩍 뛰며 안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녀석에게 새로운 이름 하나를 더 붙여주었다. 녀석의 새 이름은 "쫄쫄이". 내가 가는 데마다 그림자처럼 쫄쫄거리고 따라다녀서 '쫄쫄이'라고 부르는데 녀석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Good Dog 굿독 - 보와 함께한 아름다운 날들]은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너 퀸들런이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검은색 반려견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본 이야기다. 반려견 ‘보’는 그녀에게 가족의 일원이다. 그녀는 반려견의 삶이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음을, 우리네 죽음 또한 반려견의 죽음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단지 “개의 삶은 좀 더 짧고 압축적이라는 것만 다를 뿐, 우리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이 다를 뿐, 개의 삶은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애너 퀸들런의 주장이다.
그녀는 마흔 번째 생일 때 절친한 친구 부부에게 선물로 받은 '보'를 집으로 데려와 15년 동안 함께 살면서 '보'의 행동에서 자녀의 모습을 보곤 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쫄쫄이"를 키우면서 '쫄쫄이'에게서 아이들의 모습을 여러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강아지를 길들이는 것과 아이의 배변 훈련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새벽 4시 45분에 잔디밭으로 나가 볼일을 마친 '보'에게 “아주 잘했어."라고 칭찬하며 한밤중에 아이에게 수유를 하던 당시 그 깊고 끝이 없었던 어둠을 떠올린다. ‘보’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애완견 ‘비’를 데리고 왔을 때 ‘보’가 보인 질투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비'의 머리에 손이라도 얹을라치면 어느새 '보'가 달려와 그 큰 머리와 어깨로 '비'를 밀쳐내는데 이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경험과 매우 닮아 있는 모습이다.
저자는 ‘보’가 늙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터득한 교훈은 인생이 끔찍하도록 복잡하지만, 아주 단순한 데서 삶의 만족감을 느끼고, 주먹이 날아오면 피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것 등이다.
[Good Dog 굿독 - 보와 함께한 아름다운 날들]은 보의 사진과 아름다운 견공들의 흑백사진, 애너 퀸들런의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글들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지금 '쫄쫄이'는 내가 앉은 의자의 절반을 떡하니 차지하고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녀석을 깨워 꼭 안아줘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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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게 된 책은 ‘보’라는 이름을 가진 반려견과 그 개와 함께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아주 어린 시절 고양이를 한 번 키운 이후 우리 가족은 ‘헤어짐’이라는 감정이 두려워서 더 이상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또한 가족이 단촐 하거나 혼자 살아 외로웠다면 다시 동물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가족들이 복작거리며 정신없이 살아왔기에 또 다른 가족의 필요성을 덜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지 가끔 뉴스에서 자신과 평생을 함께한 개나 고양이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긴다는 외국의 기사를 보면 “좀 유난스럽다” 거나 “참 이해가 안 간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존재가 반려견들이라면 무엇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이미 그들에게 있어 더 이상 반려견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였고, 그 개들은 어쩌면 진짜가족보다 더 큰 위로와 사랑을 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건 없는 무조건 적인 사랑, 강요받지 않는 충성심, 영원한 신뢰와 믿음, 복종 등 반려견이 주는 사랑은 그야말로 내 상상을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강력하고 순수했다. 이 책의 저자 애너 퀸들런 역시 그녀의 또 하나의 가족 ‘보’와 함께 한 날들을 그리워하며 사랑과 인생의 의미,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다져나가고 있었다. 또한 책 속에는 실제 ‘보’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담은 사진들을 비롯한 다른 애완견의 사진들이 여러 장 실려 있어 직접 보를 보지 않았음에도 한번 쯤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덕분에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엔 나 역시도 소중한 친구 한명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픔이 전달되어 왔다. 15년간 보를 기르고 함께 한 저자는 보의 마지막까지 지켜보며 삶의 위안을 받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조심스럽게 깨닫는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보와 함께한 ‘아름다운 날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생이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데서 삶의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보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터득한 교훈이 그것이다. 주먹이 날아오면 피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나를 평가하고...“ -P.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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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나에게 방안에서 키우는 개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항상 집 밖 마당에서 많은 개들이 뛰어 놀고, 사람이 먹는 밥을 똑같이 먹곤 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 내 마음속에 개의 존재는 단순히 집을 지키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동물에 불과 했다.
타지에서의 오랜 자취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고 정이 간절히 필요할 즈음, 지인이 키우던 6개월된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었다. 이름은 "랑이", 사랑이의 줄임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에 이름 지어주고, 불러 주었던 랑이. "랑이야,, 랑아,," 부르면 꼬리를 미친듯히 흔들어 대던 우리 랑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Good Dog. "보"와 함께 한 아름다운 날들..」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지은이는 분명 "보"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많은 사랑을 주고, 많은 위로를 받았으리라.
자녀들이 자라면서 상처주고, 마음 아프게 했던 일과 자녀들이 자신의 살 길을 찾아 집을 떠나갈 때, 아무말 없이 한결같이 자신의 옆에서 함께 했던 "보".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안락사를 시켜야 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 까 감히 짐작하기도 싫다. 남편과 아이들의 뜨거운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는 지은이. 자신이 죽었을 때도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릴 거라는 예상을 하는 지은이였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사시던 할머니는 가끔 데리고 갔던 "랑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다른 개들은 다 밖에 있는데, 무슨 개를 방으로 들이냐는 것이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고, 다른 가족보다 더 많이 랑이를 챙기셨던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우리 랑이는 먼저 하늘 나라로 가 할머니의 길동무가 되어 준 거 같아. 슬펐지만 내심 기쁘기도 했다. 할머니의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으셨을테니까..
랑이와 함께 살았던 때에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무척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방에 홀로 앉아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따뜻한 무언가 나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었다.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 보고 있는데, 우리 랑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눈물을 혀로 핥아 주는게 아닌가... 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처음 키운 애견이어서 애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우리 랑이는 나와 사람처럼 감정의 교감을 했나보다. 너무 그리운 우리 랑이.. 세상의 외로움이 다 내 것이라 느낄 때, 유일하게 내 옆에 있어 준 우리 랑이. 힘들 때마다 눈물 닦아준 우리 랑이는 항상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
무엇이든, 누구든 함께 있을 때보다 곁에 없을 때, 더욱 소중함을 느끼는 법이다. 함께 있을 때 더욱 사랑하자. 「Good Dog. "보"와 함께 한 아름다운 날들..」은 애견과 사람이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지, 함께 하는 동안 얼마나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랑이를 생각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가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보"와 함께 지낼 당시의 즐거웠던 추억과 교감했던 내용의 분량이 적었던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 좀더 짧고 압축적이라는 것만 다를 뿐, 명견의 삶은 위인의 삶과 다를 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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