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펼치면 첫 장부터 휘몰아치는 세상의 매서움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슬픈 시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다물게 된다. 그렇지만 '다시 희망을 길어 올리'는 저자의 욕망 속에서 '어떤 고난이든 이겨내고 싶었다'는 고백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 치솟는 울음을 애써 삼켜야 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거, 그것도 5일장을 돌아다니며 화장품을 펼치고 다닌다는 게 어디 말처럼, 글처럼 쉬운 일인가. 그 세상이 만만한 세상인가. 여인네 몸뚱아리 하나로 그 아픔을 견뎌내는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 처지가 다시 비교된다. 이런 천박한 비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남편의 사업 실패 그리고 전기와 보일러가 모두 끊긴 깜깜한 방, 할아버지 댁에 맡긴 아이들, 대충 살지 하며 떠나버린 알콜 중독 남편. 혼자 월세방을 전전하며 모진 삶을 등허리에,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는 억척 아주머니였다. 식당 구정물통에 손을 담그고, 거리에서 빵을 구워 팔다 이제는 5일장 동동 구루무 장수가 되었다.
그녀가 고단한 하루를 이불에 뉘며 아픔과 희망을 엮어가는 세상이야기가 가슴 아프다. 시인이었던 그녀였기에, 다행히 그녀의 책은 도종환 시인의 추천사를 받았다. 얼마나 가슴 아프게 읽었을까? 그러나 이 책에서는 희망이 움트고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정겹게 나며,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가질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을 때도 나는 한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살아가다 보면 더 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다.
돌아보면 사방이 꽉꽉 막힌 벽이었을 때도 잠시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벽이 열릴 때까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외치면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살고 싶다."
그녀는 오히려 삶과 부대끼면서 꽃보다 아름다운 진짜 사람들을 만난다. 2003년에 씌여진 이 책은 그래서 희망이다. 이제 2003년은 과거로 남겨졌고 오늘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한번도 희망을 놓치 않은 그녀처럼 우리도, 이 책을 읽고, '바로 내 이야기야' 라며 가슴을 움켜쥐더라도 이제는 일어서야 할 때라는 것을 안다. 신념을 먹고 사는 유일한 인간인 우리들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
------------------------------------
버스를 타고 지나치면서 우리가 살 옥탑방을 바라보았다. 창문이 보였다. 아아, 창문이 있었구나. 그럼 밤하늘의 별도 볼 수 있겠구나. 비가 내리는 것도 볼 수 있겠네. 눈 오는 것도, 앞 동네 놀이터에 빈 그네가 흔들리는 것도 볼 수 있겠구나.
괜히 걱정했네. 두 주먹 불끈 쥐고 눈물을 훔쳤다. - 21쪽, 옥탑방 계약을 하고나서
그 시간 내내 '나는 할 수 있다. 뭐든지. 나쁜 짓 아니고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하고 수없이 자기 최면을 걸었다. - 22쪽, 지나가는 자동차에게 면도기 파는 일을 처음 시작하는 도로 위에서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라고 냉기 찬 '서재'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글귀는 그래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했다.... 잘 발효되어 부풀어 오른 빵을 굽는 일은 희망을 채우는 일이다. 안으로 안으로 곰삭아 다시 차오르는 것은 거듭거듭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었다.
빵 익는 냄새가 거리를 채울 때 기다림의 가치를 깨달았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면 우리는 언젠가 봄처럼 수줍게, 때로는 만개한 꽃처럼 기다림의 결실과 만나게 될 것이다. - 29쪽, 빵을 구워 팔며
행여 말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부러 소리를 내어보기도 했다. '아가야, 내 아가야, 당신, 엄마아, 오빠야, 나야, 나. 나 잊어버렸어? 기차 타고 싶다. 엄마가 긇여준 칼칼한 김칫국 먹고 싶어. 비 온다. 비가 와. 나 이제 잔다. 나 지금 밥 먹어. 나 지금 울어." 하고 말 연습을 했다. - 31쪽
그해 빵 굽는 손수레가 팔릴 때까지 날이면 날마다 혼자 수제비를 끓여먹었다. - 33쪽
어두운 영화관을 찾아 들어가 앉아 있자니 내가 우스웠다. 내가 낯선 도시에 흘러들어와 홀로 산다는 것도 우스웠고 걸어다니는 것도 우스웠고 수제비를 밥 삼아 먹은 것도 우스웠고 밥을 앞에 두고 감격하여 먹은 것도 우스웠고 푼돈을 받아 꼬박꼬박 예금을 하며 매일 통장을 들여다보는 것도 우스웠고 내가 거리에서 빵을 굽는 것도 우스웠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우스웠다.....도무지 현실감 없는 세상이 모두 우스웠다. - 35쪽
힘이 들어도 숨이 차도 어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아서 어머니가 시키는 일은 다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일만 했고 한시도 쉬지 않았다. - 38쪽
어머니란 존재는 녹슨 못에 살이 뚫려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때는..... - 39쪽, 오빠 쪽대를 사준다며 장에 가는 길에 대못에 찔린 어머니, 혼자 대못을 빼고는 끝까지 장에 가서 오빠 쪽대를 사주었다.
지금 내가 길을 걷다가 녹슨 못이 발등 위로 올라왔다면 나도 어머니처럼 한점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시멘트 못을 혼자 침묵하며 빼낼 수 있을까. - 40쪽
"그리고 아프면 안 된다. 아프면 안 된다." 하고 돌아서던 어머니의 그 말이 내겐 약이었다. - 41쪽
상처 입은 것에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걸까. 찌그러진 주전자가 이리 좋은 것은..... -58쪽
언젠가 아이들이 볼까 싶어 사용하지 않는 사랑방으로 두꺼운 겨울이불 꺼내어 들고 들어가 세 겹을 뒤집어쓰고 펑펑 우는데 딸 아이가 이불 사이를 들추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무슨 말 하나 해 줄게. 엄마, 잠깐만 그만 울고…… 엄마, 이거 알아?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울어서 슬픈 거래. 사람은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기쁜 거래. 그러니까 엄마도 웃어. 그럼 기뻐지니까."
이렇게 착한 딸아이 마음 아프게 한 나는 철없는 엄마다. 언젠가는 셋째 언니가 딸아이에게 "네 엄마 좀 부탁해. 네가 하도 의젓하고 이뻐서 언니 같다. 차라리 네가 엄마 해라."했다. - 64쪽
[인상깊은구절] 꽃은 지고 말면 그뿐이지만 사람의 향기는 곁에 둘수록 은은하게 피어나는 것.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을까 |
|
| 며칠전 새벽에 라디오를 통해 이 책의 저자 안효숙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냉철하고도 집요한 카리스마의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안효숙 아주머니와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에서는 조용히 벅차오르는 감동과 건강한 희망이 느꼈졌다. 시골 5일장을 돌아다니며 화장품을 파는 아줌마가 책을 냈다고?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는데 정감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시던 장터 이야기가 어찌나 슬프고 아름답던지...전화인터뷰를 마치기 직전 손석희 아나운서가 물었다. 이제 가족과 함께 사시는지, 살기가 조금은 편안해지셨는지...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장돌뱅이 아주머니의 목소리에서 희망이 맑은 물방울처럼 퐁퐁 솟아나는 것 같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이 학교에서 들고온 가정환경조사서(요새도 이런 걸 하나?-_-)의 부모 직업란에 당당하게 장돌뱅이라고 적었다는 아주머니.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망설이지 말고 적으라고 권했다는 속 깊은 딸의 모습도 의젓하다. 충청도 시골장을 떠돌며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싸구려 화장품을 팔아온 아주머니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일 삼아 아내를 두드려 패고 번데기를 판 돈을 가로채가는 짐승같은 남편도 있고, 화장품을 전부 다 사 줄테니까 여관에서 몸 좀 녹이고 가라고 더러운 수작을 걸었던 음흉한 사내도 있다. 그러나 세상엔 좋은 사람, 가난하지만 착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그들 중에는 묵묵히 아버지의 옷 장사를 돕는 아들이 있고, 생계를 책임지고 난전을 벌인 아줌마들, 평생 핸드크림 한번 바르는 사치(?)를 부려보지도 못 하고 얼어터지고 망가진 손으로 채소를 팔고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초보 장돌뱅이 안효숙 아주머니의 장사 자리를 잡아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도 있고 밥 한끼, 국수 한 그릇이나마 넉넉하게 베풀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사람들의 '따숩고 따순' 마음 덕분에 바닐라향이 풀풀 풍기는 수제비를 혼자서 매일 저녁 끓여먹고, 난방이 되지 않는 겨울 밤 아이들에게 김밥놀이 하자면서 솜이불을 둘둘 말아 놓고 정작 자신은 이불 말아줄 사람이 없어서 추위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살고 싶어졌으리라. 우리 동네에서 시내 쪽으로 나가려면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야한다. 차량 통행이 많은 쪽 대로변엔 하루도 빠짐없이,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뭔가를 파는 장수들이 있다. 뻥튀기, 호도과자, 오징어, 기차놀이 세트, 알람시계, 면도기, 망원경, 인형...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물건들도 많을 것이다. 안효숙 아주머니도 이런 도로변에서 면도기를 팔았던 일이 있다고 한다. 장사를 하려면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고 물건을 보여줘야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서 도로에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고...그러다가 멀리 슈퍼가 보여서 달려가 소주 한병을 사서 그 자리에서 반병을 마시고나니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슈퍼가 있는 동네가 바로 내가 사는 곳인데 어쩌면 언젠가 한번쯤은 면도기를 파는 아주머니를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한켠이 더욱 짠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서둘러 길을 건너던 곳,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다니던 그 길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유심히 본 적이 있었던가. 생계 유지의 고달픔을 이제는 예전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끼고...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듯한 행복과 희망을 노래하는 책은 많다. 가식적인 희망, 꿈같은 행복은 그저 한번 꿈이나 꿔보고 잊게 마련이다. 이 책은 다르다. 이 책만큼 건강하게 살아숨쉬는 희망이 깃들여 있는 책을 아직 본 적이 없다. 희망만이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나올 힘을 불어넣어준다는 것, 희망이 방패가 되어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실감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주머니가 내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계속 시도 짓고 책도 만들면서 자꾸만 살고 싶어지는 마음으로... |
| 책을 읽는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그렇치만 괜찮다고 바라보는 이를 위로하는듯한 저자의 속엣말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고 말았다. 궁핍함이 글 곳곳마다 드러나지만 저자는 한결같이 여유롭고 가난을 즐기고 있는듯 해 당혹스럽기까지했다. 글이 아름다운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일것이다. 삶을 관조하며 서두르지않고 긍정적이며 흔들임없이 어머니의 길을 가고 있는 한 여성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이책을 읽게된 나는 행운이 아닐수없다. 양지바른 앞마당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듯한 저자의 글속에서 나는 이제 그만 방황을 멈추려한다. 작은 이유에서도 많은 가족들이 해체되는 요즈음 사회에 누구나 읽어볼만한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 우리 이웃을 돌아볼라치면 산과 들의 미물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뭉뚱거려 불행이라는 말로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보내곤 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우리 이웃이 겪는 아픔과 불행이 삶을 유지시키는 건 그나름의 끈이 있기 때문일겁니다. 조그만한 말 한마디에도 삶의 의욕을 느끼며 행복을 추스리는 기술 말이지요..... 불행의 유형이야 인간사 도처에 늘려있겠지만, 이세상 뜰때까지 가슴에 품은채 드러내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삶들이 그 얼마일까요? 저자 안효숙씨의 '나는 자꾸만 살고싶다' 에서 풀어낸 글들은 대목대목에 청솔가지 태우는 가엾은 여인의 모습입니다. 책을 펼쳐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은 매운 연기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보고있지만 정작 저자는 한 볼 가득 입김을 모아 후~후 불을 일구고 있습니다. 저자에게 필요한건 장터이웃과 가족에게 나눠줄 온기일 뿐 그녀를 감싸는 연기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넘어져 눈물을 흘릴지라도 일어서면 씩씩하게 장터 좌판에서 생기를 되찾는 안효숙씨는 희망을 꼭꼭 다져넣은 오뚜기같은 삶의 자세가 가슴 아리도록 좋아 보입니다. 독자를 단숨에 몰입시키는 저자는 글쓰기 재능으로 자신의 불행을 낱낱이 펼쳐 보이지만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독자를 안심 시킨것은... "희망"이라는 화두를 쥐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였습니다. |
| 지난 주 일요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를 듣다 보니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더군요. 저자인 안효숙님도 나오셨더랬습니다. 직접 읽어주시는 '김밥말이'를 듣고는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것이 끓어올라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죠. 마침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도종환님의 추천의 글에 눈물 이야기가 있었지만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아니면 책 내용이 하도 재미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나락에 빠져있던 제 인생을 되돌아보고 '나도 살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너무나도 좋은 책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네요. 그래서 전 이 책을 다시 4권이나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제 세 누님들과 어쩌면 반려자가 될 지도 모르는 그녀에게도 주려구요. |
| 벼랑끝에 몰린 인간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향기가 묻어나는 책입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그리고 어른스럽게 자라는 아이들을 본다면.. 아무리 힘든 현실에서라도 두 손, 두 다리에 힘을 뺄수 없겠지요.. 코끗이 찡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납니다. 추운 겨울날 기름이 다 떨어져서 대책없던 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김밥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이불을 김으로 삼아서 아이들을 밥으로 삼아서 둘둘 말아서 추운 밤을 지내죠.. 마무리는 계란 후라이 덮듯.. 담요를 덮지요. 그리고는 덥다고.. 숨막힌다고 투정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비록 자신은 뼛속까지 시려울지라도 간간히 삶을 기록한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그 사진 또한 깊은 감동을 가져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