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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서평]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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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창조하는 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원저, 이수영 지음, 김영사. 2009 도서개요 및 유익한 정보 힘겨운 삶이지만, 용기를 갖고 살아라 살다 보면 시련도 많고, 고통도 많은 게 우리 인간의 삶이다. 그럴 때면 이런 삶이 싫어지기도 하고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꿈도 꾸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이 삶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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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창조하는 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원저, 이수영 지음, 김영사. 2009


도서개요 및 유익한 정보


힘겨운 삶이지만, 용기를 갖고 살아라

살다 보면 시련도 많고, 고통도 많은 게 우리 인간의 삶이다. 그럴 때면 이런 삶이 싫어지기도 하고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꿈도 꾸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이 삶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하게 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초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삶을 받아드리고 한번 살아보라고 한다.


저자의 생애


원저 :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니체는 24세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1889년 정신병의 발병으로 어둡고 괴로운 말년을 내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저작에만 몰두하였다. 특히 <즐거운 자식>에서는 ‘신의 죽었다.’라고 선언하였다. 저서로는 <권력에의 의지>, <반시대적 고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등이 있다.

지음 : 이수영

1970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고,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푸코, 들뢰즈, 니체를 공부했다. 저서로 <섹슈얼리티와 광기>, 공동저서로 <모더니티의 지층들>, <인문 의학>이 있다.


책의 구성 및 저술 배경

이 책은 1883년에서 1885년에 걸쳐서 4부로 출판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보다 천 년 전에 살았던 고대 페르시아인 조로아스터교 창시자이다.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상한다고 하여, 배화교로 불리며, 선과 악의 대립과 투쟁이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독교와 더불어 근대 서양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선과 악이 대립하는 도덕적 철학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기에 그 생각의 오류도 최초로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주인공으로 정한 것이다.


주장: 삶을 위해 진리를 바쳐라

선인들이 이야기하는 옛 기준과 법칙들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의 기준과 법칙을 찾아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이는 진리를 찾는 것에 내 삶을 바치지 말고, 내 삶을 위해 진리를 사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도: 내 삶을 사랑하고 극복하라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것들은 그들 자신을 뛰어넘어, 능력 이상의 것을 창조해왔다.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자기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적 : 위버멘쉬가 되어라

니체는 인간의 운명은 위버멘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짐승과 위베멘쉬 사이의 밧줄과 같은 존재로 태어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삶을 받아드리고, 삶 속에서 나만의 가치와 법칙을 찾을 때 위버멘쉬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저술의 평가

고대 그리스시대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두 허상이고 진정한 세계는 저너머 이데아의 세계라고 했다. 중세시대 기독교에서는 현실세계가 죄악으로 물들어 있으며, 진정한 평화와 안식은 천국에 있다고 했다. 근대에 들어와 칸트는 인간이 가진 인식의 한계로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니체는 지금까지의 서양문명이 한결같이 우리 삶을 부정하고 혐오해 왔다고 비판한다. 우리 삶을 긍정함으로써 우리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기존 철학을 부정한 것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바탕이다.

특히 기독교 사상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고 보았는데, 근대를 형성해온 기독교는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 파괴하며 이는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고 보고, 내세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니체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성을 구분했는데, 전자는 강자로서 인생의 축복에서 기원되었으며 후자는 약자로서 주인에 대한 원한에 비롯되었다고 하며, 삶을 긍정함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했다.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은 우상화된 아리아족의 영웅이기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을 갖춘 인간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의 광대한 철학을 프로이트는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그리고 살아갈 그 누구보다도 더 그 자신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지식을 갖고 있었다.” 라고 표현하였다.


부분별 요약


1부. ‘신의 죽음’과 ‘위버멘쉬’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신의 죽음’이란 신이 완전한 존재라는 관념을 통해 인간이 자신을 혐오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니체는 ‘신은 관념의 역사이며, 신이란 용기 없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변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다. 결국, 인간에게 신의 가치가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신이 죽은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신이 가진 연민의 정은 자기 삶을 경멸하고 부정하는 이들에게 향한다. 이는 추악한 자의 수치심을 더 증가시켜 신을 증오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이 신을 죽이는 된다. 하지만 신을 죽인 인간은 필요에 따라서 다시 신을 살려낸다.

둘째로 신을 죽인 살해자는 교회와 사제들이다. 당시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으로 무장한 곳이기에, 니체는 그곳을 예수의 무덤이라고 비판했다.

위버멘쉬가 되기 위한 정신의 세 단계 변화과정

위베멘쉬는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인간’을 뜻한다. 이는 삶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적인 정서와 현재에 만족하는 자기 기만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인간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쉬의 정신을 갖는 방법을 3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인생을 사막에 비유하여 낙타의 정신 · 사자의 정신 · 어린이의 정신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한다.

낙타의 정신

무거운 짐을 지고 끝없는 모래 언덕을 지나며, 모래 폭풍과 싸우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을 낙타의 정신이라 한다. 우리의 삶은 사막이다. 사막을 건너갈 강인함이 없다면 인생이 주는 위대한 지혜도 얻을 수 없다.

사자의 정신

사막을 지나면서 낙타는 사자로 변해야 한다. 자유를 쟁취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사자의 정신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삶을 힘겹게 하고 순응하고 복종하려는 나 자신의 나태함과 사회적 규범이다. 이를 없애야지만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어린아이의 정신

새로운 가치 창조의 정신을 말한다. 기존의 악습을 타파하였다고 할지라도, 나만의 규칙과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어린아이가 놀이하듯이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보며 나만의 생각과 힘으로 즐기는 정신이다.


2부. 힘의 의지를 이야기한다.

힘의 의지란 더 많이 얻길 원하고, 주인이 되고자 하고, 더욱 강해지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이를 존재의 유일한 본질적인 요소하고 생각한다. 존재란 살아있기에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원인을 힘의 의지로 본다.

니체의 관념주의적 인식론은 데카르트의 이성이나 베이컨의 경험 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방법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것이다. 관념주의적 인식론은 인식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지식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인식자에게 이익이 되는 실용적인 측면이 반영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식의 주체는 힘에 의지를 본성으로 하는 존재로서 힘이 의지에 따라 특정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니체는 해석이라고 말하며, 해석은 항상 관점과 목적을 가지고 사물을 이해함으로써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해석이란 주체가 능동적으로 평가하는 행위 자체이며, 발견하는 행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오류를 발생하게 되어 전통적 인식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인간의 한계를 실체가 없는 존재로 왜곡하기보다 필연적 오류를 과감하게 받아드렸다는 점에서 니체의 철학이 한 단계 발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해석의 오류를 긍정적으로 받아 드린다는 것은 해석자의 목적과 의지에 따라 세계를 변형하는 행위이기에 창조하는 행위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에 집착하기 보다는 지식을 힘의 의지의 도구로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나의 삶을 더욱 기쁘고 더 많은 힘을 가지게 하며 많을 것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삶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다. 니체는 인간을 이성과 신체로 나누는 것을 비판하면서, 고귀한 영혼에 대한 찬미에 추악한 신체를 사용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했다. 따라서, 신체라는 커다란 이성 안에 이성과 정신이라는 작은 이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존재는 힘의 의지를 따른다.

힘에 의지는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게 만든다.

우리의 존재는 이성, 육체, 의지를 포함한 통일체인 신체이다.

어떤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은 힘에의 의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고, 해석할 때 사용하는 능력이 이성이다.

신체는 자신의 목적에 맞는 관점을 설정하고 작은 이성에게 그 관점에 따라 해석하도록 명령하는 커다란 이성이다.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 것이다. 이는 신체가 여러 가지 힘의 의지의 투쟁의 장이기에 그러하다. 따라서, 절대 불변의 자아가 있을 수 없다.


3부 이 책의 완결편으로 영원회귀사상을 이야기한다.

영원회귀사상의 가장 끔찍한 시작은 ‘현 존재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나 목표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존재의 이 모습은 무로 종결되지 않고 불가피하게 다시 반복된다. 이것이 영원회귀사상을 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식으로 보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본질은 이것이 아니다. 세계는 오직 생성의 세계이며, 그 속의 모든 존재는 생성의 생태뿐이다. ‘존재의 바퀴가 계속 돌고 돈다’는 것은 ‘힘의 의지의 바퀴가 계속 돌고 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영원회귀란 생성의 상태 즉 ‘힘의 의지들의 힘겨루기 상태’가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성과 힘의 의지 밖에 없으며, ‘생성과 힘에의 의지만이 영원히 되돌아 온다.’고 말한다. 힘의 의지가 작용하는 영원회귀 사상은 허무주의에서 삶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사람 즉 위버멘쉬를 만드는 것이다.

선과 악 그리고 도덕은 힘에의 의지가 사람들의 삶을 더욱 강하게 하고 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낸 것으로 본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애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타적 행위 자체도 자기 만족의 결과를 초래함으로서 이기심을 악으로 평가하는 도덕은 무기력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삶이란 세상과 투쟁하면서 더 많은 가치를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려는 사람의 이기심이다.

지배욕이란 힘에의 의지들이 강자가 되기위하여 경쟁하는 것이므로 고귀하다고 본다.

위버멘쉬는 대지에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대지의 본성인 힘에의 의지에 충실하기 위해 인간은 자기만족을 극복해야한다.


4부는 차라투스트라와 교황, 여러 왕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쓰여 있다.

인간이 위버멘쉬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각자 스스로 기꺼이 몰락하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해 나갈 것

2.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제의 삶에 충실할 것

3. 힘에의 의지, 그 자체가 될 것

4. 편협한 이성을 넘어 육체와 정신을 더 높은 단계로 고양하는 신체를 가질 것

5. 절대적 도덕 즉 선과 악을 넘어서는 가치를 스스로 평가할 것

6. 앞에서 말한 자가 극복의 과정을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놀이하듯 즐길 것

7. 결국, 이모든 차라투스트라의 충고는 삶에 대한 사랑임을 명심할 것.

-끝-



s****r 2011.06.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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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미래를 창조하는 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평)미래를 창조하는 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용보기
니체의 철학책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때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귀를 보면서 밑줄그어가면서 삶에 대해 생각했던 옛생각이 나게 해주었어요.    다시 철학책을 접하게 되니  그때는 그렇게 작문도 쓰면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기성세대가 다 되었는지 하루하루 생각없이 사는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이책이 까맣게 잊고 잊고 있었던 나의 정체에 대해 나름
"(서평)미래를 창조하는 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용보기

니체의 철학책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때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귀를 보면서 밑줄그어가면서 삶에 대해 생각했던 옛생각이 나게 해주었어요.    다시 철학책을 접하게 되니  그때는 그렇게 작문도 쓰면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기성세대가 다 되었는지 하루하루 생각없이 사는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이책이 까맣게 잊고 잊고 있었던 나의 정체에 대해 나름  사색하게 해주었어요. 

인간의 최종적인 자기극복을 '초인'이라고 한다면  차라투스트라의 첫 외침은 인간의 운명이란 초인이 되는 것에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그 차라투스트라는 서른에 고향을 떠나 지혜의 모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10년의 수행을 마치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고 또 다시 배움이 미약하다고 해서 동굴로 돌아가 수행하는 모습, 마지막에 백발이 다 되어 초인으로 변하는 모습과 이 책속에서 던져놓는 긍정적인 삶에 대한 발견을 쏟아놓는다.   

학자와 차라투스트라는 진리를 탐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비슷하지만 탐구의 태도와  목표에서는 "서로 낯설다" 차라투스트라는 진리를 위해서 삶을 바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위해 진리를 바칠 뿐이다.  이런 차라투스트라의 초인의 삶은 부와 권력을 다 버리고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모든것을 극복하면 더 심오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것이다.  부단하게 노력하여 '초인'의 길에 접어들려면 니체를 만나야 한다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모든 세계를 반전으로 돌려서 생각하는 니체의 힘그러나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반전이 아니라 긍정으로 가는 부정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니체와의 만남으로 인해 삶을 한번 더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책의 뒷편에 외우고 싶은 명언들을 읽어보니 정말 가슴에 와닿는 명언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사랑에 대해 - 삶에 친숙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살아있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않고 하는 그런 사랑은 더없이 고독한 자에게는 위험이다.

*배움에 대해 -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이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

모든 심연은 올라와야 한다.  나의 높이까지. 내게는 이것이 곧 앎이니.

 

j*****m 2009.07.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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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이 훌쩍 지나서 만난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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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세움의  고전읽기 시리즈가 새로 나왓다.. 차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대학 다닐때 읽고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만나보니 반가웠다...   철학 책 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햇는데   나도 삶의  연륜이  있는  것일까?? 그 대학생때 읽었던 거랑 또 다르게  다가온다..   나이 서른에 고향을  떠나  지혜의 모험을 시작 하면서   10여년이 지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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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세움의  고전읽기 시리즈가 새로 나왓다..

차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대학 다닐때 읽고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만나보니 반가웠다...

 

철학 책 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햇는데

 

나도 삶의  연륜이  있는  것일까??

그 대학생때 읽었던 거랑 또 다르게  다가온다..

 

나이 서른에 고향을  떠나  지혜의 모험을 시작 하면서

 

10여년이 지나 인간 세상에 가르침을 전하는 차라투스타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을  볼수 잇었다..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찌울수 잇을지..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살수 있는지

이야기를  해준다...

 

니체의  사상으로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초인이 되는  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책   뒷부분에 니체의 연보와

그의 생애에 관한 사진들과  기사가 또 하나의 읽을 거리를  재공 해준다...

 

오랜만에   나만의  책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엇다..

t****o 2009.06.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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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창조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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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원저 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번역하고 그의 사상 이해에 도움을 주는 책을 만났다.   원저의 부제가 이렇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이는 바로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니체의 바람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과연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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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원저 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번역하고 그의 사상 이해에 도움을 주는 책을 만났다.

 

원저의 부제가 이렇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는 바로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니체의 바람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과연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그만큼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기란 어렵다고 이야기들 하니까.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미래를 창조하는 나라고 한 것은 왜였을까. 아마도 니체가 주장한 인간 자신을 극복의 존재로 깨닫고 기존의 습속과 자아에서 벗어나 새롭게 변신하려는 존재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라 여겨서였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서만이 아니라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인물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지혜의 모험을 시작해 10년의 수행을 마친 후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 그리고 가르치면서 자신이 부족하게 여겼던 부분을 위해 동굴로 다시 들어가 수행하는 모습, 마지막에 백발이 다된 노인이 되어서 비로소 초인이 되는 모습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여러 이미지를 담은 개념이 등장한다. ‘난쟁이’, ‘중력의 악령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래서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는 차라투스트라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시켜 읽으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의 감정과 상황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져서 몰입을 더욱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낙타의 강인함과 사자의 용기, 어린 아이의 정신을 지녀야 함을 배웠다. 삺은 결코 희망적이지도 좌절감을 주는 것도 아니기에 망치를 들고 나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깨뜨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내 삶을 사랑하는 법과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쉽게 나를 포기하면 (고난과 역경의 삶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 삶의 짐을 지려고 하지 않으면 삶에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 과거의 주인에 대한 분노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나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스스로 운동할 수 없는 자는 주인일 수 없다.

 

- 아이처럼 망각하고 긍정하고 주인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초인의 길이다.

h****5 2011.02.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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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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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에 니체 책에 도전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실패했지요.  도통 뭔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철학은 역시 어려운 거구나' 하며 책을 덮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니체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원서 번역한 거는 제게 아직 무리인것 같아서 <미래를 창조하는 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가지고 그의 사상에 접근해 보기로 했어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용보기
십여 년 전에 니체 책에 도전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실패했지요.  도통 뭔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철학은 역시 어려운 거구나' 하며 책을 덮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니체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원서 번역한 거는 제게 아직 무리인것 같아서 <미래를 창조하는 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가지고 그의 사상에 접근해 보기로 했어요.
 
이 책은 작가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주요 대목을 해설해 놓은 해설서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해설서라고 해서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원서가 워낙 어려워서였겠지요.  그 책의 부제가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데 위안이 많이 되더군요. 니체도 자기 글을 이해하기 힘들거라는 걸 알았나 봐요.
 
'니체'하면 떠오르는 말은 '초인'이지요.  저는 예전에 이 말이 신을 대신할 만한 슈퍼맨쯤 되는 개념일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인간요.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제가 이해하기론 초인이란 개념은 자기 자신을 극복한 인간 자신을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나약함을 핑계로 그저 그렇게 도덕이나 신에게 기대어 사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것 같더군요. 어떤 대목에서는 울부짖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니체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에게 특별히 관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대상을 질책합니다.  안주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계속해서 자신을 깨고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인간은 절망해야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절망한 자아만이 그것을 극복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상당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었어요.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을 진단하고 삶의 건강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니체를 통과해 가는 길이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지름길은 아니다.  니체는 지름길을 싫어했다.  쉬운 길이라고, 빠른 길이라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 지름길을 통해 삶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니체를 통과하는 길이 비록 빠르지는 않아도 더 건강해지고 더 고상해지고 더 심오해지는 길이라는 사실은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해못한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그냥 "이게 옳으니까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해주었다면 니체에게 무척 고마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니체의 사상에 접근해 봤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의 뒤편에 보면 '더 읽을 책들' 코너에 니체의 다른 책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책들의 짧은 소개글까지 있어 니체의 다음 책을 고를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니체 연보'입니다.  본문에 나왔던 니체의 사상을 읽고 니체의 삶을 따라가 보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인간 니체의 삶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특히 누이동생 엘리자베트는 니체 인생에 정말 깊숙이 관여하고 개입했더군요.   세계적인 철학자 니체 위에 군림했던 사람같았습니다. 좀 무섭기까지 했어요.  니체의 사상에 누이동생도 영향을 미쳤을까 잠깐 궁금했습니다. 
 
여하튼 니체의 사상을 쉽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니체를 만나기 바랍니다. 니체의 목소리를 크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k****d 2009.06.1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