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럽지만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 결과, 하나를 말하면 하나 밖에 모르는, 창조성을 기르지 못한 인간은 결코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라는 이 책 머리말의 한 문장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로 하여금 경멸감만을 가지게 할 뿐이다. 우습게도 이 책은 이 책이 만들어진 방향과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책이다. 가령 예를 들어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형편없었지만, 문제는 이 책에 제시되어있는 답안이 모범적인 것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책에 실린 문제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또한 각각의 문제들은 한결같이 까다롭고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고작 한 두 장이라니. 그러면서 창조성을 이야기하다니. 초반에는 기대를 하고 읽었으나 읽는 시간이 아까워 그냥 몇 시간 만에 대강 읽고 말았다. 우리 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주입식 교육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도 그 교육에 일조하고 있음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각 질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문헌 목록이라든가 비슷한 유형의 다른 질문들을 제시한다든가 하는 성의만 보여주었더라도 이렇게까지 혹평을 할 생각은 없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이라니. 예리한 질문은 상당수 보였으나 놀라운 답변이라기 보다는 요약 정리한 답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요약 정리는 어느 정도 되어있었으니, 외우기는 좋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
| Bourdieu 는 자본을 구분함에 있어서 ‘문화자본’ 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경제 자본과는 달리 교육 등 일상 생활 속에서 체득된 것으로 졸부와 전통있는 부자를 구분짓는 하나의 잣대로 이야기되곤 한다. 자본주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보면 계급에 있어서의 안정화가 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적인 효율성을 추구하고 물질 만능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해 있기는 하지만, 계급 질서가 안정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상류 계층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사회에 비해 보다 강하게 나타나지 않나 생각된다. 그것은 문화자본 아닌 경제자본만으로 지배 계층의 질서에 편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 더 열려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지배질서가 역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사회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교양이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사치와도 같이 여겨질 수 밖에 없는걸지도 모른다. 일단은 경제적인 부를 이루는게 중요한 사회에서 문화는 상대적으로 뒤쳐질 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지난 70-80년대 경제발전의 흐름 속에서도 나타났었다. 일방적으로 억제되고 짓눌리는, 동시에 상부에 의해 강요되는, 그런 경향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유난히도 경직될 수 밖에 없었으며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이 존재치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기형적(?)으로 높은 교육열이 한 몫 단단히 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대학을 들어가려고 안달이 났지만 교육의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줄로 서야만 했고, 단순히 줄을 서는 게 아니라 줄의 선두 부분에 서야만 했다. 그리고 누가 선두에 서 있는가를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답이 뻔히 정해져있는 객관식이었다. 하지만 객관식 형제의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확한 논리나 방법에 눈뜨지 않아도 무조건 답을 암기하거나, 심지어 찍어서 맞출 수 있는 등의 폐해가 존재한다. 서술형에 비해 단편적인 사고로도 해결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객관식인 것이다. 난 나름대로 객관식 문제들에 잘 적응한 사람이었다. 전혀 원리가 이해되지 않는 수학문제를 암기해서 풀고, 심지어 수능 시험을 볼 땐 도형을 자로 재서 답을 맞추는 다소 엽기적인 행각도 벌였었다. 교과서 이외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그다지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교양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하나 더 맞추는 것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뜻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나라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나와 같이 책을 전혀 안 읽고 단편적인 사고를 하며 살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특별해 보이는 것에 어느 정도 우리 나라의 기형적인 교육제도가 영향을 미쳤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러한 교육제도의 문제는 대학에서도 고대로 답습되고 있다. 기초, 순수 학문을 등한시 한 체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모든 이들이 응용 학문에만 매달리고 있다. 기업에서는 상경, 경영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이의 이력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린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교양을 꿈꾸고 철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철학과 수학을 중시하는 풍토가 바칼로레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어떠한 질문도 단 한가지의 정답이 존재하진 않는다. 동시에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답들은 모두 자신들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어필하고 있다. 물론 그 논리에 있어서의 비약이나 모순 등이 전혀 존재치 않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고등 학생들이 쓴 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한계점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논리적, 비판적인 사고를 하면서 자란 이들이 무조건 암기를 하고 문제 하나를 더 맞추기 위해 목숨을 거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하겠다. 나는 이러한 차이점이 다름 아닌 한국, 프랑스 사회의 계급 질서의 안정성에 있어서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상류 계층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금전적인 재산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의 공고화된 계급 구조는 돈만으로 상류 계층 진출이 가능치 않다. 그들에게 보다 상류 계층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문화 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나의 사고에는 다소 논리적인 비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난 다만 서구의 것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프랑스인들의 교양에 대한 열망을 분석해보려고 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질문들은 너무도 본질적이다. 인간으로서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문제들이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망각하며 살아왔던 것들, 프랑스인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러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자신의 고민한 바를 논리적으로 피력한다. 이 책에 쓰여져 있는 답변들이 고등학생들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점에 놀라는 것이 이 책을 출판한 이들의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들을 던지는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모든 질문에 대해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답하는 것은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에겐 논리적으로 답하는 것이 익숙한 작업(?)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나와 같다고 볼 수 있는지, 나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과정은 우리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 천천히 걷는 과정 속에서 이름 모를 들꽃을 발견하고 웃는 것을 가능케 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의 기능일 것이다. 이 책은 지금껏 망각하고 있던 그 가치에 대해 눈뜨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교양은 부수적이거나 사치스러운 것이 아님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며 동시에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 간혹 이 책을 보는 사람 중에는 바칼로레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익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답이 멋지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암기식으로 나열된 답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혹평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들 모두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는 우리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필요한 고전을 적절히 인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는 데 있다. 또한 그러한 지적 표현과 모습이 허영이나 자기 과신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암기식 공부가 유행하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수능이 나오더라도 새로운 암기식 공부법이 참신하게 나오고 있다. 솔직히 정말 부럽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할 필요도 없고, 다만 어떻게 해야만 이러한 문화를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했으면 한다. |
| 교양인으로서의 대접이 아름다움보다 더 가치있게 생각하는 프랑스. 그만큼이나 지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듯하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는 그런 환경 속에서 공부한 대입 수험생들이 치뤄야 할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에 출제된 문제와 또 수준 높은 답변들을 실은 책이다. '우리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등 대부분 질문들이 우리나라 일상 환경에서는 좀처럼 갖기 힘든 질문들이다. 바칼로레아 문제 특유의 추상성과 그 난해함에 문제를 본 순간 무엇부터 써야하나 막막하다. 더불어 이렇게 깊은 사고력과 지식을 요하는 문제를 다루는 프랑스 시험에 비한다면 우리나라 교육 환경과 사뭇 크게 비교된다. 뿐만 아니라 이 시험에 대해 수험생뿐만 아니라 전 대중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관심도만 봐도 프랑스란 나라의 환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을 우리 나라가 좇아가려면 얼마나 더 지나야 할 것인가? 폭 넓은 독서가 주는 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보다 넓은 사고와 이해력·통찰력을 가진으로서, 또한 그것이 사회 전반의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사회는 보다 더 나은 국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한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높은 자질을 가질 수 있는 힘. 즉, 지식의 기반이 탄탄해야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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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이나 인문에 관련된 내용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단순히 ‘이런 책은 별로 재미없고 어려운 내용이니까 다음에 읽어야지.’ 라고 만 생각하고 책을 읽을 때도 실용서, 소설류의 책들만 읽어왔다. 책을 추천해주시거나 하는 분이 없기도 했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고, 내 스스로도 더 양질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그런 책은 어떤 것이 읽을까 하는 의문과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다 보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주관식보다는 객관식이 편했고 뉴스에 가끔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논술고사 이야기가 나오면 부담스럽게만 느껴지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대학입학시험으로 저 정도까지 해야 하나, 그렇게 중요한가, 프랑스만 특별한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까지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낮은 지적 수준을 실감할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충격이었다. 이게 학생들이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 적은 답안이 맞는가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의 질문을 준다는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의 교육현실이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의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아니, 어렸을 때 동화책을 읽어왔지만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는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질문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지 글을 읽고 느낌을 가지는 것에만 집중해 왔을 뿐이었다.
교양이라는 것에, 인문과 철학이라는 학문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를 다시 한번 반성하면서 시대를 이끌어가고 진정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주는 것은 교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교양은 나의 좁은 시야에서 그리고 다른 인문, 철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그저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교양 또는 철학의 정의를 살펴보면 교양과 철학은 그렇지 않다. 교양은 지식 자체와는 구분되며 교양이 완성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격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며 인격 완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인 것이고, 또한 철학은 앎의 바탕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에 이 또한 중요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책이 한가지 질문에 대해서 한가지의 답만 말하고 있어, 그것이 결론인 양, 모범답안인 것처럼 나타내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양은 인격을 완성하는 방법이고, 앎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찾아가는 과정인데, 한가지 주제에 대해 한가지의 답변만으로 그 것을 읽고 느끼는 한 사람의 인격을 완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프랑스의 입시제도를 생각하고, 우리 교육을 떠올리고, 교양과 철학의 중요성과 이러한 지식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알아가야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한번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반성에 또 반성을 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책이고, 사실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나 한 번 읽고 완벽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책을 읽으면서 더 깊은 이해를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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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소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
하나는 프랑스에 있는 이러한 지적 유희(폄하하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유희)문화가 참 부러웠다. 최근 신문에 토론하는 장이 생겨나고 토론 프로그램이 늘어난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아직 우리나라 문화에서 무언가를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욱 더. (대부분의 경우 대화는 조금 진전되다가 그게 그거지 뭐.. 하고 끝나버린다)
또 다른 하나는 프랑스 사람들 역시 말을 참 알쏭달쏭하게 하는구나, 라는 것. 이는 어쩌면 나의 교양 결핍인지도 모르겠으나, 글을 쭉 읽어내려 가다보면 정말 이것이 모법 답안 혹은 좋은 글로 뽑힐만한 글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나에게 모법 답안 혹은 좋은 글이란 주장이 뚜렷해야하고 문체가 살아있어야 한다. 만약 여기에 실린 답안들을 내게 주었다면 - 글쎄, 나는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적혀 있는 질문들은 의미가 있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생각해왔거나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들(예:꿈은 인간만의 것인가? 동물은 꿈을 꿀 수 없는가?)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펼칠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 후반부로 갈수록 서두에 놓여진 질문만을 깊이 음미하고 나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방법으로 읽었다. 도저히 애를 써도 답안이 눈에 당최 들어오지 않았던 까닭이다.
교양이라는 것. 여전히 우리에게는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로만 생각되는 것.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교양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삶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한 나침반 역할을 하는데 - 가장 바탕이 되는 것.
그것이 교양 아닌가? [인상깊은구절] 사르트르의 자유에 관한 입장은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말로 대표되어진다. 자유롭다는 것은 존재의 구멍이며, 무(無)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끝없이 채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신을 내어던지는 기투로서의 자유는 일단 불안 속에서 드러난다. 자유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우연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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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세계인의 교양을 읽는다의 프로그램에서 교양에 대한 논쟁이 잠시 있었죠. 그 것을 보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교양을 지식인의 사치라고 하다니.. 교양은 말 그대로 배워 키워나간다는 뜻이 있으니 배우지 않으면 체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으면 보기 좋고 없더라도 예절이나 도덕이 있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교양은 예절이나 도덕과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삶에 있어서 행복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되는 것이고 국가적으로는 그야말로 문화가 앞서는 국가 또는 그로 인해 많은 부를 창출하는 부자나라?를 만드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평소 도덕적으로나 예절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 미술관에 갔는데, 작품을 보는 안목이 전혀 없거나 작품을 보는 방법이 아주 잘못되어 있을 때 우린 그 사람이 미술에 있어서 교양이 없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음악회나 특히 상당히 많이 보이는 박물관관람에서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많고 적음은 무엇을 말 할 수 있나요.
개인적으로 여러 면에 있어서 교양을 잘 갖춘 사람은 삶의 과정에서 스스로 원하는 만큼 문화 예술을 접하면서 행복의 기회를 더 많이 갖게되죠. 삶의 질을 높인 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는 그러한 교양이 높은 국민이 많아질 때 더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이 생산되어 결과적으로는 국가적 이득이 커지는 것입니다. 프랑스나 기타 다른 나라의 지식생산이나 그것의 부가가치는 부러워하면서 그 이유를 교육방법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에 문화적 가치를 우선하는 것을 가볍게 여긴다면 계속 수박 겉 핥기에 그치고 마는 배우기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수업방법이 가치 있는 것은 다양성과 논리 상호존중의 꽃인 토론문화에 있어, 교양있는 수준높은 토론문화가 지식강국 프랑스를 만들어가고 있음에 공감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방법에 새로운 방법을 모색 할 수 있는 또 그런 내용들을 제공하는 좋은 책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인간성의 형성은 글을 통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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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책을 말하다를 보고 책을 구입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좋아하는 홍세화선생님이 패널로 나오셔서 눈여겨 보던중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는 의미가 하나 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육과 교양이란 것이 사회적 기득권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일반에 끌어올린 프랑스의 면모를 잘 알 수 있었다. 질문과 답변은 정말 놀라웠다. 아무리 문화 선진국이라는 프랑스라 할 지라도 대학교 입학을 위한 논술 고사의 질문과 답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20년 전에 대학을 입학한 내가 중고등학교나 대학생 시절 내내 들었던 이야기가 공부는 암기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그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로서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암기식 공부법만을 되풀이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이제는 뭔가 학교도 기성세대도 달라져야한다는 것을 역으로 느끼게 해준다.
"경제 사회적 발전 단계가 높지 않은 나라에선 교육의 중심이 창조성보다 모방성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 생산기지인 나라에서는 창조성이 크게 요청되지 않는다. 창조성을 기르지 못한 인간은 결코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 기초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소흘히 하는 기능위주의 교육은 능동자의 교육이 아니라 남의 뒤나 따라가기 바쁜 피동자의 교육이다." 라는 책의 머릿말을 보면서 먼나라 이웃나라의 일로만 제껴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의 각부분별 질문과 답변을 보면서 하나하나 나 자신에게도 던져보고 싶은 질문들에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살아온 것들을 되돌이켜보며 가지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이책이 덤으로 얹어주는 선물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골프를 치고 고급 자동차을 모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지만 유명화가나 소설가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이유가 된다. // 권력의 힘에 위축되고 좌절할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나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지 않게 해주는것, 이것이 앎의 진정한 소명이 아닐까? |
| “프랑스어는 교양언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랑스 영화 대부분을 교양영화라고도 하지 않던가……. 중요한 자리에서 들은 탓에 주의 깊게 새겼건만 오래 담아 두지는 않은 말이다. 한데 〈타인의 취향〉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는 중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마도 교양영화로 통칭되는 프랑스 영화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했나 보다. 그리고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통해 그때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주저 없이 원점으로 돌렸다. “프랑스인은 진정 교양인이지 않은가!”라고 찬탄하면서.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는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문제들과 답안을 모은 책이다. 그간 바칼로레아에 대해 범상하지 않은 말들을 들어 오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과 크게 달리 생각되지 않았다. 시험에 보이는 관심 정도도 비슷하고, 시험 종료와 동시에 텔레비전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답을 찾고 여러 가지 통계를 내는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에서 시작된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에 대한 도전은 프랑스가 아닌 한국에서 이미 16년의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너무나도 다행스러울 정도로, 한없이 난감한 기분과 일종의 패배감을 갖게 했다. 자존심 때문인지, 앞서 나오려는 부러운 마음과 감탄사들은 꼭꼭 숨겨 버리고만 싶었고. 몇 차례의 논술 시험에 대비하려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니는 우리 현실에서 논리적인 토론 능력과 풍부한 교양에 대한 중요성이 부쩍 부각되고 있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가 왠지 뼈저리게 다가와 새삼스레 우리 교육과 국력까지 생각해 보게 하는데……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통해 우리들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현 위치를 하루빨리 직시하는 것이 우리는 물론 후세를 위한 또 하나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
| 한국근대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의 하나는 IMF 환란일 것이다. 텅빈 도로,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던 경기,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등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피해를 복구해 나갔고,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선진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몇 가지 있으니 그것들을 언급하자면 리더에 대한 인정,타인 또는 타 집단에 대한 존중과 배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인정, 기초와 기본에 대한 중요성 인식 등이 그것이라 하겠다. 그 중에서도 여러 참사사건들은 기초와 기본이 부실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 사례이기도하다.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 기초 닦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인 시각을 갖지 않으면 시도하기 힘든 일이지만, 일단 탄탄하게 닦인 기초는 사람이나 조직을 더 멀리 나가게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이것은 마치 개구리가 뛰기 전에 다리를 움츠려야 더 멀리 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교양이라 불리는 지식들이 여유가 있는 높은 수준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것은 삶의 기초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자신이 삶의 이유조차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는 지식이 힘이고 정보가 기회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그 정보는 죽은 정보나 다름없다. 정보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창의적인 교육에서 생긴다. 고통스럽지만 깊은 사고를 하는 것은 창조성과 독창성 그리고 리더십을 기를 수 있으며 더불어 글로벌 경쟁시대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프랑스 대입논술고사 문제와 가장 적절한 답안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교양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로 삼아도 괜찮은 책이니 적극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