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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에 발간된 Pop Internationalism이 2009년에 번역 발간된 이유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란 사람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96년경이며 국내경기가 서서히 가라앉던 시절이고, GATT에서 WTO체제로 다자주의협상이 더 확장되는 세계화(Globalization), 다국적 기업의 확장과 지역경제블럭의 형성(localization), WTO체제에 따라 농산물자유무역에 따라느 국내의 시위와 생소한 Safeguard등에 대한 말을 듣기시작했던것 같다. 또한 WTO와 별개로 USTR에서 쌍무협상에 일방적 따라 보복조치인 슈퍼301와 슈퍼201조등 본격적인 통상문제가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던 시절인것 같다. 국제통상학과, 국제관계학과들이 생기던 시절인듯 하다. 그리고 15년쯤이 지난 지금에 보는 그의 article을 읽다보니, 예전에 보던 서강하버드비지니스리뷰생각도 난다. 요즘은 이걸 보기는 힘든데, 어찌됬던 책을 읽다보니 지식부족으로 인한 어려움과 번역(직역에 가까운듯)으로 인한 어려움이 상존한다. 2-3번씩 읽어야하는 부분이 많다. 경제, 경영의 기초지식이 없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시절에 배운 이론만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핵심과 본질을 이해하는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많은 책들이 위해서 언급한 내용을 설명해오고, 내가 본 지긋지긋한 원서에 세계경제의 3각축경쟁을 통해서 미국, 유럽, 아시아연합을 비교검토할때 최후의 승자가 유럽이 될것이란 책을 본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유럽은 비아그라를 몇통씩 처방해도 당분간 계속 기진맥진하지않을까한다. 불과 15년만에 일어난 아이러니한 결과를 보면서 무엇이 결과의 예측과 이렇게 빗나갔다도 생각해본다. 위의 책처럼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정책적으로 기업형모델의 도입, 국가간 지역협력간의 경쟁구조로 경제를 설명하던 시대가 90년대다. 동시에 FDI(해외직접투자)가 왕성하게 시작되던 시기인듯도 하다. 크루그먼이 책에서 비판하지만 나같은 일반인들은 이런 추세와 이론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간 경쟁력이란 부분의 증명을 위해서 경제학의 기초라고 할수 있는 리카르도의 비교우위가 절대우위의 보다 효과적인 사항을 상기함으로, 국가간 교역이 기업의 경쟁과 다르다는 부분을 말하는 것은 책의 말미에 나온 경제학의 기초인데도 조류에 휩쓸려 기본원칙을 잊었다는 것을 반증하는것 같다. 추정과 가설의 매력적인 문구가 아닌 경제학의 원리에 입각한 증명이란 부분을 통해서 가설의 타당성을 제고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엇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하게된다. 그외에도 헥션올린 요소가격균등화(조금)에 대한 내용과 사무엘슨에 대한 내용도 나오지만 리카르도의 혜안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몇달전 김광수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공부방에서 들렀다, 현재 경제상황과 정책대응이 경제학의 기본을 따르지 않는 다는것과 경제학의 기본전제와 현재의 경제상황을 대입하기에는 상황이 다른다는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경쟁력이란 표명되는 주제하의 경제상황을 계속해서 검증한다. 특히 NAFTA에 대한 설명부분은 현실을 보는데 도움이 될것같다. 물론 국가간의 경쟁과 별도로 각 개별산업의 흥망성쇠는 별도로 논의하고, 분배에 대한 효율성을 차치해서 분석하는 것도 맞다. 중요한것은 전체가 잘된다고 개인이 잘된다는 추정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FTA를 통해서 교역이 증가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전체 효용이 증가하는 것도 당연한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그 효용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과 내가 분배의 대상이 되는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부분에 개인의 고민은 있는것같다. 크루그먼이 지적하듯 우리는 이걸 좀 혼동하는것 같고, 그것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은 매우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이 정확한 학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더 좋을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생산성과 기술의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아시와 경제와 소비에트시절의 경제에 대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현실적으로 보면 숙련도와 비숙련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도 좀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이후 노동력대신 자본의 투입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조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후 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동의 숙련도와 비숙련도가 이런 생산성증대와 직접연관성이 있는 기술을 통한 노동력 수요의 차이가 분배효과의 왜곡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책은 더 어렵게되있는듯 하다. 나도 잘 이해했는지 쓰고나서 몇번씩 보고 있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 스스로 궁금하기도 하다) 또 동북아시아의 호랑이의 성장이 기술의 발전과 투입의 증가로 인한 발전인지에 대해 검토하는 것은 현재를 보다 직시하는 바른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본 책에서 인류의 생산성 폭증이 발생할 시절에 반드시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있었고, 1920대 공항이 전기가 없었다면 극복되지 않았을것이란 말에 공감하듯 이 책도 어렵긴하지만 연결된듯하다. 현재의 국내경제문제가 어쩌면 크루그먼이 지적하는 문제의 연속선상에 있는게 아닌가한다. 결국 스스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 개인들 스스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숙련도를 높일 필요성과 경제의 기본원리에 입각한 냉철한 시대를 보는 눈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동시에 나는 교역의 효율과 여기서 많이 언급되지 않는 분배의 문제, 정치, 외교의 문제를 보면서 크루그먼이 왜 국가간 교역증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내부의 문제로 지적했는지 좀더 공감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정치와 정책에 관련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경제학자로써 경제학적인 접근에 한정한 그의 견해가 더욱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술술 읽으면 아무생각이 없고, 꼼꼼하게 읽으면 머리는 좀 아프고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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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 지식에 대한 비판'
이 책은 폴 크루그먼이1990 년대에 '포린 어페어스' 등에 기고한 논문과 컬럼을 묶어 1996년 발행했던 [Pop Internationalism] 의 한글 번역본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에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일이다. 영화 상영 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친구와 레이먼드 피스먼과 에드워드 미구엘의 저서 [이코노믹 갱스터] 에 대한 애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우습지만 마치 책의 홍보대사가 된 마냥 책을 꺼내놓고 말이다. 대화가 무르익을 때 즘, 앞에 앉아있던 노신사께서 책을 잠깐 봐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물론 난 흔쾌히 책을 건네 드렸고, 그 신사분께선 "최근에 나온 책이 아닌데..." 라고 말꼬리를 흐리셨다. 발전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와 실증적 분석을 했던 이 책의 핵심이 겨우 3년이 지나서 그 가치가 퇴색될까? 이런 뉘앙스를 풍기며 그 분께 책을 다시 정중히 권해드렸다. 만족하셨는지 영화 끝나면 서점에 가야겠다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흔히 우리는 경제관련 서적을 고를 때 가장 최근에 발행되거나 이슈가 되는 서적이나 자료들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는 경제현상의 특성상 하나의 변수로 인해 예상치 못한 수많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쏟아지는 자료 (data) 중에서 어떤 자료가 우리에게 필수적인 정보(information) 가 되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보의 비대칭성과 함께 미디어에 대한 불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런 우리들에게 저자는 진정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흄' 과 '리카르도' 라고 당당히 말한다. 즉 경제학 고전과 더불어 경제학 이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통속적 지식과 이런 지식에 대한 우리사회의 맹신을 깊이 우려하며 경종을 울린다. 또한 "일단 자료를 사용한다면 그 자료는 오로지 이미 정해진 믿음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통속적 지식을 생산해내고 사회적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가짜 '지식인' 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런 저자의 모습은 '닫힌 사회' 를 비판하며 한 생을 보낸 20세기 과학철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칼 포퍼의 반증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주요 내용
1) 자유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파지티브 섬 게임이다.
"저조한 생산성 향상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국제 경쟁력을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생산성 향상이 연 1%로 하락하는 데 반해 다른 나라의 생산성은 계속3%씩 향상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만일 미국의 실질소득이 연 1% 오른다면, 비록 그것이 다른 나라에 뒤진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미국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고 분석할 수 없다. 그 소득증가율은 다른 나라들이 우리처럼 실적이 좋지 못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다른 나라들의 실적이 더 좋다는 사실이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국내 수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따라서 경쟁력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합당한 경우는 소득증가율이 생산성 향상률의 하락보다 더 떨어질 때, 그 하락 범위에 국한해서 언급하는 경우다" (P.71).
"가격을 인하하는 외국 경쟁자들은 내가 받는 임금을 내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받는 임금이 어떻든지 간에 그 임금의 구매력을 높이기도 한다. 불리한 효과만이 지배적일 것으로 예상할 이유는 없다" (P.85).
저자가 글을 쓰던 당시 서구에서 바라보는'세계화'는 필연적으로 보였고(나는 클린턴이 "세계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그 영향과 결과가 긍정적일지 혹은 부정적 일지의 문제다" 라고 말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세계화라는 제로 섬 게임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누리고 손실을 최소화할까 하는 '경쟁' 으로서의 관점이 팽배해 있었다. 저자는 이를 당시의 잘못된 통속적 지식으로 규정하고 자유무역(특히 쌍무협정을 통한) 에 대한 이익을 설명하기 위해 생산성의 절대적 수의 비교가 아닌 실질소득과 비교한 상대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다른 나라의 생산성 향상 정도와 미국의 생산성 향상 정도를 1:1 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비교국가의 생산성 향상 정도와 실질소득의 증가분을 같이 고려하고 이를 미국의 생산성 향상 정도와 실질소득의 증가분을 고려 후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A 측 국가의 생산성이 전년대비 3% 증가할 때 미국의 생산성이 전년대비가 1% 증가 했다" 라는 식의 비교가 아닌, "A 측 국가의 생산성 전년대비 3% 증가 및 실질소득 3% 증가, 미국의 생산성 전년대비 1% 증가 및 실질소득 1% 증가 했다" 라는 식의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A 측 국가는 더 높은 소득의 증가와 함께 미국보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것이다. 즉 두 나라의 '구매력' 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2) 아시아 한계론 - 아시아의 급성장은 미래 수익을 앞당겼을 뿐인 땀으로 일군 성장이다.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에서 '직업소명설' 과 청교도들의 근검절약 정신이 개신교인 북부유럽이 남부유럽(가톨릭 중심) 보다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하게 1990년대 초 초고속 성장을 하는 '아시아의 호랑이' 들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분석이 주류를 이루었고, 지금에는 어이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유교적 자본주의' 를 거론하며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높게 평가했다.
저자는 이런 통속적 지식과 사회적으로 팽배해져 있는 맹신에 일침을 가하며 '아시아 한계론' 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실제적이면서도 경제학의 기본 개념인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 을 통해 더욱 완벽해 진다.
저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 이면을 설명하기에 앞서 스탈린 공산주의 체제의 소련을 예로 든다. 사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는 생산요소투입과 생산성 향상이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효율성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투입단위당 생산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투입의 확대에 의한 경제성장은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산요소투입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생산성 향상만 가지고 경제성장률을 예전만큼 기록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1960년대 초까지 소련의 경제가 그러했다. 이는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까지 학계에 쏟아진 소련 산업에 대한 논문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소련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기억하지 못한다. 1990년대 동아시아 국가들을 1950년대의 소련과 사회전반에 걸쳐 비교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경제 성장 원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가졌다.
이 글은[포린 어페어스] 1994년 11, 12월에 실렸고, 3 년이 지나지 않아 동아시아는 태국으로부터 대한민국까지 확산된 외환위기를 겪었다. 물론 이 글에서는 단기외채 유입의 증가 및 레버리지 효과 등 세세한 부분을 다루진 않지만, 경제사와 경제학 이론을 통한 저자의 통찰력은 단연 돋보인다.
문제점
저자는 국가 경제의 득과 실을 비교하기 위해 계량화를 시도할 때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보아 그 크기가 어떠한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NAFTA 를 통해 미국과 멕시코가 얻는 예상 수익(이 글을 쓸 때 당시) 은 각각 60억달러다. 이는 미국 GDP 의 0.1% 를 약간 웃돌지만, 멕시코 GDP 의 4% 가 넘는 금액이다. 이런 식의 이익 계산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손실을 계산할 때는 어떠한가? 저자의 주장처럼 NAFTA 를 통해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멕시코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같다고 볼 수 있는가? FTA 를 바라보는 저자의 입장은 FTA 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만 바라본 이익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FTA 를 했던 멕시코는 어떠했는가? 저자가 말하는 '작은' 불이익이 상대국(개발도상국) 에게는 '엄청난' 불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찰리 채플리는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고 말했다. FTA 는 상대적으로 후진국에게는 "총체적으로 보면 이득이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비극이다." 저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FTA 는 분명 후진국의 경제적 양극화를 초례 해왔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FTA 는 두 나라 중 기술집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 농산물 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크고 발전된 나라, 군수산업이 더 발전된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더 큰 이익을 취한다. 사실상 FTA 는 경제적 문제만 가지고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책을 읽는 내내 적절하지 못한 '번역'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다. 이해하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두 세 번 반복해서 읽어야 되는 부분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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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졸업, MIT경제학 박사, 레이건행정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예일 및 스탠퍼드,MIT대교수역임, 현재 프린스턴대경제학과와 외교학과 교수. 2008년 단독노벨경제학상 수상 등 화려한 경력의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진실"을 통해서 얻는 수 있는것은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었다.
통상 언론매체를 통해 소위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저명 인사가 하는 말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경제 현실이 그 결과일런지도 모른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 책을 통해서 통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경제학 이론들,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생각들의 일대 전환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지적해내고 있다.
많은 저명 인사 또는 학자들의 경제에 관한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이론적 오류를 짚어내는가 하면, 기초적 경제이론조차 모르면서 국제무역에 대해 감동적 말을 쏟아내는 학자들을 팝-인터내셔널리스트라고까지 혹평한다.
이 책은 1996년 MIT press에서 "Pop Internatianalism"이라는 책의 번역본이다. 구성은 학술지에 게재되었던 13개의 글을 엮은 것이며 서로 완전한 별개의 내용은 아니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아주 많이 사용되는 용어중 하나인 국가경쟁력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일반 대중들은 이 단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끌어 당길 것이라 보인다.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을 답습하기보다는 이러한 학자들의 경제학 시각을 통해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경제학 이론기반을 점검해보고, 향후 경제와 경제학에 대해서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것인가 하는 방향성을 결정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래는 저가가 인용한 글 중 하나로 얼마나 무의미하며 잘못된 개념들에 우리가 감염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글이다. 이 글에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도 좋다고 보인다. 설명은 p164에 다루어져 있기도 하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미국은 진정한 세계경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수준을 지키기 위해, 미국은 이제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 때문에 높은 생산성과 품질이 아주 중요하게 됐다. 우리는 미국 경제를 부가가지가 높은 부문으로 바꾸어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경제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와 기업 간의 새로운 제휴관계 형성 여부에 달렸다(p.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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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루그먼 [경제학의진실] ★★★★☆ 2009.12.14~2009.12.18 Central City 영풍문고 나에게 있어서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크루그먼의 두번째 작품이다. “경제학의 진실” 어제 토요일에 사서 일주일간 읽었어야 할 책이었던 “서른살의 독서”를 단 하루만에 독파해버리고(너무 쉬웠고 유익했던) 갑작스런 후배어머님의 사망소식에 광주로 조문길에 영풍문고에 들렀다. 귀소본능일까? 웬지 모르게 경제학쪽에 손이가는 내모습에 내 자신마저 의아하다. 회계학, 재무학도 아니고 경영학도 아닌 경제학이다. 최근 몇주간 폴크루그먼의 “불황의경제학”, 선대인의 “위험한경제학”이외에 세번째란 말이다.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것일까? “불황의 경제학”이 작은아버지 환갑잔치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 김포공항에서 샀던 책이었던 걸 생각하면 폴크루그먼은 저항의 도시 광주와 비슷한 면이 있다. 모두가 호황을 외치고 불황의 그림자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난무할때 불황의 그림자에 대해 독자적인 이론을 펼쳤던 그이고, 2008년 2009년 이는 실제가 되어 나에게 있어서는 악몽과 같았다. (주식에 거의 모든주식을 투자하고, 환율이 하늘을 치솟던 2008년 1년간 미국에서 어학연수 했던 나로서는 그 이전에 이를 읽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 2008년 그는 이로 인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이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폴크루그먼이 1990년대 초 경제학관련 잡지에 올린 글들이 대부분이다. 20년전의 미국의 불경기시절에 씌여진 글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조금 실망스러웠으나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기대이상이었다. 첫번째, 국가경쟁력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그는 주장한다. 즉, 소위말하는 국가간의 경쟁력이 기업간의 경쟁력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국가간의 경쟁에도 승패의 개념이 적용되어 다른 경쟁국보다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면 그 국가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질소득이 줄어든다는 소위 Pop Internationalism을 비판한다. 이를 주장하고, 또 이를 믿어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제경제학의 기초개념인 리카도와 흄의 비교우위마저도 공부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무식의 소산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국가간의 경쟁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제로섬의 세계가 아니다. 기업처럼 경쟁력을 상실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그러한 단순 경쟁논리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국가간의 경쟁력이라는 말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확산이 되어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를 믿고 있다. 그 이유는 (1) 경쟁이라는 이미지가 흥미를 자아내고, 스릴은 인기를 몰고 오기 때문에 레스터 서로의 [일본,유럽 및 미국간에 벌어질 경제전쟁] 등의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매우 유익하며, 이로 인해 그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고 심지어는 미국정부 경제고문관의 자리가 차지하나, 폴 크루그먼에 의하면 도대체 경제학의 기초를 공부한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운 뜨내기 경제학자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2) 1980년대 초반의 미국의 경제난이 전적으로 국제경쟁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경제난의 해결을 용이하게 보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값싼 노동력에 의한 수입품으로 인한 단순노동자들의 일자리 상실, 일본의 거대한 성장 등을 미국 경제난의 원인으로 몰아 붙이고 보조금의 지급, 보호무역주의(특히, 일본에 대한)을 부활시키는 논리로 사용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1990년대의 경기불황은 국제경쟁력의 문제가 아닌 순수한 국내생산성의 문제라는 것이며 국가간의 경쟁력 회복으로 극적인 전환을 기대해서는 안되다는 것이다. (3) 세계지도자들의 대다수가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아주 유익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한국정부처럼 말이다. 모든 현상을 경쟁의 논리로 바라보며, 국가를 기업과 동일하게 경영하려 하는 대통령에게 이 책을 정말 권해주고 싶다. 기업과 국가에 경쟁력의 논리를 적용하여 재벌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위해 고환율을 유지하는 대신 이로인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관심도 없고, 임금의 상승은 국가경쟁력을 낮춰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식으로 노동자만의 희생을 강요하며, 양도소득세감면, 종합부동산세폐지, 주택자금대출 만기연장 등의 시대를 거슬러가는 정책으로 모든 나라에서 꺼지고 있는 자산의 거품을 계속유지하고 이를 자신의 임기내에 터뜨리지 않고 심지어는 버블을 점점 더 키워나가는[위험한 경제학, 선대인의 논리이다] 이 정부에게 그리고 강만수 장관 및 그 휘하의 경제관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20년전에 쓴 논문이고 소위 말하는 경제학 전문가 들이시니 좀더 쉽게 이해하시리라…. 둘째, 이 문장을 한번 읽어보자.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은 진정한 세계경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수준을 지키기위해, 한국은 이제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 때문에 높은 생산성과 품질이 아주 중요하게 됐다. 우리는 한국 경제를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으로 바꾸어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일자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경제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와 기업간의 새로운 제휴관계 형성 여부에 달렸다. 몇 문장 정도가 경제학적으로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IMF Crisis이후 우리가 귀에 닳도록 들어오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라 믿고 있는 이 문장에 몇개의 모순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셋째, 그는 1990년대 중반까지 성장일변도로 급성장하고 향후 미래는 동아시아에 달려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비판을 가한다. 그는 동아시아의 성장이 과거 소비에트혁명 이후 1960년대까지 세계를 경악케할정도의 성장율을 보여줬던 (구)소련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처럼, 1990년초반까지 동아사의 성장(중국 및 4대룡)은 기술혁명등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지 생산투입요소의 증가에 따른 성장일변도의 성장이었으므로 이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며, 위기가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소비에트연방처럼 해체나 몰락을 예견한건 아니다) 즉, 혁신 또는 기술개발이 따르지 않는 생산투입요소의 증가에 따른 성장은 과거 (구)소비에트연방처럼 초기에는 기적적인 생산성의 향상과 경제발전이 가능하나 일정수준이상 오르기가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이는 그의 예언처럼 1990년대 중후반 모든 동아시아를 휩쓸어 버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한 현재의 희생"은 마음속 깊이 다가온다. 넷째, 커트본거트의 1952년 공상과학소설 [자동피아노]를 보면 미래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모든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고 인간들은 실업수당 등에 기대어 사는 비참한 사회상이 표현되어 있다. 폴크루그먼은 그러한 세상이 올수 있음을 믿고 있다. 다만,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이 평가절하되고 불균형이 확대되는 이시기가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향후 기계화에 따라 세금전문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대체될 수 있으나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며, 불균형의 시대가 황금균형의 시대에 자리를 양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록 1990년 초반의 글이지만 충분히 현시대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특히 2010년을 바라보고 있는 이시점에도 이 땅 한국에서 만연되어 있는 경쟁력의 논리에 대한 경제적인 반대논리를 주장하고 싶다면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잡지의 글을 옮겨와 엮은 책이라 동일한 내용이 여러번 반복되는점, 미국을 중심으로 된 내용으로 다소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 점, 그리고 1990년초반의 글이고 멕시코등에 관한 얘기는 다소 공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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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진실
요즘 경제가 하도 불황이기도 하려니와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경제에 쏠리다 보니 경제 관련서적이 서점가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나 보다. 폴크루그먼 교수는 어찌보면 약간의 주류 경제학계에서 약간은 빠져나온 아웃사이더에 속한다고 봐야 할까?
애니웨이, 폴크루그먼 교수님이야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퓰리쳐상과 노벨상에 빛나는 경제학계의 거장이다. 나름 앞뒤를 뒤적거리면서 더디게 읽고 보니 나름 가슴이 뿌듯하다. 책의 서두 부분에서 이야기한 국가 경쟁력에 대한 부분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실제로 한국가의 임금이나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외국의 무역수지에 영향을 받는다기 보다는 국가 지도자의 인기에 영합한 여론몰이일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 국가 경쟁력, 비교우위 라는 여러가지 말들의 선택적 사용에 대한 적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찌보면 우리 현실에 가하는 따끔한 일침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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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지만 저자는 3개의 그룹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대중 국제주의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도록 해준다. 특히 경제성장의 둔화기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 처지에서 볼때
지금 대한민국은 케인즈가 그토록 많이 써먹은 정부주도형 경제에 이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느낌이다. 이러한 진실을 알리는 경제학 책을 많이 읽자.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눈과 사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인상깊은 구절 p 261 그러나 그 때에도 정원손질, 집안청소와 같은 몇 천가지의 잡다한 서비스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현재의 '불균형 시대'는 황금의 균형 시대'에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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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경쟁력에 대한 오해에 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해 놓았다. 덕분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인기영합적인 목소리에
현혹되었던것에 대해 화가난다.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원리와 국제 경쟁력과 보호주의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뒷부분의 미국과 멕시코의 NAFTA협정과 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에
작가의 견해는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경쟁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필요와
국수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추천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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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가끔 세상은 두 눈을 감고 살기도 해야하고, 두 귀를 닫고 살기도 해야하며, 두 입술을 꼭 닫고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렇게나 살기 힘든세상에 '진실'을 알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래서인지, '진실'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책에는 호기심이 가곤 한다. 몰래 훔쳐보는 진실은 즐거운 법이니까. <물음> 저자는 폴 크루그먼. 유명한 경제학자란다. 노벨경제학 수상자라고 하니, 정말 유명한 듯. 그래도 내가 모르니 i don't care 다. 이 저자의 책은 찬찬히 읽어보는 논문의 느낌이 아니라, 연설문이나 기고문들을 정리한 형식이다. 덕분에 챕터를 하나만 또박또박 읽어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그의 질문이자 이 책의 답인 '과연 시장 경제의 주체인 기업과 국가를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가?' 이다. <경쟁력>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질문은 '국가의 경쟁력' 이라는 단어이다. 우리에게는 낯익고 우리의 자존심이 되기도 하는 우리의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저자는 부정한다. 그 존재가 애매모호하며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경제와 국가의 존재는 다른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기업과 국가는 다르다. 국가간의 경쟁은 과연 국가간의 경쟁일까? 삼성과 인텔의 경쟁은, 하이닉스와 대만의 반도체 업체간의 경쟁은 우리 대한민국과의 경쟁일까? 현대차가 도요타를 제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우리 경제는 살아날까? 대기업에 편중된 우리에게 위와 같은 질문은 금기시되기도 하고, 혹은 철저히 외면되기도 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저자는 당위성을 실어준다. 기업의 경쟁력이 과연 우리 국가의 경쟁력인가? <하지만, 졸립다> 과감한 질문. 신속한 드라이브 인. 멋진 덩크와도 같은 질문. 하지만 찬찬히 읽어보기에는 다소 지루하다. 경제학적 지식이 없는 이과생에게는 너무나 당혹스런 '상식'들이 많이 있다.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지적 긴장감이 무색하지 않은가?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를 꿈나라로 자꾸 보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