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녀'라는 개념은 조선시대에 창출된 개념이 아니다. 전한시대 유향이 이미 열녀전을 쓴 바 있으며, 한반도에서도 열녀는 비슷한 시기부터 항상 회자되어 왔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다룬 책의 제목이 '열녀의 탄생'이라니? 저자는 조선시대 열녀라는 인간상이 남성들의 가부장적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이 내면화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1392년 조선의 건국과 함께 '여성성'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신유학, 곧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인 남성은, 가부장적 사회를 완성하기 위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요구했던 바, 이들은 국가의 권력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제 남성은 단순한 남성이 아닌 국가-남성이되었다. 국가-남성은 국가의 권력을 동원했던 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아울러 여성을 의식화하기 위해 텍스트를 생산하고 유통시켰다. 이는 국가의 인쇄 출판 기관을 통해 텍스트를 선정하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유통시켰던 것이다. …… 이런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낸 텍스트들은 여성에 대한 성적 종속성을 거의 초험적 수준으로 내면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남성-국가'의 기획은 조선후기에 이르면 남성 개개인의 기획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열녀전 곧 <삼강행실도> 열녀편을 보급하는 데 소극적이 되어간 반면, 양반 사회 내부에서 양반들은 열녀전을 적극적으로 생산하여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단히 유의미한 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유의미한 일'을 유의미하게 분석하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어쨌거나 저자는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열녀를 추적하고 있다. 재가금지, 소학과 삼강행실도의 보급, 전쟁과 열녀, 열녀전 등 문학텍스트의 활용, 규방가사 등을 약 850쪽에 걸쳐 정리하였다. (본문은 554쪽까지이므로 각주와 부록이 상당한 분량인데, 각종 자료들을 정리한 부록은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많은 책이다. 우선 저자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흥미로운 부분이 분석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조, 정조 순조 시대의 실록에 열녀기사, 그것도 자살한 열녀가 비교적 많이 보이는 것에 대한 분석이 그러하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전란을 거치면서 죽음이 여성들에게 깊게 각인되었고, 반면 3년상과 같은 행위는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분명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점을 간단한게 언급만 하고서 '죽음의 열녀'가 '늘었다'는 결론을 내는데 그친다. 사실 실록의 기록이라는 것은 표본 자체가 작고 그 패턴이 들쑥날쑥하다. 적어도 열녀 관련 기록은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단순히 늘었다 줄었다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부분에 더 깊이 천착하는 것이 현대 연구가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즉, 열녀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증거'를 제출해야하는데, 그 증거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열녀를 매개로 한 일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거래 수요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확실한 증거가 요구되었고 그것이 바로 죽음이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죽음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 과정에서 강요된 자살-자살로 포장된 타살-이 발생했을 수가 있다.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열녀로 포상을 받으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물론 정려, 정문, 상직, 상물 등의 포상이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혜택'이었는지 분석된 것은 없다. 면천이나 물질적인 포상 외에도 '열녀'가 가지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 포상의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정원이 제한된 '서울대'를 생각해보라. 정원이 '제한'되어 있다고 해서 그 욕망이 줄어드는가? 오히려 그 제한이 욕망을 도발하기도 한다.) 거기에 순조대의 세도정치와 같은 정치, 사회적 배경까지 함께 분석한다면 나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외에 열녀를 보고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그가 지방관으로 파견된지 얼마나 되는 시점인가에 대한 분석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책의 열녀전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가부장제 담론에 철저히 의식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뒷부분에 저자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그래서 더 아쉽다), <동국>의 대사는 모두 남성들의 것이다. (세상에, 전란으로 정신이 없는데 여성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누가 '채증'한단 말인가? 그리고 일본인이랑 한국인이 그 급박한 상황에서 대화를 한다고?) 이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결론 부분의 분석에서는 이 모든 것을 여성의 것으로 간주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후기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여전히 극심한 성차별에 대한 저자의 '분노'(?)가 이러한 성급함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가부장적인 비인간적 기획이 실제로 성공하여 열녀라는 '비인간적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것) 그 의도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주가 수백개 달린 이런 책에서의 성급함은 그 '의도'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결코 아니다.
사실 이 두꺼운 책 중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문학텍스트'에 대한 분석이다. 확실히 이 부분에서는 그 성급함이 훨씬 덜하다. (아마도 저자의 전공이 이 부분이기 때문인걸까?)
규방가사는 여성이 작품의 창작자이자 수용자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여성의 세계관이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서 표현된다는 것은 전에 없던 현상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전형계녀가의 경우에서 보듯, 그것은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가졌을 뿐 남성적 세계관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이런 '차분함'을 거쳐 도출되는 결론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특히 기억에 의한, 때로는 재창작을 탄생시키는 텍스트의 필사는, 필사가 작품의 의도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또 깊이 의식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필사의 자발성은 바로 의식화의 깊이와 비례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이 인쇄술에 의지하지 않고, 다량의 이본을 갖는 것, 또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 남성들이 제공한 윤리에 깊이 침윤되었음을 의미했다.
이 현상은 여성이 가부장제에 완벽하게 포섭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성이 주체가 되어 가부장제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말한다. 규방가사에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의 대항 의식을 찾아내려는 의도는 여기서 좌절된다. 물론 이미 살핀 바와 같이 규방가사는 성 역할로 위장한 남녀 차별과 남성 중심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비판조차 가부장적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가부장제를 비판하지만, 그 비판 역시 가부장제 속에 머물러 있다는 역설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 부분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무리 지배체제의 논리에 완벽하게 포섭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미 기득권에 있는 자와 그것에 포섭되려 노력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저항 혹은 대항이 아니라 좀 더 '오버'하는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만들어 낸 가부장적 텍스트는 남성들의 그것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이 작성한 각종 열녀전이나 열행서에 나오는 '평소 열녀전을 탐독했다'는 것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두고 이 텍스트들이 실제로 전파되어 효과를 거두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당시 남성들이 여성을 찬양할 때 썼던 일종의 '클리셰'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열녀전이나 내훈과 같은 텍스트는 남성들(혹은 남성화된 여성)이 만들어낸 모범적 행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정수'였다. 그 '정수'를 읽는 여성이야말로 (남성들의) 모범적인 여성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죽었을 때 회자될 수 있는 '문화적 클리셰'가 바로 '그녀는 평소에도 열녀전을 읽었다'는 서술이었던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원인과 결과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가장 아쉬웠던 점, 아니 읽으면서 좀 답답했던 점은, 연구사 정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한 대학의 교수에게 일개 대학원생이 할 말이냐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연구사 정리의 유무 그 자체가 아니다. 연구사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문제제기 자체에 헛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을 보자.
임진왜란은 열녀의식을 시험하는 시금석이었다. 여성들은 전쟁이라는 위기를 정절의 위기, 곧 성적 위기로 판단하고 죽음으로써 정확하게 성적 종속성을 지켰다. 여성의 임진왜란 체험은 뒷날 열녀의식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임진왜란으로 발생한 열행은 곳곳에서 정문으로 빛났으며, 열녀에 대한 찬미 분위기는 여성 스스로 열녀 이데올로기에서 이탈할 수 없게 하였다. 따라서 임진왜란을 계기로 성리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고, 열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사태를 도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는 각주가 달려있지 않다. 대체, 누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열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는가? 물론 그런 관점을 가진 연구자도 있겠으나 내가 아는 현재의 '일반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정 연구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인정이 가능하겠으나, 각주도 달지 않고 이것을 마치 현 학계의 '일반론'인 것처럼 대하는 것은 문제다. 그 밖에도 주제에 너무 집중하느라 <삼강행실도>가 열녀만을 위한 텍스트처럼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주제를 10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한 권의 두꺼운 책으로 엮은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앞서 문제로 지적하기는 했지만, 책 속에서 저자 스스로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이 책에 쌍이 될 '선비의 탄생(가제)'도 계획 중이라는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책 재질이 너무 좋아서 책 가격이 비싼 편인데, 뭐 이거야 출판사의 시리즈 중 가장 학술적인 책이니 이해하고 넘어가련다. |
|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조선시대 열녀 담론에 대한 정밀한 연구 결과로 제출된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아니 그 이후에도 '열녀'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칭송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평가가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러한 호칭이 영예로울 수 있을까?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욕구를 억지로 참아야 하는 것이 반드시 권장되어야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잔혹한 역사'라는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열녀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실증적 자료를 통해서 탐구하고 있다.
이책의 목차를 보면서, 우선 방대한 자료의 탐색 결과에 대해서 새삼 저자의 학문적 자세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그동안 연구하면서 검토했던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문집 그리고 야담집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조선시대 여성들의 사회적 처지와 삶의을 다룬 내용들만을 뽑아 분류하고 분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금도 한문 자료를 가려 뽑아 그중 일부만을 번역하여 한권의 책으로 엮는 작업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결과물은 한문 자료에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강명관 선생은 한문 자료의 번역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대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연구하여 그 결과를 공유하고자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더 많은 고전 자료를 섭렵하고, 그것을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학자라고 생각한다.
실상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열녀'라는 존재의 상과는 너무도 다르다.
권력에 의해서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죽음에 내몰리고, 그로 인해 가문을 위한 존재로 칭송받는 여성들의 잔혹한 역사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홍살문과 비석에 가려진, 자신들의 삶을 포기해야만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도 '열녀'라는 호칭을 칭송하고 기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은 유교적 가부장제의 성립과정을 상세한 문헌텍스트를 통해서 고증하고 있다. 특히 17세기 전후를 일종의 분기점으로 삼아 고려와 조선 전기의 여성의 주체적 지위와 17세기 후반 이후 단계적 부계친족제도의 공고화 과정을 통해 열녀 이데올로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이념적 세뇌인 내면화 과정을 거쳐 법제화, 강제화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열녀이데올로기를 확산보급시킨 국가이데올로기 기구의 핵심 텍스트로 [소학],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 성종 때의 [내훈] 과 [규범]등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17세기 이후 열녀 이데올로기의 폭발은 세종 14년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의 열녀편에 기인한다. 이런 주요문헌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열녀 관련 하부 텍스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장점으로 기존 이론의 심화보다는 정설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과 반증을 꼽을 수 있다.
17세기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전환기였다. 친족제도가 비가부장제적인 양측계에서 가부장제적인 부계로 바뀌었다.혼인시스템이 남귀여가에서 친영제로 바뀌었다.다시 말해서, 남편이 아내의 집에서 거주하는 부처제婦處制에서 아내가 남편의 집에서 거주하는 부처제夫處制로 바뀌었다. 재산상속권이 남녀평등의 균분상속에서 남녀차별의 불균등상속으로 바뀌었고, 동시에 제사도 윤회나 분할봉사에서 장자의 단일봉사로 바뀌었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우월했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17세기라는 점이지대를 거치면서 재산상속 제도가 남녀 균분상속에서 장자 우대 불균등상속으로 바뀌고, 결혼 후 거주 형태가 부처제로 바뀌면서 확연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여성은 상속제도의 변화로 말미암아 경제권을 상실했고, 거주 형태의 변화로 말미암아 낯설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아울러 여성은, 총부로서의 권리와 봉사권을 잃었고, 족보에서도 이름이 사라졌다. 상례를 비롯한 의례에서도 모변에 대한 대우는 확실히 낮아졌다."(15쪽)
|
|
리뷰 평점이 좋아서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손에 잡았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