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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비틀즈팬이 그렇게 많은데도 비틀즈의 이 데뷔앨범에는 리뷰가 하나도 안 달린 것이 뜻밖이다. CD, LP, 재발매, 리마스터링, 절판...등등 모두에도 리뷰가 없다. 아마 우리나라에선 비틀즈 중기 이후의 팝음악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런것 같다. 전설이라고도 불리는 비틀즈도 초기에는 단순한 구성의 록큰롤과 리듬앤블루스를 연주하는 밴드였다. 비틀즈는 초기의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서 존과 폴의 작곡 실력이 성장하고 프로그래시브한 연주와 다채로운 멜로디를 섞은 팝명곡들을 쏟아내면서 전설로 발돋움 했다. 아마 같은 비틀즈 팬들이라도 초기의 록큰롤 비틀즈 팬들과 중기 이후의 팬들로 층이 갈릴 것이다. 나는 비틀즈 팬은 아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데도 비틀즈의 초기 록큰롤 음악은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때가 더 비틀즈다운 모습이고 음악이 신나면서 기름기가 없는, 순수한 록큰롤을 연주하던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기 이후의 곡들은 물론 훌륭한 곡들이지만 어떤 기준에서는 밴드가 상업화되고 팝의 달콤함에 빠져서 밴드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내 기준이고, 또한 몇몇 삐딱한 음악평론가들의 기준이기도 하다. 이런 얘기로 비틀즈팬들에게 대들다가 싸다구 맞기 직전까지 간 경우 많았다만... 위대한 전설, 대중음악 최고의 작곡가 콤비를 가지고 있는 밴드도 데뷔 앨범의 반이 자작곡이고 반이 카피곡이다. 비틀즈는 스쿨밴드부터 시작해서 리버풀의 케번클럽과 하노버의 술집들을 오가면서 거의 10,000시간을 연습하고 공연했다. 그 지독한 시간이 지나자 풋풋한 아마추어들은 마침내 프로연주자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비틀즈의 성장에는 리버풀도 한 몫을 했다. 항구도시 리버풀은 미국에서 들어오는 음반들을 빠르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윌리딕슨의 블루스와 척베리의 최신 리듬앤블루스, 엘비스의 록큰롤 앨범들이 어린 비틀즈 멤버들의 음악적 자양분이 되었다. 다음 2집은 영국의 미국침공 제 1호 앨범이 되었다. 비틀즈의 성공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불린다.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몇 달 동안 미국 전역이 우울증에 빠져 있을때 영국 젊은이들의 풋풋한 록큰롤 음악은 미국인들의 우울증 치료제 역할을 했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뭔가에 홀린듯이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면서 갑자기 행복해졌다. 비틀즈는 10여년 전에 미국땅에서 유행했던 저질 록큰롤하고 달리, 예쁘고 귀여운 록큰롤이라는 포장을 입혀놔서 그런지 부모세대와 보수층도 비틀즈의 음악에는 관대했다. 비틀즈의 2집 역시 반은 자작곡이고 반은 카피곡이다. 뜻하지 않은 대성공에 고무된 비틀즈의 소속사는 대중적인 팝음악으로, 비틀즈의 멤버들은 실험적인 음악으로, 그렇게 록큰롤 밴드 비틀즈를 빠르게 지워나갔다. 이후 존 레논은 대스타 비틀즈를 싫어했고 초기의 비틀즈를 그리워했다. 초기의 비틀즈는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일 없이 모이면 행복하게 록큰롤을 연주했다. 그렇게 보면 음악가의 전성기라는건 외부에서 부여하는 것이지 멤버들의 기준하고 꼭 맞지는 않는가 보다. 데뷔앨범은 비틀즈 멤버들이 행복하게 음악을 하던 멤버들에게는 진정한 전성기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