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오늘 낯선 동네에서 아빠의 뒷모습을 꼭 닮은 사람을 봤어요. 그래서 미친 듯이 달려가 그 사람 얼굴을 확힌했죠 하지만 그 사람은 아빠가 아니었어요. 어깰ㄹ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이고 걷던 슬픈 표정의 아저씨였어요. 아저씨가 아빠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난 끝까지 뒤따라갔어요. 아저씨가 혹시라도 아빠처럼 길을 잃고 헤맬까 봐 걱정이 됐거든요. 아저씨가 지붕 낮은 집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전 꾸불 꾸불한 좁은 골목길을 되돌아 터덜터덜 걸어 나왔죠. 아빠……보고 싶어요. 아빤 지금 대체 어느 길을 걷고 계신가요?
1997. 7 16 민서의 일기 중에서
열여섯의 나이 그것도 여자아이가 부모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다. 이렇게 탁한 오물과 같은 세상에 던져진 민서는 어쩌다 편의점 사장 계정희의 도움으로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도움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의 매점일과 계정의 집안일 모두 민서의 몫이었고 마음에 안 들면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민서는 사장을 끝까지 믿고 성실히 생활하던 중 계정희와 손님간의 사소한 분란에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더 이상 그곳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 중략 … 지금껏 네가…… 나름 조심하고 또 조심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게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걸랑……. 난 지금껏 믿지 않았었는데……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아마도…… 너한테는…… 널 지켜주는…… 수호천사란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민서는 추운겨울날 골목에서 덜덜 떨고 있는 할머니를 구하게 되고 할머니의 손자이자 연극 연출자인 석우를 만나 자연스레 연기자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민서의 각오를 알게 된 석우의 도움으로 민서는 연극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박명자 선생님 밑에서 연기를 배울 기회가 오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배워 연기자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또 석우가 민서의 기구한 이야기를 희곡으로 써서 민서 본인이 연기하는 무대를 올리고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다.
김하인 작가님의『안녕,아빠』는 참 진부한 내용이라면 진부한 내용이지만 누군가 앞에서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털어 놓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아빠, ……아빠가 내 곁에 계시던 세상과 내 곁에 없는 세상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아빠 옆에선 부드럽고, 깨끗하고, 달콤하고, 따스한 것 천지였는데 아빠가 내 옆에 없으니 아프고, 서럽고, 더럽고, 배고프고, 무서운 것 투성이에요. 아빤 분명 천사였나봐요. 그런데 왜 난 그 중요한 걸 몰랐을까요? 난 참 바보여서 지금 벌을 받나 봐요.
1997. 7. 27 민서의 일기 중에서 - 26쪽 -
아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요. 수로도 감당이 안 돼 도로에까지 물이 찰 만큼 큰 비가 내렸어요. 내일도 모래도 온다니까 장마인가 봐요. 내리는 비를 오래도록 바라보니까 내 마음이 종이배처럼 접혀지는 게 느껴져요. 저 많은 빗방울이 모여 흐르는 물길을 따라 떠가다 보면 아빠가 있는 곳까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 어떻게 하죠? 아빠만 떠올리면 저 큰 비가 내 안에도 퍼붓는 것처럼 금방 목이 잠기고 눈까지 물기가 차올라요. 그리서…… 저한테는 비가 해로워요. 제 마음은 헤엄을 잘 못 치거든요.
1999. 9. 11 민서의 일기 중에서 - 119쪽 - |
|
3.0 |
|
안녕, 아빠 / 김하인 / 자음과 모음 신간코너에 있던 안녕, 아빠. 저자가 김하인이라서. 국화꽃 향기의 김하인. 사랑에 미치다, 눈꽃편지, 유리눈물, 아침인사, 일곱송이 수선화. 김하인의 소설은 거의 두권짜리군. 김하인, 김하인 하면서 고등학교때는 꽤나 김하인의 구구절절하고 슬픈 소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느 작가를 좋아해서 그 작가의 작품만 보다보면, 참 똑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분명 주제며 나오는 인물들도 다 다른데 내용은 그저 슬프거나, 뿐이다. 김하인도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안녕, 아빠는 주인공의 사정은 슬프지만 내용 자체의 글들이 독자에게 주는 감동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윤민서는 16살 때 IMF. 아빠 윤승철이 어느 날 엄마와 사라진다. 집은 사채업자들로 엉망이 되고 혈흔까지 있다. 아빠는 무사할까? 엄마는 몸도 불편하신데 무사하실까? 온갖 걱정이 앞서는 가운데, 16살 소녀 윤민서는 홀로 남겨진다. 아빠가 남겨놓고 간 편지 한장과 몇만원. 집에 있으면 사채업자한테 쫓길 게 분명하고 집을 나오지만 갈 때가 없다. 거의 일주일동안 공중전화박스, 지하철 화장실 등등 남자아이도 아니고 16살 여중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혼자라는 게 두렵고 힘들다. 그러다가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미성년자라서 불법이지만 주인아줌마의 배려다. 그치만 주인아줌마도 꽤나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민서에게 모든 걸 맡겨버리고 노름판에 빠진 아줌마. 민서는 편의점일 외에도 주인아줌마의 집안 살림도 맡아서 한다. 그러다가 손님과의 마찰로 인해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인 아줌마는 민서를 자기의 큰언니가 하는 설렁탕집으로 보낸다. 여고생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된 일들.
설렁탕집에서 약 2년을 넘게 일하고 독립을 한다. 작고 허름하지만 자신만의 방을 갖는다. 커피숍 알바도 구하고 더 공부를 열심히한다.민서는 부지런히 검정고시 학원을 다녀서 대입자격을 따낸다. 그러다가 어느 추운 겨울날 집 아래에서 혼자 있는 할머니를 보살펴드리게 되고, 그 할머니의 가족인 손자가 사례를 하러 민서가 일하는 커피숍으로 오게 된다. 그 사람은 연극연출자인 김석우. 사례금을 지불하려다가 거절하는 민서에게 건낸 연극표. 그게 민서의 인생일 바꿔놓을 줄이야.
김석우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연극을 하게되는 민서. 연극계의 대모라고 불리는 박명자에게 배우 지도를 받게 된다. 2년이 넘는 시간. 스무살이 넘어 성인이 된 민서가 2년이 지나고 동승로로 돌아왔을 때는 어른이 되가고 있었다.
대모 박명자에게 지도 받은만큼 민서는 연기를 잘해냈고, 연극계에서 신인상도 받고 그러다가 박명자가 죽게 된다. 장례식에 참석한 김석우와 민서는 연인이 되어있었다. 민석우는 공부를 하러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민서에게 선물 하나를 주고 가는데 민서의 일생을 담은 극 한편. 민서는 자신의 이야기로 무대에 오르게 되고, 에필로그에서 아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채업자들 때문에 부산으로 쫓기듯 갔고, 엄마는 부산으로 간지 3년만에 민서를 부르다가 죽었다. 아빠는 아르바이트 6개를 하며 매달 250, 300만원씩 벌어서 천만원이 모였을 때 사채업자들이 아빠를 찾아냈고 민서의 근황을 전해주면서 버는 돈을 꼬박 갚지 않으면 민서가 위험할 거라고 전했다. 민서의 걱정에 아빠는 돈만 열심히 벌었다. 빚마저 안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아빠. 민서가 무대에서 연기하던 날 아빠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민서의 공연을 보면서 입을 막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3년만 더 지나고 빚을 다 갚으면 보자고.
고등학교 때 읽던 김하인의 소설과 10년쯤 지나 읽는 김하인의 소설은 왠지 낯설었다. 감성적이고 슬프고 감동을 전해주는 작가였는데, 였을까. 아니면 읽기 쉽고 이해하기 빠른 내용이 그 땐 좋았던 걸까. IMF의 경제 위기가 각 가정의 부채가 되고 불안정하던 1997년도. 나도 그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제 2의 IMF라고 불리는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매번 어떻게 써야 더 슬플까,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 김하인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요소를 더 첨가했지만 결과는 조금 실망스러운 것 같다. 작가는 항상 새로운 글을 쓰려고 노력하겠지만, 전의 작품과 분명 비교되기 마련인 것 같다. 국화꽃 향기 이후에 뭔가 더 이슈가 될만한 작품이 없어서 조금 아쉬운 작가.
그래도 간만에 김하인,이란 작가의 책을 만나서 내 유년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