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선옥 작가의 산문집『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은 지 12년 만에 이 소설을 읽었다. 내가 힘든 시절에 읽었던 책이고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가족사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라 뭉클하고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에 메모한 노트를 들춰 보았다. 작가의 글에서는 ‘어둡고, 쓸쓸하고, 배고프고, 그립고, 외롭고, 억울하고…’ 등등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또 농촌에 살면서 느끼는 소박함이나 자연 속에서 얻는 충만한 행복감도 들어있다는 나름의 감상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나를 감동케 했던 말은 ‘작가는 깨끗하고 환한 방에서는 탄생하지 않는다, 습하고 어둡고 쓸쓸한 그런 방이 작가의 영혼으로 태어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고... 작가가 되었다. 정말 신기하다. 사설이 길었다. 공선옥 작가의 소설을 이제야 접한 것을 반성한다.
이 작품은 80년 광주, 청춘들의 아픈 이야기이며 우리 시대의 슬픈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수선화 멤버 진만이, 승규, 만영이, 태용이, 승희, 정신이, 화자 해금이, 경애, 수경이, 이렇게 아홉 명이 펼치는 아픈 스무 살 시절 이야기다. 한창 젊음을 발산하고 꿈과 열정으로 모든 걸 태워버릴 수 있는 나이에 그들 앞에 닥친 상황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곧 두려움으로 바뀐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 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우리 식군 내가 이상하다지만 말야.”(P76)
수경이가 하는 말이다. 이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해금이는 매사에 좀 무디고 집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했다. 경애를 따라 성당에 갔다가 의도하지 않게 수선화 멤버가 되고, 지금이 계엄령 상황에 있다는 것도 늦게야 알아차린다. 유일한 친구 경애를 잃은 뒤 수경이는 크게 상심하고 몸져누웠다.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너만 난리냐고. 아픈 수경이 문병을 온 친구들에게 수경이 엄마는 냉대하고 쫓아내다시피 한다. 결국, 경애의 뒤를 이어 수경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승희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 아빠 없는 아이를 낳고,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등 여러 사건이 그들을 에워싼다. 해금이와 친구들은 절망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우정을 나누고 민중을 압박하는 시국에 대항한다. 해금이도 이 분위기에 동요되고 자각하고 행동을 취한다.
“빛은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거,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거, 모든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거. 진짜 빛이 있고 진짜 아름다움이 있고 진짜 행복이 있다면 말야.”(p199)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의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라고,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의 과정이야말로 진보의 역사라고, (중략)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 한다.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딜 것.(P241)
‘그러나, 모든 좋은 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행복이, 우리의 청춘이, 우리의 인생이, 우리 인생의 모든 환한 것들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이 세상에 슬픔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으므로, 슬픔은 생겨나는 것이다. (p248~249)
중학생 시절 어느 날, 둥근 철모를 쓴 군인들 무리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간 적 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직장인이 되고 나서 그 현장에서 명령을 수행한 적 있다는 남자 직원의 말을 듣고 섬뜩한 적 있다. 그 날 군인들은... 그래서 그랬구나. 권력을 앞세워 방송과 언론을 차단하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권력 앞에서는 희생이 따라야만 하는 걸까. 무거운 마음 지울 길 없었다. 작가는 진솔한 체험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현하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이 책의 제목은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제목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그 시의 일부다. 이 책 주인공들이 살아내야 했던 ‘가장 예뻤을 때’ 잔혹했던 스무 살의 삶과 절묘하게 닮았다. 이 아픈 역사를 젊은 시절에는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30년 만에 썼다고 한다.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이고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빌어다 쓴 것인데 이 역사를 모르는 어린 작가는 “작가님 상상력이 대단하시네요.” 라고 해서 놀랐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공선옥 작가는 2000년대 용산이 80년 광주라고 했단다. 시대는 흘렀고 세상은 좋아졌지만, 아직도 어딘가에 폭력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또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이고 싶다’라고. 불편한 책을 멀리하려는 독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 같아 뜨끔했다. 다양한 층의 독자가 읽고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행복한 작가와 행복한 독자만 있는 세상은 오히려 비극에 가깝다. 독자를 행복하게만 만드는 글은 설탕처럼 해롭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불화가 있어야 한다. 내 글을 읽고 불편한 사람이 있는 편이 작가로서 행복하다.” (출처: 채널예스-80년 광주,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반세기 만에 그리다 - 소설가 공선옥 반세기를 가슴에만 품어둔 이야기가 소설이 되다.) #내가가장예뻤을때 #공선옥 #문학동네 #80년광주이야기 #수선화 #민들레의방 #스무살청춘
|
|
광장엔 옛날 사진들이, 피 묻은 신문들이 붙어 있고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도 어쩜! 이십 년 전과 똑같지만, 큰길에서 느긋하게 나눠주는 선언문은 그때보다 두껍고 인쇄 상태도 좋다. (…)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 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 친구들과 수다를 즐기며 이탈리아 식당에서 칼을 들고 연어의 생살을 갈랐다. 입 안에 죄의식의 거품을 품지 않고
- 최영미, <2008년 6월, 서울> 중에서 당연하게도. 양식당에서 연어의 생살을 가른다고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연어의 생살은 커녕,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의식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이따금씩 즐거운 일도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그 순간 조차도 마음껏 미소 지을 수 없었다는 시절. 때문에 시인은 애써 마지막 한 행을 할애하여 굳이 꾹꾹 적어 넣은 것이다.
“죄의식의 거품을 품지 않고”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 진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보했다는 증표이다. 하지만 나는 왜 내가 살아온 청춘보다는, 마음 놓고 즐거울 수도 없었다는 그(녀)들의 청춘이 부러운 것일까.
아니. 정정한다. 부럽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하게 예의에 어긋난다.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그 날을, 그 시절을 겪어 낸 이들 앞에서 부럽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그 시절의 어둠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읽고 난 내 마음은 여전히 달떠있다. 무례하지 않으면서, 나의 이 마음을 전달할 적확한 어휘는 무엇일까. 내가 겪은 시절이 아니기에 ‘향수’라고 할 수도 없고, 그 무게를 짊어져 보지 않았기에 쉽게 ‘동경’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 마음.
공선옥의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 시절, 80년대에 대한 나의 애매모호한 마음을 더욱 키워버린 작품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스무 살을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바칠 수 없었던 청춘들의 이야기는 누구의 삶보다도 슬프지만, 적어도 우리의 삶보다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니 존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소설 자체가 영웅적인 투쟁이나, 애절한 드라마를 담고 있으리라는 예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작가는 청춘들의 발랄함, 마가린에 밥을 비벼먹곤 하던 당시의 일상, 가슴 먹먹하게 하던 시대, 시를 읊으며 나누었던 사랑 등 당시의 공기를 차분하게 그려놓고 있다. 하지만, 물론. 여러 종류의 공기가 순환하는 와중에서 한층 더 위로 솟아올라 나의 마음에 닿은 무엇이 있다.
때가 때인지라 고등학생들이 참가한 시국집회가 끝나고 모이게 된 아홉 남녀. 하지만 아무리 엄혹한 시기라도 갓 스물을 맞게 될 청춘들의 관심은 ‘세계의 극복’보다는 ‘세계의 탐구’에 있기 쉬운 법이다. 아직 채 겪지 못한 세계를 넘어서기 보다는, 호기심을 가득안고 이제 펼쳐질 세계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법. 이들 역시 덴뿌라 한 접시와 진빵을 시켜놓고 통성명을 하고, 이른바 2차는 음악다방에서 (우유가 아닌)‘밀크’를 시키고 마주 앉은 시간이 행복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한 순간 달라진다.
우리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오고야 마는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경애. 그 날 경애와 함께 있었던 수경이도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친구들을 떠나보낸 그 날은 지나온 모든 날과 남아있는 모든 날들 사이에 견고하게 자리잡았다.
수경이는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전과 이후가 이렇게나 다른데, 세상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너무 이상했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게 이상하다고. 그렇게 수경이는 세상에 스며들지 못했다.
그런 수경이를 만나고 온 해금이는 배가 고팠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어김없이 배는 고파왔고, 해금이는 배가 고픈것이 불만이었다. 수경이는 그렇게 아픈데 나는 왜 배가 고픈지. 그 날 이후엔 아프지 않은 사람조차도 미안했고, 그래서 결국 아팠다.
멀쩡히 대학을 다니던 영금이는 혁명을 하겠다며 공장으로 들어갔고, 서울대를 목표로 하던 정신이는 노동자를 이해하기 위해 상경을 해 식당에 취업하였다. 해금이도 봉제공장에 들어갔고, 승규도 일류대를 가 놓고 학생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하고 군대에 보내져 주검으로 돌아왔다. 세상에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한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예견되었던 삶의 경로에서 이탈하였다.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만 누리는 행복을 견뎌낼 수 없었다.
누가 웃지 말라고 해서 웃지 않는 것은 아닐진대, 꼭 누군가 웃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어쩌다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치 행복한 순간에도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혹시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내 집 창 밖에 지금 누군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노심초사해야만 겨우 안심이 되는 이 못 말릴 습성이, 노인네들처럼 온갖 세상 근심걱정 다 떠안아야만 겨우 내가 사람 노릇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딱한 습벽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물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홀로 낳은 아기를 키워야 하는 승희나, 어려서부터 가장 노릇을 해왔던 만영이는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다. 이들은 친구들이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에서 삶이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차라리 '미스김'이라 부르는게 낫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근로자'나 '미스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보다는 자신들의 행복을 더 고민해주는 친구를 곁에 두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 비해 이들 세대가 한결 더 공고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행복과 어려움이 단지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이 있었으므로.
그 시절로 회귀하여 모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단지 자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삶의 과제로 여길 수 있는 진지함만은 만나보고 싶다. 80년대의 청춘들이 주어진 경로를 이탈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주어진 경로를 이탈하고 스스로 경로를 설정하는 청춘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에, 타인의 삶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청춘은 현실을 앞세우기 보다는 가치를 세우고, 삶의 방향을 세우는 시기이기에 푸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품어본 가장 기념비적인 청춘은 바로 이 시절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할 지 가장 진지하게 숙고했던 시간. 나는 이 청춘에 대해 무례하지 않게 동경을 표하고 싶다. |
|
1980년, 해금이 등‘아홉 송이 수선화’가 밟았던 인생길은 그 가장 예뻤을 시절을 앗아가 버린 우울하고 고통스런 시간으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메케한 냄새와 희뿌옇게 도시를 점령한 최루가스와 차 밑창을 하늘로 한 채 뒤집혀 불타고 있는 경찰차량, 연일 새까맣게 몰려드는 시위학생과 군중, 그리고 착검한 소총을 둘러멘 공수부대 계엄군, 짭새한테 용돈 받고 동료를 밀고하는 파렴치한 녀석들, 계엄군 검열에 삭제되어 시커멓게 이 빠진 신문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소설처럼 우리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밤하늘 아래 원을 두르고 어깨동무하여 민주를 외쳐댔었다. 당시 대학신문사에 있었던 나로서는 거의 시위현장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밤이면 낯 시간의 시위를 마치고 인근의 대학으로 몰려드는 지방대 학생들까지 합세한 한 밤의 열기를 취재하느라 날 새기를 밥 먹듯 하기도 했다. 경애, 수경, 승규, 이들의 터무니없는 주검이 일상처럼 우리들의 환경이 되어버린 그런 야만의 시대였으니, 그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은 온통 상실에 휩싸여 있었을 뿐이었다. 작가는 그러나 온 몸으로 살아내었던 스무 살의 해금이와 정신, 승희, 만영이...가 가장 예뻤다고 기억한다. “다른 사람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질 거야”하는‘시인(김진혁)’의 위로처럼 그네들의 울음이 “야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만들어냈으니 그보다 예쁜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30년 전 그때 민중들의 삶은 정말 고단했다. 늦은 저녁 동네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길가에 연탄불을 내놓고 국수 삶을 물을 끓이는 이웃들이 허다했다. 오랜 군부독재의 그늘아래 신음하던 서민들의 삶은 뒤틀릴 데로 틀려있어 노란 불빛이 비추는 단란한 가족, 그것이 희망이던 음울한 시절이었다. 스무 살 해금이들은 그래서 공장으로 막노동으로, 이념의 장으로 변질된 대학에서 ‘뚜뚜전’의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고, ‘혁명적 노동의 길’이라는 낯선 길로 내몰렸었다. 지금은 디지털단지라고 멀쩡하게 이름까지 바뀐 당시의 구로공단은 작품에서처럼 소외된 공장노동자들의 벌집이 다닥다닥 붙어 그야말로 “본능만이 살아서 꿈틀대는 동네”, “야만의 시간이 지배하는 동네”였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기막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정부발표는 비밀주의와 폭력성, 국민 기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독재정권의 파렴치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악아, 우지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하고 해금이를 토닥여주는 승희 엄마의 품속, 아주 오래 묵은 엄마의 냄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잊어버렸던 그 처절했던 기억들을 풀어낸다. 이 작품은 이렇듯 오늘의 우리들이 이루어낸 소중한 가치들을 당시대를 절절히 앓아왔던 해금이 들의 모습을 통해 잔잔하지만 격렬하게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작품 어디에도 극한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은 없다. 냉혹하고 야멸치게 쏴 부쳐야 할 때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문장이 더욱 속 깊은 의미로 다가서게 한다. 상경한 아이들을 데려다 매매하는 인간쓰레기의 “자아 여러분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제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기도는 굳게 다물어졌던 입을 파~아~하고 터지게 한다. 또한, 노동자와 운동하는 이들과의 괴리, 즉, 당시 노동운동의 모습을‘일터’와 ‘현장’, ‘일꾼’과 ‘존재이전’이란 허풍스런 비난에 슬쩍 담아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품은 그냥 노동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1980년 해금이 들의 그 서럽기 그지없는 눈물들을 아른거리게 하고, 건강함과 정당함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그네들의 얼굴, “짜디짠 소금물이 어쩔 땐 영혼 속까지 배어들어오는 느낌”으로 시대를 살아온 그네들을 잊을 수 없게 한다. 진정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의 그 터무니없던 시절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러나 통렬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
|
이렇게 눈물겹도록 서럽고 가슴 벅차도록 감동적인 소설이 얼마 만인지… 나는 첫 장부터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 세계, 그러니까 공선옥이 그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에서 비롯되는 스무 살 청춘들의 삶은 처음부터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
|
그냥 제목이 좋았다. 스무살 시절 화장을 안해도 빛이 나는 그 예쁜 시절에 일어나는 일일거라고 생각하고 내 스무살 시절을 다시한번 뒤돌아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었나 보다. 아직 좀더 흔들려도 좋을 때인 스무살 시절. 그 시절에 겪은 아픔들을 적어나간 글이었다. 내게 익숙한 광주라는 도시. 결혼하고 발령때문에 광주로 오게되었지만 직장과 집 부근만 겨우 아는 내게 책에서 보는 해금의 집인 쌍촌동이라든가 충장로 거리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거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 늘 쓰고 있으면서도 글에서 보는 전라도 사투리는 나도 생소해서 무심코 따라 읽어보곤 했다. 그러면서 웃음이 나왔던 정겨운 사투리였다. 5.18이 있었던 때 나는 초등학교 5,6학년 때가 아니었을까. 섬마을에서 있어서 뭐 어쨌다더라 이런 말만 들었지 자세한건 몰랐었다. 예전에 봤던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며 자세한 걸 알게되고 울분을 터트렸었다. 아홉 송이 수선화 멤버인 진만이, 승규, 만영이, 태용이, 승희, 정신이, 해금이, 경애와 수경이. 그 예뻤을 시절에 죽음을 보았고 친구를 잃었고 힘든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들은 그때의 시절엔 그럴수 밖에 없었구나. 누구나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시기였고 아픔을 같이 했던 친구들. 가장 아름다울 그 시절을 우리는 지나고나서야 알게 된다. 그때가 가장 예뻤을 때 라는걸 우리는 그때는 느끼질 못했다. 그냥 온갖 고민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삶에 대해 방황했던 시기였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하고 생각해보지만 역시 같은 삶을 살았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보다 더 십년쯤이 지났을때 십년전에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고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해야겠다.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 |
|
청춘, 그 기억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청춘, 그 때 가슴시리고 아프고 슬픈 일들도 많이 있었죠? 시대적인 상황도 그렇고, 해금이, 해금이 친구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 예쁜 수선화가 지기도, 다시 태어나는 주옥같은 이야기들, 기억들, 추억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p76)
승규도, 정신도,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직은 짐작도 못한 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가장 예뻤던 때,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p280)
진지하게 항의를 하는 통에 웃고 싶지는 않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싱거운 웃음이기는 하지만, 웃고나서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 오래, 웃지 못했다는 것을. 그야말로, 에누리 없이, 근심걱정 하나 없이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가. (p283)
이제 막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걸었다. 어둠이 내리는 거리에 오늘도 어제처럼 뺨에 홍조를 띤 청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p301)
그 때 그랬지, 그 시절 그 노래
아~ 이 부분이 정말 아쉬운 대목인데,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는 그 시절을 생각케 하는 그 노래들이 많다. 더러는 멜로디가 생각나지만 더러는 갸우뚱...^^ 해금이과 그의 친구들이 그랬듯 그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고 싶어서 포털 검색을 종종 이용하곤 했다^^ 노래하면 빠질 수 없는 카수 마영미양, "눈이 내리면 외로운 이 밤에 눈물로 지새는 나는 외로운 소녀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부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 (p52 지금쯤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 함께 흥얼거리고 계신거죠?^^ 이색적으로 프랑스 리메이크 들어볼까?^^ ) 다방에서 태용이가 메모지에 끄적인 노래가사는요^^ 눈부신 아침 햇살에 산과 들 눈뜰 때 그 맑은 시냇물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p36 양희은 님 목소리로 들어볼까요?^^ 듣기) |
|
1월 12일이었을 겁니다.
차마 평점을 매길 수 없는 추억에, 줄 수 있는 별을 모두 주어 세상으로 보냅니다. 아직 해금이를 만나지 못한 다른 사람들 역시 나처럼 가슴 먹먹한 그때를 기억할 거란 확신과 함께 말입니다. |
|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슬픔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잇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 책에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잔뜩 등장해서 눈이 아프다. 소설은 1980년대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전후를 배경으로 권력의 잔재 앞에서 그 아픔을 오롯이 버텨냇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은 세대가 아니더라도 소설 속 이야기는 충분한 흡입력을 갖는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며 여기저기서 시국선언을 하는 요즈음 이 책은 우리 시대의모습은 어떠한지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공선옥 작가 특유의 멋부리지 않으면서도 담담한 문체가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p.76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p.199 빛은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거,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거, 모든 행복은 고통뒤에 온다는 거. 진짜 빛이 있고 진짜 아름다움이 있고 진짜 행복이 있다면 말야. p.207 우리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오고야 마는 것이다.
|
|
스무살 대학 새내기이름을 달고 처음 참석했던 MT에서 처음 만난 그 선배는 유행가를 부르고 술을 마시는 우리에게 참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얘길 했었다. 민족해방이니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느니 현재의 자본주의 모순 등에 대해 목소리 높여 연설을 하더니 몇명의 선배들과 함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끄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하는 노래를 불렀었다. 그 뒤에도 그 선배의 모습은 운동장에 광주5.18민주화의 진실 규명의 구호를 외치고, 성조기를 태우고 할때 늘 맨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선배가 떠올랐다. 그때 그 선배는 지금도 그 구호를 아직 외치고 있을까 그때보다 지금은 무엇이 많이 나아졌을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1980년대의 광주를 이야기 하고 있다. 광주공원에서 고교생들의 집회가 있다고 해서 구경나온 해금이,승희,정신,수경,경애는 남학생들이 '시국에 관심있냐'는 물음에 시詩극으로 알아듣고 관심있다고 말한다. 그때 처음으로 계엄령 상황이라는걸 알게 된 여자아이들은 그곳에서 만난 남학생들 진만,승규,태용,만용을 만나 '아홉송이 수선화'를 만들게 된다. 이들이 가장 예쁜 시기에 참 많은 아픔을 겪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동안에도 그들의 쓸쓸함과 아픔이 전해져 참 안타까웠다. 그때의 그들은 맘놓고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옆집,뒷집의 누군가가, 내옆의 친구가 죽고 다치고 그 시절 그곳 사람들은 마음에 큰 상처하나씩 안고 살아가느라 맘놓고 에누리없이 근심걱정없이 웃지 못했다. 꼭 누군가 웃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자신의 행복이 누군가에는 슬픔이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그들이었다. 정말 텅빈것 같은 스무살이었다.
수업시간에 대통령 흉을 봤다가 끌려가서 보름만에 나온 해금의 아버지는 더이상 드런놈의 분필가루는 그만 마시겠다고 말한다. 대학생인 영금언니는 혁명적 노동운동의 길을 가다가 감옥에 가고 친구 승희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 아버지가 싫어 가출을 했다가 임신을 한 상태로 돌아오고, 태용을 좋아하던 경애는 도청앞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에 맞아 죽음을 당한다. 광주학살 책임자 처단 유인물을 뿌리던 승규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군대에 보내지지만 그곳에서 의문스럽게도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죽게 된다. 이런 상황들을 눈앞에서 겪은 수경은 숨이 크게 쉬어지지 않고 가슴 한가운데가 터질것 같아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한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P76
하지만 책이 어둡고 무겁기만 한것은 아니다. 꽃이 나오고 봄꽃향기가 나고, 오래된 가요와 팝을 들으러 음악다방에서 만나고 소월시도 나오는데 이들의 예쁜 시절과 잘도 많이 닮아있다. 해금이는 수경과 싸우고 심야 라디오방송에 '우리 지난 여름일은 잊어버리고 금용일 저녁 제과점에서 만나자꾸나.'라고 쓴 엽서를 보내고 <키스 앤 세이 굿바이>맨하탄스를 신청하기도 한다. 해금도 스무살에 사랑의 아픔을 겪는다. 늘 노동과 아비규환같은 가족들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환과 첫키스를 하고 돈이 없어 골목과 언덕을 걸어 다니고 토마토를 따먹고 환이 읽어주는 시를 듣고 그의 아픔에 손을 잡아주지만 도청에서 투항파였던 큰형과 항전파였던 작은형의 싸움과 늘 아픈 막내 여동생등 가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환은 손목을 긋는다. 이때 승희엄마의 마지막 말이 생각이 났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P65
만영은 염전에서 짜디짠 소금물이 영혼까지 배어들어오는 느낌이 들때까지 일을 하고 있고 승희는 소설을 쓰고 진만은 번듯한 은행원이 되고 해금도 정신도 태용도...그들은 이제 스무살이다. 끝까지 살아서 경애.수경이.승규몫까지 더 아름다워지고 힘차게 달리고 봄을 맞이 하길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