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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충이란 사람의 영혼에 들어와 여기저기 구멍을 숭숭내는 벌레로 마음이 악의로 가득 찼을 때, 온 몸에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든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영혼 안에 수은충이 들어와 버린 때란 걸, 직감해야 한다. 결국 수은충이란 사람의 악의를 숙주로 삼는 것일까. 그 악의 속에서 자라나 결국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어 그 구멍을 숭숭내는 황폐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수은충이 하는 일이란 걸까.
펑범한 회사원인 한 남자, 쉬는 날도 아닌데 오늘은 회사도 안가고 밖을 어슬렁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에게 다가온 거리의 여자, 그에게 "왜 죽였어요?"라고 말한다. 그 여인이 어떻게 알았을까..... 야마나카는 모든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일에 열정적인 나머지 가정을 소홀히 했다. 그렇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일이 우선이었던 세월이었다. 그러다 그는 아내에게 폭탄 선언을 듣게되고 만 것이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과 그러하기에 이혼을 하자는 생각지도 못한 폭탄 선언을 말이다.....
다카시의 누나는 자살을 했다.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가족들은 전혀 몰랐었다는 사실에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누나의 자살, 누나의 친구가 찾아왔다. 사나코에게 역시 친구의 자살은 충격일 수 밖에 없고, 그 힘든 시간의 고통을 딸처럼 보호하며 함께 있고싶은 엄마의 모습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다카시는 사나코가 미웠다. 죽이고 싶을정도로....
일곱 살의 손자를 잃는 할머니의 슬픈 심정을 어떤 표현으로 채워낼 수 있을까. 그것도 트럭에 깔려 산산이 부서진 일곱 살의 어린 손자의 안쓰러운 마지막을... 손자를 잃은 마사에는 수제 햄버거를 잘 만든다. 그리고 그 햄버거를 잘 먹어주는 손자의 친구 겐토가 마냥 사랑스럽다. 후지코는 겐토를 데리고 마사에의 집에 놀러왔다. 그녀가 대접하는 햄버거를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겐토가 뼛조각같은 것을 삼키지 못한 채 뱉어냈다........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채, 자살을 하게 되는 히데미,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이는 나오이다. 하지만 나오, 그 일을 잊고싶다. [굳세게 시치미를 떼면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만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된다. /184쪽] 나오의 터무니없는 이 생각을 어쩌면 좋으랴. 여하튼 그녀는 흐르는 세월, 그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상냥하고 이쁜 아이, 그녀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평가라니 어처구니 없다. 나오에게 부자고 멋진 남자가 나타났다. 오늘은 아무래도 그가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할 것만 같아 두근거리는 나오이다. 하지만 나오에게 단 하나의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만 되면 히데미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히데미, 자살을 시도했으나 죽지 못한채, 불구가 되어 지팡이를 들고 다녀야 하며 뇌손상을 입어 정신 연령이 어려졌다. 히데미 그녀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거리에 나타나서 노래를 부르며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오가 학창시절 그녀에게 시켰던 바로 그 일을 정신이 나가고 불구가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으면서 세월이 몇 번을 흘러도 크리스마스 이브만 되면 나오 앞에 나타나서 똑같이 행하는 것이다. 하필이면 오늘도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초등학생인 가즈마와 신야는 산 속의 사당에 몰래 들어가서 담배를 훔쳐 피운다. 그날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당을 찾아갔고, 가즈마가 형의 차에서 숨겨놓은 담배를 찾아냈다며 그 새로운 담배를 둘러 앉아 피운 것이다. 그때 사당에 하얀 이상한 생물이 나타났다. 음, 이거 이야기가 아무래도 그 아이들이 피운 담배가 담배가 아닌 듯 하다는 생각이 단박에 든다. 아마도 환각을 일으키는 대마초인 듯... 그것도 모르고 어린 그 아이들은 징글맞게 생긴 이상한 생물을 두드려패고, 눈을 나무로 찌른다......
병든 아내 곁에서 식지 않는 사랑을 유지하기란 힘이 드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 가정의 남편들은 결국 생기발랄하고 젊은 여자에게 한눈을 팔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것일까. 중년의 야에가시는 그에게 다가오는 젊은 여인 나오코에게 새로운 사랑이 움트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그 등장인물들이 모두 중요한 순간에 스멀스멀 자신의 몸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느끼게 된다. 바로 악의 속에 꿈틀댄다는 수은충이 그들 몸에 찾아든 것이다. 누구나 악의를 느끼게 될 때가 있으나 그 악의에 지배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그 악의가 일으킨 일들은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시간을 다가오게 하는 것이 아닌 사라지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악의가 들어왔을때, 그 악의때문에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한 행동이라고 책임을 전가시키지도 말라. 그것이 작은 악의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와 큰 악의 속으로 부풀리어 놓은 수은충의 탓이라고 말하지는 말라. 모든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 속에는 악의 속에 나타나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수은충을 몸 속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삶 속의 그 어떤 순간에도 수은충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악의 자체를 가지지도 말아야겠다. 사실 악의라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악의의 결말은 결코 행복스럽지 않은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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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느껴봤을 것이다. 평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악한 상황에 처하거나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 목덜미를 타고 돋아나는 소름을. 소름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느낌은 벌레가 온 몸을 기어가는 듯하다. 손톱만큼 작은 벌레가 온 몸을 타고 돌아다니는 느낌. 그 불쾌한 느낌은, 수은충이 내게 한발짝 다가왔음을 알리는 것이리라.
슈카와 미나토는 수은충이 등장하는 7가지 상황을 책 한권에서 그리고 있다. 이야기가 따로 떨어져있는 단편이지만, 수은충이라는 벌레로 엮여있으니 결국 한 가지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한지, 내면까지 들여다보고 있어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수은충'이라는 끔찍한 벌레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된다.
흔히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자살, 왕따, 탈선 문제와 함께 유령이라든지 혹은 다중인격까지 묘사하며 인간의 깊숙한 내면에 시선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이, 그저 가벼운 겉핥기 식이 아니라 힘있는 필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더욱더 두렵고 오싹하다.
이야기는 총 7가지의 '날'로 진행된다. [고엽의 날]에서는 아내를 죽인 남편이 나온다. 흔히 죽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수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살인자는 세상의 심판과는 별개로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 평생 사죄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허리에 매달고 평생 살아야 한다. [대울타리의 날]에서는 죽은 손자를 영원히 살게 해주고 싶어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할머니가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것을 먹이는 모정이 그저 소름끼치기만 하다. [박빙의 날]에서는 친구를 왕따시켜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콧대높은 아가씨가 나온다. 세상은 늘 승자의 편이라고 생각한 여자는, 결국 차가운 뒷골목으로 끌려가게 된다.
어느 이야기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엔 여지없이 목덜미에 자그마한 소름이 돋는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몸속에 벌레가 기어가는걸 느끼듯이. 책을 읽는 독자 또한 '수은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할 수 있는 작가의 여력이 와닿았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계절은 모두 겨울이다. 겨울은 춥고, 스산하고, 어둡다. 겨울바람이든, 겨울비든, 혹은 크리스마스든 겨울은 시리고 춥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도 있겠지만 책의 배경인 겨울과 수은충은 잘 어울린다. 눈이 아리도록 시린 겨울 바람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리게 하는 겨울비는 왠지 사람의 악함과 닮아있다. 우리가 마음속에 '악'을 품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는 차가운 겨울이 찾아오는 것일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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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와 미나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중 한사람이다. 꽃밥부터 지금까지, 그의 책이 국내에 나오는 대로 모으고 있는 중이다. 수은충... 그 본적 없는 생소한 벌레에 대한 두려움은, 이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를 읽으며 생생히 전해진다. 체내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며,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 수은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침전시켜버린 죄. 죄책감을 안은 내가 나와 대면할 때, 깨알같은 벌레가 목덜미를 기어가는 듯한 소름을 느낀다. 영화를 보는 것같은 생생한 묘사, 기발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늘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느꼈던 것이다. 수은충에서는 인간 심리의컴컴한 심연까지 꿰뚫어 고발하는듯한 날카로움이 더해져 있었다. 읽고 나면 이보다 더 결말을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감탄과, 또 책장이 넘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닮고 싶은 작가. 슈카와 미나토... 조금은 어둡지만 수은충은 역시 그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날을 꿈꾸며....오늘 다시 수은충을 펼쳐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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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이 온통 '악'으로 가득찼을 때 수은충이라는 벌레가 꿈틀거리기 사작한다. 이렇게 스멀스멀, 혹여 나의 몸 어딘가에 이 벌레가 기어다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면 이미 마음 한구석에 '악'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얀 표지에 수은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책이 공포소설 같이 느껴지지 않지만 각 단편들을 읽으며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악'과 마주하다 보면 한편으론 인간의 이기심에 헛웃음마저 흘러나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도시전설 세피아'와 '새빨간 사랑'으로 이미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 분위기가 어떠할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각 단편들을 쉽게 읽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속까지 불편해지는 단편 [대울타리의 날]은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떠올라 한동안 떨쳐버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인육을 먹다니, 겐토가 사람의 손톱을 뱉어냈을 때 내 얼굴은 온통 찌푸리고 있었을 것이다. 꼭 내가 먹은 것 마냥 속이 불편했다.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어떻게 한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집착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단편 [미열의 날]은 또 어떤가. 아이들이 피운 담배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사건을 몰아간 것은 아닌가. 두꺼비를 천에 싸서 높이 던져 올렸다 바닥으로 떨어뜨려 죽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잔학한 모습이 한 생명을 처참하게 없애 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는 친구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작용했기에 아직 '도덕'에 대한 개념이 서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 저지른 악행은 다른 단편들과 다르게 마음속에서 오래 머문다. 단편 [박빙의 날] 또한 현재 우리들의 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 하고 있어 가슴까지 서늘해진다. 이 단편에서 '료스케'는 누구인지, 어떤 존재이기에 미하루와 나오를 단죄하기 위해 왔는지 궁금해진다. 미지의 존재로 다가오는 이 '료스케'로 인해 자신이 가장 행복할 때 이전에 지은 죄를 생각하며 이 행복이 달아나 버리지 않을까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인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게 된다면 때론 사람들의 가슴이 후련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영혼에 침투하여 기어 다니다가 결국은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버린다는 벌레 '수은충', 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이것을 간단히 부정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머리속이 복잡할 때면 깨어질 듯 아픈 증상이 혹시 이 수은충 때문은 아닐까. 이미 머릿속은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을지도 모른다. 목덜미가 스멀거리고 팔에 벌레가 있는 듯 느껴진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단편들이 많아 이 수은충의 존재가 더 무섭게 다가오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의 영혼을 죽을때까지 몸에 달고 살아야 하는 단편 [고엽의 날]은 공포소설의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글이기에 첫 장부터 제대로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 매혹적이지만 두려운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 수은충이 언젠가 당신을 덮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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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여름의 시간이다. 공포물이나 기담같이 오싹한 이야기들이 서서히 고개들고 사랑받기 시작하는 계절. 우리가 즐겨 보는 영화속에 담긴 공포의 방식은 3가지 정도로 나뉘어진다. 종교와 관련한 공포를 다룬 오컬트, 피가 튀기고 잔인함이 돋보이는 하드고어, 마지막으로 잔인함보다는 살인자의 내면적 심리에 중점을 두는 스릴러 등이 있다. 물론 더 자세히 구분되고 세밀히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최근 공포의 추세는 무조건 죽고 죽이는, 피가 낭자하는 공포물 보다 심리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스릴러가 많은 사랑을 받는듯하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그 범죄속에 숨겨진 비밀과 진실, 내면적 갈등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큰호응과 몰입을 선사하기 때문에 스릴러가 사랑 받고있다.
영화로 말하자면 이 작품 <수은충>은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물론 귀신이나 영혼과 같은 호러적인 성격을 띄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건과 관련한 사람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숨겨진 악의와 수은충이라는 가상의 벌레가 연결되어 끈적끈적하고 흐물흐물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괴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지고 있다. 모두 7가지 단편들이 수은충이라는 벌레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유쾌하지 않는 느낌들과 연결된다.
'그것은 수은충이라는 곤충으로, 사람의 영혼을 파고들어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무수한 구멍을 뚫어놓는다고 합니다.... 영혼에 구멍을 뚫린 인간은 대체 어떻게 된다는 걸까요.' [잔설의 날 中]
<수은충>에 담긴 소재들은 조금 충격적이다. 불륜, 살인, 자살, 근친상간, 인육, 학교폭력, 환각과 일탈... 저녁 시간대 뉴스를 장식할만한 토픽들을 모아놓은듯, 조금은 쇼킹한 소재들이 즐비하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 아내를 죽인 남편, 그가 깨닫는 죄의식을 담은 [고엽의 날], 부모의 이혼과 술에 빠진 엄마, 그런 소년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부부의 실체, 근친상간 이야기를 다룬 [겨울비의 날], 누나와 엄마를 자살로 이끈 소녀, 그녀를 죽인 소년 [잔설의 날], 손자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 인육을 먹은 할머니 이야기 [대울타리의 날] 등 조금은 엽기적이기까지 한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대는 묻느냐, 이 사랑이 죽는 날은 언제냐고... 그것은 새로운 생각이 싹트는 날, 새로운 열기가 묵은 생각을 태워버린다.' [병묘의 날 中]
[박빙의 날]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소녀의 원한을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청소년들의 일탈과 환각 살인을 소재로 한 [미열의 날], 사랑을 환상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병묘의 날]까지 독특하고 색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수은충이라는 특별한 매개체로 연결된 7편의 단편들이 모두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 책 <수은충>에 대한 소개를 보면 '누구나 목덜미에서 수은충이 꿈틀거리면 언제든지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수은충이 인간의 영혼에 무수한 구멍을 뚫어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때 수은충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르다.
수은충이 흐물거리고 기어다니는, 몸서리쳐지는 느낌이 오면 파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파멸에 다다른 인간들의, 이중적이고 내면에 담긴 악의가 고스란히 드러난 인간들에게서 최후에 드러나는 최소한의 '양심'의 표현이 바로 수은충이 꿈틀대는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살인과 불륜, 근친상간, 인육 등 인간으로써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극단적 상황속에서 관조자가 느끼는 '소름끼치는 것'과 당사자가 갖는 '양심의 가책' 혹은 '죄책감' 이 아마도 이런 수은충과 같은 가상의 벌레의 느낌으로 표현되는 듯 보인다.
충격적인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런 일들이 자행되면서도 하물며 수은충이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충격적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문득 당신에게도 목덜미가 가렵다고 느껴질 그런 때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인내하고, 평범함에 감사하고 실천하는..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수은충>은 인간의 이중적 심리를 날카롭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상상이 압권인 작품이다. 슈카와 미나토라는 이름 뒤에 함께하는 [올빼미 사내]와 [꽃밥]이라는 작품과도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호시 신이치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 반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슈카와 미나토, 그의 매력에 빠져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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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문득 목덜미에서 이상한 가려움을 느꼈다. 마치 작은 벌레 같은 것이 기어 다니는 감촉이다. 손바닥으로 눌러보니, 금속성 질감을 가진 벌레였다.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가 슈카와 미나토가 엮어낸 죄와 벌. 수은충이라는 가공의 벌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두렵고도 매혹적인 일곱 빛깔 이야기.] 양장본으로 출판된 이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묘했다.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그리고 비교적 어두운 분위기의 우울한 느낌의 일본소설에 더 끌리는 나이기에 수은충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은 한눈에 내 맘에 쏙 들었다. 은 가루인 것 같기도 하고 수은충이라고 불리는 한번도 본 적없는 벌레 떼 들인 것 같기도 하고 책 겉표지를 뒤덮고 있는 신비로운 컨셉의 디자인이 참 좋았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한 내용을 짐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고 책에 대한 호감도를 상승시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일본 작가들 중에서는 에쿠니 가오리를 가장 좋아하는데 울 준비는 되어있다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중학생 때 읽은 작품이었고 그때는 일본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상태여서 사실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글자를 봤다는 수준에 가깝게 소설을 접했다. 제대로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그 소설이 참 좋았다. 문구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았고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이랄까? 에쿠니만의 감성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수은충으로 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또한 이 책을 기대하게 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일본판 죄와벌이라는 광고 문구도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수은충이라는 벌레를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일본만의 색깔이 확연하게 묻어있으면서도 국경을 초월해서 독자로 하여금 설득당하게 만들고 빠져들게 만든다. 인간의 심연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몰입이라던지 공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날들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이 펼쳐진다. 그것은 수은충이라는 벌레로 집약되어지고 삶과 죽음이라는 연장선에 대한 철학을 얘기한다. 인간의 죄의식이라는 주제도 은연중에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고 독자로 하여금 각성하게 한다. 뭔가 치밀하게 계획을 하고 이성적으로 작품을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보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책은 그냥 영감을 받아 주르륵 써내려갔다기 보다는 온갖 장치와 암시들을 준비해놓고 독자들을 인도하기 위해 철저히 길을 만들어놓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깔끔한 책이겠거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나니까 찝찝한 여운이 남는게 영 개운치 한다. 내 목덜미에 무언가가 앉아있는 느낌이다. [어렸을 적에 실수로 유리 온도계를 깨뜨리면 방바닥에 은빛 물방울처럼 도르르 굴러 나오던 수은 방울. 무서운 줄도 모르고 손끝으로 그 수은 방울을 톡톡 치며 장난치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으로 집으려 아무리 애써도 잡히지 않고 증발해 없어지지도 않는다. 사람 몸에 결코 좋을 리 없고, 너무 많이 접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는 수은 방울은 마치 살아 있는 벌레처럼 잘도 굴러다녔다. 그래서 수은충이었을까. 번역하는 내내 제목을 그렇게 지은 까닭을 알듯 말듯 했다. 일본어 사전에 벌레 항복이 재미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곤충이라는 설명이 나온 뒤에, 인간의 몸속에서 다양한 생각이나 감정을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예전 일본인들은 사람 몸속에 아홉 가지 벌레가 있어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의식이나 감정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본인의 머리가 아니라 그 벌레 탓으로 돌리는 재미난 관용구가 많다. 예를 들면 벌레가 알려주다 쯤으로 직역되는 말은 뭔가 좋지 못한 예감이 든다라는 뜻이고 벌레가 좋아하지 않는다로 직역되는 말은 까닭 없이 싫다, 주는 거 없이 밉다는 뜻이며, 벌레가 깨어나다는 짜증이나 경기를 일으키다, 벌레를 죽이다는 화가 나는 것을 꾹 참다라는 뜻이다. 요컨대 내부에 뭔가 또 다른 실체가 있어서 사람을 조종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일곱 개 단편을 아우르는 제목을 수은충이란 가공의 벌레로 정한 것은, 그렇게 본다면 절묘하다 하겠다. 이야기가 결정적인 국면에 접어들면 주인공 몸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는데, 그런 대목마다 독자들은 아마 섬뜩함을 근지러운 촉감으로 느끼며 몸서리칠 것이다. +맞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무서웠다. 소름이 끼쳤다고나 할까? 책장을 갑자기 덮어버릴 정도로 등줄기가 오싹해지면서 소름끼치는 장면들인 한 두개가 아니었음을 이실직고 한다. 이런 소설일줄이야~ 나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벌레는 클라이맥스를 촉감으로 실감하게 하는 강력한 모티브인 셈이다. 한국에 번역 소개된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 집은 꽃밥, 새빨간 사랑, 도시전설 세피아에 이어 이것이 네 번째인데, 그 뛰어난 스토리텔링은 이 작품집에서도 여전하다. 지금까지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무서운 괴담으로 다듬어내면서도 애절한 서정과 향수를 띠는 경향이 분명했지만, 수은충에서는 그로테스크를 극대화했다고나 할까, 인간의 양면성 중에 검은 그늘 쪽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인상이다. +나도 작가의 전작들을 접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기 작품집보다는 확실히 그늘쪽으로 더 들어섰다. 단도 수천 자루가 한 소년의 몸뚱이를 향해 회오리바람처럼 날아드는 원서의 표지 그림은 이번 작품집의 그로테스크함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고 언제 꿈틀댈지 본인도 알 수 없는 수은충은 억제된 파괴 충동, 인간이 지닌 양면성의 다른 이름이겠다. 안식을 주지 못하는 가정, 뿔뿔이 흩어진 관계들이 영혼에 칼자국을 내고 벌레를 키워낸다. 보통 사람들에게 어디 대단한 악행을 저지를 기회나 있을까. 항상 작은 몸짓, 무표정, 인색한 게으름 따위가 생채기를 내고 곪게 만든다. 그래서 평범한 소시민도 목덜미에서 수은충이 꿈틀거리면 언제든지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 토막토막 끊기도 인정머리 없는 요즘 세상이 그래서 더 무섭고 쓸쓸하다. 어디 네거리에라도 나가 두 팔이 떨어져러 흐리 허그라도 하면 나아질까 하는 심정도 들고, 혹시 이런 돌아봄이 작가의 의도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작품마다 이렇게 뭔가 교훈을 끌어내려는 구태의연한 사고를, 이 독한 작가가 비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작가는 그로테스크를 그냥 그로테스크로 즐기면서 썼을지도 모르겠다. 역자는 어느새 작가에게 경계심을 품게 된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고엽 같은 마음으로 산다는 여자의 말이 문득 귓전을 울렸다.
그것이 우리 살인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길이다. 자신이나 그 여자는 대체 언제까지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스스로 죽음을 택해서 편해질 수도 없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으며, 다른 길을 취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누가 죽여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왠지 목덜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촉을 느꼈다. 무당벌레 같은 작은 벌레가 동맥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목덜미를 때렸다. -고엽의 날 중에서 같이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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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소름이 끼치며 어떤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진짜 벌레였던 적도 있고, 아니었던 적도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 무언가가 기어간 것 같은 느낌! 내가 그렇게 느꼈을 때... 어떤 행동이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꼭 그 기억을 되살려봐야할 것 같다. 내가 나도 모르는 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
![]() 외롭고 추운 겨울날 쓸쓸하게 내리는 겨울비같은 소설.
칠흑같이 어두운 추운 겨울밤, 하늘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처럼 외롭고 쓸쓸한 느낌의 이야기들이다. 하나같이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인생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7편의 단편들로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 어느것도 포기할수없을만큼 스토리와 그들이 주는 느낌이 무척 마음에 든다. 쓸쓸하고 외로운 겨울비. 추운 그 느낌. 아련하게 다가오는 책이 주는 여운을 쉽게 놓치고싶지않다.
각각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이를테면 아내의 외도나 자식의 죽음등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작가 고유의 상상력이 더해져 엽기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의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고나서 마음이 이렇게 아련한게 아닐까..싶기도하다. 가여워서 눈물이 날것같은 그들의 쓸쓸한 인생이 원하지않았던(혹은 원했을지 모를)악의로 인해 변해가는 모습들이 괜히 마음이 욱씬거린다.
악의에 가득차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인간의 내면의 본성에 대해 다시한번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있다. 마치 "그래 이것봐라, 인간이란 원래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독하고 잔혹한 악의를 품을수있는 존재이다!! "라고 이야기하는것처럼, 어른 아이할것없이 그들이 보여주는 악의에 머리카락이 쭈뼛쭈볏서버린다. 작가 특유의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서 절정을 향해 달리는 느낌이다.
고엽의 날 -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년의 남성이 어느날 인생에서 예고없이 찾아든 커브길을 맞닥들이는 이야기. 온몸으로 외로움을 흘리던 이 남자는 결국 거리의 여자에게서 시간을 사게되기까지의 그 쓸쓸함은 책속의 지면을 넘어 내게로까지 흘러온다. 시작부터 느껴지는 강한 느낌!! 고엽같이 쓸쓸한 두 사람의 인생이야기다.
겨울비의 날 - 어린시절 우연히 만나게됐던 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담담히 이야기하는 단편. 결국 그들이 선택한 사랑때문에 평생을 쓸쓸한 겨울비밑에 오롯이 서있는듯이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악의는 어느 누구를 탓할수도 없는 그들 스스로의 몫이다.
잔설의 날 - 자살한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로 가득찬 가족의 이야기.. 누나의 죽음으로 평생을 죄책감과 분노에 시달려야만 하는 동생의 마음과 그런 그들을 지옥으로 밀어내려고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하다. 자살한 누나를 말리지못했다는 그 거대한 죄책감. 단편을 읽는내내 마음이 어찌나 무거웠던지..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삶의 무게..
대울타리의 날 - 손자를 잃은 할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사랑이 그 어떤것에게서도 손자를 잃을수없다는 그녀들의 마음이 애잔하다. 누구를 탓해야하는것일까. 바닥으로 떨어져 슬픔에 직면했을때 보여지는 인간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이 단편 역시 쓸쓸하고 서글픈 여운을 남긴다.
박빙의 날 - 학창시절 별뜻없이 저지른 잔혹한 악의를 보여준 여학생.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은 신의 축복받은 인간이라며 결과적으로 죄를 저지른 후회보다는 죄를 저지르고 피해가는 요령을 깨우친 그녀. 죄책감에 시달리기보다 자신의 편안함과 안락함 행복만을 추구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요즘 세상의 딱 그모습을 보여주는듯해서 더없이 공감이간다. 순수했기에 그들의 악의가 더 없이 잔혹했을 어린시절의 악의가 섬뜩하다.
미열의 날 - 초등학생인 두명의 학생은 고요하고 조용한 특별할것없는 시골에서 살고있다. 그두소년이 내면의 폭력성을 표출하기에 마을은 너무나도 조용했고 감시하는 눈이 많았으므로 그들이 선택한곳은 산속의 신사.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 단편은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마음이 아팠던 단편으로 기억된다. 어린소년들이 저지르는 행동들, 그리고 그 결과물까지.. 마음이 울컥하고 아파와서 좀 힘들었던 단편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을 단편. -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현실과 소설속을 오가는 작가의 능력은 도시전설 세피아에서도 그랬지만 더 없이 애잔한 마음을 갖게만든다. 그녀의 특별한 매력.. 정말 대단하다.
병묘의 날 - 한때는 사랑했던 아내의 병으로 변해버린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책속에 언급되는 짧은 시가 마음을 움직인다. - 그대는 묻느냐. 이 사랑이 죽는 날은 언제냐고. 그것은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날. 새로운 열기가 묵은 생각을 태워버린다. 허나 그것은 불행이 아니리. 새로운 운명이 태어나는 경하할일이니. - 라는 짧은 시와 함께 맞물려가는 사건의 진행. 그리고 단편속에 등장하는 검은옷을 입은 한 남자(개인적으로 이 캐릭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 그들의 엇갈린 사랑이야기에 굉장히 흔들리면서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전체적으로 겨울에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 수은충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쓸쓸함과 고독함이 마음에 강하게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다. 기존의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묘한 여운과 독특한 소재와 특별한 상상력에 더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라고할까. 만들어낸 도시괴담에서 이제는 정말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층 더 우리속에 깊이 빨려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읽기시간이다. 짧은 단편들이었지만 그녀의 상상력을 엿볼수있어서 더 없이 즐거웠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악의에찬 모습을 바라보는건 나역시도 마음이 짠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만날수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가 너무나도 기대될만큼, 흡족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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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와 미나토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불안과 조급함에 시달리게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이며 집념어린 분위기에 심리적인 충격을 받게 되는 탓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재빨리 읽어버린 소설의 마지막장을 응시하면서 작가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목마름이 새삼 거세게 솟구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수은충]이다. 한국에는 네 번째로 선보이는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집이다. 앞서 선보였던 세 작품집, [꽃밥], [새빨간 사랑], [도시전설 세피아]와 마찬가지로 인간 영혼의 어두움을 잡아늘여놓은 공포 작품집이다.
기이한 일이다. 한 작가가 자신이 집필하는 작품 전반에 걸쳐서, 이렇게 일관성을 지킨다는 사실이 그렇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데뷔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뭔가 새로움을 추구해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지만, 슈카와 미나토는 다르다. 끊임없이 인간 영혼의 어두운 망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어찌 보면, 무시무시하다. 작가의 그 고집스러운 깊이가 집념이라는 형태로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일까?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들은 모두 인간의 어리석은 고집이 빚어내는 비극들을 내용으로 한다. 망념. 고집스러운 만상이다.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도 놓지 못한다. 그 가운데서 표층으로 올라오는 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공포이다.
[수은충]은 슈카와 미나토의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망념의 세계가 더욱 극대화된 작품집이다. 특유의 비윤리적인 요소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겉보기만으로는 그다지 잔혹하지 않은데도, 그 어떤 고어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끔찍하다. 특히, 이번에는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들에 연결고리까지 등장하는데, 이게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표제로도 사용된 ‘수은충’이다. 인간의 영혼을 파고들어 무수한 구멍을 낸다는 벌레.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건, 중간 부분에 있는 <잔설의 날> 한편뿐이지만, 일곱 편 모두에 ‘수은충’이 암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등장인물들 모두 영혼에 구멍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영혼의 구멍. 일단 ‘수은충’에 잠식당한 인간의 더 이상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불가능해진다.
일곱 편의 소설들에는 모두 비틀린 인간관계가 등장한다. 아내, 남편, 형제, 자매, 친구, 동료 등의 일상적인 인간관계가 조금만 삐끗하면 두려운 관계로 돌변한다. [수은충]에 수록된 작품들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 때문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촉발점도 사소하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행동하거나 고집을 버리면 되는 문제들이다. 주변에서 언제나 벌어지는 일들. 그런 인간사이의 불신이 조금만 방향을 이탈하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수은충]이 몽환적인 공포에 중점을 두기는 하지만, 강도마저 약한 건 아니다. 일반적인 소설을 보듯이 편안하게 즐기려다가는 크게 후회한다.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잔혹함은 강하지 않지만, 그 내면에서 암시하는 혐오감과 그로테스크한 정서는 커다란 충격을 준다. 몇몇 작품에서는 구토를 일으킬 위험마저 있다. 한마디로, 싸늘한 공포와 뜨거운 두려움의 동시체험이다.
의문이다. 슈카와 미나토는 왜 이렇게 반윤리적이고, 혐오스러운 공포에 집착하는가? 더구나 오랜 습작으로 다져진 내재화된 문장과 표현력을 극한까지 뽑아내는 모험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역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라는 충고가 아닐까?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영위하라는 경고를 보내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다만, 슈카와 미나토는 공포소설을 통하여 독자들의 영혼에 깊은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이 들뿐이다.
[수은충]은 슈카와 미나토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앞선 작품집들에 비해, 더 무서워졌고, 더 깊어졌다.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다가도, 한편으로는 두려워진다. 어떤 작품들로 독자의 심리에 타격을 입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음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는 슈카와 미나토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기대와 불안이 계속되리라는 건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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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사전 '충' 항목에는 '인간의 몸 속에서 다양한 생각이나 감정을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일본인들은 사람의 몸 속에 아홉 가지의 벌레가 살고 있어, 이 놈들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어떤 감정이나 의식까지 건드린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본인 자신이 아니라 그 벌레 탓으로 돌리는 관용구가 많다. 예를 들면 '뭔가 좋지 못한 예감이 든다'는 '벌레가 알려 주다'로 '짜증이나 경기를 일으키다'는 '벌레가 깨어난다'로 표현하는 식이다. 요컨데, 사람의 내부에 있는 또 다른 실체가 그를 조종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단편은 제각각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사건들이지만 어느 편이든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 등장 인물들은 목덜미에서든, 몸 속 어디에서든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장면은 여태껏 이끌어 오던 이야기를 뒤 엎는 '반전'과 함께 등장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작중 인물들처럼 벌레가 꿈틀거리는 스믈스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가가 창조한 '수은충'이라는 가상의 벌레는 인간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있다가, 마음이 악의로 가득 차게 된 어느 순간, 마침내 영혼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 버린다. 작가는 수은충이라는 벌레를 주요 모티브로 삼아 살인, 자살, 불륜, 집단 괴롭힘 등 인간의 영혼을 갉아 먹는 사건에 얽힌 이야기 일곱 편을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