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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새별은 1980년에 물이 들어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내 태가 묻혀있고 동무들과 뛰어놀던 아름다운 마을은 꿈에서나 찾아가는 마을이 되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자조하듯 자주 뇌까린다. 고향에 물이 들어오기 이태 전에 나는 고향을 떠나 형이 자리를 잡은 서울로 왔고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은 물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버티다가 고향을 떠나셨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시던 아버지는 서울에 오셔서 오래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결국 그리워하던 고향에 죽어서야 돌아가셨고 해마다 한 번씩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고향마을 근처를 지날 때면 저곳은 둥구나무가 섰던 곳, 저기는 우리 집 텃밭이 있던 곳, 저기는 우리 초가와 살구나무가 섰던 곳 하며 물속을 가늠해본다.
아이들이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니, 대추리 아이들처럼 남의 나라 군인을 위해 우리나라 군인과 경찰에게 강제로 고향을 빼앗기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 것일까. 게다가 고향마을은 할아버지가 직접 갯벌을 메워 만든 곳이었다. 갯벌에 물이 나가고 나면 생기는 빈 땅에 호미, 가래, 삽으로 언덕 위의 흙을 퍼다 날라서 둑을 쌓고 땅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첫 땅을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함께 만든 땅이라는 뜻에서 ‘부자원’이라 이름 지었다. 그 다음 만든 땅은 농사가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비는 ‘소망원’, 그 다음 땅은 ‘희망원’으로 이름 지었다. 그래서 논마다 이름이 다른 땅.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아이들에게 고향은 그 어느 땅보다도 각별한 애정이 갈 수 밖에 보금자리가 아닐 수 없다.
한솔이는 집을 뛰쳐나갔다. 대추분교는 완전히 부서지고 대신 시멘트 더미가 쌓여 있었다. 단숨에 운동장으로 들어간 한솔이는 숨이 막혔다. 운동장 곳곳에 구덩이가 생겨났다. 웅덩이를 돌아가다가 나무할아버지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휑뎅그렁한 걸 알았다. 한솔이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나무할아버지는 몸뚱이가 동강난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한솔이는 그루터기로 남은 나무할아버지를 보다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왜 나무할아버지가 죽어야 해?’ (112쪽 발췌)
한솔이는 고향을 빼앗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할아버지가 심은 느티나무랑 말을 주고받는다. 전쟁터과도 같은 곳에서 달리 마음을 주고받을 대상도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나무할아버지마저 밑둥만 남은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를 고향을 지키려는 싸움에 빼앗기고, 친하게 지내던 동무들도 뿔뿔이 흩어졌으며, 마음을 기대던 나무할아버지마저 잃게 되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 그러나 한솔이는 아버지와 함께 나무할아버지를 솔부엉이 숲으로 옮겨 심는다. 설사 고향을 빼앗기더라도 희망을 아주 놓을 수는 없다. 한솔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이러한 바람은 ‘전쟁은 싫어, 평화가 좋아’ 같은 소원을 쓴 향나무 판을 구덩이에 묻는 매향제를 올린다. 매향제를 올린 날 한솔이는 생애 첫 몽정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