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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관련 논문을 찾아보다 알게 된 이 사람, 브루노 무나리.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보면 인물 소개는 있지만 저 이의 속은 책을 읽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찾아봐야지'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중고서점에 갔다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마음속으로 '신의 계시'어쩌고 하면서 구입을 해 읽었다. 다시 밤 잠을 설치고...
다음 날은 문구점에 갔다. 책마다 알록달록 붙여두는 표시 테이프(인덱스스티커라고, 고맙게도 친구가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를 한꺼번에 여러 개를 샀다. 다시 책을 읽었다.
'판타지아'를 한국어로 정확히 표현할 단어가 내 머릿속에는 없다.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느낌이다. '공상'이 주는 어감의 무료함이나 무익함과는 달리 번뜩이는 무엇인가가 있다. '기상천외하고 엄청나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뒤따르는 폭발적 창조성의 표현이 부족해서 아쉽다. 그렇다면 '유쾌하고 말도 안 될 것 같은 상상을 현실에서 신나게 발현해 내게 되는 창조적인 어떤 것' 정도의 의미가 포함되는 우리말이 뭐지.... 그냥 '판타지아'를 개념으로 받아들이자. '아버지'가 그냥 '아버지'이듯 말이다. 일단 개념은 그렇게 잡기로 했다.
- 창조력이 왜 필요한가. 변화에 잘 대응하는 사람은 창조력이 풍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그럼 변화에는 왜 대응해야 하는가. 세상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환경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전학을 하면 학교와 친구가 변하고, 이사를 가면 도시든 시골이든 어쨌든 변한다. 나이를 먹으면 주위에 놓이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변하기 마련이다. 대응하려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환경을 바꾸겠다' 마음먹은 사람일지라도 일단은 바꾸고자 하는 대상을 파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어떤 부분을 어떻게 나에게 맞게 바꾸겠다는 계획도 창조력이 필요하다.
이 창조력은 자신이 가진 지식('공부'가 아니라 '아는 것들'이다)이 많을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풍부해진다. 그런데 이 힘을 가장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놀이'이다. 바로, 이것이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 '놀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즐겁지 않으면 뛰어들지 않는다. 설령 뛰어든다 해도 기억되고 체화(體和) 되는 정도가 다르다. 브루노 무나리는 본인 스스로 창조적인 '놀이'를 하며 살았던 사람 같다.
- 좋다. 놀이도 좋고 창조력도 좋은데, 그렇게 신나게 변화에 대응해서 무엇 하자는 것인가. 다 함께 어울려 잘 살자는 것이다. 재미난 것들을 하며 즐거워하며 삶을 살다가, 즐겁게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인 놀이를 하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브루노 무나리는 말한다.
이 책에는 작가가 즐겼던 창조적 아이디어의 베이직(?)도 적혀있고, 사례도 있다. 보는 동안 내 머릿속에 많은 놀이가 떠올라 새벽에 아이디어 노트를 가지러 건넌방으로 뛰어가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말자. '나만 즐겁고 신나는 창의적 놀이'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변화 속에 있다. 우리에겐 브루노 무나리의 생각이 필요하다. 결코 타인을 모방하거나 타인과 경쟁하지 않고, 문제를 파악하고 노력해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아이들을 모범으로 삼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공감도 하며 함께 어울려 바닥을 딛고 서서 놀이하듯 기운을 내야 한다. 이다지도 머리 좋고 흥도 많은 민족이 어디 있냐고, 자화자찬하면 무엇하랴.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 책을 교과서로 삼으면 재미있겠다,는 판타지를 꿈꾸어 보았다. 내 인생부터 꿈꾸어 봐야지 옳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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