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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불리우는 <햄릿>! 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익히 들어봤으나 작품을 직접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을 읽기 전,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의 명성을 익히들어왔기 때문에 <햄릿>이라는 작품에 기대를 많이 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무대의 장소 배경은 덴마크이고 주인공은 햄릿이다. 햄릿은 덴마크의 억울하게 죽은 선왕의 왕자이다. <햄릿>은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 1막에서 햄릿은 독살당한 아버지의 유령을 보게되고 그 유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을 알게 된다. 제 2막은 햄릿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왕과 왕비, 폴로니어스가 햄릿의 실성원인을 알아내려고 하는 부분으로, 햄릿은 연극을 통해 왕의 반응을 살펴볼 계획을 세운다. 제 3막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처럼 왕이 자신의 행동을 묘사한 연극에 당황하는 모습과, 햄릿이 왕비에게 그간의 실망감을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몰래 대화를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햄릿이 죽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제 4막은 왕의 계략으로 영국으로 보내지는 햄릿과 폴로니어스의 죽음으로 미친 오필리어의 죽음, 그리고 폴로니어스의 아들인 레어티스가 복수심을 품고 왕과 햄릿을 죽일 계획을 짜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제 5막은 햄릿을 죽이려했던 레어티스와 왕이 자신들의 꾀에 넘어간 꼴이 되어 결국 죽음을 맞게되고, 더불어 왕비와 햄릿도 죽게 되는... 일종의 비극스런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1600년대에 지어진 작품인 <햄릿>은 오늘날 우리가 읽어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셰익스피어는 한 세대의 것이 아니고 만대의 것이다"라고 말한 벤 존슨의 말처럼 지금까지도 그 작품성이 인정되고 있는데, 내가 직접 이 작품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인간의 고뇌, 내면세계를 충실히 잘 탐구하여 햄릿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햄릿은 복수심에 불타지만 막상 복수를 실현하려고 할 때에는 망설이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현왕은 자신의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고, 자신의 형수였던 왕비를 자신의 품에 안는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시대에도 이런 권력싸움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돈, 명예, 지위가 무엇인지... 이 작품의 신하들의 모습에 반영된 아첨하는 인간상의 형태도 오늘날에 빈번하게 우리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들이다. 얼마전에 종영한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 드라마는 남편의 승진을 위해서 아내들이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윗사람의 비위에 맞춰 자신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모습이 보기 껄끄러웠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상황들이 우리 사회에 널려있다니... 안타까우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인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또한 햄릿은 마음속으로는 굳은 결심을 하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에는 힘이 들고 주저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왕비가 선왕을 잊고 현왕의 부인으로 사는 그 상황이 참 짜증이 났다. 햄릿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내가 그런 상황을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은 갈대인가 라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던 대목이었다. 결국 햄릿은 자신이 사랑했던 오필리어도 하나의 여자에 불과하므로 자신의 어머니처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쌍한 햄릿...ㅠㅠ
세월이 400년이 넘게 흘렀어도, 인간에 대한 탐구는 지속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가 추측하고 풀어냈던 그런 모습이 오늘날에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 햄릿이라는 인물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500년, 600년, 아니 1000년이 더 지나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햄릿>은 우리 인간의 삶속에 없어서는 안될 고전도서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없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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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그 시대,
아니 현 시대에도 해당하는 부정적인 세태를 꼬집어주는 말들이 매우 많다. '귀부인들에게 전하거라.
아무리 분을 1인치만큼 칠하더라도 결국 이 꼴을 벗어나지 못하노라고.' 왕자 햄릿, 아버지인 선왕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다.
세상에 상당히 냉소적인 자가 되어버리다. 복수의 피를 가지다.
현왕, 그리고 그의 여자가 된 어머니에게.
무엇이든 돈이면 만사가 되는 세상,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는 여성들에 대해, 그런 여자들을 차지하기 위해
추한 짓을 서슴지 않는 추악한 남자들에 대해, 허영에 가득 찬 귀족들에 대해,
햄릿은 그저 썩소를 지어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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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는 영국이 낳은 세기의 대문호가이다. 벤 존슨은 그에 대해 찬사하기를 “셰익스피어는 한 세대의 것이 아니고, 만대의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집안의 몰락으로 대학을 갈수 없었던 셰익스피어는 18세 때 지체 있는 부농의 딸 앤 해서웨이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1590년 무렵 런던에서 배우로도 활동한바 있으며 그 후에는 선배 작가의 희곡을 수정해 주면서 점차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4대 비극인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가 있고 또 다른 희극으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6세> <십이야> <줄리어스 시저> 등이 있다. 지금까지 전해진 그의 작품은 희곡 38편이나 셰익스피어가 쓴 것으로 추정된 희곡들도 일부 발견되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거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되고 공연되었을 정도로 세기가 낳은 천재 작가이다. 4대 비극 중에 하나인 <햄릿>은 선왕을 독살한 숙부에게 왕위와 어머니를 빼앗기고 선앙의 망령의 의해 복수를 하게 되는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창작이 아닌 13세기 초 덴마크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각색하여 제작하였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햄릿의 아버지 선왕은 숙부에 의해 독살 되었다. 사람들은 선왕이 낮잠을 자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줄 알고 있었지만(햄릿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사실은 아우의 손에 독살 당했던 것이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어머니(거트루드)를 사랑하여 선왕이 죽은 뒤 명분을 내세워 2개월 만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선왕은 죽음과 동시에 생명과 왕관과 왕비를 일시에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억울한 선왕은 죽은 후에도 눈을 감지 못하고 아들 햄릿에게 나타나 복수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숙한 어머니의 부정을 참을 수 없어 분노하던 참에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진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럼에도 선왕은 어머니에 대한 징벌은 스스로 마음속 가시에 찔리도록 하느님께 맡겨두고 덴마크 왕의 악행을 처벌해 달라고 부탁한다. 진실을 알게 된 햄릿은 그때부터 고뇌한 인간으로 재탄생된다. 이것은 결코 선이 아니다. 선왕의 망령이 나타나 숙부의 악행을 폭로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겨우 한 달 만에 눈에 소금기가 가시기도 전에, 아우는 형의 부인을 탐하고 정숙한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백년가약을 어기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배를 맞추고 또 한번 사랑을 맹세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악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거짓에 가려진 진실은 결코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햄릿은 어머니의 부정으로 모든 여자를 믿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어를 버리기까지 한다. 햄릿은 선을 위한 고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고뇌, 악을 멸하기 위한 고뇌를 통해 광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뇌가 깊어질수록 광증이 깊어지고 광증이 깊어질수록 성격 파탄자가 되어간다. 햄릿의 변화에 위협을 느낀 현왕은 괴로움에 몸을 떨게 된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했던가! 아무리 현왕이 자신의 죄를 감추려 손으로 하늘을 가려도 자신의 눈만 가릴 수 있을 뿐 모든 대지는 이미 알고 있다. 마치 가벨이 자신의 아우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이 아벨을 찾았을 때 오히려 가벨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부인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네 아우의 핏소리를 땅에서부터 들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 땅이 너를 저주할 것이고 밭을 갈아도 소산물을 얻지 못하고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죄를 벌하셨다. 현왕도 독백에서 가인의 죄를 떠올리며 괴로운 심정을 나타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보좌와 사랑을 지키려 또 한번 죄를 탄생시킨다. 문득 <햄릿>을 읽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떠올랐다. 고뇌하는 영혼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른가 동시에 내면의 심판 즉 벌이 내려져 괴로움에 병들어 간다. 햄릿의 고뇌는 그것과 다른 성향이지만 인간은 결국 고뇌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한다. 고뇌하는 자의 고통과 눈물은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햄릿이 죽은 뼈들을 보며 그들도 한 때 우리처럼 혀가 있어 노래를 부르고 입을 맞추고 익살을 부렸을 텐데, 아무리 그 잘난 알렉산더 대왕이라 할지라도 흙이 되어 무엇으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며 한탄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자는 육체의 옷을 벗기까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햄릿 역시 아버지의 복수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다시없는 명대사를 남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햄릿은 현왕의 명령으로 영국으로 가게 되지만 그의 계략을 눈치 채고 즉시 고국으로 돌아와 복수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 사이 덴마크 재상이었던 폴로니어스가 햄릿의 손에 죽게 되자 그의 아들 레어티스는 햄릿을 향해 도전장을 내민다. 현왕은 레어티스를 꾀어 햄릿을 함정에 빠뜨리자 음모를 꾸미는 데 그것은 독이 탄 포도주와 독이 묻은 칼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모든 게 비극으로 끝이 난다. 욕망으로 시작된 씨앗이 부정과 살인이라는 열매를 맺고 그것은 또 다시 피를 불러 온 대지에 뿌리고 그 열매를 모든 사람이 먹고 죽게 된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살인은 살인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는다. 사람은 자기 입으로 뿌린 씨앗의 열매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생각이 생각을 낳아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기 때문이다. 결국 습관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쇠사슬이 되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p121에 보면 햄릿도 어머니를 향해 외치기를 “습관이라는 괴물은 악습을 씹어 삼키고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반면 천사와 같은 일면도 있어, 항상 좋은 행동을 하면 처음에는 어색한 옷 같지만 어느새 몸을 꼭 어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밤을 참으시면 내일 밤엔 한결 참기가 쉬워지고, 그 다음날 밤엔 더욱 쉬워집니다. 이렇듯 습관이란 천성을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악마라도 물리쳐서 영원히 내쫓을 수 있는 비상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정말 격언 중에 격인이다. 수 세기가 흐른 지금도 셰익스피어의 인간 심리에 대한 고찰은 진리임이 틀림없다. 풍월로만 알고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주옥같은 작품을 글로 읽으니 새로운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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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하면 어떤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넣는다. 그만큼 그 작품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친숙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이다. 이 4대 비극을 모두 읽어 본 이는 얼마나 될까? 아니 넷 중 단 하나라도 읽어 본 이는 얼마나 될까?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아니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졸지 않은 이라면 네 작품 모두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작품을 직접 끝까지 읽어 본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인도 그 중 한 명이기에 영문학도로서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다 이번에 4대 비극 중 햄릿을 읽을 좋은 기회가 생겨서 부끄러움을, 영문학도로서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어 위안이 된다.
햄릿은 왜 4대 비극에 속할까? 우선 비극과 희극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극적인 결점(tragic flaw)'에 있다. 주인공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을 극복하면 희극이 되는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이 되는 것이다. 햄릿은 비극적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하였기에, 비극적 요소가 강하기에 4대 비극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햄릿의 비극의 시작을 잠깐 살펴보자.
이야기는 성 위에서 시작한다. 두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는데 저 멀리서 유령이 나타난다. 그 유령은 선왕, 현재 왕의 형이었다. 선왕은 주인공 햄릿의 아버지였기에 보초들은 햄릿에게 그 사실을 보고한다. 햄릿은 유령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동생인 현왕에게 독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령은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햄릿은 수락한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 후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아버지가 죽은지 두어 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 동생에게 시집을 가서 그의 품에 안긴 어머니를 생각하니 심사가 뒤틀린다. 어머니로 인해 여자에 대한 증오로 이어져 사랑하던 오필리아를 버리는 몹쓸짓을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햄릿의 심리적 갈등의 묘사가 두드러진다. 내적 갈등과 의문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한다. 그런 그의 갈등은 다음의 유명한 대사에 매우 잘 나타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의 정신적 방황은 결국 되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상황을 이끈다. 모두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과연 상황을 개선 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을까? 모두의 죽음이 아닌 화해와 공존은 불가능 했을까?
우리는 원인은 다르지만 종종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갖는다. 그때 나에게 행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습과 교육 등으로 인한 심리적 제어 장치가 작동하여 용서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을 친다. 사회의 성문법이나 도덕법에 견주어 죄질이 가볍다면 쉬이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의 경우와 같이 부모를, 가족을 살해한 이를 용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피의자가 나와 매우 가까운 이였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마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런 상황에서 용서를 발휘하기란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연극의 주인공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비극적인 결점'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면 희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