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에서 사법페밀리가 사는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이라 나는 법조인에 관한 소설일 거라 생각하고 펼쳤다. 왜 책을 사기 전에 책 내용과 스토리같은것을 미리 안보고 제목만으로 가끔 구입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도 별 불만없이 잘 읽는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독서력이다. 잡식이니 가능하지 싶다.
사법비리, 전관예우 이런 말들로 사법부의 어두운 면만을 들추어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는 안 살아 봐서 모르지만 아직 이 나라에는 인맥, 학연, 지연, 등을 아주 중요히 생각한다. 이 책이 사법부를 말 하니 나도 같이 사법부를 예를 드러 보자. 경상도에서 재판을 할때의 일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전남 광주 출신의 변호사였고 상대방은 그 해당 법원의 해당 재판부의 판사와 동향인 부산의 모 고등학교와 한동네 살던 사람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공교롭게도 재판에 졌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길거라 확신했던 재판에 졌을 때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얼마전 민사판결로 3천 만원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5시 반에 개정한 재판에서 판사는 1,500만원은 현금으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계좌이체로 하라고 명령했다. 그것도 그 자리에 가져 오란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은행 계좌에 현금이 있더라도 4시가 넘은 시간에는 현금출금기에서 돈을 뽑을 수 있는 한계를 알 것이다. 억지 스럽지만 당사자는 지인들을 동원해서 돈을 마련하느라 두시간을 뛰어 다녔다. 결국 7명에게 이체를 해서 그 7명이 현금을 찾아서 왔다. 왜 그런 일을 만드는지 이해 안가는 경우가 참 많다.
전관예우라는 것도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법계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판사와 동기나 동향등 찾아 다니고, 그나마 돈이 조금 있는 사람은 전관도 찾는다. 일반 개인 변호사를 찾으면 1,000만원 달라고 했었는데, 전관을 찾으니 5천만원 달라고 한다. 일은 그분이 안하신다. 모두 다른 고용변호사 또는 사무장들이 다한다. 그러니 돈은 아무나 버는것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만 하고 결국 개인변호사와 일을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아직 구술보다는 서류로서 모든 상황를 판단한다. 이 책에서 처럼 서류를 제대로 안 보시는 판사님도 계시고 사무장이 써 주는 소장을 읽어 보지도 않고 재판에 나간 변호사는 더듬거리기도 한다. 왠지 티비 법정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멋지게 변론 해 줄것 같은 변호사는 결국 몇마디 종이의 글을 읽고 증거 자료 재출이 다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판사님도 인간인 지라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왔을 경우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아들이나 손주의 재롱을 보고 나왔을때는 그저 기분이 좋을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리는 나 많은 변호사나 나름 자신의 지위를 자랑스러워 하는 어떤 분들에게 절대 주눅들지 않는 분들도 많이 뵈었다. 변해가는 사법부를 지켜 봐야 하겠지만 법원도 재판부도 그리고, 검찰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느낀다.
나름 법원이나 검찰에 불만도 많지만, 불만은 발전을 나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일들의 한가지 해결 방법으로 법원 홈페이지에 법률소비자 게시판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어디 하소연 하고자하면 너무 복잡하다. 감시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감시를 하다보면 발전도 오고 썩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
|
견찰, 떡검... 판사와 변호사,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 내겐 너무 멀기만 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여전히 불신지옥, 그 자체 아닐까? 매일 같이 뉴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치, 사회면의 검찰 비리, 모호한 법원 판결, 변호사와 브로커, 대형 로펌 고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작태. 서민 대통령을 욕보이며 죽음으로 몰아가고, 나꼼수 4인방을 소환하고, FTA 집회에 물대포를 쏘게 하고, SNS도 규제한다니... 일상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조종하고 있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이며, 국민들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다. 그들도 국민이 아닌가?
그럼에도 권력의 시녀, 금권에 기생하는 무소불위의 그들을 조금은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TV나 영화를 통해 등장하는 주인공 중에는 공정과 정의, 신의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검사, 판사, 변호사도 있으므로.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불신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던 중, 김두식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을 만났다. 내가 아는 법학 교수라고 해봐야 조국 님과 김두식 님이 전부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의 현재를 진단한다고 하니 눈이 번쩍 뜨였다.
23명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것들을 정서적으로 재정리한 책이 바로 <불멸의 신성가족>이다. 저자가 말하는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첫 공동저작 <신성가족, '비판적 비관주의'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과를 논박한다>에서 유래됐다. 맞다. 멸하지 않는 그들이다.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직 진입이라는 관문을 거치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가족'(삼성이 몇 해 전 내보냈던 기업 광고의 컨셉트가 아니던가)이 탄생하는 법.
왜 그들은 예전과 변함없이, 일관되게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으며, 나름의 개혁을 통해 나아지지 않는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대한민국의 판검사와 변호사, 그들과 물고 물리듯 연결된 브로커들의 구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희망이 없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아직까지 난 법원 갈 일이 없었다. 혹 있더라도 어떻게 소송을 걸고, 변호사를 선임하며 재판에 임해야 하는 지에 대해 무지하다. 하다 못해 나의 인맥엔 판검사는 고사하고, 그 흔한 사무장 혹은 브로커 하나 없다. 이 책에서 말하듯 자신에게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들어줄만한 사람, 즉 법조인이란 인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불과 14.2%다. 나머지 85.8% 사람들(나를 포함해)에게 사법부는 별천지, 미지의 세계인 셈.
평소 검찰과 사법부, 변호사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은 '어렵게 사법고시 패스해서 저 정도 해먹어도 좋다' 혹은 '억울해도 변호사 선임하려면 돈이 엄청 깨질텐데', '돈은 둘째치고 시간 뺐겨가며 재판을 해봐야 승소하더라도 변호사 선임비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데, 안하고 말지' 정도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도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계속되는 재판 과정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튼 우리에게 너무나 먼 법원. 그들은 왜 변하지 않는걸까? 김두식 교수는 23명과 면담을 진행하며 신성가족들의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출발은 사법시험이다. 최근 로스쿨을 통해 문턱은 다소간 낮아질 테지만, 그럼에도 그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간 소위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그들. 큰돈과 푼돈, 거절할 수 없는 돈을 받아가며 왜 양심을 저버리는 것일까?
저자는 원만한 관계를 지적한다. 결국은 모두가 변호사가 되는 시스템. 전관 변호사가 현직 판검사의 선배이자 스승인 상황에서 그들이 쥐어주는 돈은 뿌리칠 수 없는 것. '거절하면 그만인데...'라고 하겠지만, 결국엔 좁은 법조계판에서 '4가지 없는 놈'이라 낙인 찍히기를 두려워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원칙 아닌 원칙이 되어버린 사법계다. 도덕 불감증이라 할만한 인터뷰이들의 말이 즐비하다.
거절할 수 없는 청탁과 돈, 그것을 거절했을 때 받게 될 무서운 평판에 대한 두려움... 판검사뿐만 아니라 변호사들의 돈벌이에 기생하는 브로커의 실체. 변호사 수임료의 30~40%는 브로커에게, 또 그 브로커는 작업조에게 전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시스템. 김두식 교수는 법조인이 이겨내야 하는 여덟가지 유혹을 팔로역정이라 이름하여 정리해나간다.
1. 새로운 언어로의 입문, 사법시험 2. 결혼시장의 유혹 3. 끝없는 서열경쟁과 관료제의 늪 속에서(법원행정처가 엘리트 중에 엘리트) 4. 판사는 없고 학동만 있는 양성 시스템 5. '원만함'의 한계와 권위주의 6. 살인적인 업무량 7. 변호사 개업, 작렬하는 포스, 초라한 내면 8. 감시자도 삼켜버리는 블랙홀
조목조목 문제 제기와 깊이 있는 논의가 인상적이다. 특히 '살인적인 업무량' 정도가 그들에게 연민을 가질 부분이라 할 만한데, 이또한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순전히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판검사의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신성가족' 모두가 한목소리로 반대한다. 단순히 재판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글쎄다. 사법권의 독립은 당연하지만, 그들에게 누구도 넘보지 못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엔 동의할 수 없다.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이 절묘하다.
들어가는 글: 사법시험이라는 희망과 절망 나가는 글: 억지로 찾아본 희망
특히 나가는 글에서 '억지로'란 말에 주목한다. 저자는 사법계에 대한 불신의 뿌리를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신성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찾고 있다. 법조문만 살펴보더라도, 그 얼마나 난해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가? 말보다는 글을 숭상하는 그들에게, 더욱이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그들에게, 엄청난 업무량에 허덕이고 있는 그들에게, 소시민들의 목소리와 변호사의 변론에 귀기울여 달라고 말하는 게 잘못된 것인가?
또 하나, 모두가 변호사가 되고 마는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원만함'이 신성가족의 이데올로기가 되어서는 사법개혁, 법조일원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억지로' 희망을 얘기한다. 바로 '시민이 희망이다'란 다소간 맥 빠지는 말로...
전화 한통 해줄 사람을 찾기 전에 용기를 갖고 판검사, 변호사들에게 말을 붙여보세요.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 지도 모릅니다. 우습지만, 별다른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이게 저의 가장 강력한 희망사항입니다. -P326
결국 맥 빠지는 거다. 어차피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는 달팽이가 100미터 달리기를 시작하며 결승선을 향해 가듯 천천히 변하고 있다. 절대 가까울 수 없는 동네다. 몇 일 전, 제53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21살 여학생이 최연소로 합격하고, 수석 또한 24살의 재학생이다. 그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2017년 사법고시가 폐지되고나면 나아질까? 로스쿨 졸업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다소간 해결이 될까?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으며, 꺼지지 않는 절망과 불 붙지 않는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판검사, 변호사가 됐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내 새끼에게만큼은 끔찍한 부모일 것이므로. 앞으로 견찰, 떡검, 와리, 브로커, 청탁과 관행이란 말로 그들을 비판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문득 이 시간, 한 사람의 그릇된 오만과 탐욕에 반대하는, FTA 반대 집회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 그들을 향해 쏟아대는 물대포에 분노하는 새벽이다. 나꼼수 30회가 분노 돋게 하는 지금이다. |
|
학창 시절 항상 나보다 뛰어났던 아이가 하나 있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한동안 연락이 닿질 않아 뭐하며 지내나 싶었는데, 법학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2년의 수험생활 끝에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또다시 공부 중이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사법연수원에서의 사투는 말로 표현치 않아도 짐작이 간다. 과거에 비해 많은 인원을 선발하기에 시험에 합격한다고 하여 핑크빛 미래가 보장되진 않는다. 게다가 로스쿨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나면 기존처럼 법조인들이 기득권을 누릴 수 있을지도 의문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불태운다. 실력 못지 않게 운도 따라야 합격할 수 있는 사법고시가 제 인생을 바꾸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거다. 의사 못지 않게 법조인들도 나에게는 딴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얼마나 공부를 잘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 알 길 없는 의대, 법대가 불러 일으키는 거리감은 적지 않다. 거기에, 성공한 그들은 경제적인 단위부터가 남달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위화감마저 들 때가 많다. 이는 마치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과도 같다. 부유한 계층이 자신과 유사한 신분과 결합을 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자신이 속한 세상 사람들과 여러 겹으로 얽혀 있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말한다. 특정 지위에 오르기까지 그들이 들인 노력은 물론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특권을 마냥 눈감아줄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가 한 사람을 죽이고 또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직업에 대해 우리가 품은 거리감은 법에 대한 불신으로도 강고하게 이어진다. 분명히 잘잘못을 따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존재함에도 사람들은 주저하고 또 포기한다.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거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 변호사 수임료를 제하고 나면 그게 그거라는 식의 자포자기.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지난 날 부패했던 사법부의 기억을 많은 이들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깨끗한가? 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은 혹 과거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청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기층에 흐르는 가부장제의, 관료제의 견고함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는 집단은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스스로 청탁을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하여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보다 한참 위인 선배가, 지금은 변호사이지만 고위직 판사로서 오랜 기간 재직했던 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를 딱 자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모두가 문제삼지 않을 때 혼자만 뒤돌아 선다면 그 사람은 정직하단 평을 받기 보다 오히려 그 조직에서 잊혀질 따름이다. 혹 훗날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현재 조직에서의 위치에 따라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외부 사람들의 청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흔드는데 언제까지 부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정말 나의 부모가, 나의 자녀가 절박하게 매달리는 데에 이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혹 실질적으로 아는 이에게 의사표현을 하진 않더라도 ‘노력해보겠다’는 립 서비스 정도는 해줘야 사람들로부터 무난하단 평을 들을 수 있다. 그러고보면 특권 계층처럼 보이는 그들의 삶도 참 처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희망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다. 이 즈음되면 처절하기까지 하다. 판검사의 대폭증원이나 법조일원화 등이 당장 도입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나마 가장 현실감 있는 방안은 우리 개개인이 관심을 보다 많이 갖는 것이다. 법에 대해 보다 많이 공부하고 제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한 만큼 의뢰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이러한 우리의 행동은 더디겠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법조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판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개인의 영화를 위한 것만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
![]()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개입 논란이 확산되고, 사법부의 신뢰가 떨어진 때라 사법부의 현실을 다룬 [불멸의 신성가족]에 관심이 갔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판사, 검사, 변호사에서 브로커, 기자, 경찰, 마담뚜까지 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 사법현실을 재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의뢰인은 대부분의 판사가 돈을 받고 판결한다고 믿고 법조계에선 과거에는 소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 그런 일은 없다며 양극단의 견해를 보인다. 일반화와 주관성이라는 한계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이런 견해의 차이가 우리 사법의 현재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법관평가의 사례에서 판사나 변호사 모두 ‘불공정한 재판’보다 ‘의사소통의 문제’를 지적한다. 재판받는 사람들은 ‘과정의 공정성’이나 ‘충분한 의사소통’을 중요시하고 재판하는 사람들은 ‘과정의 중요성’이나 ‘과정의 효율성’을 이야기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지만 사실 법은 멀고 포기는 쉽다.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자신의 과실로,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면에는 사법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법은 ‘잘 지켜져야 할 대상’이었을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아닌(51쪽) 것이다. 어떤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이익보다는 자기 이익을 챙기거나 법조계 내부의 논리에 충실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의뢰인들은 송사를 함으로서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느끼기보단 일찌감치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맑스는 “비평가는 절대로 몸소 사회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우어 일파를 신성가족이라고 부르며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묘사했다(146쪽). 다른 시험들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많이 친인척들이 기뻐한다. 그들은 사법시험 합격자들을 ‘든든한 대변자’이자 언제 당할지 모르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전화 한통이라도 해줄 사람’이라고 기대한다. 미국의 보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우리나라를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저신뢰사회‘라고 규정했다. 가족주의 사회에서는 혈연관계로 엮이지 않으면 신뢰할 만한 토대를 갖기 어렵다. 직장을 다니다 뒤늦게 전공을 바꿔 내가 다닌 대학이 아닌 타학교 대학원을 다녔다. 강의실로 가던 중 전공교수님 한 분을 만났다. 교수님은 내게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으셨다. **대학을 나왔다고 말씀드리자 고향은 어디냐고 물으셨다. 서울이라고 대답하자 어느 고등학교를 다녔냐고 물으셨다. 그 뒤로도 몇 가지를 더 물으신 후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와 난 공통점이 하나도 없군.” 공통점이 있다면 도와줄 수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말로 들렸다. 검사의 세계는 조직 사회다. 조직에 한 번 찍히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더 많은 삶의 기회를 얻으려면 사소한 불의를 볼 때마다 문제제기를 하는 것보단 눈을 감고 못 본 척하고, 귀를 막고 못들은 척하는 것이 현명하다. 가끔 시간이 나면 TV법률 프로그램을 본다. 그때마다 드는 공통된 생각은 변호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같은 법률을 놓고 해석하면 같은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건의 실체보다는 대리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는 사람들은 전관대우의 변호사, 영향력 있는 변호사를 찾고 그들에게 많은 돈을 쓴다. 영향력이 없는 변호사들이 사는 법은 거액의 브로커를 통해 의뢰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는 의뢰인의 무지 또한 한 몫을 한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경제적 사정으로 그만 둔 사람들은 브로커의 길을 걷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주는 보수는 적고 의뢰인을 직접 상대해야 하며 신성가족의 제사장 노릇도 해야 한다. 검찰에 붙들려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떨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법에 희망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부당함에 대한 판사들의 조용한 저항, 신성가족 시스템을 해체하기 위해 진행 중인 여러 개혁 작업들, 두려움을 버리고 끊임없이 판검사에게 말을 걸고 변호사에게 권리를 요구하는 일들을 통해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많은 법조인들은 정치인으로 변신을 한다. 판검사, 변호사의 지위가 예전만큼 높지 않다고 하더라고 그들의 영향력은 대한민국에서 무시할 수 없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사법계의 얘기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말을 아껴야 하는 시대, 목소리를 낸 그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그래도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닐까.
|
|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있다. 음습한 뒷골목의 검은 거래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이 제격일 법한 영역이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의 사법부이다. 그리고 여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가고 있는 사법부에 대해 깊숙이 칼을 꽂아 넣지는 못 해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시민들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책 <불멸의 신성가족>이 있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학 교양서인 <헌법의 풍경>을 썼던 김두식 교수의 책으로서, 대한민국의 큰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법조계를 질적 연구를 통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을 통해 수박 겉핥기 식의 분석을 하기보다, 법조계에 몸 담았거나 그 근처에서 빼꼼히 고개라도 내밀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술면접을 시행하여, 보다 심층적이고 솔직한 분석을 통해 법조계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 들려 오는 법조계 안팎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나라에 발 붙이고 살아가면서 '법'이라는 것을 피해갈 수 없는 국민이라면 한번쯤 귀 기울여 보아야 할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윗동네 물이 다 그렇지 뭐'하는 식으로 간단히 치부하기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충분한 명쾌함을 지닌 고발이며, 심지어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인 '그들만의 리그'는 비소가 흘러나올 만큼 재미있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으로 다투어 봤자 그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일들과 사법부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 등으로 인해 아무런 이득도 없이, 혹은 더한 불이익을 얻고 지쳐 떨어져 나가야 하는 일반 시민의 경험을 들려 주며 이를 '비싸고 맛없는 빵'에 비유한다. 비싼 돈을 들여 법 앞에 서봤자 그 효용은 느끼지도 못 하고 상황을 종료해야만 하는 것을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는 빵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왜 법이라는 것이, 법을 다루는 법조계라는 곳이 비싸고 맛없을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요인을 짚어나간다.
그 요인을 간단히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현상이지만)목적이 불순한 돈이 오고 가는 법조계의 관행, 인맥으로 끈끈이 얽힌 법조계를 이루는 개개인 간의 관계 혹은 조직성, 사람 끌어 모으는 수완을 밑천 삼아 사건을 물어오고 그 대가로 소개비를 챙기는 브로커, 그리고 머리엔 까치집을 짓고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 차림으로 고시원에서 묵혀지던 시절의 때를 벗고 번쩍 번쩍 빛나는 세상으로 흘러 나온 법조인을 유혹하는 여러 손길 등. 하나같이 결코 간단하지 않으면서 법조계에 깊이 뿌리 박힌 채, 아래로는 계속 썩어 들어가고 위로는 풍성한 가지를 무기로 법조계 담 너머의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단순히 저자의 주장이나 의견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저러한 요인들 가운데서 부딪히며 지내 온 사람들의 증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직접 경험한 사람의 구어체에서 나오는 현실감에 나도 모르게 동요하게 된다. 단순히 이런 영역도 있군- 하는 방관적인 태도로 첫장을 펼쳤다가도, 이어지는 증언과 부연설명에 이거 이제 바뀌어야 하는데- 이대로는 안될텐데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조계에 정말 변화가 필요하겠군, 하는 단단한 생각이 들 때가 되면 저자는 얼룩진 법조계에서 '억지로 찾아본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법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법조계를 이끌어가는 주체인 법조인들의 변화, 시민의 용기와 지혜를 요구한다. '그들만의 리그'의 주인공들의 변화도 당연하지만, 시민 또한 살아가면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법조계를 두려워할 것 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권리를 찾으며 동시에 법조계의 변화 또한 견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조계가 예나 지금이나 심하게 얼룩져 있지는 않다. 1997년 의정부/대전 법조비리 사건을 이후로 자체정화의 노력과 구조적인 변화, 법조인들의 세대교체 등을 통해 어느정도 정화가 되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 국가를 꾸려가는 기준을 제시하는 곳이 법조계라는 것을 감안할 때, 아직도 부족하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누구나 믿고 맡길 수 있는 법조계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도둑이 잘못한 일을 경찰에게 물을 수는 있어도 경찰이 잘못한 일을 경찰에게 묻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처럼, 법조계 또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계의 청렴결백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어 우리나라 법조계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
|
책날개에 보니 지은이인 김두식을 '책임연구'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법이라는 것이 어쩐지 어렵고 멀리있는 것 같고, 죄인이 된 기분도 들고...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것 같다. 실제 책을 읽다보니 판사가 (신분을 숨기고) 뭔가를 제출하러 갔다가 느꼈던 불친절함도 나오기도 한다. 이런 사법체계를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명하고 그 안의 실제를 질적 연구한 내용이다. 읽다보니 더 어렵다..싶기도 하고, 이런 일들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영화같기도 하고 그냥 일반 사람들 이야기같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은 조금 슬프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책이 발간되었었다는 사실에 작은 희망을 느낀다. 고등학교때 친구들 중 상당수가 법조계에 있다. 처음 글에서 밝혔듯, 이것이 정말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 사법체계에도 희망이 가득하고 좋은 사람이 많기를 바란다. |
|
이 도서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현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현실상을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사법부의 부정적인 면들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 들이 아니지만,왠지 이 도서를 읽으면서 현실의 냉정함과 마주하는게 우울증을 유발하고 있다.
법은 잘 지켜야 하는 대상 일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아니라는게 일반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 같다. 내가 받아야 할 보상의 꽤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존재이고 그래서 그렇게 지불하고 소송해봐야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도움을 안 받는 것이편하다는 것이다. 포기가 곧 지혜라고 확신하는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판검사가 돈을 먹고 그에 따라 결론을 바꾸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피의자로 수사했던 검사들이 상대방의 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자기편이 되어줄 검사에게 돈을 주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런 돈은 대부분 변호사를 통해 전달 되는 것이 일반 상식처럼 여겨진다. 판검사들이 일정한 틀을 미리 짜놓고 사건을 꿰어맞추려 한다는 것은 당사자나 변호사들이 많이 느끼는 문제점중의 하나 입니다. 변호사 들도 며칠전까지는 판 검사 였던 이른바 전관 변호사 들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법원만 가면 아무 이유없이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마구 떨립다고 합니다.. 판사앞에 가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고 조리있게 말하기도 힘들고,절대로 판사를 감정적으로 자극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변호사나 주위 법률에 경험이 있는 분들의 견해 입니다. 판검사들의 용어,말투,태도 자체가 여전히 권위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음 재판기일이나 형량조차 제대로 못 듣고 와서는 판사가 뭐라고 웅얼웅얼 했는데 목소리가 잘 안들리더라 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법은 타자성의 세계이며, 미지의 세계에 속한 영역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자가 권리를 침해 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 처벌 합니다. 보수와 진보가 몇번 자리바꿈을 해도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퇴임 후 5년동안60여억원의 수입을 거둔 대법관 출신 변호사도 있습니다. 조심해서 번 돈이 22개월 동안19억원인 변호사도 있구여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변호사가 판 검사에게 부탁을 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온다는 믿음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사건 선임에 앞서서 사람들은 변호사의 실력보다는 그 변호사가 전관인지를 먼저 확인 합니다. 실력있는 변호사보다는 청탁할 수 있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은 우리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담당 판검사와 연줄이 있는 사람을 찾는 식으로 진행 됩니다. 변호사만 판검사들에게 청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료 판검사,일반직 직원, 심지어 법조를 출입하는 기자들도 청탁을 합니다.법원 직원 전체를 가족으로 본다면 그 가족은 보통 가족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경쟁을 거쳐 선발된 일종의 신성가족 입니다.
형사사건으로 처벌된 여성 범죄자는 전체의 14~17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0퍼센트 이상의 범죄는 남성들이 저지릅니다.아무래도 남성들의 사회 활동과 연관된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법원 검찰과 맺어지는 모든 관계는 청탁의 통로가 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법원이나 검찰의 일반직 공무원들도 함께 근무하는 판검사들에게 청탁을 합니다. 검찰 신성가족에서 전직 고위 검사들은 아버지들 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검찰에서 물러났어도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그런 아버지들에게 또라이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청탁을 들어주지는 않더라도 들어주는 시늉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법원에서의 마지막 지위가 신성가족 내에서의 서열과 변호사 개업 후의 수입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승진은 단순한 명예나 권력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훗날의 변호사 업무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변호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모든 판검사가 결국은 변호사를 하게 되어 있는 우리 법조계의 구조 입니다. 판검사로 일하면서 실력을 쌓고 그 실력을 이용해서 변호사로 돈을 버는 것도 문제입니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이 변호사를 키우는 데 쓰이는 셈입니다. 개업 변호사나 상당수 소규모의 로펌에서 브러커를 이용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해 주고 수임료 중 일정 비율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브러커 입니다. 어떤 부장 판사는 현재 법조계의 수임 경쟁은 누가 브러커를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의 전쟁 이라고 정의 합니다.결국 전관 변호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도 순전히 실력 때문이랄 수도 없고 브러커의 도움 덕분인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입니다. 브러커는 무엇보다 발이 넓어야 합니다. 애경사를 철저히 챙기고, 모임이 있으면 총무도 맡고, 해결사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적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택시회사,유흥가,성매내집결지,건설현장,병원,경찰서,교도소 등 사건이 터질 만한 곳을 맴돌다가 일이 벌어지면 맨 먼저 달려가서 사건을 물어 옵니다. 마당발 중의 마당발인 전현직 경찰관이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하면 최고의 사무장이 됩니다. 몫을 정확히 가르지 않으면 곧 아웃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한국 법조인 대관 "이 신통기로 통합니다. 브러커 들에게 이 책이 밥줄인 셈입니다. 길 가다가 간판보고 변호사를 찾아 가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이 우리 현실 입니다. 우리나가가 외국과 달리 브러커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지,브러커라는 직업이 필요합니다. 브러커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평등주의 사상때문입니다, 브로커가 가진 정보력과 능력과 경험에 돈을 주고 싶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이름을 날린 변호사도 브러커를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경찰,검찰,법원공무원들과 브러커가 아예 한 통속이 되어 노골적으로 사건을 말아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구속될 사안이 전혀 아닌데도 경찰에서 검사에게 영장을 신청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합니다. 원래 영장 청구는 검사의 일이지만, 경찰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이 이를 검토하여 법원에 청구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 구속될 사안도 아닌데도 영장을 신청하면 일단 당사자는 당황하여 초주검이 됩니다. 그래서 담당 경찰관에게 어떻게 하면 구속이 안될 수 있느냐 라고 물어보면 경찰관은 자신이 잘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 줍니다. 대게 검찰 출신인 그 변호사는 당연히 고액의 수임료를 요구 합니다.
사법시험을 인간성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의 과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잘하는 사람을 밀어주는 시험 중심사회에서 오로지 자기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자기를 채찍질해서 결국 거머쥔 합격증으로 새 언어를 사용하는 신성가족의 일원이 된 사람들에게 이웃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이들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 하겠지여,생존을 위해서 빈자보다 더 좋은 프리미엄과 조건을 내세워서 말입니다. 꿈 많은 고시생,법률가 지망생이 이렇게 변해가는 과정에서 왜 적절한 감시와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지 안타까울 따름 입니다. 기자와 검사는 철저한 공생 관계에있습니다.서로가 정보를 흘리고 그 정보로 먹고 사는 공생관계 말입니다.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한명도 없는 85.8퍼센트의 시민들에게는 사법자체가 미지의 세계인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불신은 이해의 부족에서, 이해의 부족은 미흡한 의사소통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모든 사람들이 법원,검찰과 순조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저는 판검사의 대폭 증원이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법개혁은 주로 변호사의 증원에 중점을 두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리고 로스쿨을 만든 것입니다.
장벽밖의 시민들은 그 장벽 안쪽을 그저 짐작이나 하며, 불안,불신,불만을 키워갔습니다. 당장 신성가족의 헤체가 어렵다면, 시민들이 먼저 그 장벽을 무너 뜨려야 하는데 거기에 앞장서고 사회를 바꿀려고 하는 진보주의자는 철저히 신성가족에 의해 짖발히는게 지금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 시도가 판검사에게 말걸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판검사들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 장벽이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용기를 내 판검사들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그래야 그들도 우리를 인정해 줄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당사자 만큼 절실하지 않고, 당사자 만큼 현실감 있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한국 법조인 대관"도 찾아보시고 브로커들이 신통기로 사용한다고 하니 시민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국민들 각자 자기 권리를 지키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인격, 인권의 용기와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을 붙이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신성가족은 자연스럽게 해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
사실 법조계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 책에서 언급되듯이 나는 "85%"의 대다수, 주위 일가친척 중에 법조계와 관련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고등학교 때부터 검사나 판사가 되고싶어했고, 지금은 로스쿨 입시에 관심있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서 받은 느낌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법조계에 대해 단지 동경과 두려움 등의 감정만을 갖고 있던 나에게 법조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 소위 신성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들만의' 행태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판사는 재판에 있어서 판사의 양심에 따라 결정하며 신분상 독립되어있다고 하는데 이는 허울뿐인 말에 불과했다. 일반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위 윗사람들에게 아양과 아첨떠는 것은 기본이고, 신임 판사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군대식 도제교육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게 과연 우리나라 판사의 현재 모습인지 내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법조계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들었을뿐더러 나의 진로에 있어서도 다시금 생각케 해 주는 책이었다. |
|
- 그들에게서 ‘불멸의 신성가족’의 절대적 권위가 아닌 ‘솔로몬의 지혜로움’과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의 저울과 칼’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 시절에 읽었던 여러 동화책들 중에서 ‘솔로몬 왕의 이야기’가 있었다. 기원 전 10세기 경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위대한 왕 솔로몬은 그 지혜가 무척 뛰어났는데, 그의 그런 총명함과 현명함이 돋보이는 몇 가지 재판 이야기들을 어린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쉽게 수록한 책이었다. 세 남자와 돈의 이야기도 있었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명확하고 분명하게 해결하는 솔로몬 왕을 보며 정말 지혜롭고 뛰어난 임금이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내게 처음으로 새겨진 법관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법관 내지 판사라는 존재는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는 솔로몬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 즉, 세상의 거짓과 불의, 부도덕한 일로부터 진실과 정의, 도덕과 양심을 지키고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들을 위해 최대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정의의 사도 내지는 파수꾼이었다. 오른손에는 저울을, 왼손에는 칼을 들고 두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서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처럼……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내가 어린 시절 생각했던 법관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현 주소를 까발리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솔로몬에 대해서, 법관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내게 마치 이 책은 “솔로몬은 없다. 그건 다 환상이고 착각이다.”라고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깐. 그랬다. 솔로몬은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먼 옛날 이스라엘 땅의 전설에 불과할 뿐, 대한민국 이 땅의 법조계에는 지혜로운 재판관 솔로몬도, 두 눈을 가리고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도 없었다. 다만 ‘신성가족’만 있을 뿐이었다. 사법시험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가 된 뒤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는 ‘불멸의 신성가족’……. 사법시험을 볼 때야 나름대로의 포부나 꿈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고나면 그들은 같아진다. 좋은 ‘평판’을 받아 ‘원만한’ 판사(혹은 변호사, 검사)가 되어 부장판사, 법원장 등으로 승진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 되는 것이다. 그 ‘원만함’을 위해 ‘거절할 수 없는 돈’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 내지는 ‘청탁’이 만들어진다.
사사로움과 이익은 보지 않겠다는 양 두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오른손에는 저울과 왼손에는 칼을 들고 서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도 정의의 여신 조각상이 있다. 그것은 유스티치아와는 조금 다른데 한국 여인의 모습으로 조각돼 있으며 왼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앉아 있다. 하지만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도 우리의 것도…… 뜻하는 바는 모두 같지 않을까?
|
|
김두식 교수님의 책 "헌법을 풍경"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고 김두식교수님의
팬이 되버렸습니다 그책 농담이 아니라 70번도 읽었을거에요 정말 어떻게
이런글을 쓸수 있을까 정말 부럽더라군요 그리고 특히 행동하지 못하고
그냥 현실에 안주하는 부분에 대해서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나는 경찰순경이었죠 그런데 이책을 읽고 정말 양심적인
글을 썼다가 진짜 거의 한번 경찰조직에서 당할뻔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주제파악을 못한거죠 경찰순경 출신이 감히 세상물정 모르고 그래도
우리사회에서 지도계층에 있는 명문대 검사출신의 교수님이 쓴 글에 감명
받아서 정의를 말하겠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인지
그후 평화의 얼굴이라는 김두식 교수님의 책도 보았죠 처음에는 헌법의 풍경에
비해서 지루하고 딱딱한 면이 있었는데 몇번 읽다보면 김두식특유의 그 알기쉽고
깊이있는 부분에 대해서 역시 김두식의 책은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제가 김두식교수님의 내용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수는
정말 힘없고 파워없는 놈에게는
결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지못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김두식
교수님의 책은 내용만 따지자면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경우
를 예를 들어서 보면 제가 경찰조직을 나온후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게 되죠 뭐 제가 거창한 경제사범이나
양심적병역거부자도 아니고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많이잡혀간다는 예비군설치법
위반이었는데 진짜 이것때문에 저개인적으로 파란만장한 일을 겪에 됩니다 그
자세한 이야
기는 그만두고 제가 잘못한것이 없으니까 "헌법의 풍경'에서 나오는 생각만 한
사람 평생 여기 잠들다 "를 깨기위해서 제 나름대로 사명감으로 한번 도전해
봅니다 제가 벌금 몇십만원이 아까운것도 아니고 이 예비군법을 고치면 후배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나마 되기 위해서 그런데 역시 그 과정은 정말 어렵고 귀찮더라군요
이과정을 겪으면서 헌법의 풍경이나 이번에 나온 불멸의 신성가족이
돈없고빽없고 권력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라 계속 노력해라 도전해라가
얼마나 탁상공론적인 현실인지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적이 있었습니다
변호사없이 제 혼자서 할려고 하니 사실 법률에 대해서 잘 모르는게 있어서
김두식교수님께 편지를 보냈는데 결과는 확인은 했는데 좀 서운하게 답변을
안주시더군요 그래서 무슨 사정이 있겟지 생각을 하다가 도저히 법을 잘 몰라서
법률구조공단에 갔는데 담당자가 불친절한 목소리로 바로 3초만에 '그건 이것에요
성의없게 대답을 하데요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 좀 기분이 상했습니다 제가 법률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아무리 간단한것이라도 모를수 있고 그래서 김두식교수님에게 물어봐도 안가르쳐
주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왔잖아요 그런데 그런 소리를 당하니까
불멸의 신성가족에 나왔있는데 법원직원들의 불친절때문에 포기하고 싶다는
부분이 이해가 갑니다 그게 정말 한두번이지 경찰 법원을 거치면서 여러사람
만나보면 참 뭘랄까요 속 상한 적이 많습니다 (향토예비군때문에 결국 대법원
까지 가서 유죄를 판단받았죠) 그런데 그 고생을 하면서 누구 하나 정말
법의 도움이 필요한데 정말 도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역시 변호사들은
돈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라서 이런 정말 사건같지 않는 사건은 거의다
그냥 형식적으로 대답을 하데요
사실 솔직히 검사출신인 교수님께서
그렇게 간단한 사실을 잘 몰랐을까요 아마 바쁘셔서 그렇겠죠
아무튼 불멸의 신성가족에 나왔있는데로 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친절
여러가지 불리한 요소들 때문에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진짜 어렸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정말 돈없고 우리사회에서
낮은 계층이라면 진짜 김두식교수님처럼 편지나 당당하게 따져라 그렇게 하지마십시오
제 경험으로는 왠만한것은 참고 정말 자기 신상한 중요한 일에 대해서만 움직이십시오
그리고 정의는 참아도 되지만 자기에게 손해가는 불이익은 절대로 참지마십시오
그리고 정의요 법요 그딴거 너무 믿지마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법이라는 것은 영화 타짜의 아귀가 말하는
"법 아직도 그 뜨뜨미지근한 것을 믿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의를 말하고자 하면 최소한 명문대 출신에 사시나 행시같은 배경이
있고 그런말 해도 짤려도 먹고살 재주가 있으면 그런말 하십시오
나는 솔직히 지금 생각한것데 후회합니다
헌법의 풍경과 불멸의 신성가족에 나오는 편지 그리고 항의한것을
시간을 되돌리수만 있다면 전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김두식교수님의 책은 이론은 너무나 휼륭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별 다섯개를 주면서 왜 그게 결코 현실속에서는 이루어질수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껴야 하는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