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19세기 이후 사회과학과 자매학문인 역사학을 이 한 마디로 요약한다. 제도로서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역사는 200년이 조금 넘는다. 모두 19세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학문들을 학문이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동일하다. 모더니티는 무엇인가? 모든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질문이다. 물론 모더니티의 구체적인 이름에선 차이가 있다. 사회과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는 시장이라 했고 애덤 스미스를 재해석한 맑스는 자본주의라 했다. 맑스에 대한 반발로 자신의 학문경력을 시작한 베버와 뒤르켐도 나름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은 모두 한 마디로 요약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은 왜 이렇게 잘 났느냐? 한 마디라는 것이다. 편의상 모더니티의 이름을 자본주의라 하자. 19세기 이후 사회과학의 그리고 역사학의 질문은 자본주의는 왜 특별하고 어떻게 특별한가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왜 유럽에서’만’ 태어날 수 있었고 어떻게 유럽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간단하게 왜 이렇게 유럽은 특별한가란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엿다. 그러나 저자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한 세기 반이 넘도록 모든 서양인과 상당수의 비서양인은 이 모든 사건들은 서양의 주도로 서양의 울타리 안에서만 일어났다고 믿었다. 서양은 세계경제의 심장이엇으며 최소한 1500년 이후로는 자본주의 성장의 본산이요 원동력이었다. 자본주의는 한참 나중에야 ‘서양’에서 ‘동양’으로 ‘수출’된 것이다. 상당수의 서양인은 1000년 이후로 또는 그 이전부터 서양이 우위를 점했다고 주장하면서 유럽인만 가진 예외적 특성과 능력이 이런 발전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고 넌지시 덧붙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그런 질문 자체가 반역사적이며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헛소리일 뿐이라 말한다. 최소한 1800년까지 세계경제는 동아시아와 중국이 중심이었다. 이 사실에 대해 모더니티론자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이책의 질문이다. 이책의 제목인 리오리엔트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관점을, 근본문제의식을 다시 세워야한다(reorient)는 것과 그 재정립은 동양을 재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재정립은 분석단위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는 언제나 하나의 세계경제로 움직였으며 세계화란 말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에서는 아니지만 저자는 이전의 저서에서 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청동기시대부터 하나의 시장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유럽도 아시아도 그 일부였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계경제라는 단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브로델과 그 영향을 받은 월러스타인, 아리기의 작업은 그런 시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작업도 여전히 오리엔털리즘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이 참여했던 세계체제론의 질문은 유럽의 세계-경제가 어떻게 전세계로 확대되었는가, 이다. 유럽 세계-경제의 역사가 바로 세계화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분석단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세계체제론이 말하는 유럽의 세계-경제는 수천년간 존재해온 더 큰 세계경제의 일부였고 그 일부로서 볼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경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서구의 부상은 재해석되어야 한다. “세계경제의 판도변화는 1850년 아니 어쩌면 1870년 이후에야 실제로 가시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점점 굳혀가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양이 우위를 점하는 기간은 한 세기에서 한 세기 반 가량 줄어들게 된다. 1800년 이후 얼마동안까지도 세계경제에서 중심적 지위는 아닐지언정 선도적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아시아가 다시금 예전의 지위를 탈환할 채비를 갖추면서 세계경제의 판도에 또다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가 뒷전으로 밀린 것은 장구한 역사의 시간관념으로 보았을 때는 극히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이처럼 세계의 역학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뜻이 있는 사람은 기존의 역사서술과 사회이론을 아니 기존의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도모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리오리엔트라고 단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럽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유럽을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이다. 유럽의 부상은 “유럽 스스로 달성한 것도 아니고 합리성, 제도, 기업가 정신, 기술, 온난한 기후, 한마디로 유럽인이라는 인종의 유럽’예외주의’ 덕분에 이룩한 것이 아니다. 근세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중요하지도, 앞서 잇지도 않았다. 유럽은 또 세계경제나 세계체제를 감쌀 수 있을만큼 ‘핵심부’나 ‘중심부’에 있지도 않았다. 유럽이 ‘중심부’를 차지했다고 주장하는 ‘세계-경제’ 내지 ‘세계-체제’는 그 자체가 현실 세계경제의 전체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주변적이고 미미한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햇다. 1800년 이전에 세계경제에서 우세한 지위를 점한 지역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시아였다. 당시 세계경제에서 ‘중심적’ 지위와 역할이 있었고 ‘여러 중심’ 중에도 서열이 있었다면 그 정점에는 중국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16세기의 포르투갈이 17세기의 네델란드가 18세기의 영국이 세계무역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헛소리이다.” 브로델과 월러스타인, 아리기가 분석하는 자본주의 또는 세계체제의 역사란 유럽이 어떻게든 세계경제에서 한자리 차지하려는, 더 구체적으로는 막강한 아시아가 주도하는 시장에 끼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역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역사의 시작은 십자군 원정부터였다고 저자는 본다. 십자군 원정 이후 유럽 세계-경제의패권은 이탈리아 도시들이 잡았다. 그들이 아시아와의 무역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이 뒤를 이엇고 어떻게 하면 중국으로 가는 단거리 항로를 찾을까 하는 시도가 컬럼버스의 항해였다. 스페인, 그리고 네델란드, 영국도 모두 아시아와의 무역 때문에 패권을 잡았다. 아리기 식으로 말하자면 아시아와의 무역은 유럽패권국의 mother trade였다. 유럽이 아시아 시장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수단은 아메리카의 은이었다. 저자는 이것을 ‘콜롬버스식 교환’이라 말한다. 유럽은 은을 주고 아시아는 상품을 주는 관계이다. 유럽은 은 이외에는 아시아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아시아 경제의 경쟁력(상품의 질과 가격)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전세계 대부분 지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았다.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유럽은 아프리카와 특히 (식민지인) 아메리카의 은과 금을 헐값으로 가져왔다. 유럽이 그 대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 준 것은 유럽에서 만든 것 아니라 아시아에서 수입한 상품이엇다. 유럽의 전체 수출품 중 금은이 차지하는 비율은 2/3를 밑돈 적이 한번도 없엇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경제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논리로 돌아갓다.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경제가 흑자를 보고 경쟁력이 없으면 적자를 보는 것이다. 1800년전까지 항상 흑자를 본 것은 중국이엇고 유럽은 항상 적자를 보았다. 귀금속의 유출에 대해 불평한 것은 로마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의 위계를 1그룹: 중국, 2그룹: 인도, 서아시아, 동남아, 3그룹: 유럽의 순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이 지불한 은의 절반은 결국 중국이 가져갔다. 1그룹과 2그룹의 지배자들은 상업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특히 오스만제국과 무굴제국, 사파비 왕조 등은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을 키워 돈을 벌어들이는데 적극적이엇다. “오스만은 레반트 무역망의 주역이었고 또 그 무역망을 통해 제국으로 성장했다ㅓ. 야심과ㅣ 영리 추구, 패권의식에서 오스만 제국은 유럽 각국과ㅣ 다를 바가 없었다. 하나의 국가로서 오스만은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처럼 행동햇다 오스만인이 영토확장에 나선 것은 맹목적인 팽창욕 때문이 아니라 동양과의 무역을 독차지하려는 야심 때문이엇다. 고위 관리들은 술탄에게 국부 창출을 위해서는 정복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부추겼다. “종교적 수사학은 자국의 패권을 정당화하고 군부와 인민의 지지를 규합하고 타국의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유럽-아시아 권역의 모든 패권국이 전략적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오스만부터 무굴제국까지 제국의 재정을 지탱하는 것은 상업에서 얻어진 돈이엇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과 인도의 무굴 제국은 모두 무력을 중시하는 ‘화약제국’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엇다. 모두 돈벌이에 혈안이 된 제국이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제국 내외에서 이루어지는 무역 없이는 존립할 수 없었다.” 중국 역시 다를 것은 없었다. 뭐라고? 서아시아나 인도, 동남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그리고 일본)은 대항해시대에 해금정책(내지는 쇄국정책)을 펴지 않았나? 그러나 중국은 한번도 해외무역을 차단한 일이 없었다. 중농정책이 관철된 명대에도 광저우는 개항장이었고 그곳으로 들어온 은이 있었기 때문에 일조편법이 가능했다. 명나라가 세금을 은으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인 은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명나라가 멸망한 이유를 16세기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은의 부족 때문이엇다고 본다. 은의 부족으로 재정이 붕괴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경제에서 어느 지역이 우위에 있는가를 아는 지표 중 하나는 인구와 도시화라고 말한다. 인구가 많고 도시화 비율이 높다는 것은 경제의 부양력이 높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명대 말엽 그러니까 17세기 초반 난징의 인구는 100만이었고 베이징 인구는 60만을 넘어섰다. 1800년 광저우와 인접한 자매시 포산의 인구를 합치면 모두 150만이었다. 이것은 서유럽의 모든 도시인구를 합친 것과 맞먹는 수치다.” 물론 중국의 무역관계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자유롭고 평등한 상거래가 아닌 예치 이념에 따른 조공무역관계였다. 그러나 “중국조정은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중국은 남아도는 자국의 물자를 수출하는 대신 그보다 훨씬 효용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막대한 양의 은을 해마다 조공국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이러한 거래를 다분히 이념적으로 ‘조공’이라고 불렀다고 해서ㅏㅏ 그 본질적인 기능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은의 형태로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 유럽도 예외일 수 없었다. 중국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로 조공국들이 여러 개의 동심원을 따라 배치된 위계구조는 지나치게 이념저긍로 보일지 모르나 이면의 현실을 정확하게묘사한다. 중국경제의 압도적 우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 있던 인도와 동남아의 지위 등 다국간 무역체제 전체의 수지를 따져보면 중국은 결국 전세계의 은이 빨려드는 최종적인 ‘배수구’였다.” 막강한 제조업과 비단, 도자기를 자랑하는 중국이 은본위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조공무역이 위력을 발휘한 18세기까지 세계경제의 화폐는 은이었다. “세계경제에서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렸던 지역은 아메리카, 일본, 아프리카, 유럽이다. 아프리카는 금과 노예를 수출해 적자를 매울 수 있었고 아메리카와 일본은 자체 생산한 은을 수출했다.” 그리고 유럽은 식민지인 아메리카의 은을 팔아 세계경제의 입장권을 샀다. “유럽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메울 수 잇는 마땅한 생산품을 만들지 못했다ㅓ.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세 지역의 수출품을 이동시키는 ‘관리자’ 역할을 하며 근근이 버텼다. (세계경제의 중심인) 아시아 시장에 팔아먹을 변변한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던 유럽인은 은에 목을 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유럽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가져온 은말고는 유럽에서 아무 것도 사려 하지 않았다.” “1493년부터 1800년까지 세계 은의 85%, 금의 70%는 아메리카에서 왔다.”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시절 유럽이 유통시킨 대량의 은은 세계경제의 유동성을 팽창시켜 장기 16세기라 불리는 수백년간의 대호황을 이끌었다. 이 시기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팽창한 이유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 아메리카산 은의 70%는 유럽으로 반입되었고 이 가운데 다시 40%는 아시아로 유입되엇다.” 이중 아메리카에 남은 대부분의 은은 밀무역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광저우로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아메리카의 은에 일본이 유통시킨 대량의 은도 세계경제의 유동성을 부풀리는데 단단히 한 몫한다. 예를 들어 “1592년부터 은 유입량이 눈에 띄게 늘어난 1639년까지 인도에서 유통되는 은의 양은 3배로 늘었다.” 유동성이 늘어나면 수요가 늘어난다. 그러나 수요가 늘어난다고 자동으로 공급이 늘지는 않는다. 늘어난 수요만큼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이 경제에 있는가에 따라 인플레가 일어나는가 아닌가가 결정된다. 유럽이 당시 겪었던 가격혁명은 유럽의 공급능력 이상으로 화폐가 폭증한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 이상으로 화폐가 폭증한 아시아에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화폐의 팽창으로 늘어난 수요만큼 공급이 따라갔기 때문에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았고(상품의 가격과 이자율은 안정되었다) 농촌구석구석까지 화폐경제화되면서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을 일으키며 장기호황을 누렸다. 아시아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엇고 그 산업을 뒷받침하는 정치와 법제(예를 들어 소유권), 금융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은 그런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격혁명’을 겪었다. 저자는 당시 인도와 서아시아, 동남아의 금융업을 분석하면서 당시 진출했던 유럽인들의 제도보다 더 우월했다고 말한다. 정작 은을 들고 온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은 (원격지 무역을 포함해) 분명히 늘고는 이엇지만 아시아의 지역무역 규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1688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이사로 있던 조슈어 차일드 경은 인도에 있는 항구 몇 군데에서 아시아 각지로 가는 물량이 유럽의 모든 항구에서 아시아로부터 받아들이는 물량의 열 배는 된다고 보고했다.” 당시 유럽은 세계경제의 강자가 아니라 분명한 약자엿다. 그리고 약자인 “유럽 인구가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약 20%)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아시아 인구의 비율은 6%나 늘었다. 1750년 현재 세계인구의 665에 약간 미치지 못햇던 아시아 인구가 세계 총생산의 80%를 생산햇다. 이것은 아시아인이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보다 생산혁에서 우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새로운 화폐가 유럽보다 아시아에서 생산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증거이다. 아시아 경제는 유럽 경제보다 더 유연하고 생산성이 높았다.” 그러한 생산성의 격차는 기술력, 경제제도, 금융제도의 우위에서 찾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무기, 조선, 인쇄술, 직물, 야금, 운송을 분야별로 점검하면서 아시아가 우위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고 유럽이 제도적으로 우월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이 아시아경제에 참여했기에, 더 발전된 시스템에 참여했기에 이후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자본가정신이니 하는 것도 헛소리라 말한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명말청초 대만을 지배한) 정씨의 상업적 네트웤과 정치적 정보망은 강력한 맛수엿던 만주족 상단이나 네델란드 상단에 조금도 밀리지 않을 만큼 효율적이엇다. 조직면에서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의 조직과 유사한 점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양에서도 상업활동으로서의 자본주의는 이미 보편화돼 있었다. 인도양의 원격지무역은 호칭이야 다를 수 잇지만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활동이엇다. 방적공, 직조공, 양잠업자. 대장장이, 향신료 플랜테이션 소유주느,ㄴ 모두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보상을 받았다. 원격지무역, 상업자본주의, 수출시장을 겨냥한 생산은 모두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아시아를 유럽이 추월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세계경제의 사이클 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본다. 장기 16세기가 18세기에 내리막을 타면서 세계경제는 위기를 맞았고 아시아 경제의 몰락이 시작되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메커니즘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의 팽창은 소득과 신분의 양극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경제 팽창을 낳은 과정 자체를 위축시켰다. 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낳은 주원인은 유럽에서 들어온 은이엇을 공산이 크다. 구매력과 소득이 커지면서 특히 아시아 지역의 국내시장과 수출시장에서 수요가 확대되었다. 이것은 소득의 분배를 점점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서민들의 유효수요를 제한하면서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오스만 제국, 인도, 중국에서 쇠락의 조짐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18세기 후반, 특히 마지막 30년 동안이엇다. 가장 먼저 기울기 시작한 것은 페르시아였고 그 다음이 인도엿다. 섬유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18세기 중반 이후 인도에서는 유입되는 지금보다 유출되는 지금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적 위치에 있던 유럽이 사이클의 하강국면에 있는 중심부를 따라잡을 수 잇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은 어떻게 발흥했는가? 유럽인은 그것을 샀다. 처음에는 아시아라는 열차의 좌석 하나를 샀다가 나중에는 열차 전체를 사들였다. 가난한 유럽인이 아무리 삼등석일지언정 애당초 무슨 수로 경제열차의 승차권을 끊을 수 있었을까? 훔쳤든 강탈했든 벌었든 아무튼 거기에 필요한 돈을 손에 넣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금광과 은광이 자금줄 역할을 햇다. 유럽인은 은을 캐내, 정확히 말하자면 원주민을 시켜 더 많은 화폐를 ‘만들어냇다’” 결국 유럽인에게 “아시아 시장은 은 시장이었다. 유럽ㅇ인은 아메리카에서 한밑천 잡아 아시아경제의 카지노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 카지노에서 유럽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을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었다. 이것이 유일한 이유다. 아시아가 갖지 못했던 유럽의 유일한 경쟁력은 아메리카라는 돈나무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런 든든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오랫동안 아시아 경제 실제로는 세계경제란 카지노 테이블에서 푼돈이나 조금식 거는 꼽사리 도박꾼에 불과했다.” “17세기의 일정 기간에 아시아가 은을 흡수환 것은 그리고 정도는 덜했지만 금을 흡수한 것은 무엇보다도 생산비용과 물가가 국제적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의 유럽은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동양에 근거지를 두었던 기술혁신의 지리적 중심이 서양으로 이동했다는 거시적 차원에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유럽의 어떤 ‘남다른’ 특성과 요인이 산업혁명을 낳았는가는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다. 산업의 중심축이 왜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중심축이 이동한 이유에 대해 유럽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동양의 성공이 그 이유였다고 말한다. 유럽의 부상은 기계를 대거 도입하여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데 즉 산업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계의 도입은, “노동절약적인 기계의 발명과 그 응용을 통한 기술의 진보는 북미와 같은 고임금 지역에서 기계가 그만큼 생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산업혁명도 같은 논리로 분석할 수 있다. 영국 경제가 18세기에 이룩한 성장 가운데 80%는 순전히 생산성 향상으로 얻은 것이엇다. 유럽인은 세계경제의 치열한 각축구도에서 미국인보다 더 아시아인과 경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유럽인은 상대저긍로 고임금/고비용 구조 속에 있었다. 유럽이 아시아에 팔아먹을 물건이 없었던 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ㅓ. 아시아는 저렴한 노동비용을 앞세워 생산성과 경쟁력에서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시아 대부분 지역이 그랫지만 특히 중국과 인도는 인구가 희박한 유럽보다 인구/토지자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엿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의 인구/토지자원 비율은 안그래도 높았다. 그러나 장기 16세기의 장기호황으로 그 비율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는다. 자원과 자본에 비해 노동력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기술발전은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유럽은 (저성장이 원인인) 낮은 인구성장 때문에 그만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아시아보다 강햇다.”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게계경제와 지역경제의 활성화 덕분에 인구가 증가하고 부존자원에 대한 생산압력이 가중되었으나 소득의 양극화가 일어남으로써 대량 소비재에 대한 국내의 유효수요를 늘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구조와 과정이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술개발에 자본을 투자할 가격 인센티브를 증대시킨 것이 아니라 생산의 임금비용을 끌어내렸다.” 아시아는 고차원적 균형의 함정에 빠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와 중국은 “그때까지 풍부한 인간노동과 부족한 토지 그리고 다른 자원의 토대 위에서 수세기에 걸쳐 발전시킨 농업, 운송, 제조업 기술을 가지고 ‘갈 수 있는데 까지 갔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인구와 중간 수준의 기술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이라는 요인가지 감안하면 아시아는 기술투자에 더욱 불리한 입장에 잇었다. 소득 피라미드의 정상부에서는 국내제품의 생산증대를 위한 충분한 수요를 만들수 없었고 저소득층의 임금수준은 제자리걸음이거나 갈수록 낮아졋다. 생산과 인구성장을 궁극적으로 저하시킨 것은 바로 생산과 임금의 장기적 팽창이었다.” 다시 말해 아시아는 자신의 성공 때문에 몰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는 ‘제 무덤을 파고 잇엇다.” 그러므로 “1800년을 전후하여 기술진보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서 일어났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인구성장률이 높았고 소득분배와 자본소유의 양극화현상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보다도 인구/자원비율이 더 낮았던 (다시 말해 저차원의 균형에 빠진) 아프리카에서도 기술진보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과 달리 아프리카는 투자자본을 외부에서 끌어올 식민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쇠락과 유럽의 부상이 교차한 시점은 1750년 쯤으로 볼 수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시기부터 아시아의 인구성장은 내리막을 걷고 유럽은 갑자기 빨라졋다. 그리고 “1800년 이후부터는 유럽의 빠른 인구성장이 노동절약적인 기술 보다 간편하고 저렴한 동력발생장치, 자원의 이용, 처리 혁신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을 것ㅇ디다. 현실상황이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유럽 상품을 소호ㅘ할 시장이 해외로 크게 확대되어야 햇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시작이엇다.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과 북미는 전 아시아가 처했던 위기를 이용할 수 잇엇다. 그들은 처음에는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다가 얼마 가지 않아 세계시장을 노리고 수출산업을 장려하여 신흥경제지역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햇다. 이러한 성공은 그들이 글로벌 경제에서 주변적이고 비교적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는 않다. 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일시적 중심지들은 과거 세계경제의 중심지엿던 아시아가 그랫던 것처럼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사회, 경제가 위축되어 잇다. 반면 아시아의 사회, 경제는 과거의 힘을 되찾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
책을 읽는 주요 이유는 '명제'를 건지기 위해서이다. 결국, 이책은 명제를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자료보다는 명제 자체를 선사한 책이다. 미국에 대한 불만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중국을 생각할 수 있다. 조금 더 나가면 유라시아 대륙을 연계한 새로운 체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유럽의 학자들을 보면 유라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책을 낸 이산이 계속 내고 있는 동서양 교류사의 시리즈는 어쩌면 이런 유라시아에 대한 넓은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 출판사이다. 결국, 리오리엔트는 아시아의 우월성을 제기하면서 유럽이 미국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는 것을 내세운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다소 정밀성은 떨어지나 명제는 확실히 얻을 수 있다. 저자의 의견에 의해 ' 아르마다' '1587,아무일도 없었던 해' 라는 두권의 역사소설 책을 통해 문명의 판세변화는 불가피했구나라는 생각을 바꾸게 한 책이다. 이책은 동.서양 문명 판세변화를 1750년 이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사고변환에 도움이 될 책이다. 이런 생각에 동의할 분은 '거대한 체스판', ' 붐 앤 버블' 등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더나아가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고별혁명'도 필독서이다. |
리오리엔트/안드레 군더 프랑크/이희재/이산/2003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20년도 더 전 이야기죠. 그가 쓴 오리엔탈리즘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려서 당시에는 서점가에서 바로 찾아볼 수는 없었어요. 어쨌거나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자연히 에드워드 사이드를 떠올렸고, 아시아인으로서 당연히 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아시아인들, 특히 지식인들의 문제 중에는 아마도 자기 문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열등의식, 환멸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아시아인들 스스로가 미국인의 혹은 유럽인의 시각으로 자기자신을 바라보고 자아 비판하게 되는 슬프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상황이지요.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도 없지 않는 경향입니다. 약간 덜한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남태평양이나 만주 지역을 제외한 나라들은 대부분 서양 열강들에게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우리나라는 황당하게도 무력을 제외하고는 어떤 면에 있어서도 조선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말하자면 우리 나라는 국민의 정신적 수준이나 문화적 수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국가 정책상의 심각한 실패로 인해 식민지를 겪게 되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거나 아시아인도 가끔 의심하는 아시아의 저력에 대해서 리오리엔트라니, 정말 미국놈 욕하고 영국놈 욕하다가도 이런 사람들이 불쑥 나타나서 입을 다물게 되네요.
이 책의 저자는 거시 경제사적 관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상품과 화폐의 교환 즉 세계 무역을 살펴보면 대략 1400년 경부터는 세계 경제라고 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전의 경제 역시 이러한 순환이 있었으나 그때는 아직 아메리카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교역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간의 교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거나 5000년 전부터 그러니까 역사 시대 부터 이루어졌을 세계 무역은 500년 전부터는 거의 확실해 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많은 학자들이 1400년대 부터 유럽이 세계 무역을 선도하고,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앞서나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중심주의적인 자아도취적 사관이 빚어낸 말짱 거짓말이며, 세상의 모든 은은 아시아로, 특히 중국으로 가고, 유럽은 은을 주고 아시아에서 생산된 상품이나 향신료를 구하려고 안달했으며 그 체계가 거의 18세기 말까지 이어졌다고 여러 사료를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한번쯤을 다 들어봤을 유명한 학자들이 아주 묵사발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저자의 신랄한 비판은 과거의 자기자신에게도 용서가 없는 걸 보면 학문적 견지에 대해서는 나름의 철저함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상품은 아시아에서 만들어 졌고, 소비는 유럽에서 했으며 유럽에서는 아시아로 대금을 지불해야 했다는 거죠. 하긴 그렇습니다. 옛날 유럽사람들이 아시아의 비단과 도자기에 환장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사람들의 무언가에 홀렸다는 이야기는 아편이 나오기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유럽은 언제나 만성 적자에 시달렸지만 다행히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그곳의 은을 원주민을 통해 무상으로 캐내어 이 적자를 해소하게 됩니다. 저자는 아메리카의 은을 공짜로 뺏어오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에서 유럽은 벌써 퇴출 당해 비문명 지대가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18세기 말에 이르기 까지 유럽이 세계 산업이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것으로 만들어낸 물건으로 보나, 그 물건들을 소비할 인구로 보나, 그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생산적인 땅으로 보나 아시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비극은 바로 이 풍부함에 있었던 겁니다. 너무나 많은 인구와 너무나 풍요로운 땅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집약적으로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 낼 수 있었으므로 기계화를 통한 산업혁명을 일으킬 필요성이 별로 없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리게 된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 것이죠. 반대로 유럽입장에서는 더 경쟁력 있는 물건 즉, 저렴한 물건을 만들어야 했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계화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는 거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저자는 산업 혁명이 위대한 과학 기술 혁명으로 인해 나타났다는 신화도 가차없이 부수고 과학자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하는 낮은 교육 수준의 기술자들이 매일같이 삽질정신을 발휘하여 온갖 시행착오 끝에 상용화 할 수 있는 기계들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촉매가 되어 과학기술이 발전했겠지만 산업혁명 초창기는 그렇게 거창한 과학 기술이나 공학 이라 할 것이 없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석탄을 이용한 증기로 에너지 원을 만든 것에 대해서도 목재가 부족해 져서 숯이 더이상 경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아직 숯이 풍부했고, 많은 양의 석탄이 있었지만 미처 이를 대량으로 사용할 생각은 못했던 거죠. 결국 이것이 기차를 만들고, 무역에 필수 사항이라 할 수 있는 운송에도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죠. 하여간 이런 노력 끝에 유럽은 특히 영국은 면직물과 모직물 산업의 기계화로 먼저 인도를 잠식하게 됩니다. 이를 중국에까지 적용하려 했지만, 중국은 인도에 비해서 훨씬 더 통합되어 있던 사회였고 더 버틸수 있을 만한 강력한 경제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허물수 없었기 대문에 결국 아편이라는 야비한! 수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400-500년 단뒤로 세계의 패권이 바뀌는 주기를 주장한 바가 있는데(다른 저서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만약 저자의 말이 맞다면 아시아의 오름새, 특히 중국의 오름새가 이미 시작된 것을 보면, 이 예언이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제가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요약했고 저자도 중국을 강조하긴 했지만 거시 경제사적 관점에서 전지구를 소홀함 없이 다루고 있으며, 이런 식의 광범위한 영역의 부의 이동을 추적한 책은 처음이라 신선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무척 재밌기도 했으며 누구든 저자의 연구를 이어받아 빈 공간이 좀 더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저자는 중국의 조공무역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단순히 조공만은 아니었으며 사실상 아주 광범위한 국제적인 무역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권에 한정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의 입장에서는 세계 어느나라와 하는 무역이라도 조공무역이었으며 그 무역의 범위나 규모로 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조공무역의 대표적인 한 나라로 언급되어 있을 뿐 일본처럼 다른 독자적인 루트를 통한 무역을 사실상 하지 못했죠. 그래서 일본이 국제 무대에 훨씬 더 빨리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사의 중심축으로 빨리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나라의 무역에 관한 책이 있는가 싶어서 뒤져봤는데,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무역에 관한 것 한권 외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무역에 죽고 사는 현실에 비춰봤을 때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네요.
많은 학자들이 비판받았다고 했는데, 칼 폴라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칼 폴라니는 국가라는 존재가 출현하면서 자본주의가 강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상품을 이익을 위해 판매한다는 개념이 과거에도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데, 이 책의 저자 입장에서 본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칼 폴라니의 이론도 유럽에서는 특히 영국에서는 맞는 말이겠지만, 중국에서는 안 먹힐 소리일 것 같습니다. 중국은 2000년 전부터 비단을 온 세상에 팔았고, 2000년 전부터 강력한 국가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마르크스와 베버에 대해서는 아주 날 선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브로델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도 비판하는 사람이니 이만하면 봐준 걸까요. 브로델의 저서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와있지만 너무 방대해서 엄두를 못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용기를 내 볼까 하는 맘입니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번역은 이희재 씨입니다. ^^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3일만에 읽게 된 것은 전부 번역자 덕분으로, 저자의 시원스런 주장이 귀에 생생 들리는 것 같은 책입니다. 아시아인의 자존심을 세워준 기분좋은 책이면서, 또 유럽이나 미국적 패권주의가 아닌 어떤 형태의 아시아 패권을 지향해야 할지 생각하게도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즐독~! |
"1800년까지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였다. 그중에서도 중심은 중국이었다. 유럽은 잘해야 오늘날의 신흥공업국가 정도라고 평할 수 있다. 무역 질서를 중심으로 연결된 근세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유럽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노략질'한 은이 없었다면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이 한 문단의 논지로 책 전체는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 논지를 설파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몇 가지 하위 논리들이 결합됩니다. 제가 좀 무미건조하게 쓰긴 했지만, 저는 책을 읽으며 굉장한 충격과 지적인 흥분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역사서적을 탐독하면서 느꼈던 '서양' 컴플렉스, 혹은 서양인들의 역사 서술에 대한 의심, 그리고 동양 혹은 우리 역사 서술에 대한 강한 불만 등을 일거에 날려버렸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콜럼버스가 왜 그토록 인도로 가는 길을 찾으려 했었을까? 국가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돈을 퍼부은 이유는 무엇일까를요. 저자 군더 프랑크는 콜럼버스의 발견은 값싼 후추를 얻는 항로가 아니라 더 엄청난 것을 서구에 주었다고 말합니다. 별다른 상품이 없어서 언제나 동양 무역에서 적자를 보던 서구인들이 '은'이라는 획기적인 상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은은 서구인들이 본격적으로 아시아 중심의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참여하는 입장권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저자 군더 프랑크는 이 책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저술 내용을 언급합니다. 스미스는 자신의 저술 곳곳에서 솔직하게 유럽 경제가 중국이나 인도보다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제 규모나 경쟁력뿐만 아니라 법제도를 비롯한 합리성 면에서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정말로 저의 관심 부족을 절절이 느끼게 됩니다. 혹은 동양사 연구의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혹은 연구는 됐지만 연구된 지식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역사는 당시의 맥락과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은 이래서 탁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녀의 서술은 자신의 관점과는 완벽하게 반대됩니다. 지독할 정도로 서양 컴플렉스와 남성 혹은 강자 컴플렉스를 가진 '소설가'이지요. 로마에 대한 편향되고 과장된 찬양은 그렇다 치고, 콘스탄티노플 전투에 대한 서술, 베네치아를 다룬 [물의 도시 이야기] 등을 잘 읽어보십시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서양에 대한 찬미가 넘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가 로마만큼이나 예외적이고 빛나는 존재라고 찬양합니다(폐쇄적인 중국과 개방적인 로마, 전제적인 아시아와 민주적인 유럽의 이분법!!) 프랑크는 시오노 나나미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지요. "베네치아 정도의 도시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중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거대 국민국가와 죽도록 경쟁을 벌였다." 참고로 추천할 만한 저술이 있습니다. 유대 상인이 중국의 한 항구에서 오래 머물렀던 경험을 저술한 책입니다. [빛의 도시]라는 책입니다. 인상적인 대목이 이렇습니다. "유럽에 있는 모든 배를 합한다 해도 이 항구 하나에 있는 배보다 적을 것이다." 이것은 남송 시절의 기록입니다.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가물 한데, 월간 중앙 부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그러니까 300년 정도 기록된 한반도의 복식부기 부용기(이름이 정확한가?)에 대한 조명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이라고 그런게 없었을까요? '무지한' 베버는 동양에는 복식부기처럼 합리적인 마인드를 담은 제도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습지요? 사실 복식부기는 동양에서 무역하던 베네치아나 네덜란드 상인들이 무심결에 배워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1) 막대한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었던 동양의 '성공적인' 시스템이 근대 기계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장애물이 되었다! 서구는 자신의 약점을 뒤집는 데 성공했고, 동양은 자신이 주력하던 낡은 생산방식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것이지요. (2) 그게 아니면, 서구의 척박했던 자연 환경이 그들을 바다와 무역과 약탈로 내몰았고, 그 덕분에 우연찮게 획득한 횡재(아메리카 대륙 발견)로 용이 됐다. 기계 자본주의와 과학 발전은 바로 그것에서 커다란 추동력을 얻었다. 성공적인 과거를 갖고 있는 시스템을 혁명, 혹은 개혁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쨌건 아무리 옛날에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었어! 자, 여기... 나랑 금송아지가 같이 찍은 사진이다~! 라고 떠들면 뭐 하겠습니까?^^ 문제는 왜 동서양이 그렇게 역전되었던가? 한 나라와 문명을 성공으로 이끄는 동력은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은 항상 실패의 씨앗이 되는 법이다." 실패학으로 유명한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의 말로 두서 없는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
흔히 근대화,산업혁명의 공업화라면 동양은 서양에 뒤쳐져 서양에 의해 자본주의와 근대식 의식의 도입이 된 걸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동양도 서구가 산업혁명을 겪기전에 이미 자본주의의 발달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속도가 느렸고 사회적 국가적인 제약을 받았을 뿐이다. 근대 도제와 장인의 시초는 이미 중세유럽의 길드가 형성되기전에 중국에도 있었다. 수공업단계였지만 아편전쟁전까지 중국이 세계비단 생산을 장악하면서 도자기아 많은 부분의 무역생산량을 독점한 것은 방대한 물량뿐아니라 기술면에서도 유럽을 앞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루이14세도 중국도자기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귀부인은 중국비단으로 옷을 해입어야만 대우를 받았다니 유럽의 왕후귀족들이 얼마나 중국의 수입품에 열광했는지 알 만하다. 도제와 장인의 초보적단계는 이미 송나라이전시대에 확립되어 북송시대에는 현대적 자본을 축적한 대상인이 출현했다. 송나라때 제철업이나 전매업,해운업등이 활기를 띤 것도 이런 사회의 변동과 수요에 무관하지않다.이런 산업들은 대자본이 축적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구가 중세암흙시대에 중국은 이미 화폐경제를 인식하고 은본위의 경제운용을 해갔다. 왕안석과 같은 성리학자도 개혁정치에서 화폐경제를 주창한 것을 보면 중국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경제를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만하다. 이민족왕조인 원나라도 수공업이나 상업자체를 배척하진 않았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건 상공업의 발달이 시민계급의 성립과 연결되지 못한 점이다. 대지주 대상인들은 관직을 사서 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상인이나 수공업자의 지위는 낮았다. 명나라때 비단공장이나 도자기공장에서 도제나 직인의 난등이 일어난 것을 보면 그리고 중앙정부의 대처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나 알 수 있다. 청나라때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않았다. 더구나 대상인에게만 외국무역의 권한을 주고 명때부터 이어온 감합무역이나 해금정책의 전통을 이어간데다 건륭제의 선교사 추방후 대외관계가 단절되어 중국은 서구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다. 수천년 노력해온 기술의 발전과 자본축적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못하고 사회적 인습에 얽매어 정체된 것이다.결국 시민사회로의 지향이나 인습의 타파등 근대적 사회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아편전쟁은 그런 중국의 정체성이 노출된 출발점일 뿐이다…. 결국 의식의 개혁이 없이는 기술의 발전도 의미없다는 뜻이리라…. |
망치로 역사하기
‘리오리엔트’를 읽으면서 든 기분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딱 저랬다. 거침없이 기존의 역사관과 인식을 비판하고 그 자신의 잘못도 숨김없이 말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좀 더 멀찍이 바라보고 긴 시간 속에서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언적인 성격의 내용이면서 과감하게 주류 역사관의 문제점을 찾아내 논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열정적이면서 흥미롭게 읽혀진다. 원로 학자임에도 젊은 학자의 당찬 패기가 느껴질 정도로 힘 있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낸다.
기본적으로는 유럽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고 있고 그 이유를 자세히 따져보는 이 책은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 빈틈이 있을지도 모르고 수정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찾을지도 모르지만 그 생각 모두가 틀렸다고 반박될 순 없으리라 생각된다. 파격적인 점 있겠으나 충분히 검토해볼 내용이고 깊은 인상을 주는 시각이다.
읽기 부담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잘 읽혔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다면 좀 더 쉽게 읽혀질 것이고, 세계-체제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저자의 논의를 받아들이면서 읽는다면 그렇게 난해하지 않을 정도로 친절하고 상세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그 생각에 매력을 느끼고 끌리게 하고 있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유럽중심의 역사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식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막연하게 느껴진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벗어남이 그리 쉽진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 거기에 젖어 있기에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말하고 있는 이 책이 이상하게만 생각되거나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충분히 납득되고 그럴듯한 생각이라고 보고 이 논의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서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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