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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암울했던 시절 일부 발췌역의 포맷으로 대학가에 유통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정치적 해빙의 무드가 완연해지고 국제 정세의 급변에 힘입으면서부터, 본격 출판물의 형태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런 기획을 실천에 옮김에 있어 거액의 투자에 주저함이 없는, 진정 출판을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했다고밖에 보여지지 않는, 황세연 선생의 '중원문화'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책과 유통을 맡고 있다. 상업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엿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를 사심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지사적 출판인인 황 선생은, 올해 총선을 맞이해서 전북 익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아깝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 일관된 지사적 기개와 지조가 어떤 형태로든 보답을 받을 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적 좌절과 사업적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면 세상에 과연 정의가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 뿐이다. 장렬한 전사도 사양않겠다는 양 한국어판을 과감히 시장에 내어 놓은 출판인의 悲運 만큼이나, 이 책(러시아어판 원서)의 위상 변천 또한 씁쓸한 면이 많다.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가 내부의지의 충만과 건강성 유지에 성공해서 1970년대의 그 침체 타락기를 거치지 않았던들, 그 태동 70여년 만에 그리도 힘없이 붕괴하지는 않았을 테고, (다소 앞뒤가 뒤바뀐 느낌이나) 이 책이 담대하고 감연한 내러티브로 유장히 읊고 있는 변증법의 과학이라든가, 혹은 허위와 암호적 사기의 불건강한 요소를 말끔히 제거한, 근로하는 노동 대중의 정직한 세계관으로서의 유몰론에 대한 옹호가, 이처럼이나 처량한 진혼곡으로 읽히는 일도 없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이 시점에서, 살아 있는 철학에의 레퍼런스나 가이드라인이 아닌, 망국 지식인의 신앙고백 앤솔로지로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제 1권은 물론 그들 러시아인(아니 소련인)이나 사회주의자들의 태생과 혈통적 성분이 백인이니만치, 그리스의 철학 전반에 대한 소개로 그 전질의 서두를 잡고 있다. 여기에서도 예컨대 램프레히트나 힐쉬베르거, 혹은 러셀 등의 '주류', 관념론 통사서의 입장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 이미 당시부터 맹아를 보이던 유뮬론과 변증법(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에 대해 시각을 달리한 소개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대단히 특기할 만한 것은, 인도와 중국의 고대 철학 소개에도 매우 큰 비중을 부여한 점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렘프레히트 류의 편집 태도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 스탠스라 아니할 수 없다. 요즘이야 정치적, 문화적으로 공정한 시야를 강조하는 쪽으로 공감대가 널려 형성되어 있어, 때로는 그 가장된 관용이랄지, 개성없는 대중적 혼융화 흐름이 짜증날 정도지만, 1950년대에 벌써 코카서스 인종 주도의 문화권에서 이만큼이나 전향적인 제스처와 그 구체적 성과물이 가시화되었다는 건 대단히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비동맹권을 향한 연대와 편입 선전이라는 정치적 의도도 물론 깔려 있었겠으나, 이로 인해 철학사의 거대한 두 흐름이 비로소 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과연 시대를 앞서 간, '진보'의 퍼스펙티브임에 분명하다. 로스쿨 준비자나 학위 논문 작성을 앞둔 대학원생에게 권한다고는 하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어느 정도나 이들의 니즈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확실히, 내용의 구체성 면에서 압도적 볼륨의 어드밴티지가 있으므로, 저 힐쉬베르거 류 따위와 정보 전달 부문에서 경쟁이 되지 않고, 서술의 평이성 면에서도 큰 장점이 있으나, 관점의 편향성, 시대 낙후성 등의 난점이 분명 실용의 영역에서는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시대의 정의감과 순정, 끝없는 전진을 노래하던 그 시절에의 향수를 '과학적, 쳬계적으로' 간직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1권은 매력적인 기념품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