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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심심풀이로 읽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소설을 읽는다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더 나아지는 것도 없다고 여겼다. 그 배경에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뻐기기만 열나게 했던 내 지인의 존재가 있었다. 얼마나 재수가 없었는지 친구들끼리 “쟤 나중에 얼마나 잘되나 보자”라고 벼르기도 했는데, 그 지인은 우리 생각보다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이란 건 그저 취미이고, 시간을 보내는 수단일 뿐, 게임이나 영화, 스쿼시 등 다른 것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통해 알게 된 게 있다면 소설이라는 건 게임이나 영화, 스쿼시보다 훨씬 더 멋진 취미라는 점이었다. 심지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꼭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소설을 멀리해온 지금까지의 나는 인간이 아니었나, 앞으로도 소설을 멀리 할 게 확실한 내 친구 P는 앞으로도 인간이 아닌가, 이런 반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거야 ‘인간답게’라는 기준이 다 다르고, 내가 보는 ‘인간답다’는 기준에 모두가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난 내 기준에 맞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오늘부터 당장 소설을 읽기 시작할 텐데, 책을 안읽던 이가 겪어야 하는 고역은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독서공감>은 소설에 대한 서평집이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거기 나온 소설 중 단 하나도 읽은 게 없으니 그것부터 시작하련다. 이 책에 의하면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면 <위대한 개츠비>가 읽고 싶어지는 것처럼, 소설을 읽다보면 거기 언급된 다른 소설을 읽게 된단다. 저자는 이걸 “소설을 읽다보면 다른 소설로 이르는 문이 열린다”고 표현하는데, 시키는대로 문만 열심히 열면 어느 새 독서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간 소설을 꺼려왔던 한 가지 이유는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사소한 것들에 꽂혀서 서평을 써내려갔는데, 작가의 의도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작가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좋은 소설도 멀쩡한 사람을 독서가로 만들 수 있지만-독서가는 멀쩡하지 않다는 소리네?- 좋은 서평집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독서공감>을 통해서 다시한번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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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인문학이 경제경영 분야의 자기계발을 위한 상식 정도로 치부되어온 듯하다. 하지만 인문학이란 나 혹은 타인 즉 한 개인과 다른 개인들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사색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학문으로 정립한 것이 철학과 역사학일 것이고 그것을 이야기, 혹은 노래로 로 풀어낸 것이 문학이리라. 그래서 우리가 인문학 하면 문학, 철학, 역사학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대학 때 전공이 철학인지라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얼마전 한 친구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고 그래 인문이라고 하면 이 책처럼 어려운 전문적 접근 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이해를 시도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전문적인부분을 알고 싶다면 철학책, 역사책을 읽고 사색하며 공부하면 될 것이다. 이책은,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저자 나름의 인간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이 시도가 전문가의 것이 아니기에 일반독자들이 싫든 좋든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주므로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을 직접 읽게 유도하고 인간이해의 지평을 독자 스스로가 넓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통과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연말연시 선물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문학과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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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줄거리를 요약하지도 않고 형식을 갖추지도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것과 무관하게 사소한 부분에 꽂히기도 하고, 나의 경험과 비교하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은 순전히 나의 감상이고.....” 대형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다 결국 계산대로 간 것은 서문의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서평집 하면 일단 떠오르는 게 장정일의 <독서일기>인데,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저자가 책을 좋고 나쁨으로 나눈 것. 저자의 생각이 나와 꼭 일치하지 않아서, 즉 내가 좋아하는 책을 비판해 놓은 부분이 있어서 반발심이 들었다. 그 다음 기억나는 서평집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랐던 <아주 사적인 독서>. 내공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생각하게 해주지만, 책장은 쉽사리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침대와 책>은 책장이 잘 뻗어나간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저자의 엄청난 독서량에 질려 할말을 잃게 만드는 점이 아쉬웠다. 책이라는 게 뭔가를 배우기 위한 목적이라면 위의 서평집은 내게 좋은 스승이 됐겠지만, 학교 공부에 지쳐서 그런지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새처럼 날아다니고픈 나로서는 읽기 편하고 공감하고픈 서평집을 원했다.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의 서문에 확 사로잡힌 건 이 책이 내 욕망과 맞아 떨어져서다. 집에 와서 마저 읽어 내려간 이 책은 서평집의 기존 틀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소개하는 책의 줄거리 따위는 내팽개치고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대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나중에는 저자와 친해지고, 술도 한잔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를 좋아하게 만들었다면 그 책은 성공한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좋아진 이유는 그녀와 내 취향이 얼추 일치하기 때문일 것 같다. “과식 후의 설거지는 너무 우울하잖아!”라는 대목 (244쪽)이랄지 “트라이앵글 소리에 맞춰 집합하는 60명의 건강한 남자들, 아, 어찌나 가슴이 벅차오르는지...잠시 책장을 덮으며 ‘아 좋구나’ 했다.”(182쪽) 저자가 소개한 원 책을 읽지 않았지만, 저자의 탁월한 표현력 덕분에 나는 숲에서 넓직한 가슴을 가진 60명의 남자가 내게로 달려나오는 광경을 상상하며 괜히 가슴 설레했다. 피부가 희고 화이트칼러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내게, 벌목꾼의 구리빛 피부에 대한 로망이 있다는 걸 알려준 작가님, 고마워요. 이 책의 가장 큰 선물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해줬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뜻이 아니라, 책날개에 나온대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평범한 회사원’인 저자가 소설을 읽다가 떠오른 느낌을 적은 게 이렇게 멋진 책이 됐다는 게 역시나 평범한 회사원인 내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느낌이 있을텐데, 난 그 느낌들을 다 바람에 날려버리고 말았었구나. 일단 블로그를 만들자. 아니,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너무 오래 방문하지 않아 황무지가 된 블로그를 다시 열자. 5년 후, 아니 10년 후에 내 책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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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만 편식이 있는건 아니라 독서에도 편식이 있는데 제 경우는 '닥치는대로 읽는다'는 생각을 가진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적 장르에 구분없이 소설, 에세이, 시, 자기계발서 등 '읽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순간 책읽는 즐거움에 빠지곤 하지요. 헌데 오늘 소개하는 책의 저자는 이런 저와는 독서의 생태가 조금은 다른 그러니까 '소설'에 대한 편식이 심한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녀 역시 자신의 블로그에 책에 대한 소개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유명해진 블로거라네요. 그래서 그런지 뭐랄까 동질감 같은? 여하튼 마음이 동했습니다. 자고로 책을 읽는 사람치고 글쓰는 솜씨를 부러워 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인지라 <다락방>이라는 필명의 저자가 무척이나 궁금해져 여기저기 검색도 해보고 했네요. 이 책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는 저자가 소개하는 대략 40여편의 국내,외 책들에 대한 이야기며 그 속에 저자의 이야기를 함께 실었는데요.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왠지모를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무릎 찢어진 청바지에 비스듬히 기대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는 모습으로 표지에 들어 앉은 여인네가 그녀일까? 했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저자가 궁금한적은 이썼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궁금해 하기는 처음인것 같네요. ^^; 저자의 개인적인 소설 탐닉을 통해 그녀가 들려주고 싶은 소설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녀 말처럼 책을 읽으며 그동안 하지않던 밑줄도 살짝 그어보고 다음에 다시 읽을때 '지금' 가졌던 느낌이 살짝 달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말이죠. 때론 소설 속 주인공이 알려주던 책 속의 또다른 책을 찾아 읽었다던 그녀의 이야기에 전 또다시 그녀가 살짝 알려주는 책 속의 또다른 책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소설 속 여정을 따라 그녀와 함께 다니며 공감하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그랬던것 같습니다. 그녀 덕분에 그동안 뜸했던 소설이 읽고싶어 졌습니다.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 책은 두고두고 책읽는 설레임을 느끼고 싶을때 읽어야 겠습니다. 정말 좋네요. 이 책.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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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수많은 분야 중에 어쩌다 서평 블로거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글쎄, 어쩌다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미니홈피 대용으로 쓰던 블로그를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알라딘 서재를 만났다.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분들이 상주하며 매일같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멋지고 따스해 보였다. 그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다 읽고 덮으면 그만이었던 책의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알라딘 서재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편은 아니고, 실력 있고 이름난 서평 블로거는 더더욱 아니지만, 몇 년에 걸쳐 서재를 '눈팅' 하며 (글로만, 그것도 일방적으로) 자주 뵙는 서재지기들이 몇 분 계시다. 그 중 한 분이 '다락방' 님이신데, 얼마전 책을 내셨다. 서평집, 책에 대한 책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나는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을 했다(물론 알라딘에서^^).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듯한 여인의 뒷모습과 초록빛의 멋드러진 캘리그라피를 담은 옅은 미색의 표지가 멋지다. 물론 그 안의 글은 더더욱.
다음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대목들이다.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의 선물 고르는 안목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책을 별로 안 좋아했던 탓인지, 잘 읽었다든가 그 책의 어디가 좋았다든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은 아쉽게도 없다. 언젠가는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선물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나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대학교 때부터의 습관인데, 분당에서 신촌까지 1시간 반 가량의 등하교 시간을 때우기에(?) 책만한 것이 없었다(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분당선, 그리고 2호선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도 읽고,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도 읽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도 읽고, 댄 브라운 시리즈도 읽었다. 그 책들은 모두 나의 책 사랑에 자양분이 되었으며 지금도 내가 읽은 최고의 책 목록에 든다. 학교가 집에서 가까워서 지하철을 1시간 반이나 타고 갈만큼 등하교 시간이 길지 않았다면 이 모두 없었을 것이다.
나도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소설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고, 소설에서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문장을 읽거나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소설가는 하늘이 내리는 거라고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소설이 좋고, 소설가가 좋고, 소설 읽기가 좋다.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도 이 글의 마지막 세 문장과 똑같은 말을 최근에 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일을 몇 년이나, 그것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능이 아닌가. 좋아할 것, 정붙일 것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을 살고, 나이를 먹다보니 무엇 하나 끈질기게 하고 있는 것에 나도 모르게 더 애착을 가지는 것뿐일까. 나의 오랜 놀이터 알라딘서재, 그곳에서 활발히 글을 쓰는 다락방 님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무한 공감하며 읽고 있노라니 마음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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