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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며 논리적 타당성을 초월하는 민족 지상주의의 남발을 적지않은 분야에서 경험하였으며, 외국어 공용어에 대한 주장 또한 一考의 가치조차 없으리라 생각해온 터였다. 출판사(삼성경제연구소)의 신뢰성을 빌어 虛張聲勢하였으리라는 짐작으로 이 책을 대하고 난 후 깨어지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어설픈 민족주의의 감상은 철저하게 사라져 버렸음을 느꼈다.
이 책은 사회 일반에서 제기되고 있는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외국어 수용의 심각성에서 시작하여 제1의 공용어로 부상되고 있는 영어의 미래, 공용어 채택에 따른 손익계산, 영어를 공용어로 수용하기 위한 대책 등 사회적으로 알게 모르게 누적되어온 편견을 조금씩 두드려 깨여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 전에 선입감의 흔적조차 없애 버리게 한다.
두께에 비해 많은 사고의 단상을 뜨오르게 하여 오염되지 않은 논리의 장으로 이끌고 민족어와 공용어의 가치를 분해하고 그 단면을 하나씩 재해석하게 유도한다. 특히 "우리 후손들을 위한 투자"에서 새로운 언어의 수용에 걸리는 시간 때문이겠지만 공용어의 채택으로 인하여 우리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작자의 주장을 적지않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호소하고 있다.
이 글 만큼 논리적으로 정연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신선한 논리 게임을 좋아하며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인상깊은구절] 지금 영어 공용은 한글의 위축을 부르고 그것은 다시 전통 문화의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록 스스로 인식하진 못하지만, 15세기에 훈민정음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반대한 사람들의 논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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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관심갖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논쟁은 대한민국 사상지도에서는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복거일이라는 소설가의 신문 칼럼을 통해 촉발되었다. 98년이었던가. 복거일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라는 책을 통해 그간의 논쟁에서의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2003년에 삼성경제연구소 문고판으로 나온 작은 책자로서 굳이 왜 복거일이 다시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책으로 내야했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지만 - 복거일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리고 있지 않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문에서의 논쟁에 대한 결과물로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냈듯, 이 책 이후의 다른 영어공용어화 반대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재정리하고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연히 이 글은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셈이다. 반어적으로,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보기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오랫동안 소수 의견들을 내놓는 사람들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안다. 그 동안 '영어 공용' 논쟁과 관련하여 격려해준 분들께 고마움의 말씀을 드린다.
영어공용어화 논쟁은 이제는 사그라들었다. 한참 논쟁에 불씨를 당겼을 때에는 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혹은 대학 1학년이었을 그 때의 나는,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을 쏟는 위인이 아니었다. 수능의 좌절과 대학에 왜 가야하는가의 고민,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대학 생활로 공부에 소홀했고, 오로지 나를 숨쉬게 하는 것은 밴드 생활뿐이었다. 그러니 자연 거기에 푹 빠져지냈다. 아주 오랫동안.
뒤늦게 불씨가 다 죽고 난뒤에야 이렇게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간 몇권의 관련된 책들을 사모았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까마득하지만, 또 먼저 논쟁의 순서상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봤어야했지만, 이 책도 그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고, 이것을 시작으로 영어 공용어화 논쟁에 대해 생각해본다.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있어서 만큼은 복거일은 소수자다. 복거일과 그의 제자를 자청하는 뛰어난 우리말 실력을 자랑하는 고종석이 이쪽에 있을 뿐이다. 복거일이 영어공용어화를 찬성하는 논리는 한 마디로 '망' 이론이다. 캐럴 이스트먼의 언어에 대한 정의를 빌어 언어는 "합의된 뜻을 지닌, 자의적인 말해지거나 쓰여진 상징들의 사용으로 특징 지워진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라 한다. 즉 언어는 망 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전자통신체계, 컴퓨터 체계, 수도관, 송유관 처럼 일종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망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 쉬운 말로 언어는 도구라고 말해질 수도 있겠다.
복거일은 이러한 망 이론을 가지고 자신의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논리를 펼쳐나간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배우는데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국가 중 하나이면서, 가장 영어를 못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투자한 만큼의 결과물이 안나온다는 말인데, 그러니 영어교육은 점점 더 확산되고, 투자가 아직 부족한가 싶어 이제는 경기도에서 서울에서 이곳저곳에 영어마을을 만들고, 대학에서는 국문학까지 영어로 강의하라고 하고, 영어사용구역을 설정하는가 하면, 초등학생까지 토익토플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젠장 나는 중학교 때 성문기본영어도 처음 들어봤다. 중학교 3학년 끝나고. 이렇게 해도 우리는 영어가 안된다. 우리가 기를 쓰고 영어를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살라고. 영어가 되야 잘 살 수 있다. 이 때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풍요롭게'를 의미한다. 왜냐면 기업에서 원하고, 기업에서 원하는 것은 우리가 무역을 통해 장사해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며, 장사를 하자면 돈 되는 곳에서 해야하는데 돈 되는 국가는 영어를 사용한다. 그러니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공감한다. 그런데 영어를 열심히 배우자는 것과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은 분명 다르다.
공용어는 우리가 한국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고 있듯 영어 또한 공식어로 채택하여 모든 일상과 공문서 작성 등등의 온갖 것들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사용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것이 언제까니 '함께'가 될까 하는 것도 새로운 문제거리다. '함께'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영어만을 공식언어로 채택하는 길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가 공용어의 단계일 뿐.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어와 영어를 둘다 공식언어로 채택한다면 누가 한국어를 배우려 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러니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들 중의 하나로 귀속되고, 영어는 홀로 살아남는다.
복거일은 망 이론을 통해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꽤나 일관성있게 설득한다. 그간의 그에 대한 비판론도 소개를 하며 왜 그러한 비판이 먹히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미국이 쇠퇴할 가능성, 모국어 인구에서 우세한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영어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 영어 침투에 대한 민족 국가들의 저항, 영어의 방언이 많아져 끝내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언어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 등등. 결정적으로 복거일은 한국어는 '박물관 언어'가 됨으로써 전문가들에 의해 보존될 것이라 하지만, 글쎄 이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무슨 의미를 가질까 싶다.
"영어 공용은 정부가 시민들에게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따라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자연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언어 시장의 자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말이 언어 시장의 자유화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이들은 막강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유화는 아무데나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자유화'라는 말은 꽤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품고, 마치 그것이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기지만, 자유화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시민들은 물론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돈 있는 자는 미국 북동부의 고급언어를 배우고, 그렇지 못한 자는 영어학원 갈 돈도 없어 영어를 못하면 신분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앉아서 당하고 있어야 한다.
"국제어인 영어를 제대로 못 쓰면, 남들에게 뒤쳐져 점점 큰 서러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영어를 배우려는 것이다. 얼마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우리 역사학자들의 기자 회견과 심포지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학자는 "미국의 교과서 집필자들이 한국사에 관해 제대로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 펴낸 한국사에 관한 영어 자료가 없어서 부득히 일본 역사책을 참고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영어를 잘 써야 한다."
그래 복거일은 알고 있다. 영어를 제대로 못 쓰면 남들에게 뒤쳐져 점점 큰 서러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리 말한다. 말이 공용어화지 자 우리 이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 라고 정부가 선언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똑같이 유창하게 영어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가 미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국제회의석상에서나 협상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을 영어공용어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돌려서는 안된다. 그건 그 전문가들의 협상력과 의사소통능력, 그리고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영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예를 통해 우리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고 비약이다.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설정하고서 이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 허수아비의 오류라고 하지.
복거일의 주장은 꽤 신선하고 새롭기는 했지만 또 꽤나 일관성있는 논리를 통해 설득력을 갖는 듯 하지만, 정작 현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논두렁에 허수아비 세워놓고 싸우는 것과 같다. 문제의 원인은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들이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온갖 문제에는 많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매우 부차적이고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 분명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영어가 점점 강조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영어로 하라고 하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는 원어민 강사들이 하나씩 배정되어 있고, 영어마을이며 영어사용구역을 따로 설정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리고 '영어를 못함=퇴출'로 정식화되기도 한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영어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토익 점수 800점 정도는 이제 왠만한 취업지원자라면 획득하고 있는 기본점수에 불과하며, 한국어능력시험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영어가 대세인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 반대의 결과물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우리말로 하는 것과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의지와 무관하게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에 더 가깝지만)와는 분명 다른 문제임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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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이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고 한다. 그런데 주먹을 불끈쥐고 소리높여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것이 아니라 조단조단 이야기하고 있다. 나 역시 예전같으면 "미친X"하고 한 마디로 내쳐버렸을지 모른다. 왜냐면 나는 영어성적에 발목을 잡혔던 학창시절의 기억때문에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특히 우리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외국의 것, 미국의 것에 대해선 열광하는 사람들을 싸구려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를 향해 사방으로 열려진 문을 보게 되었다. 아니 우리는 세계를 향해 열심히 만들어 팔지않으면 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세상의 지식과 정보가 영어를 통해 소통되고, 수 많은 외국기업과 거래를 해야만하고, 그들과 교류하기 위해선 영어를 써야만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아! 피할 일이 아니구나.
게다가 아이들이 자라나자 이 녀석들에게 영어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고 이젠 어느 과목보다 비중있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게 되고 말았다. 부디 너희들은 이 애비처럼 고생하지말고 일찍부터 영어 잘 배워라 하면서 말이다.
복거일의 논리가 그렇게 치밀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나부터라도 조목조목 따지려 든다면 반대논리는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한 변화의 필요성과 그에 따른 불안감의 증가를 읽어내고 욕먹을 각오로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용감한 시민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나 우리말과 글로써 직업을 삼고있는 사람이기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누구나 영어의 필요성을 이미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누구보다 영어를 잘하기를 바라며, 외국의 아이들과 당당하게 겨루어 앞서나가길 바라고, 안정되고 보수가 많은 직업을 얻길 바란다. 그래서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고 영어학원은 문전성시이며 어학연수와 해외유학으로 힘들게 번 돈을 써대고 있는것 아닌가. 어느덧 경이적으로 성장하던 경제발전도 이젠 멈칫거리고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으며 내려보던 아세안의 고도성장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형편이 되었다. 우린 정말 홍콩과 싱가폴을 모델로 삼아야 한단 말인가...
지난 몇 년간 자라나는 내 아이들의 영어공부를 지켜보면서 고민했던 생각때문인지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고심끝에 찬성표를 던질것만 같다. 특히나 돈을 많이 들여서만, 돈이 많아야만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구조가 또다른 계층간의 격차를 고착시킨다는 저자의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부디 이런 생각의 공유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아니면 다음 세대부터라도 누구나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영어나 기타 외국어를 큰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
| 작년에 한번 읽었던 책이었으나 다시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채찍을 가하기 위함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혹독하게 열심히 다시 공부하자!는 맘을 얻기 위함이다. 140페이지 정도고 책도 일반책의 반정도여서 시간도 많이 필요치 않다. 먼저..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www.seri.org(삼성경제연구소)에 가입하여 정기적인 메일을 받는다. 미래에 대한 트랜드,현재 국제 국내 흐름등에 대한 보고서및 리포트를 받을 수 있다. 미래와 현재 세계흐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이다.!!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하필 영어가 필요한 것인가? '메트카프의 법칙(Metcafe's Law)'이 있다. 사용자에 대한 효용으로 정의되는 망의 가치는 대체로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너무 어렵나. 즉 많이 사용하는 되는 것일 수록 가치가 높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인터넷용인 익스플로우와 네스케이프의 차이를 보면 쉽게 알수 있다. 지금두 네스케이프 쓰는 사람이 있을라나? 쩝.. 이 메트카프의 법칙이 언어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어가 이 망의 가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미국 중심의 평화( Fax Americana)-(수정!) 그리고 모든 중요한 지적 산물들이 영어로 씌어지고 번역되고 있고 인터넷정보의 80%가 영어로 수록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어의 위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영어가 승승장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미국의 쇠퇴로 영어사용감소, 스페인어나중국어가 국제어가 될 경우,영어 확산을 막고자하는 민족국가의 저항, 영어가 여러가지언어로 분화될 경우, 자동번역기의 출연) 그럼 왜 제2외국어가 아닌 공용어인가? 지금두 제2외국어중에 가장 널리쓰이는 것이 영어다. 그러나 나두 20년가까이 영어를 배웠지만 영 아직두 서투르다. 사람이 첫 언어를 배울때 쓰는 뇌와 차후에 언어를 배울때 쓰는 뇌가 차이가 있다는 생물학적인 보고가 있다. 이를 결정적 시기 가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에 엄청난 노력,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전환비용이 높고, 잠김현상이 일어남). 돈이 많으면 외국에 보내어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할 수가 있겠지만 일반 서민들이 추진하긴 허상에 불과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영어를 권력가의 산물이라고 까지 하고 있다. 영어가 신분상승의 역활까지 할까봐서 즉 자신들의 위치를 넘볼까봐 영어공용화를 쉬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까지 한다. 참 신기하다. 많은 정치가들이 있을진데..영어공용어하자고 하는 정책을 내비친 정치가가 없으니..뭐가 있는듯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어를 공용어로 함으로써 우리 시민들이 한국어와 영어중 하나를 골라 언어를 익히게 하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은 오래걸리겠지만 어린아이들은 금방일 것이다. 즉 영어가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게 하는 것이다. 영어연수가 필요없어진다는 거다. 이 외에 저자는 영어말하기에 앞서 영어 읽기 쓰기의 중요함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싱가폴,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어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얼마가 걸릴까 사회가 변화는 속도는 엄청난데 그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이나 사람은 너무나 뒤쳐진다는 느낌이 든다. 누가 영어공용화 하자고 내세운다면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싶다~ 난 내자식들 영어학원,영어과외,어학연수까지 보낼 능력이 없다..ㅋㅋ 내 자식들이 노는 곳에, 구멍가게에, 학교에 그냥 영어가 지금의 한국말처럼 같이 공존하면 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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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가 빌려준 책인데, 좀더 빨리 보게 되었다면 좋았을 책. -언어적 가치 = 인구수제곱과 인구의 평균 지능?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언어의 흐름 (language wave)를 막아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정책적인 자국어 보호는 언젠가는 세계의 흐름에 떠 밀려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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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그렇지만 영어에 관한 주장이 담긴 책은 사람을 참 난감하면서도 딱히 한쪽의 입장을 갖게 만들 수 없는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저 제목(주장)은 과연 우리가 어떠한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하는지부터 상당히 머리 복잡하게 만드는 시작점이며 저러한 논의는 사실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들게 만드는 복잡성을 갖는 도발적 문구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것에 대하여 OK! 하자니 이것저것 걸리는 것들이 많은 것 갖고 그렇다고 NO! 하자니 그러면서 영어공부를 여지껏 해왔고 현재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이중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로 빠져버리게 된다. 그래도 이러한 주장은 분명 해볼 만한 논의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어가면서 현재 가장 영어의 혜택내지 불이익에 대해 가장 관계가 밀접한 것이 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영어에 대한 압박을 다시한번 느끼는 나의 모습도 어쩔 수 없나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국제어라는 현실에 대한 한국의 적응에 대한 문제이다. 국제어로서의 영어의 위치와 한국이 영어를 하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내지 효율성이나 편의성 등의 여러 가지 영어를 국가적 차원에서 공용어로 씀으로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을 논의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해 감정적으로는 웃기지마라! 라는 한마디가 하고 싶지만 오늘도 영어를 배우기 위한 책을 책상앞에 두고 있는 혹은 전공원서(영어로 되어있는)를 책상위에 쌓아놓은 내가 할 수 없음이 야속한 현실이다. 지금세대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다음세대나 혹은 다음의 다음세대와 같은 지금의 현실에 반영되기보다는 지금준비하여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게 영어에 대한 언어적 차별성을 줄여나가야 하며 그것을 통해 그들의 영어에 대한 장벽으로부터 좀더 자유롭게 각종 분야(아마도 지식의 습득측면에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에서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촉구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을 듯 싶다.
책의 후반에서도 이미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어디 영어를 공용화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무리일 수 있음을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바로 이 부분이 영어의 공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민족의 언어를 인위적으로 퇴화되게 유도할 수도 있거니와 민족적 문화와 언어의 쇠퇴로 말미암아 후손들에 대한 국가관이나 전통적인 한국인으로서의 가치관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마도 대체적인 한국인들이 영어공용화를 반대하는 시각일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 역시 이 부분을 모를리 없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영어를 주장하는 데는 역시 영어의 한국에서의 지배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을 부인하기엔 현실적인 측면이 너무 크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이미 많은 부를 소유한 자들은 굳이 저런 주장과는 관계없는 이야기 이겠고(어릴 적에 이미 영어권 국가로 유학내지 이민과 같은...) 결국 해외로 가서 교육받기 어려운 대부분의 일반 서민들의 다음세대부터의 영어로부터의 좀더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이자는 건데 아마도 이러한 선택은 그 영향을 받을 세대의 전세대인 현재의 부모의 세대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문제일 텐데 실질적으로는 그 영향을 받을 세대가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물론 그건 불가능한 부분이다. 결국 필요한건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주장보다는 영어를 한국어만큼 잘하게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도출될 수도 있는데 그게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인가? 그저 내 자식이 국어는 국어대로 영어는 영어대로 잘 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연구하는 방법 이외에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해결방안은 없을듯 싶다.(이 공용화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까지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선 불가능하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아쉽게도, 지금 우리 사회엔 영어의 확산이나 그런 조치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비난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영어 문제처럼 크고 복잡한 문제가 그런 거부와 비난으로 풀리거나 누그러질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살기 쉬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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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12.18. 다듬읽기 248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2003.2.20.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를 가만히 읽었습니다. “영어를 함께 쓰자”고 굳이 안 외쳐도, 이 나라 벼슬아치나 글바치는 일찌감치 중국말도 일본말도 함께 써왔고, 영어도 진작부터 함께 썼습니다. 그러나 ‘바치’ 아닌 ‘살림지기’는 늘 ‘말’을 썼어요. 수수한 살림지기가 주고받는 말 사이에 곧잘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영어가 섞이기는 하지만, 그저 ‘말’을 하다가 몇 마디 섞일 뿐입니다. 그런데 온나라 모든 아이어른이 영어를 굳이 첫쨋말로 삼아서 주고받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하고 터전과 삶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굴레에 갇히고 괴로울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며 쓸 말과 ‘이웃을 만나며 쓸 말’과 ‘책과 글을 곁에 두며 쓰는 말’은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시골지기가 논밭에 씨앗을 심을 적에 ‘씨’가 아닌 ‘종자’라는 일본 한자말을 농협부터 쓰라고 억누르는데, 이제부터 ‘seed’라고 바꿔쓴들, 삶이 바뀔 일이 없이 갇힐 뿐입니다. 모든 낱말과 말씨에는 그곳 사람들이 오래오래 일군 숨결과 마음과 살림과 사랑과 꿈과 뜻이 서려요. 복거일 씨는 ‘말’이 왜 ‘말’인지 하나도 모르거나 일부러 뒷짐을 지거나 눈돌린 채 ‘영어나라’를 이루어 ‘돈 잘 버는 나라’로 바뀌기를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이 책이 밝히는 바는 오로지 돈입니다. 영어를 빨리 써야 돈이 되고, 모든 아이가 영어부터 잘 써야 ‘돈 잘 버는 세계인’이 된다고 외칩니다. 돈이 안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그저 돈만 쳐다보는 삶이라면 보람이 있을까요? 돈을 안 벌어도 들숲바다를 품고서 논밭을 가꾸는 일꾼은 언제나 느긋하고 넉넉합니다. 돈벌이가 아닌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은 ‘경제성장에 이바지 안 하는’ 셈인지요? ‘가정부’를 쓰자면 한 달에 500만 원도 매우 적은데요, 집살림과 집안일을 돈값으로 헤아리자면 어마어마하게 ‘나라살림에 이바지’합니다. 아이어른이 먼저 서로 마음과 생각과 뜻을 즐겁고 상냥하면서 넉넉히 주고받는 ‘쉬운말’부터 알맞게 쓸 수 있는 나라에 마을에 집이어야 비로소 ‘눈에는 안 띄는 경제성장 지표가 껑충껑충 오릅’니다. 복거일 씨 목소리대로라만, 굳이 우리나라에서 논을 일구어 쌀을 거둘 까닭이 없어요. 이웃나라에서 사오는 쌀이 훨씬 값싸니까요. 이것도 저것도 다 사다가 쓰면 돈이 얼핏 가장 적게 들어서 ‘경제발전 이바지’일는지 모르나, 남한테 모두 기대는 적잖은 나라가 어떤 꼴로 무너졌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과 살림과 뜻을 우리말로 주고받는 오랜 터전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 손으로 옮기는 우리글까지 있는, 이 푸른별에서 아주 아름답고 놀라운 나라입니다. 오히려 영국이나 미국에 ‘한말·한글(우리말·우리글)’을 쓰라고 북돋우면서 ‘한말·한글’을 이웃나라가 알맞고 즐겁게 쓰는 길을 열자고 외친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야말로 끝없고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이루리라 봅니다. 그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글이 너무 엉망진창입니다. 무늬만 한글일 뿐, 온통 일본말씨에 옮김말씨입니다.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는지요? 영어를 함께 쓰자고 외치기 앞서, 우리말과 우리글부터 차근차근 익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들 우리말을 못하면 ‘통번역’을 못 합니다. ㅅㄴㄹ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2003) 너른 논의의 마당에서 살피려는 시도다 → 너른마당에서 살피려고 한다 → 널리 얘기하려는 뜻이다 → 널리 나누고 싶다 7 이 글은 위의 인용에서 ‘경제의 논리’라고 불린 것을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 이 글은 앞선 글에 적은 ‘돈’ 이야기를 밝히려고 한다 → 따온글에 적은 ‘돈’이 얼마나 드는가 밝히려고 한다 10 이런 반응은 모국어에 관한 논의에선 훨씬 거세어진다 → 우리말을 다룰 적에는 훨씬 거세게 대꾸한다 → 겨레말을 다루려 하면 훨씬 거세게 맞선다 11쪽 반어적(反語的)으로,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보기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 거꾸로 이미 받아들인 사람을 다독이는 일은 훨씬 뜻있다 → 그런데 이미 끄덕이는 사람을 달래는 일은 훨씬 뜻깊다 12 당연히,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배우는 데 큰 투자를 하고 있다 → 마땅한데,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려고 돈을 크게 쓴다 → 마땅히, 사람들은 영어를 배운다며 힘을 잔뜩쓴다 15 정보의 교류를 막는 언어 장벽을 낮추어서 그런 장벽으로 인해 우리가 보는 손해를 → 주고받는 말을 막는 담을 낮추어서 담벼락 때문에 우리가 잃는 → 흐르는 이야기를 닫어거는 담을 낮추어서 담 탓에 우리가 밑지는 → 말이 달라서 만남길이 막히는데, 담을 낮추어서 우리가 날리는 16쪽 빠르게 국제어로 자리잡은 데서 나온 것이므로 → 빠르게 누리말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니 → 빠르게 모둠말로 자리잡았은 탓이니 17 기술이 점점 빠르게 발전하면서, 근년에는 그런 예들이 훨씬 자주 나왔다 → 다룸새가 더 빠르게 크면서, 요새는 훨씬 자주 이런 일을 본다 → 더 빠르게 나아가는 솜씨에 따라, 이제 이런 일을 훨씬 자주 본다 24 영어의 득세는 나머지 민족어들이 궁극적으로 쇠멸하리라는 것을 뜻한다 → 영어가 판치며 나머지 겨레말은 그저 사라진다는 뜻이다 → 영어가 춤추며 나머지 내림말은 바로 죽는다는 뜻이다 43 단기적으로는 민족어들이 영어에 점점 깊이 침윤될 것이다 → 곧 겨레말은 영어 탓에 차츰 가라앉는다 → 이윽고 내림말은 영어에 조금씩 잠긴다 43 조선어의 쇠퇴는 언어의 건강을 보장하는 조어 능력에서 특히 뚜렷하다 → 조선말은 조선말로 새롭게 엮지 못하면 뚜렷이 기울고 만다 → 조선말은 조선말로 새말을 엮지 못하면 뚜렷이 흔들린다 48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 그러면 무엇이 참답게 새길일까 → 그러면 다른길을 어떻게 열까 89쪽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 조선말만 쓰기보다는, 사람들이 영어를 쓰고 아이한테 겨레말로 영어를 고를 수 있도록 하자는 길이다 → 조선말만 쓰지 말고, 누구나 영어를 쓰고 아이한테 영어를 내림말로 고를 수 있도록 하자는 셈이다 91 거의 모두 근대에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 거의 모두 요즈막 일본에서 새로지었다 → 거의 모두 일본사람이 새로지었다 98쪽 언어는 본질적으로 도구다 → 말은 무릇 그릇이다 → 말은 모름지기 밑감이다 111 비용과 혜택이 여러 세대들에 걸쳐 나오는 초장기적 투자라는 사실이다 → 돈으로나 바라지로나 앞으로 길게 잇도록 힘을 쏟는 일이다 → 앞으로 오래오래 돈이 되고 넉넉히 누리는 길이다 118 위에서 살핀 것처럼, 영어를 옳게 읽고 쓰는 능력은 현실에서도 기본적 중요성을 지닌 기술이며 → 이제까지 살폈듯이, 우리가 살아가자면 영어를 옳게 읽고 써야 하며 → 앞서 살폈는데, 우리가 살아가려면 영어를 옳게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며 13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