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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은 열아홉 살에 이미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베테랑 가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에드 케네디만 했을까. 이 세상 모든 청춘이라면 한 번쯤 떠올려봤을 케케묵은 고민일거다. 세상의 위인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기. 그리고 한없이 초라해지기. 역사에 남은 위인들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현실과 열심히 타협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아주 열심히.
에드 케네디는 변두리 지역 판자집에서 살며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나이는 열아홉. 누구는 꿈이 많은 나이라고 할테지만 에드는 다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가난한 청춘.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건 젊음뿐. 하지만 그 젊음도 세상의 위인앞에 무너진다. 다른 이들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열아홉살에 에드는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에드는 은행강도를 잡게 된다. 절대로 나서지 말았어야 했지만, 어느새 멍청한 은행강도를 향해 총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에드 케네디의 첫번째 메세지가 될 거라는 사실을 모른채.
에드는 어느 날,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를 받는다. 정체불명의 거리 주소가 적힌 기가 막힌 카드.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카드에 적힌 주소에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세 명을 만나게 된다. 평생의 반려자를 잃고 외로워 하는 밀라.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 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소피. 그리고 매일밤을 지옥에서 보내고 있는 앤젤리나까지. 에드는 그들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밀라와 소피를 도왔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앤젤리나를 도왔다. 그리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드는 도착했다. 또 다시.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머리 복잡한 에드는 계속 도착하는 카드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역시, 그때 은행강도 따위는 무시했어야 한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에드는 알아버렸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기쁨을. 절망과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가슴벅차고 기쁜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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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개봉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란 영화도 메신저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이미 자신이 처한 상황만으로도 힘겨워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학생을,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영화 속 트레버는 숙제의 테마인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무엇이 있으면 고쳐라"에 대해 생각하다가 주위 사람을 돕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내가 시작점이 된다. 아무 조건없이 내 주변의 사람을 돕는다. 그리곤 그 사람에게 말한다. "당신도 주위의 세 사람을 도우세요" 이 아름다운 메세지는 널리 퍼져나간다. 시작은 하나였지만 메세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사람들은 겁이 많아요. 어떤 변화에 대해서. 그래서 어떤 문제에 대해 포기하는거죠. 그리고 자기자신한테 져요."
영화 속 트레버는 말한다. 왜 사람들이 무너지는지에 대해서.
메신저 속 에드 역시 자기 자신에게 늘 졌었다. 섹스도 못하고, 희망도 없고, 변두리 판자집에 찌질한 삶을 이어가는 바보 멍청이-그게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배달된 카드 한장이 에드 마음속에 변화를 일으켰고 다시 한 번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길 용기를 갖게 된다.
우리는, 남을 도우려면 커다란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거나 혹은 돈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제일 가까운 친구라도, 친구의 속마음까지 알기는 힘든 법이다.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앉아 고민을 들어주고 힘든 길을 갈때 같이 걸어가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 주위에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희망'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느라 자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아이스크림 선물하기. 크리스마스 전구가 다 낡아서 불도 들어오지 않는 어느 집에 새전구 선물하기. 외로운 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책 읽어주기. 사랑하는 친구와 3분간 사랑의 춤추기. 어떤가? 이 모든 일이 어려운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다. 내 자신에게 무너지지만 않았다면.
내가 메시지가 되는 순간, 세상은 밝아진다. 자신에게 지지 말고,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메신저가 되려고도 하지 마라. 내가 메시지가 되는 순간, 세상은 바뀐다. 메신저는, 마커스 주삭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에 대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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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책 음~~다시 한번 음미하게 되는 책이다..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은 예전에 읽고 신나게 여러사람들에게 전파했었다.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라고 [메신저]라는 책은 2002년 오히려 책도둑보다 일찍 쓴 작품이라던데 오히려 후기에 써졌던 작품처럼 메신저의 문체가 더 들러붙는 것이 좋았다. 대사들이 쩍쩍 가슴에 들러붙고 반짝반짝 빛나는 구슬같다.
"때로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얼굴이 아니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가."
"몸이 몹시 떨린다는 걸 깨닫는다. 햇볕은 따뜻하게 내리 쬐는데, 피부는 나한테서 떨어져나갈 듯이 흔들린다. 피부가 살과 씨름을 하고 있다."
"빛이 나를 향해 곤두박질친다."
메신저의 주인공인 에드 케네디는 열아홉 살에 법정 나이를 속이고 변두리 택시 운전기사를 하고 무엇하나 이룬것 없고 대학도 다니지 않는 자신 스스로를 그냥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이다.
어설픈 은행강도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잡은 공로로 지역신문에도 잠깐 출연하는 이변이 생기고 부터 누구에게서 인지 모르게 카드가 도착한다. 다이아몬드 에이스에 적혀있는 주소 3개가 다인 카드다. 에드는 그 카드를 받아들인다. 웬지 가야할 것 같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 주소를 배회한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클럽,스페이드, 하트 순으로 배달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에드는 그 모든 메시지를 나르는 역할을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점점 변하는 자신을 느낀다.
마지막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알알이 모든 말들이 마음을 콕콕 찌른다. 그래 나도 매우 평범하지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만에게 만이라도 무언가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내 삶의 무게가 지쳐 다른 사람의 헉헉 되는 마음을 보면서도 느끼면서도 그냥 무심이 넘겨 버릴때가 많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내가 어떻게 해주면 내가 힘들것 같아서 무시하고 넘기는 때가 많다.
중간 중간 "왜 나여야 하는가?"라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에드는 해냈다. 그리고 조용히 그 성취감을 즐겼다. "왜 나여야 하는가?"를 논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이제 알겠다.
점점 이기적인 생각들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들어차는 시대에 이런 메신저 같은 책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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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은 그 해 읽은 소설 중 최고였습니다. 따스하고 감동적이면서도 들척지근하지 않은 이야기,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바로 와닿는 묘사, 그리고 건조하면서도 묘하게 감성적인 문체까지 모두 마음에 쏙 들었지요. 그 마커스 주삭의 책이라는데, 뭘 더 묻고 따지겠습니까. 읽어 봐야겠다 싶었지요.
이 책이 '책도둑' 의 후속이 아니라 전작이라는 사실은 책을 다 읽고 역자 후기를 읽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그 말을 들으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도둑' 이 이 책보다 뒤에 쓰였다면, 마커스 주삭은 퇴보가 아니라 발전을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메신저' 는 여러 모로 '책도둑' 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입니다. 가장 큰 단점은 과도한 작위성입니다. 너무나 작위적인 이야기여서, 등장 인물들은 도무지 진짜처럼 보이지를 않습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서 충실하게 움직이는 도구들에 불과하지요. 그렇다 보니 감정 이입이 쉽지 않고, 나름대로 미스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뒷일을 조마조마하며 궁금해할 기분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어쩐지 버석버석한 느낌이에요.
어느 평범한 청년에게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그에게 카드를 보내 오는데, 거기에는 모르는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들이 적혀 있지요. 호기심이 생긴 주인공이 그들을 찾아가 보면, 그들은 무언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다소 목표 의식이 희박한 게 문제긴 하지만 사실 아주 좋은 사람인 주인공은 결국 그들을 위해 할 일을 하게 되지요.
이러한 기본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죠.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서로 관련이 없는 십수명에게 뭔가 문제가 있고, 그들의 이름이 카드에 적혀 주인공에게 배달되고, 주인공은 그들을 위해 귀신같이 맞춤형 도움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카드를 보내 온 누군가는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알고 있고요. 절대자가 카드를 보낸 것이 아닌 이상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의아함은 결말 부분에서 제대로 증명이 되지요. 내 어렴풋이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결말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흰 색으로 적겠습니다. 읽고 싶으시면 긁어서 보세요.
작가가 전면에 등장해서, "넌 사실 내 책 속의 인물이다, 너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이제 내 책은 끝나지만 넌 계속 살아다오."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너무나 촌스럽습니다. 이 비슷한 장면을 '소피의 세계' 에서 처음 봤을 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지만, '소피의 세계' 는 실존에 관해 질문하는 철학 소설이었으니 존재의 의의를 의심케 하는 그런 구조가 아주 잘 어울렸죠. 이 소설과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 중 몇 개는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어느 가난한 미혼모와 아이스크림 이야기, 그리고 마브의 이야기는 비록 작위적인 것이라도 눈물이 핑 돌 만큼 작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주삭 특유의 표현력은 이 작품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지요.
"조용히, 마브가 운다. 두 손이 해체되어 운전대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눈물이 얼굴을 움켜쥐고 있다. 버티다가 마침내 머뭇머뭇 목 쪽으로 미끄러진다."
이런 묘사를 할 수 있는 작가는 정말 드뭅니다.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그 절박함이 손에 잡힐 것 같지요.
'메신저'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여전히 주삭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요. '책도둑' 은 이런 실망감도 다섯 권 분량 정도는 용서해 줄 만한 위력을 가진 책이었거든요. 특히 '책도둑' 이후의 작품들이 좀 더 많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역자는 계속해서 정영목이었으면 좋겠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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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에드 케네디' 이다.
그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10와 20대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수많은 평화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처럼 아무런 꿈도 없고, 아무런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그래도 에드는 적어도 일을 하려는 의지는 있었다. 일찌감치 도시를 떠난 형제들이나 결혼해서 떠난 자매들과 달리, 이 도시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고, 택시 운전사라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잡아, 작은 판잣집에서 아버지가 기르던 늙은 개 '도어맨'과 함께 살고 있었다. 에드는 같은 택시회사에서 운전사 일을 하고 있는 오드리, 오래된 친구들인 마브와 리치와 함께 여가시간을 보내며 되는대로, 살아지는대로 살고있다. 대부분의 요즘 젊은이들처럼.
우연히 은행강도사건을 목격하고, 은행강도의 어리버리함 덕분에 은행강도를 잡은 도시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그에게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우편물이 도착하는데, 그것은 이름 세개가 적힌 트럼프 카드.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였다. 에드는 카드의 출처와 카드에 적혀있는 이름들에 대해 고민하지만, 행동을 재촉하는 의문의 전화를 받은 뒤 전화번호부를 통해 그 이름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모두 에드와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들이었다.
첫번째 이름의 주인공은 매일 한 모녀를 찾아가 폭행하고 강간하는 덩치큰 남자의 이름이었고, 두번째 이름의 주인공은 전쟁때 잃은 남편을 몇십년째 홀로 기다리고 있는 순박한 할머니의 이름이었다. 세번째 이름의 주인공은 너무나 달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항상 경기에서는 지고 마는 날씬한 소녀의 이름이었다.
에드는 직감적으로 이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내가 마커스 주삭을 접한건 '책도둑'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마커스 주삭은 1975년생의 아주 젊은 작가로서, '메신저' 는 데뷔 초기랄 수 있는 2002년에 발표한 소설로, [책도둑] 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책도둑] 을 보면서 이야기가 작중인물들이 아닌 '죽음의 신' 이라는 독특한 시점을 통해 그려졌다는 점에 신선함을 느꼈었는데, 이 작품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한다.
에드에게 끊임없이 카드로 메시지를 보내는 인물. 그는 누구이며, 왜 에드를 선택했는가? 그 인물은 왜 에드를 통해 도시를 구원하려 하는가? 라는 의문이 전반적인 이야기에 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책도둑] 에서 '죽음의 신' 이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시점이 대단히 따스했음을 느꼈고, 이 작품 역시 전반적으로 따뜻한 감성이 흐른다. 그것은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행동들 속에서 근원적인 '따뜻함' 을 발견해내는 작가의 타고난 능력 때문일 것이다. 마커스 주삭의 작품은 이제 두작품뿐이 읽어본 바 없지만, 그는 언제나 인간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긍휼함' 에 집중하는 듯 하다. 상처받은 사람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고 슬퍼하는 마음, 돕고싶어 하는 마음을 찾아내고, 나아가 그들을 돕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그 행동은, [책도둑] 에서 독일인 소녀 리젤이 끌려가는 유태인들에게 빵조각을 던져주는 작은 일일수도 있고, [메신저] 에서 에드가 보여주는 많고 큰 일일 수도 있다. 독자들은 이 두 작품의 각기 다른 행위들을 통해서 마음에서 행동으로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들이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을것이다.
'문학동네' 소설의 전문 번역자 중 한분이신 정영목 선생님도 이 글의 말미에 역자후기를 통해 '젊은 작가가 그려내는 따뜻함' 에 놀라움을 표시했었는데, 나 역시 그의 따뜻함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도 이런 따뜻한 작품들을 쓰는 젊은 작가들이 많다. 마커스 주삭을 접하면서, 나는 '펭귄뉴스' ,' 악기들의 도서관' 의 김중혁님을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마커스 주삭이 좀 더 직접적이라면, 김중혁님은 좀 더 은유, 비유적이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이런 젊고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참 좋다. 시대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에 집착하지 않고, 글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열정적인 행보들은, '젊기에' 가능한 것일터다. 이념과 사상에 현혹되지 않고 순수하게 원하고 꿈꾸는 세상을, 글을 통해 그려나가는 이들.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좀 더 행복해질 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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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본문 472쪽
참으로 오랫만에 책을 읽으면서 남은 페이지를 헤아려 보았다. 읽을 부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자꾸 신경쓰이고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 중 아주 작은 부분만 쓰고 세상을 떠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똑똑하다는 아인슈타인도 그랬다지?) 그 능력이라는 것이 두뇌가 좋을 수도 있을 것이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돈을 버는 능력이 될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겠지?
주인공 에드에게 카드가 날아온 것은 에드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되지 못하고 그의 아버지처럼 허망하게 살아갈까 하는 우주의 걱정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우주의 비밀 <시크릿>이 일러준대로 에드의 무의식적인 강렬한 소망이 그런 카드를 불러들인 것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는 열아홉에 나라를 구하고, 누구는 열아홉에 인류에 족적을 남길 그림과 노래를 성취했는데, 우리의 에드는 후진 동네에 살면서 택시를 몬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냄새나는 개와 커피를 나누어 마실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우주는 에드의 그 따뜻함을 어디에 쓸 수 있을 지 알아 본 것이다. 젊은 나이에 희망도 뭣도 없이 카드 게임이나 하고 하루하루를 때우듯이 살던 에드는 어느 날 우연히 은행 강도를 잡는 일에 한 몫을 하게된다. 단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은행 강도는 에드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어느 날 갑자기 에드의 우편함에 카드가 한 장 날아온다. 거기엔 세 주소가 적혀 있을 뿐 이러다할 설명도 명분도 에드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일을 하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오드리를 짝사랑하면서 사는 일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카드가 주는 소명을 받아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설 것인가 에드는 고민한다. 그리고 에드는 밀라를 소피를 앤젤리나를 만난다.
진실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길 바라는 사람에게는 우주가 응답을 한다고 한다. 에드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그 강력하지만 조용한 소망은 에드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주었고, 삶이란 것이 가만히 앉아있을 때보단 움직일 때, 혼자 집에서 죽치고 있을 때보단 나가서 누군가와 함께 할 때, 그리고 그 하는 일이 이왕이면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는 일일때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어쩌면 내 안에 깊이 가라앉아있을 지 모르는 그 조용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를 이제는 나도 듣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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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메신저의 내용은 무능력하고, 야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택시 운전을 하는 열아홉살 에드 케네디가 뜬금없는 카드를 받으며 메신저가 되어 세상의 온갖일에 뛰어들게 되는 이야기이다. 아니, 뜬금없지는 않다. 친구를 기다리며 은행앞에 있는 동안 도망치던 은행강도가 흘린 총을 집어들어 은행강도를 붙잡아 영웅이 된 에드는 사건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메신저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 후 에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주소가 적힌 카드를 받게 된다. 그것에서부터 메신저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그 카드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에드 케네디의 삶은 조금씩 의미가 변해간다. "그 순간 내가 살아온 인생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 무능한 짓거리에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생. 죽었다. 그것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야"(61)라며 꿈도 없이 무의미하게 지내던 에드는 '"왜 납니까?" 하느님께 묻는다. 하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별들은 지켜본다. 살아있는 게 좋다'(236)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메신저가 뭐길래? 의미를 알 수 없는 세 곳의 주소가 적힌 카드를 받은 에드는 결국 각각의 주소지를 찾아가게 되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잊어버리고 항상 기다림을 되풀이하는 할머니, 날마다 주정뱅이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강간당하는 여자, 열심히 달리기를 하지만 낡은 운동화를 신고 번번이 1등을 놓치는 소녀 소피를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에드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었을까? 왜 세상이 못 듣는 거지? 몇분동안 수도 없이 묻는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야. 그 대답이 분명히 옳다. 마치 내가 선택을 받은 사람 같다. 뭘 하라고 선택을 받아? 답은 아주 간단하다. 관심을 가지라고.(64) 그리고 자신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생각을 거듭해보는 에드는 자신이 해야만 하며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하나하나 이루어간다. 할머니가 기다리는 지미 할아버지를 대신해 대화를 나누고, 폭풍의 언덕을 읽어주기도 하고 폭행을 일삼는 남편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여(물론 약간의 위협도 있었지만) 떠나가게 하고, 낡은 운동화로 인해 달리기 속도가 더 느려져버리는 소녀를 위해서는 새 운동화를 선물한다. 사실 나는 새 운동화가 담긴 '신발상자' 선물에 담긴 그 뜻에 감동받기 시작하면서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어버렸다. 이렇게 작은 관심과 선물 하나로 그렇게 환한 미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서둘러 이 책을 읽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에드 케네디는 4장의 카드를 받고, 열두개의 메시지를 받는다. 처음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의 주소와 알 수 없는 메시지로 가득한 카드를 받았지만 마지막에는 에드의 가족과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 대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물론 결국 모든 메시지를 풀어나가기는 하지만 가끔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 완벽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가끔 진실이 들이닥치면, 진실이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인생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생각해보게 된다.(405)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 같은 각각의 메시지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며 그 메시지는 전쟁의 상처, 가난한 이들,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고달픔과 미혼모들의 아픔...처럼 사회의 비주류인생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하여 언급을 하며 그들이 아주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메신저로서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물리적인 힘이나 물질적인 도움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관점을 바꾸고 나 자신이 세상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열아홉살의 보잘것 없어 보이는 에드 케네디가 선택된 것은 우리 모두가, 누구나가 다 메신저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려고 한 것이라는 것도 안다. 나 역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게 좋다,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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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고통 끝에 낙이 온다는 진리를 경험하고, 희망을 붙들며 다가올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힘겨운 고비를 넘을 때 마다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지치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있다. 그럴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며 기운내라고, 한 발만 더 내딛으면 희망을 만날 수 있다고 전해준다면 차마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이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자, 이제 당신이 그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다. 임무는 은밀하고도 위협적으로 전달되며 결코 도망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스무살 택시 기사 에드에게 전해진 카드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미래에 대한 욕심도 없는 태평한 청춘 에드에게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명령의 카드가 그의 인생도 함께 바꿔 놓는다. 때론, 어린 소녀와 함께 달리고, 때론 폭력적인 가장을 총으로 위협하고, 때론 기억력도 희미해진 할머니의 옛애인 역할도 하며 에드는 고비를 넘고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물론, 에드에게도 고비는 있다. 사랑하지만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여자친구 '소피',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온 엄마와 그 아버지를 닮은 에드의 풀지 못한 숙제 등 에드 자신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도,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도, 모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은 영웅이라고. 그러니 제발 주위에 눈을 돌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못해 해야했던 카드 속 명령들을 어느샌가 에드는 보람을 느끼며 수행하게 된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엔 자신을 돕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에드에게 이런 일들을 시키고 깨달음을 주려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 '누구'가 밝혀지는 순간 '헉~'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첫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맞춰져 잘 짜여진 스토리는 읽는 내내 재미와 긴장감을 주었다. 재치 넘치는 대사, 정이 가는 캐릭터, 감각적인 문체등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소설이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펼쳐들었던 것은 큰 실수였다. 동이 틀 무렵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만큼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 그 순간 깨닫는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달콤하고, 잔인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결코 메신저가 아니다. 나는 메시지다. _____ p.472
책을 덮으며 나도 조용히 되뇐다. '내 인생도 이만하면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나는 특히나, 지난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청소년들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지금의 시간이 절망적이라 희망은 없을 것 같겠지만, 조금만 기운내 이겨낸다면 분명히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그땐, 지금의 역경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전해주고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청소년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으니 이 책을 메신저로 대신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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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는 책을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가슴속에 일어나는 감동을 명확한 언어로 잘 설명해 줄 순 없지만 나의 삶도 아주 조금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삶이 변하는데는 아주 큰 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 하나의 문장이나 다른 이의 삶을 통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사랑받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날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봄바람이 불 듯,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그것이 이 '메신저'의 힘이다.
밥 딜런과 살바도르 달리는 열아홉에 이미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지금 열아홉 살인 에드 케네디는? 그저 평범하게 냄새나는 개 '도어맨'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택시 운전을 하고 있지만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 보내고 오드리에 대한 사랑도 그는 전혀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 친구 리치와 마브 그리고 오드리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지극히 단조롭기만 한데 어느 날 에드에게 뜻하지 않게 주어진 '메신저'로서의 역할은 그의 삶을 조금씩 바꿔 버린다. 책을 읽는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그는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그럼 난 열아홉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인데 누구나 아마 다들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었겠지. 성인이 되는 그 날을 위해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난 어떤가? 이것이 '메신저'에서 나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건 큰 행복일 것이다. 아직은 나에게 기회가 있고 평범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에드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계획했다면 이미 이 일을 계획한 사람도 삶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할 수 있으니 운명이란,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에드가 받게 되는 카드에 적힌 모호한 글들, 이를 유추하여 사람들의 곁에 다가가는 에드를 보면서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부러웠다. 때론 얻어맞기도 하고, 때론 에드가 아닌 '지미'로 살아가야 하지만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잊었던 자신의 열정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순수한 마음', '열정' 등 에드가 나에게 던진 두 번째 문제, 나는 에드처럼 다가갈 수 있을까.
에드에게 전해질 마지막 카드가 궁금했다. 이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이 누군지, 에드와 오드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 새벽까지 이 책을 놓지 못했다.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넘겼지만 명쾌하게 결론 지어진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될테니까. 그럼 에드는 나에게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가 생각해 보면 '물론, 그렇다'이다. 카드에 쓰여진 지령에 의해 그가 나에게 직접적인 무언가를 해주진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충분히 그의 순수한 마음을 받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바뀌어야겠지? 대단한 것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충분하니까. 그럼, 모두들 준비 되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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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에 가슴 아파하며 덕수궁이라도 가자는 생각을 하고 간적이 있다. 가서 헌화를 하자는 생각에서 말이다. 무언가 가슴 아픈 상황에서 동참을 하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 위로를 받고자 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가게된곳...가방에 몇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 책들중 유일하게 이 책을 가지고 나갔다. 기다리면서 혹시라도 보게 될까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시간이나 기다려서야 순서는 돌아왔다. 지하철 안으로 쭈욱 연결되어서 다른 출구를 통해 이어진 길에 네시간을 서 있다보니 그 시간은 5학년 아들아이에게는 넘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시간에 그 누구도 시간의 지루함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숙연한 시간이었다.
그 기다림을 가치있게 보낼수 있는 책이 바로 내 가방안에 있었다. [메신저].. 아들을 위해 가져온 책은 없기에 내용이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들아이에게 책을 권했다. 앞부분만 잠깐 보았는데 뭐 그닥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들아이에게 권하였다. 그런데 줄을 기다리면서 앞에 서계시던 할아버지가 아이가 책보는 것을 유심히 보시는데 마침 섹스~~어쩌구~~하는 말이 쓰여있었다. 헉~~내가 실수했나? 싶어서 약간은 민망했지만 뭐~~괜찮겠지~~하면서 아이의 손에 놔두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아들아이는 이 책 한권을 다보았다. 네시간만에...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이책~~[메신저] 흠~~역시 아들아이가 봐도 그닥~~넘 야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과 뭐~~내가 괜히 주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 몇몇 이야기들도 있지만 큰 줄거리는 그런 걱정을 날려주는 책이다. 처음의 어리버리한 청년들이 이루어내는 이야기들이 이 책을 덮을때 이렇게 희망적인 건전한 이야기일줄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삶은 지울수 없는 상처들을 하나씩 지고 살아가게 한다. 잘못된 만남이라든지, 너무 이른 행동이라든지, 책임지지 못할 일, 그리고 뭐라고 딱히 누가 잘못했다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방향으로만 달리는 삶들을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있다. 아마도 누구나의 삶에서도 만나게 되는 그러한 풍경이리라. 그러한 내면의 고통을 가지고 살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식적이라든가, 무언가 가려져 있다든가...진실이없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나의 삶에도 역시나 그러한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차마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리고 싶은 그러한 내면의 고민들, 상처들이 있다. 그 상처들로 인해 나의 모습이 너무 바보스럽지나 않을까 겁을 먹으며 머뭇머뭇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머뭇머뭇거림가운데 살아가는 한 나약한 사람에 의해서 삶이 아름답게 발전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나의 작은 기다림, 설레임, 조용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주시가 나의 삶을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예기지 않은 순간에 꽃을 피우게 할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가슴아파하고 있는 이 즈음에 나에게 삶의 향기를 전해주는 그러한 행복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덮은 지금 이순간 이후 나도 누군가의 메신저가 되어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