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내가 <12국기>라는 소설을 통해 처음 접했던 오노 후유미의 초기 작품으로, 환상적으로 유치한 표지와 엉성한 번역으로 유명했다는데, 최근 북스피어라는 출판사에서 재출간하면서 표지를 바꿨고 번역을 새로 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주사쇼크로 인한 죽음의 체험을 한 후에 스스로를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한 히로세이다. 교생이 되어 돌아온 모교에서 히로세는 자신과 같이 다른 세상의 존재라고 생각되는 외톨이 다카사토를 만난다. 히로세는 다카사토가 10살 때 일본의 오래된 미신인 ‘카미카쿠시(사람이 이유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현상)’를 당해서 사라진 뒤 1년 후에 홀연히 나타났고, 그에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고가 발생하여 죽거나 다치는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저주받은 아이”로 따돌림 당하고 있는, 아니 무서워서 피하고 있는 아이라는 점에서 다른 세상의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이러한 다카사토의 모습이 다른 세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물위에 뜬 기름처럼 떠도는 자신과 같은 동족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리고 글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백을 다카사토가 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마성의 아이”인지, 또 왜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 비슷한 에피소드가 반복해서 채우고 있다. 마치 TV드라마가 조금이라도 인기 있으면 원래 예정과 달리 연장 방송되는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순간 다카사토는 히로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이 세상의 존재인 히로세를 남겨두고 다른 세상 - 12국기의 세상 – 으로 떠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처음부터 주인공 히로세의 일방적인 착각에 의한 다카사토에 대한 짝사랑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히로세는 자신은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한 것이고, 다카사토는 타인에 의해 외톨이가 돼버렸다는 점에서 오는 차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맞이하게 되는 슬픈 외사랑의 필연적 파국이라고나 할까. “이제 …… 이 세상 어디에도 제가 있을 곳은 없습니다.” “있을 곳이 필요하다면 만들어 줄게. - 가지 마. “그럼 나는?” ~ 중략 ~ “…… 난 돌아갈 수 없잖아! 그런데 날 두고 너만 돌아가겠다고!? ~ 중략 ~ “그럼 난? 여기에 혼자 남겨진 난?”1) |
|
“나나 너는 좋아서 열에서 벗어난 거지만 다카사토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거야. 완전히 종류가 다르니까 아무리 애써도 삐져나오게 되어 있지. 그런 점이 달라.” “다카사토, 너를 화나게 하면 보복 당한다는 소문이 있는 걸 알고 있니?” “...... 제 주변에서 사고나 사람이 죽는 일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제가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사실도요. ”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과 살아가기를 바란다. 회사나 모임에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행동이 튀거나, 말투가 모나거나, 어딘가 좀 달라 보이는 사람들은 다수에게서 배척되곤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이라는 단순 명쾌하면서도 냉정한 이 한마디는 얼마나 황폐한 표현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일상생활의 리얼리즘이다. 이제 여기에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이 배경이 되면서, 편견과 권력이 등장하고 공포와 이기심이라는 감정이 개입한다. 경계 바깥에 선 사람들과 그 경계 안쪽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힘든 사회적 모순과 갈등. 그들 모두가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서 이 모든 구조적인 잔인함은 모골이 송연하도록 무섭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슬프기도 하다.
“여기는 내가 있을 세상이 아니라는 환상이죠. 세상과 내가 적대했을 때 세상을 원망할 수는 없어요. 적어도 저는 원망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어째서냐고 고민했죠. 어째서 뜻대로 되지 않을까. 아마도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울리지 못하는 거다. 애초에 무리다. 오직 돌아가고 싶은 바람뿐이에요. 어머니와 전 어릴 적부터 사이가 안 좋았지만 어머니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건 누구나 하는 생각이야. 너희만 그런 게 아니야. 나 역시 어릴 때는 그랬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한 적은 없었어. 이런 젠장, 하고 생각한 적은 수도 없지만.”
어릴 적에 겼었던 임사체험 이후로 가족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히로세는 교생이 되어 모교로 돌아온다.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사와 타협하는 것도 서툴러서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히로세에겐 유일하게 말이 통했던 교사 고토가 있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고토와 함께 교단에 선 히로세는 그 시절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톨이인 다카사토를 만난다. 10살 때 가미카쿠시(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를 당해 1년 뒤에 홀연히 나타난 다카사토의 주변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반 아이들은 물론 그의 부모조차도 그것이 전부 다카사토가 저주받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태연히 무심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다카사토의 내면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학교는 온몸에 피 냄새 자욱하게 배이는 지옥의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그 지옥 속에서 무참한 살육(?)이 벌어진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행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애처로움이다. 나는 이보다 더 슬프게 공포를 만들어내는, 이보다 더 통렬하게 현대 사회의 인간성을 비판하는 작품을 알지 못한다.
“내 이기심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지, 적어도 나는 모두를 똑같이 좋아할 정도로 착한 인간이 아냐........ 누구라도 모든 사람에게 잘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거야. 하지만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는 법이야. 모두를 좋아한다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숭고한 애정의 뒤편에는 이다지도 추악한 이기심이 존재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자체가 이렇게 더럽다. 더럽다고 히로세는 생각했다.
사실 이 작품의 스토리를 요약해보자면, 지나치게 간단하다. 교실에서 외톨이인 한 학생이 있는데, 누구든 그를 괴롭히려하거나, 그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보복을 당한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힘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점점 늘어나고, 주변 사람들은 결국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를 몰아세운다. 책을 읽어 가면서 눈앞에 바로 영상이 떠오를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이런 스토리가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포물에서 너무 자주 사용되는 클리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노 후유미는 그 속에 가미카쿠시와 체인질링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꼼꼼한 심리 묘사를 통해, 캐릭터에게 설득력을 부여하고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전혀 새로운 작품을 그려낸다. 사건이 흘러가는 대로 스토리를 따라 가다보면, 마치 뒤통수에 잘 갈아놓은 얼음송곳을 천천히 쑤셔 넣는 듯한 기분에 섬뜩해지곤 한다. 그런데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사람들이 점점 죽어가면서, 눈앞에 피투성이 영상이 떠올라서 소름이 끼치는데도 피 냄새 보다는 눈물의 맛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히로세, 고토, 다카사토의 이름을 갖고 있는 현실의 그 누군가를 나는 (혹은 당신도) 알고 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고, 저기 어딘가 진짜 내 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곳만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행복할 것 같다고 다른 곳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이 바로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생 때 말이지, 같은 학년에 자기가 버려진 아이라고 말하는 여자애가 있었어. 자기는 버려진 아이라 자신의 부모는 진짜 부모가 아니라고 우겨 댔지. 얼굴을 보면 부모랑 똑 닮았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여자애는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말했어....누구나 여긴 자기가 살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 누구든 한 번은 말하지, 돌아가고 싶다고. 돌아갈 장소 따위는 없어. 그래도 말해.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으니까. 여기는 진짜 세상이 아니야. 여기는 진짜 집이 아니야. 진짜 부모가 아니야. 여기서 도망치면 어딘가 살기 좋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지. 나를 위해 준비된, 나에게 맞추어진, 그림으로 그린 듯한 행복이 넘치는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 건 없어.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히로세.”
오노 후유미의 (더 유명한) 전작인 ‘십이국기’도 ‘시귀’도 그 어떤 책도 읽어 보지 못한 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인 까닭에 ‘마성의 아이’가 그녀의 최고 걸작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 하나만 읽더라도 오노 후유미의 팬이 되고 말거라고 장담한다. 영화도 그렇지만, 책도 역시 언제 보느냐가 결정적인 작품들이 있다. 그 작품이 누군가에게 제 시간에 도착했을 때, 거의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뒤흔들며 공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오노 후유미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어딘 가에서는 이단이지 않은가. 몸에 결함이 있든지, 마음에 결함이 있든지, 그런 식으로 누구나가 이단이다. 이단자는 자신이 돌아가고 고향을 꿈꾸게 마련이고. 이루어질 수 없어서 허무하고 어리석지만, 치명적으로 달콤해서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꿈을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것이다.
“히로세, 그건 전부 동화야. 산다는 건 때때로 괴롭지. 인간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 해. 그건 알겠어. 네가 동화 속으로 도망치려는 기분은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지. 나쁜 짓이라고 할 수 없어. -그래도 사람은 현실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돼. 현실과 마주 보고 어딘가에서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되고, 죄 없는 동화라도 언젠가는 그만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이제와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안고서) 그때 정말 진지하고도 간절하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부모는, 내 형제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보다 훨씬 더 멋지고 좋은 사람들 일거라고 상상했고, 내가 살고 있는 생은 어쩐지 진짜 내가 누려야 할 내 삶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나를 위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순진하고도 조숙했던 어린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게 이 작품은 언젠가 같은 삶을 살았던 경험을 가진 형이 마음을 다해서 동생의 어깨를 감싸 안는 위로와도 같은 작품이 되어 주었다. 물론 당신이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작품이 필요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이 작품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일 거라고. |
|
아,제목 이렇게 써도 될라나.. 이거... 내가 쓴게 아니라, 2001년도 한겨레판의 부제다.. -ㅅ- (출처밝혔심!ㅎㅎ) 이 부제를 십년이 좀 안되는 시간동안 되새김질 했더니, 이제는 마성의 아이,하면 날 괴롭히면 님은 죽삼,이 자동연상된다.. - _ - 뭐.. 잘 생각해보면 틀린 부제는 아니니까.. - _ - 다분히 오컬트스러워서 그렇지.. 이 책에서 다카사토를 괴롭히면 다 죽으니까 틀리진 않다고 본다.
그러고보면 십이국기는 참 여러번 재탕해서 보고 또 보고 했는데 그 외의 책들(시귀,17세의봄,녹색의집등)은 재탕이 잘 안된다.. 왜냐구? 무서우니까~ 왜 무서울까. 마이너스 감정이 극에 달하게 하는데에 있어서 오노 후유미는 천재적이다. 피할수 없는 상황, 피할수 없는 전개, 무력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 끼워져 고독이 느껴지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게다가 내가 미칠만큼 두려워하는 귀신인가 싶은 미스테리한 요소들이 쏙쏙 박히면.. 난 정말 후덜덜 할 수 밖에 없다규.. ㅠ ㅠ 이번에는 내용을 알고 보는건데도 무서워서 또 ㄷㄷ하고 말았었다능.. - _ -;;
음, 읽으면서 불편하지 않았다. 원서를 읽지 못하니까; 번역본을 읽으면서 "이게 뭐임"이란 생각이 들지 않으면 난 그냥 무조건 번역 괜찮다,로 인식하니까.. - _ - 다만 궁금한건 옛날 그 책이 얄팍했던거에 비해 요번 책은 두툼... 음... 글씨가 좀 낙낙한거 같기도 하고.. 다른 리뷰 쓰신분은 빡빡했다고 하시는데... 음... 나는 어쩐지 좀 행간이 넓지 않나 싶.. ㅎㅎㅎㅎ (정병인증인가ㅋㅋ)
어쨌든 비바! >_< 표지 디자인만 놓고 봐도 한겨레판에 비하면 북스피어판은 황홀 그자체다! 분명 한겨레판도 몽롱한 느낌에 남자아이 그림이었고, 이번 북스피어판도 몽롱한 느낌에 남자아이 그림인데...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ㅎㅎ 그리고 내가 좋아라하는 (요즘 책들에 자주 쓰이는) 부분코팅까지 해주는 센스!
.. 저.. 십이국기도 북스피어에서 내 주면.. 쿨럭쿨럭.... ;ㅂ; 좋겠.. 쿨럭... 에혀.. 하다못해 요약되지 않은 시귀라도 어뜩케....????? 우웅;;; 어디 독자권리장전 같은거 없나.. - _ - 췌... 우리는 좋은 책을 읽어야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뭐 이런거 말야. |
|
최근에 서점에서 책을샀는데
하나는 '백야행'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쓸 '마성의 아이'입니다.
마성의 아이는 그럭저럭 읽을만 했던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왠지 자기의 모습과 닮은 다카사토를 감싸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요.
사실 다카사토가 인간이 아닌 이세계에서 사는 생물이라는 것.
그로 인해 다카사토를 주변에서 지키는 어떠한 두 생물때문에
다카사토를 건드리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 죽이면서,
다카사토가 힘들어 하는 그런 일들을 쓴 것인데 그렇게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읽을 만을 했지만 그렇게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었으니까요. |
|
'조은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십이국기>를 재밌게 읽었더랬다.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되었지만 그보다는 훌쩍 시간이 지난 2005년~2006년 사이에 읽었던 것 같다. 일본소설은 '하루끼'의 책도 안 읽는지라 지금도 그닥 즐겨 읽지 않고 있지만, 이 책은 다른 일본소설과는 달리 호흡이 길었던 탓에 끝까지 읽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판타지' 계열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전세계적인 열풍이 불었던 <해리포터>는 판타지 소설에 대한 매력을 한껏 뿜어냈던 기억이 난다. <반지의 제왕>과 함께 <해리포터> 시리즈도 아주 푹 빠져 읽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재출간을 하면서 그간 읽지 못했던 새로운 책이 눈에 띄었다. 바로 <마성의 아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인데, <십이국기>에서 구현된 세계관의 시작을 알려준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도 작가의 말을 옮긴 뒤치미(번역가)가 말하길, "이 책은 <십이국기>와는 별개의 작품"이란다. 그런데 두 작품을 모두 읽은 독자로서는 둘의 세계관이 교묘하다못해 아주 그냥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탓에 '작가의 말' 따위는 그냥 변명처럼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두 작품 사이의 '틈'에 주목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굳이 작가의 말에 주목한다면, <십이국기>는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경계를 확연히 보여주면서 두 세계의 차이점을 확연히 보여준다. 그리고 주된 무대도 '저쪽 세상'에서 일어난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쪽 세상'과도 닮았으면서도 또 다른 세계인 '저쪽 세상'을 말이다. 그런데 <마성의 아이>에서는 오로지 '이쪽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만 보여준다. 그런데 '저쪽 세상'에 선택된(?) 아이는 '이쪽 세상'에선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저쪽 세상'으로 가야만 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 사이에서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진다. '보복'이라는 이름의 사건 말이다.
작가는 왜 사건을 '보복'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싶었을까? 저쪽 세상 사람이기 때문에 이쪽 세상 사람들과 하나로 어울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어쩌면 일본인이 지닌 배타성과 이지메로 불리는 왕따 현상을 꼬집어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과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이런 작품을 쓴 것일까? 하지만 <마성의 아이>를 이렇게 이해해버리면 <십이국기>는 이런 문제의식조차 하나 없이 그저그런 판타지소설에 불과한 수준 이하(?) 작품이 되어 버린다. 혹시나 작가는 이런 두 작품 간의 질적인 '차이'를 염두에 두고서 두 작품을 별개의 작품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닐런지. 그런데도 '엘릭시르' 출판사는 동명의 소설인 <마성의 아이>를 '십이국기 0권'으로 설정하며 시리즈에 포함시켰다. '북스피어'에서는 밝힌 둘의 차이를 '엘릭시르'는 애써 감추며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생각한다. 둘의 차이가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으니까.
암튼 오랜만에 다시 읽는 시리즈를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다. |
|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수가 있는 십이국기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연관성으로 인하여서 십이국기를 읽어야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시귀와 비슷한 일면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는데 시귀에 등장을 하였던 마을의 모든일에 관여를 하면서 지도자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사원의 작은주지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의문을 해소를 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기 보다는 주변의 인물들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맞는 행동만을 하면서 계속하여서 자신의 의지를 감추고 있었던 인물과 비슷하게 마성의 아이에 등장을 하는 인물들도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것이 아니라 성만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 모든것이 정밀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어딘가 황량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일들로 인하여서 괴로워하는 일면도 있지만 그러한 면모를 주변인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일로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요인물로 학생과 그 학생을 지도를 하는 입장에 있는 교생이 등장을 하는데 두명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일면은 두명다 이쪽세상에 대하여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서는 지워진 환상을 보았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세계에 대하여서 생각을 하면서 현실을 인식을 하는 일면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교생은 자신이 경험을 하였던 의사체험이 긴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안에서 경험을 한 일상에 대하여서 지워진 기억을 찾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자신이 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과 교류를 하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정도이지만 학생은 오랜 시간을 다른곳에서 생활을 하였고 그러한 경험으로 인하여서 얻은 기억이 없어지고 오로지 없어진 기억에 대한 애정만이 남아있지만 자신이 있을 장소가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깊이있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일면에서 차이가 발생을 합니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다른세상의 사람과 같은 인상과 함께 그에게 관여를 하였던 사람들이 경험을 하는 비일상적인 일들이 시간의 흐름속에 기억이 되면서 홀로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홀로된다는 사실에 대하여서 알고 있는 교생은 자신과 비슷한 기억을 공유를 할수가 있는 존재를 찾았다는 마음에 깊은 관여를 하지만 관여가 진정으로 그 학생을 위하여서 필요한 일이었는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볼수가 있는 일면이 보여집니다. 현실에 대하여서 인정을 못하고 환상만을 기억을 하면서 그곳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경우는 있지만 언젠가는 현실을 인정을 하고 현실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인물과 현실은 무가치하고 자신이 잊고 있는 환상만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그 환상의 존재가 실체를 하면서 그 인물의 주변에서 여러가지의 일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하여서 다른 인물들에게 알려야 하는지와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서 적응을 할수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적대감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올바른 상황인식인지에 대하여서 다시 한번더 생각을 해볼수가 있는 기회를 제공을 하는 책인것 같습니다. |
|
절반쯤 읽어나가면서 은근히 불쾌했다고 해야 하나... 책 두께와 깨알(?)같은 글씨가 부담스러웠지만 구입한 돈이 아까워 읽어보자고 시작한 "마성의 아이"는 처음의 부담감과는 전혀 상관없이 책 속으로 사람을 쏙 빨려들어가게 만들었다..
근데... 점차점차 귀신에 씌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주 불편하였다. 마치 영화 "주온"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고, 암튼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책은 중반을 넘게 달리고 있었다... 이젠 그 끝을 도대체 어떻게 맺을 것인지 궁금해서 책을 손에 놓을 수가 없다. 대체 이런 것들이 다 뭔 말을 하기 위한 것이여???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편집자님의 말씀을 읽고보니 아~~~ 하는 생각과 더불어
상영시간 두 세시간짜리 장편영화가 마치 30분도 안되서 끝난 것 같은 진한 아쉬움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 책은 줄거리가 어쩌구 저쩌구 하고 떠들기가 참 곤란하다. 직접 책을 읽어봐야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마성의 아이, 다카사토를 만나고 싶다면 직접 책으로 감동을 느껴라. 나도 히로세처럼 다카사토를 따라가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에 푹 빠져 있는 요즘,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를 접하게 되어 너무도 행복했다.
그녀.. 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랬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을 또 찾아봐야 할까부다..^^
|
|
오노 후유미 대표작이라면 판타지 소설 십이국기가 있다.
십이국기 책으로는 못 읽고 애니로만 본 상태.-_-; 애니가 책으로 7권인가 8권까지로만 제작되었다고 하던데..현재 11권까지 책으로 출간. 후딱 책으로 1권부터 읽고싶다.
여기서 십이국기 타령은 왜 하냐면 마성의 아이는 십이국기에 나오는 기린 타이키[마성의 아이:다카사토]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십이국기 외전편이 아니라고 부인 하지만 십이국기를 알고 마성의 아이를 읽으면 외전편 같다. 하지만 마성의 아이만 읽어도 전혀 무방하기에 외전편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 천재인데?ㅋ
쨌든, 마성의 아이로만 따로 본다면 공포소설이다.십이국기 스토리를 아니깐 상황이 이해되서 전혀 공포스럽지가 않았다는게 문제다.-_-; 하지만 재미가 반감되었더 건 아니다. 계속 손을 놓지 못했으니...
읽는내내 주인공 다카사토와 히로세 관계가 참 좋았다. 살면서 나를 믿고 이해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것 같다
|
|
3.8 십이국기의 타이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십이국에서 인간세상으로 떠밀려온 다음 다시 돌아갈 때까지의 이야기 중 마지막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편집후기를 보면 십이국기보다 먼저 구상된 것이라고 하네요. "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가 보다"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십이국기 때 나온 것보다 자세합니다만 조금 다릅니다. 간략하게 보면 다카사토는 가미카쿠시를 당했던 아이입니다. 히로세는 자신의 출신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출근하는데 2주간의 생활은 다카사토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점점 엉망이 됩니다. 화학선생님인 고토가 어느 정도 히로세의 끈이 되고 또 양호교사인 도토키도 응원해 줍니다. 사고는 점점 커져서 학생 여러 명이 죽는 일로 발전하고 끝내는 학교 건물 일부가 붕괴되기도 합니다. 기(타이키)를 찾는 여자 아이가 발견되다가 결국 렌린이나 연왕 등이 나타나 스스로 돌아갈 수 없는 타이키를 데리고 갑니다. 그 직전에 타이키는 각성을 합니다. 판타지입니다. 그 배경은 앞서 말한 것처럼 '현세에서 유리되고 싶은 사고'입니다. 주인을 모시는 가신의 제멋대로인 판단이 불러오는 피해라. 일본적인 사고 아닙니까? 101024/101024 |
|
초등학교 시절 홀연히 사라졌다 1년만에 돌아온 다카사토.
그를 괴롭히면 저주를 받는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교생이 되어 모교로 돌아온 히로세는
다카사토에게 동류 의식을 느끼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교생 실습이 진행되는 도중 다카사토를 괴롭힌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다카사토에게 지니고 있던 공포심과 거리낌은 분노가 되는데...
히로세는 다카사토를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만 간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 알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분명히 두 단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을 이루는 이치에서는 이 두 말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듯합니다.
자신과 다른 건 틀린 거지요. 그 틀린 것이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면 이 공식은 더욱 굳건해집니다.
결국 인간은 이 틀린 것을 배제하여 안정감을 찾으려 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남들과는 '다른' 인물이 나옵니다. 이 세상과는 다른 곳에 적籍을 두고 있는(그렇게 믿고 있는) 다카사토와 히로세입니다.
교생인 히로세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나름 이 세상에 잘 적응한 케이스입니다. 문제는 다카사토이지요.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며 경원시되는 다카사토.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세상 사람들은 다카사토를 더욱 배척하기 시작합니다.
"무섭다면 떨어져 있으면 되잖아요. 무시하든 따돌리든 하면 되죠. 어째서 일부러 끼어듭니까. 어째서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 거냐고요."
히로세의 이 말이 정답이겠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저 역시 책을 읽을 때는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만약 제가 저런 처지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는 가운데 진상은 천천히 밝혀집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데 이 작품은 일반적인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판타지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겠네요. 후기에 '마성의 아이'를 '십이국기'와 연결지을 필요는 없다고 나오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십이국기'와 연결짓지 않기가 더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집어든 저는 살짝 실망했습니다. 뭔가 미스터리적인 결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결말부에서 히로세가 보여준 행동이 실망을 걷어주었습니다. 그렇죠. 히로세는 인간이니까요. 인간이니 저런 마음을 품을 수밖에요.
인간은 누구나 어딘가에서는 이단이다. 몸에 결함이 있는 자, 마음에 결함이 있는 자, 그런 식으로 누구나가 이단이다. 이단자는 고향을 꿈꾼다. 허무하고 어리석지만 달콤한 꿈.
이 문구가 인상 깊긴 했지만 솔직히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이 이단이 아니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평온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추악한 모습일지라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겠지요. 좀 씁쓸하긴 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