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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아 펼쳐본 책의 첫머리에 '수치스러운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라고 씌여있었다. 제목으로 미루어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절망만으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책방의 좁은 통로 한켠에 기대어 책을 여기저기 펼쳐보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이력엔 동반 자살 미수, 약물 중독, 정신병원 수용, 아내의 불륜 등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도 충격적인 내용이 한 세트인 것 처럼 어우러져 적혀 있었다.
사양 (斜陽) : 저녁볕, 차츰 쇠약해가는 세력을 비유하는 말
'사양'은 패전 후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을 배경으로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귀부인의 자태를 잃지 않는 어머니와 마약 중독자인 나오지,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다가 타락한 소설가를 찾는 딸 가즈코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조숙한 체 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댔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체 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체 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못 쓰는 사람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체 해 보였더니 남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부자인 체 해 보였더니 남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댔다. 내가 냉담을 가장했더니 남들은 나를 냉담한 놈이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내가 정말 괴롭고, 나도 모르게 신음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채 가장하고 있다고 수군댔다.'
'사양'에 비해 '인간실격'은 보기가 좀 불편했는데, 그건 아마도 적어도 '사양'에서는 끝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는 어머니와 자신만의 이상한 꿈을 찾아 떠나는 가즈코의 모습에서 그래도 잠깐이나마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데 반해 '인간실격'은 어떤 희망도 없는 절망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약간의 희망을 말할 것 처럼 하고는 바로 극단적인 파멸로 이끌어 버리는 통에 심한 거부감마저 느꼈는데, 아직까지는 누군가의 완전한 성공처럼, 완전한 몰락도 편히 지켜볼 배짱은 갖추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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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자이 오사무의 삶 자체가 어둡다고 해야 할까요? 여러번의 자살을 시도한 끝에 성공?을 하게 되죠. 자녀가 있는 아버지로써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이라고 봐도 될 만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책속의 주인공인 요조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성장합니다. 자신의 진지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쳐 집니다. 일부러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실수한 모습이 친구에게 밝혀 질까봐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성장하여 타지로 나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호리키' 를 만나면서 술과 여자를 접하게 됩니다. 모든 여자가 자신을 좋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것 같습니다. 빨리 헤어지기 위해서 키스를 해 버리기도 합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 했던 사람은 술집의 종업원이기도 했습니다. 같이 동반 자살을 시도 하지만 요조 혼자만 살게 됩니다.
자살을 하기 위해서 여인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 합니다. 혼자 무엇을 해 보지 않았기에 자살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끌어들인것은 아닐까? 왜? 혼자 자살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화가 나기도 합니다. 혼자 가는길 외롭지 않으려고 동반자살? 종종 뉴스에 나오는 일가족 동반자살의 기사를 봅니다. 자녀를 왜? 부모이기에 함께 간다? 동반자살은 없다고 봅니다. 죽음은 혼자 가는것이기에 동반자살은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녀들과 함께 간다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살해하고 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듯 보입니다. 살고자 하는것 보다 죽고자 하는 마음이 더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330) 신에게 묻노니, 신뢰는 죄이런가? 요시코가 겁탈 당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요시코를 괴롭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요조. 다자이 오사무는 신에게 기대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까요? 347) 신에게 묻노니, 무저항은 죄이런가? 책 속의 요조는 잘못된 선택에 빠진것은 아닐까요? 쉬운 사랑만을 하지 않았을까요? 술집의 여인들을 만나면서 너무도 쉬운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만을 기댄것은 아닐까요? 책속에서 형제와 아버지가 나오지만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받지 못한것은 아닌지? 아니면 요조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않고 주변의 여인들 속에서 사랑을 구걸 한것은 아닌지?
본인을 바라보면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본인을 "인간실격"이라고 단정 지은것은 아닌지?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을거 같내요. 우울할때 읽지 말아야 할거 같기도 합니다.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데카당스 문학 단어 자체는 '퇴폐', '쇠락'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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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적어 내리고 싶지 않았던 겨울이 있었다.
때는 일월 이월 그리고 삼월 , 아니 혹은 사월까지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없이 추락하던 계절에 나는 다자이오사무의 대표작, <인간실격>을 마주 대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도 적절한 시기란 것이 있듯, 이 작품과 나는 이렇게도 간절했던 순간 극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제 때를 맞추어 찾아오는 봄비와도 같아서 작품 속의 요조는 그 순간의 나를 보는 듯했기에 나는 꼭 그와 같이 아파했고, 좌절했고 또 체념했었다고 고백한다.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p.19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이와 같은 익살꾼 하나쯤은 숨겨 놓고 있다. 즐거운 척, 상처 받지 않은 척, 쿨한 척... 그러나, 가끔씩 이런 익살꾼도 무대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슬픔에 잠기며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늘 익살스럽게 살아갈 수만은 없다는 것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간실격..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자평하는 소설 속 주인공 요조는 소설의 특징인 허구를 가장하기는 하였으나, 평탄치 않았던 작가의 짧은 삶과도 너무나 닮아 있었다. 실패로 끝난 네 번의 자살기도, 그리고 끝내 성공한 그의 다섯 번째 시도... 그렇게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 부단히도 노력했던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약하고 순수하여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한 영혼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자신의 속앓이를 대신한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요조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고민에 몸서리치던 수많은 연약한 청춘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였던 것처럼, 끝 모를 자기비하로 한없이 가라앉기만 했던 지난 겨울, 나도 그에게 한없이 공감하고 또 쉽게 위로 받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얇디얇은 소설 한권을 읽어내며 나는 순수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수많은 평론가들의 평을 빌자면 순수한 영혼이 세상에 대해 배반을 느끼고 한없이 추락하는 이야기.. 순수하다는 것은 과연 이처럼 연약하고 무르기만 하여 타락하기 쉬운 것인가. 작품 속 요조와 호리키의 ‘반대말 놀이’를 인용해 본다면 ‘순수’라는 단어의 반의어는 우리 인간들이 이루어낸 ‘세상’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변했다는 말을 듣는 것, 그리고 변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에 없는 것은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한다. 조금 더 어렸던 과거에서 변해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성장한다거나, 성숙했다는 것이 아니라 타이어가 거친 도로면을 부드럽게 달려 나가는 데에 꼭 알맞게끔 닳고 닳아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세상에 익숙해져 가고 있을 무렵쯤에는 꼭 한번씩,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닳고 닳은 세상에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져 버렸다는 씁쓸함이 엄습해와 견딜 수 없어 질 때가 있다. 이 괴물 같은 세상에 꼭 맞도록 변해버린 나라는 사람도 역시 흉물스레 일그러져 언젠가는 순수함이니 뭐니 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게 되는 단단하고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인 요조의 타락과 파멸에 그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모두 때때로 그와 꼭 같은 모양으로 타락하고 힘겨워 하며 가혹한 세상을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근근히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역시 그와 같이 나약하고 순수한 일면을 갖고 있는 인간이기에.. 따뜻한 피를 가진, 별 수 없는 '인간'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순수함에 대한 나약한 한 영혼의 고백이 사회 부적응자의 철없는 신세한탄으로만은 들리지 않기에 이 소설은 더욱 내게 절실하게 기억될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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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겹고 슬픈 인생을 살다 간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두 편. [사양], [인간실격]
[사양]에서는 '일본의 귀족'에 대해 얼핏 알 수 있다. 귀족이라고 하는 단어는 서양 사회에서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일본의 과거에도 이런 계층이 있었구나..싶다. 몰락해가는 한 귀족 가문이 있다. 그 귀족부인과 딸, 아들이 남아있다. 누나인 가즈코와 동생 나오지는 어머니를 일본의 마지막, 그리고 순수한 귀족부인이라 여긴다. 가즈코는 한 번의 결혼 실패로 어머니와 살고 있고, 마약 중독자인 나오지는 세상과 그리고 가족과 담을 쌓은 채 가족들에게 기생적인 삶을 산다. 어머니는 그런 가즈코와 나오지의 기품있는 정신적인 지주이지만 미래의 삶은 어둡기만하다. 도쿄의 집을 팔아야하는 상황까지 가세는 기울어지고 어머니의 오빠의 권유로 일본 어느 시골의 별장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 시점으로 어머니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진다. 가즈코가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대중 소설가 우에하라의 술독에 빠진 삶. 아기를 위한 맹목적인 관계의 희망은 내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슬프고 또한 아름다운 저녁 노을같다.
[인간실격]. 인간으로서의 기준이 실격되어버린, 끝내 정신병원에 갖히게되는 주인공 요짱. 요조.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가식이며,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그들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요조. 그러기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그들을 속여야함으로 자신의 운명을 정해버린 나약한 요조이다. 작가의 자살행위가 소설에도 고스란히 나타나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주인공이 사투한 세상. 그리고 부조리한 사람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요조를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웠다.
두 소설 모두 삶이란 누구에게나 희망적이지않고, 또한 바라는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오지도 요조도 갓난아기의 울음을 터뜨리고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하얀 속싸개로 소중히 감싸 따뜻한 젖을 먹고, 엄마의 따뜻한 기운을 흠뻑 느꼈을터인데.... 어쩌다가 깊은 암흑의 소용돌이같은 삶을 살게되었는지 마음이 쓸쓸해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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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동안 굉장히 많은 책들을 읽은 느낌이다. 우선 요시다 겐코의 <도연초>를 읽었고,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을 복습하고, 다카노 에쓰코의 <20세의 원점>을 읽었다. 그리고 나서 <재일 강상중>을 읽으려는 찰나에, 갑자기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복습하고 싶어졌다. 요즘 들어서 책을 복습한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새로 읽어야 할 것들이 아주 밀려들어오기 때문에 한 번도 못 읽은 책들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전에 읽었던 것을 다시 느끼기 위해 반복해서 몇 번이고 읽는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하지만 너무 읽고 싶었고 게다가 <사양>의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 '나'(가즈코)와 남동생 나오지, '최후의 귀족'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문학적 스승인 소설가 우에하라. 이들이 모두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분신 격이라 할 수 있다. 귀족(혹은 황족) 출신이지만 패전 후 몰락하여 이즈의 조그만 산장에서 둘이 생활하는 모녀의 모습. 생활력이 없는 그들은 이제 예전처럼 시중드는 사람을 두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생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할 줄 아는 일이 없기 때문에 돈이 떨어지면 옷이나 장신구 등을 팔아서 식량을 산다. 그들을 보는 주변의 시선도 별로 좋지 않다. 아이 둘만 놔둔 느낌이라느니, 언제까지 그렇게 물건을 팔아서 살수 있을거 같냐느니...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세상 물정 모르기는 나 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의 생활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약간이나마 느낀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양>은 꽤 기묘한 이야기다. 처자가 있는 작가 우에하라와 이혼녀 가즈코의 특이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머니는 결핵으로 죽고 동생 나오지는 자살하고 우에하라는 자포자기와도 같은 향락주의에 빠져 지내는 가운데 가즈코만이 종래의 관습적 도덕에 대항하여 스스로 새로운 '도덕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전반부에는 감상주의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반면(특히 귀족 모녀가 산장에서 유유자적 지내는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후반에 이르러 '전투 개시'를 외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좀 낯설기도 하다.
나도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괜찮은 걸까. 어쩌면 내 자신도 굉장히 데카당스적일지 모른다. <사양>과 역시 어제 읽은 다카노 에쓰코의 <20세의 원점>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다자이 오사무와 다카노 에쓰코는 자신들만의 굳건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독서의 폭도 넓고, 사유의 깊이도 깊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가? 수박 겉핥기식이고 잡다한 분야의 독서와 점점 둔해지는 감수성, 그리고 끝없는 우울... 언제까지 이렇게 살수 있을까,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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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 바로 식탁앞에 열명이 넘는 식구들이 아무런 표정도, 아무런 말도 없이 식사를 하는 광경에서 어린 남자 아이가 받았을 공포감 때문이다.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요조. 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그의 1인칭 시점에 따른 화법을 따라 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요조가 되고 만다. 요조 속의 괴물을 보고 그것이 또한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남에게 이해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공포는 조금씩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또한 누구나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고 세상에 대처한다. 이게 인간들의, 나라는 사람의 위장술이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라는 노래가사말 처럼 누구나 마음 속 한 구석 쓸쓸함을 감추고 적당한 미소로 괴물을 감춘다. 우리도 그렇지만, 요조 역시 모두를 속일 수가 없었다. 그의 슬픈 어릿광대짓은 다케이치에 의해 처음 들통이 난다. 바보 같은 학급친구인 그는 철봉에서 일부러 떨어져 큰 웃음을 준 요조에게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어쩌면 바보같은 다케이치도 사실 동류가 아니었을까. 번번이 그렇게 남에 의해 자신의 의도를 간파당할 때마다 요조는 식은 땀을 흘리며 지옥의 불꽃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남에게 어릿광대짓을 간파당하는 일이다. 심지어 가족 앞에서도 유유히 자기 자신을 꾸며내야만 했던 요조. 사실 매일 시골에 있는 안부전화를 드리며 기분도 나지 않는 농담이나 애교를 부리며 애써 나의 안녕을 보고하는 전화. 이 정도는 약과다. 그보다도 진짜 나의 고민과 걱정을 말할 수 없을 때의 외로움. 누구나 혼자이지만 요조는 더욱이 외로운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사랑도 영원한 안정을 주지는 못하고 그는 스스로 다시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술을 퍼마시고 몸을 해치며 몇 번의 자살시도를 더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만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이 소설은 단연 <사양>과 함께 그의 소설 중의 백미로 읽혀진다. 소설 속 요조가 얽힌 사회주의 운동이나 자살미수, 그리고 아내의 간통 사건 등등 여러면에서 그의 실제 경험과 유사한 요조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요조를 나는 거의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으로 놓고 있었다. 지금 현재 읽어도 충격적이고 우울한 정서의 소설이 분명한데, 발표될 당시의 일본사회에서는 이보다 더 큰 센세이션이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자살에 대해서 우리의 인식보다 훨 일상적이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있긴 하지만 요조와 같은 문제적 인간이 익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조는 자신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고 말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가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것인지 그 스스로가 벗어던진 것인지. (요조의 광기는 이해될 수 없지만) 그의 외로움에 공감을 느낄 때, 그가 말한 인간 실격이란 말은 너무나 쓸쓸히 들린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외롭기 때문이다. 외롭고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며 살아가는 동물. 그게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 실격이란 말은 오히려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보내는 친지와 아버지가 아닐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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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희망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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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이 내비치는 소설작품들
이 책은 두 작품을 담고 있는데, 모두 쉽지 않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로 담고 있다. 사양과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대표작인 듯하다.
사양이라는 작품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즈코라는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가족 이야기인데, 남동생의 마약으로 인해 고단한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 편안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는데, 동생, 뱀, 아버지의 죽음, 우에하라와의 관계 등이 그녀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은 착하고 어리숙하게 살아가는 요조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들은 묘사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실용서를 주로 읽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맛이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작품만 보면 다소 왜곡된 시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작가의 삶과 배경을 어느 정도 숙지한다면 소설의 재미를 더하리라 생각된다.
작가는 우리에게 치욕스러운 일제치하시대에 태어났다가 자살했다. 그는 삶에 있어서 도덕성과 양심에 많은 의미를 둔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종교나 도덕이 삶에서 벗어나는 당시의 상황을 보면서 방황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평화주의자라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의 팽창정책에 현실도피적인 생활과 작품들이 그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두 작품은 좋지 않은 결말을 맺게 된다. 작가의 자살을 작품에서 예고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깨어 있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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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인간실격을 읽으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