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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히로미의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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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이 책을 읽는동안 가슴이 무언가에 찔린듯이 저려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저 한장 한장이 넘어가는게 아까워서 읽었던곳을 또읽고 또읽기를
몇번을 반복하면서 책을 읽어내려 갔다..
어쩐지 소근소근..그리고 웅얼웅얼.. 흐릿하지만 따듯한 사랑이랄까..
따듯하게 데워진 청주에 약간은 희멀건 국물을 내고 있는 유도후..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드러난듯 드러나지 않는듯 조용하고 한없이 소근소근하지만
그 속의 강인함은 몇배나 진하게 우러나오는듯 하다..
가와카미 히로미..그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멋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선생님의 품에서 아주 조금 울었다. 울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코맹맹이 소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선생님 웃옷에 얼굴을 붙이고 웅얼웅얼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전제? 좋고 말고요. 나는 웅얼웅얼,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제로 교제를 계속해 드리겠어요. 웅얼웅얼, 나는 말한다. 그것 참 다행이예요. 쓰키코상, 당신은 착한 아이로군요. 선생님도 웅얼웅얼, 말한다. 첫 데이트는 어땠나요? 상당히 좋았어요, 하고 답하자, 또 데이트에 응해 주시렵니까? 하고 선생님이 묻는다. 어둠이 우리를 묻고, 우리는 웅얼웅얼, 이야기를 이어간다. 선생님의 건조하고 따스한 팔에 안겨 나는 웃고도 싶고, 울고도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얌전히 선생님 품에 들어앉아 있었다. 선생님의 심장 박동이 웃옷 너머로 아련히 전해져 온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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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꽤 됐어요. 읽은지. 찍어놓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샀던기억이 나요. 제가 일본소설을 좀 많이 보는편인데 그 작가는 첨인데다가 전 이십대 후반인데 주인공들은 나이가 꽤 있잖아요. 왠지 그렇고 그런얘기일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이랑은 틀리더라구요. 오히려 풋풋한 느낌도 나고 사랑은 나이랑은 상관없나봐여. 잔잔하구요. 책 느낌상 읽기도 지금이 제일 좋을때예요. 따뜻한 정종이 나오니까 또 벚꽃축제도 있고, 지금부터 봄쯤에 읽으면 더 기억에 남을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자세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금 안타깝고 했던 기분은아직도 생생하답니다. [인상깊은구절] 선생님,하고 부르면 천장 근처에서 가끔 쓰키코상,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일이 있다. 유도후에는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대구랑 쑥갓을 넣게 되었어요. 선생님, 언젠가 또 만납시다. .. |
| 가장 일본다운 작품이라서 그런가 이 책의 중요한 소재이며 주인공들을 엮이게 해주는 따끈한 청주라던가, 어묵(일본에는 어묵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온천등은 약간의 거리감을 더해주긴 했지만 전체적인 여류작가다운 필체와 담백한 서술이 나를 감동속에 빠지게 해주었다. 말그대로 덤덤하게 읽어나가다가 끝도 담담하게 끝이 나지만 뭐랄까 긴, 아주긴 여운이 남는 책이다. 겨울에, 아니 늦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따뜻한 술한잔과 사랑이 고픈이는 이책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약간은 충격적일수도 있는 30세라는 세대차이를 극복한 선생님과 여제자의 사랑이야기다. 30대 후반의 어른이길 거부하는 여제자와 중후한 신사같은 선생님의 사랑이야기일꺼라고는 초반부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우연히 들리던 선술집에서 점점 자연스럽게 만나가는 두사람은 촌스러운듯 하지만 나중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 사랑도, 데이트도 모든것이 잔잔하고 촌스럽지만 상당히 고결해보이며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마지막 주인공의 독백이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들었다. "선생님, 하고 부르면 천장 근처에서 가끔 쓰키코 상, 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 일이 있다. 유도후에는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대구랑 쑥갓을 넣게 되었어요. 선생님, 언젠가 또 만납시다. 내가 말하면 천장의 선생님도 언젠가 꼭 만납시다, 하고 대답한다. 그런 밤이면 선생님의 가방을 열어 안을 들여다본다. 가방 안에는 텅 빈,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펼쳐져 있다. 그저 망망한 공간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 내가 생각하는 사랑도 이런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별나보이고 잘나보이는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음성만으로도, 음성이 들리는 것같은 착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릴수 있는것-나이도, 국경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대방을 만날수있는 사람은 큰 행운을 가진사람이니깐. 오랫만에 잔잔한 소설을 접하니 마음이 따뜻하게 동요되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것처럼 쌀쌀한 늦가을에 따끈한 오뎅국물에 잔잔한 물결을 치고있는 소주한잔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
|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국경도, 종교도, 나이마저 뛰어 넘는다고... 그만큼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고통도 같이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쓰키코와 선생님의 애틋한 사랑도 처음에는 이 정도로까지 발전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가족보다는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 버린 노처녀 쓰키코, 인생의 황혼을 앞둔 지긋한 나이에 늘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선생님. 그들의 만남은 의외적인 술자리속에서 이어지고 그럴수록 때론 흐트어지면서도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무심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어느새 서로를 이해함을 넘어 사랑을 싹트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특히, 변변한 사랑의 다가옴도 없는 그녀에게 나이들어 가출한 아내의 무덤을 외로이 지키는 선생님과의 만남, 좋아함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외로움에 대한 서로의 공유와 이해가 아닐런지. 우린 선입견적으로 지나친 나이차로 인한 문화적, 정서적 차이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쑥스런 추태쯤으로 보일 지 모르나, 그들의 사랑도 어느 순진하고 순수한 첫사랑을 머금은 연인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사랑의 다가옴마저 이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긴 시간속에서 숙성되어 맛을 내는 음식처럼 뜸을 들이고 다지는 선생님의 모습은 인스턴트식 사랑처럼 일순간에 끌어오르고, 사라지는 현대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라는 의미와 함께 사랑에 대한 색다른 정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결국 생전 유품이 되버린 선생님의 빈 가방처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공허함속에 그 사랑은 사라졌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 같은 넓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을 그녀에게 남기고 떠나게 된다. 하지만, 끝끝내 그 사랑에 대해 부정하고 머리를 흔드는 내 모습은 무슨 이유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모호함을 갖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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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그에 걸맞는 언동. 다카시의 시간은 균등하게 흘렀고, 몸도 마음도 균등하게 성장했다. 나? 나는 아마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생 시절, 나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시간이 흘러가면서 거꾸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되어 갔다. 더욱더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시간과 사이좋게 살 수 없는 체질인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 시간만 지나가면 누구나 다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누구나 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커서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과 저렇게만은 되고 싶지 않다 하는 모습이 물론 있었다. 어느새 어른의 나이에 다다른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너무 큰? 꿈이었다. 역시 나이만 먹는다고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번엔 생각이 아니라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무엇보다 나이값을 해야 하고, 어른다운 면모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릴적에는 나이가 들어도 고리타분한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보면 고리타분한 건 그런대로 참아줄 만한데 아집에 빠진 걸 더 못참아주겠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머리와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누구에게나 공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나이가 들어도 내 것만 옳다 여기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하고 나는 바란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 문장이 못봐줄 정도도 아니고 내용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별로였다. 얌전히 조용히 자기 안에 착 가라앉은 주인공들이 아무래도 별로다. 주인공은 어린애 같은 인간이라고 스스로에게 투덜대면서 내내 자기안으로만 파고들 뿐이다. 그런 건 난 질색이니까. 그녀의 전작인 <뱀을 밟다>도 그랬듯 그녀의 책은 나와는 안맞는듯 싶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잘 맞는 작가가 있다. 나는 그녀는 아닌 듯 싶다. -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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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단한 연애소설이라든지, 대단한 필체라든지. 그런거 없다. 솔직히 나이 먹어서 하는 선생님과의 연애라든지 나이 먹은 주인공이 자주, 자긴 어리다며 응석아닌 응석을 부리는 걸 볼 때, 또 선생님이 너무 매력적으로 나온다는 거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브라보를 외치기엔 찝찝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렇지만 뭐라 해야할까,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도 순수하고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이 풋풋한 첫사랑과 같은 설레임을 꾹꾹 누르다가 조금 터트렸다가 하는 미묘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구나, 그 나이에도 있구나.. 싶었다. 갑갑하면서도 터트리지 못하는, 또 그 갑갑함을 갑갑하다고 딱히 표현하지 않는 그 나이의 사랑도 참 답답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모습이 참 진솔하게 느껴졌다. 일본이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고 자주 등장시킨다는 것이 좀 불만스럽지만, (또 선생님을 그렇게 멋지게 그리는 건 참... ) 대단한 소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으면서도 자꾸 손이 가고 괜찮은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게 감정을 참 잘 잡은 소설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
쓸쓸한 요즘, 이 소설에서의 따뜻한 정종보다 더 따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밋밋하고 조용하지만 사랑을 한 걸음 한걸음 내딛는 이 소설을 조심히 권한다. |
| 처음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올법한 사제간의 뜨거운 정을 다룬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조금은 색다른 사랑 이야기다. 일본인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진한 감동이 우러나는 휴먼 스토리는 아니지만 예순이 넘은 은사와 마흔을 바라보는 독신여성의 로맨스를 긍정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같은 취향과 잦은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그들이 결코 추해 보이지 않는 것은 품위있는 전개를 펼친 작가의 힘이리라. 또다른 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이 작가의 경향이 내가 좋아하는 방향이 아니란 걸 역자의 후기에서 읽고 아쉬움을 달랬다. 환상적인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책들도 구입해서 읽으면 좋겠지만 나는 일본식 색다른 사랑을 접한 이 책 한 권으로 만족하련다. |
| 학창시절의 선생님을 다시 만나 좋아하게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보았을 법한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 뭐, 현실로 이루어지는 커플로 더러 있더군요. 좋아한다는 말은 못하고 선생님주위를 맴돌던 그 단발머리 소녀가 저 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의 나이가 되고 그 때 옛 선생님을 뵙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렇게 읽기 시작하였다.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걸까? 되묻는 그녀. 무뚝뚝하고 제자와 선생님의 선을 반듯이 긋는 선생님. 선술집? 포장마차? 이렇게 표현해야 하나? 어느 날 문득 술안주를 시키려고 보니, 나랑 같은 안주를 시키는 사람이 있다. 옆을 돌아보니, 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말을 건다... 그래.. 학창시절의 국어선생님이었구나. 이름이 뭐였더라... 한 여인과 선생님의 사랑은 정감어리고 사랑스런 문체와 함께 가슴에 퍼져나간다. 사랑하는구나.. 깨닫고도, 어린아이처럼 수줍어 하는 그녀, 당황스러워 하는 그녀, 선생님의 올곧은 모습에 바라보기만 하는 그녀.. 선생님은 늘 가방을 들고 다니신다. 옷차림이나 전체적으로 나이가 드셨어도 정정하시고, 멋있으시다. 선생님과 다니면서 선생님에 대해 알아간다. 그 옛날 담임선생님도 아닌 국어담당 선생님이셨던 분을... 알아간다. 그리고 사랑해간다. 선생님과의 사랑을 조심스레 꿈꾸어본다. ^^; 남자친구가 선생님이 된다면? 가능할지도? 시덥잖은 농담과 함께.. 눈물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이야기책은 싫다. 잔잔히 퍼져울려나가는 사랑. 마음에서 두근두근... 거리는 ..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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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망설임이 들면, 행복한 시간은 더욱 짧아 진다. 상대가 누구든, 사랑하게 되면, 아니 상대가 특별해지면, 그렇게 살면 된다. 상대랑 같이 있는 것이 포근해지면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 상대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콩콩 뛰고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것 같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그 가슴 벅찬 경험은 가만히 있으면 계속된다. 그러나 상대를 규정하려 하면, 걱정이 생긴다. 망설임이 생긴다. 포근함이 가슴 벅참이 걱정으로 근심으로 변한다. 그렇게 지옥에 스스로 발을 들여 놓을 필요는 없다. 규정되지 않으면 어떤가? 나는 그로 인해 세포가 살아나고 포근함에 감싸여 있을 수 있는데. 걱정이 생기고 근심이 생기면 행복은 약해진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처럼, 아니면 없던 근심도 걱정도 생긴다. 바로 인간사 고난의 시작인 것이다. 욕심일까? 상대에게 명확한 명찰을 달아주려는 마음은. 왜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할까? 왜 이 포근함을 세포가 살아 있음을 영원히 느끼려는 욕심은 내지 못할까? 왜 상대가 명확한 명찰을 달면 그 포근함이 그 세포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더 커지거나 영원해질 거라 생각할까?
어쩌면 지옥은 신이 만든 징벌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구축하는 괴로움이 공간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