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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타워>를 읽었었다. 한참 방바닥을 헤매 다니며 방황하던 시기에, 한 블로거가 추천한 책이 <안녕, 인공존재>였다.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랄까. 보기 드문 제재와 상상력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SF 소설을 쓰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은 <신의 궤도>에서 약간은 맥이 빠졌지만, 연작소설 <타워>와 <안녕 인공존재>는 배명훈이란 작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작품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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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가 쓴 한국 소설을 사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책은 총 6개의 (어느정도는 연관된)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처음 4편은 어느정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2편은 뭐랄까 좀 엉뚱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동기가 좀 약한 것 같네요. 재미와 함께 나름대로 현 사회를 비꼬고자 하는 노력은 신선하고 좋았지만, 코스모마피아와 타워간의 싸움도 그 이유가 좀 빈약한 것 같고 ... 첫 편에서 연구용으로 배포한 선물이 '개'에게 집중되는 것도 굳이 이유를 상상해 내자면 할 수는 있겠지만 '왜?'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그리고 이야기 앞쪽에 어떤 사건이나 개념등이 갑자기 등장해서 뒤를 읽어야 그 사건이나 개념의 전말을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아서 내가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건지, 어디 놓친 부분이 있는지 자꾸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구요. 아직은 밀고 당기는 완급조절이 완벽하지는 않은 느낌이네요.
가끔 한국영화를 보면 재미있기는 한데 뭔가 어설프거나 전후관계가 좀 어색한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 책도 딱 그렇습니다. 소재는 나름 독특하고 (100% 새로운건 아니지만) 얘기도 잘 풀어나가긴 했는데 뭔가 2% 부족한것 같습니다. 동기부여도 좀 그렇고 임팩트도 좀 약하고 ... 아무래도 30대에 막 접어든 젊은 나이이다 보니 문장에서 느껴지는 내공도 아직은 좀 약한 것 같고 ...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산 책이 우려했던 부분보다는 기대했던 쪽이 더 많이 채워져서 다행입니다. 배명훈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가 되구요. 다음 책에서는 제가 기대한 것 보다 더 많은 부분을 채워줬으면 좋겠습니다. |
| 모 사이트에서 연재 중인 타워의 세 가지 단편을 먼저 읽고 바로 예약주문 하였습니다. 왜 이제껏 이 작가의 글을 찾아 읽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더군요. 순간순간 가슴을 후려치는 재치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공존하는 이야기들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듯 하면서도 결국 그 비판의 대상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마는 작가의 시각이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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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층 인구 50만의 고층빌딩이자 빌딩 자체가 주권국가인 빈스토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단편 연작. 처음 이 소개 글을 봤을 때만 해도 SF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빌딩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미래의 환경. 바이러스 때문에 탑 안에서만 생활 가능한 미래를 그린 일본소설 블루타워나 역시 환경오염과 이런 저런 이유로 이동 도시 안에서만 생활하는 강각의 레기오스, 모탈엔진 등이 일으키는 연상 때문에 좀 익숙한 느낌이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의 배경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사회다. 알 수 없는 미래로 가있지 않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이 되고, 소소하게 아기자기하다. 지금이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생활과 책 안에서의 사건들의 관계가 아주 가깝다. 가장 큰 차이는 그런 미래의 설정일 때의 빌딩 도시는 나갈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인 거고, 빈스토크는 주변국과 버스 한 번, 택시 한 번으로 갈 수 있는 정말 우리 옆의 건물인 거다. 실제 현실과 가까운 거리를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네 번째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여기서는 좀 지쳤다. 가난한 사람은 벽을 넘어 들어오는 온기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표현이 아주 좋았는데 중 그 뒤 후반부엔 좀 지쳐서 이런 상태로 계속 읽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 여기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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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두 달 이상이 지나고 쓰는 리뷰이다. 이 책이 내게 지니는 의미를 다소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공지영과 김연수에 대한 나의 호감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공지영의 90년대 작품들에게서 '깊은 감정이입'과 '근원적 위로' 비슷한 것을 느낀다. 또한 그녀의 최근작 『즐거운 나의 집』과 『도가니』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다소 명시적으로 드러내며, 가볍지 않은 깨달음을 준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사실 모르던 것을 알게 된 건 아니라는 점에서 '깨달음'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할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보다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구현된 것 같은 그녀의 최근작들은 '현실은 역시 내 생각보다 전방위적으로 디테일하다'는 생각과 함께 내 생각이 한층 깊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만족스러웠다.
한편 김연수는 온당하다고 여겨지는 주제의식을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굳이 내 느낌을 구분하자면 공지영은 이야기가 주제를 좀 더 압도하는 것 같고, 김연수는 이야기보다 주제가 좀 더 압도적인 것 같다. 이 때문에 공지영의 소설은 생활(혹은 가까운 현실)에 기반한 서사에 구체적인 메세지를 보여주지만, 김연수는 현실의 층위를 보다 넓게 끌어안는 서사와 '추상화 된' 메세지를 보여준다고 할까. 어디까지나 실제 작가의 현실과는 무관하겠지만, 내게 공지영은 '아래로부터 작품을 쓰는 작가', 김연수는 '위로부터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느낌이 있다. 학벌은 공지영이 더 좋다고 누가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겐 김연수가 훨씬 엘리트적으로 느껴진다.(본인은 이런 평가를 상당히 싫어할 것 같다.) 아무튼 내겐 이 두 가지가 비교우위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수준에서 역할분담을 하며 우리 사회의 단면을 조망해 줄 접근법이라 생각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김연수는 내게 보다 추상화 된 '깨달음'을 주며, 나는 그에게 많은 호감을 지니고 있다.
너무 길게 우회했는데,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소설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1> 깊은 감정이입, 2> 어떠한 접근법으로든,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낼 것, 3> 그 이야기가 '한 줄짜리 교훈' 이상의 현실적 디테일을 지닐 것, 4> 뒷통수를 때리는 깨달음이나 생각의 폭을 넓힐 기회를 줄 것 등의 조건을 갖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걸 읽는 눈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이 기준들은 나의 주관적 잣대로 적용이 될 것이다. 그런 주관적인 잣대를 통과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들은 공지영과 김연수 외에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신경숙의 『외딴방』, 김훈의 『칼의 노래』,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등이 있는 듯 하다. 물론 각 소설이 각 항목을 모두 만족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대략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은 이런 범주내에 분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타워』는 이같은 범주의 외부에 있으면서, 나를 만족시킨 첫 번째 소설이라 할 수 있다.(물론 이는 다분히 내 독서량의 보잘것 없음에 기인할 수 있다.) 현실을 상징 또는 유비하는 가상의 시공간과 인물을 설정하여 현실에 관한 메세지를 던지는 소설은 내게 헐겁게만 보였었다. 가상의 상황과 현실과의 관계가 억지스러워 보이거나, 현실에 대한 메세지가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다채로운 각도에서 '빈스토크'와 '빈스토크 사람들'을 구현함으로써, 가상을 '현실 그 자체'라 할 정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반영할 것'이라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단면이나 이슈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명시적인 메세지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현실을 가상의 세계로 보다 정교하게 옮겨놓는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기존 '내 범주'의 외부에 있다.
작가는 각각의 '단면'들을 특별히 드러내기 보다는 계속 새롭게 흘러나오는 이야기 속에 적당히 묻어둔다.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정교한 한 도시의 이야기는 재간넘친 입담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엔 계속 페이지가 흘러가고, 내 시선도 지나간 장면이 아니라 새로운 장면에 고정된다. 그렇게 각각의 단면들은 흘러가고, 망각되는데, 작품을 모두 읽고나면 그 각각의 '단면'들이 하나의 완성된 건축물로 조립되면서 이 작품을 '우리 사회의 온전한 반영'으로 느끼게 한다. 이같은 방식은 메세지가 분명하거나, 내 생각을 넓혀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접근로를 만들어주는 듯 하다. 특별히 주목되는 이슈는 없지만, '현실'은 드러난다. '무언의 메세지'라고나 할까. 완성된 '빈스토크'의 우스꽝스러움이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비합리성'을 꼬는 것 같은 느낌에 유쾌하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들이다.
빈스토크 타워에서는 엘리베이터가 1층부터 꼭대기까지 한 번에 쭉 이어질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층마다 문이 열리는 통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하루가 꼬박 소요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라인 하나가 대략 20층에서 30층 정도를 오갔는데 100층 이상 장거리 운행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터미널을 찾아가야 했다. 30층 터미널에도 500층까지 직접 올라가는 장거리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전이라 줄이 길어서 번호표를 뽑고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 p.33
비판을 해야 할 사람들이 비판을 그만두자 비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비판을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대가 나서서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억업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다른 규칙이 강화되었다. 321층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다음 날, 광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층간소음법 위반으로 경비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수진운송 업체와 정부의 관계를 조롱하는 연설을 한 작가 몇 사람은 음란성 시비에 걸려 지면이 끊겼다. 시 정부에서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딱 그 정도의 일을 할 권한이 있는 누군가가, 누가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한 일이었다. --- pp.44~45
자꾸 수직주의자, 수평주의자 구분하면서 사람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직파가 뭐고 평파가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어. 그게 원래 "수직운송조합"이랑 "수평운송조합"에서 나온 개념이거든. 고층건물이니까 엘리베이터밖에 운송수단이 없는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빈스토크라는 데가 위아래로만 길쭉한 게 아니잖아. 수평 방향으로 잰 거리가 훨씬 길다고. 그래서 수평운송업 종사자가 꽤 되거든. 빈스토크 건설할 때부터 그랬는데 뭐. 크레인으로 무조건 높이 실어나른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실어올린 건축 자재를 수평 방향으로 실어나르는 게 만만찮게 큰일이었거든. 그런데 그게 결국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잖아. 무빙워크 같은 게 깔려 있는 데도 있지만 그것도 화물용으로 만든 건 아니니까.
사실 잡일이지 뭐. 직접 근육을 써서 해야 하는 일이고, 특별한 지식이나 자본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에 비하면 수직운송조합은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 그쪽은 하역 작업하는 애들도 노조라는 말 잘 안 쓰고, 조합원이라 그러거든. 엘리베이터로 실어 올리느 거니까 이쪽은 인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계설지가 중요해. 그래서 이 쪽이 더 자본가 분위기가 나는 거야. 그에 비하면 수평노조는 말 그대로 노조 분위기고. 그런 것도 잘 모르면서 요즘 애들은 수직주의는 무조건 부자들 이념이고 수평주의는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 이념인 줄 알아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거든. 사람 사는 게 어디 수직이나 수평 하나만 가지고 해결이 되냔 말이야. 한쪽에서 엘리베이터로 실어 올리면 누가 가서 그걸 목적지로 옮겨줘야 제대로 배달이 되지. --- pp.113~114
인용된 부분에서처럼 작가는 직-간접적으로 '메세지'를 전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정교한 가상현실'의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에 이야기에 집중을 하게 되지 굳이 메세지에 집중을 하지 않게 된다. 특별히 한 이슈만 주목시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크게 집중할 것이 없다. 그저 작가는 가상세계가 현실속의 제도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실제'처럼 보일 정도로 놀랍도록 디테일하고 정교하게 건축한다. 이런 부분들을 여러 번 만나고, 헤어지며 마침내 책을 다 읽어내면 오늘날의 사회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 '현실'을 '가상'으로 옮겨놓는 작업만으로 소설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대한 모종의 메세지를 전한다. 인용된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명박 시대가 도드라지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한되지는 않는)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는 아주 희한한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사회를 상상한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를 '웅족'와 '호족'으로 이해하고,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에서 '남방계'의 영향을 읽어낸다. 역사 속 신비한 기록들은 현실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란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후대에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상상/해석 할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는 (아주 운좋게도) 오늘의 우리 사회를 아주 제대로 알게될 지도 모른다. 정부가 남길 각종 통계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오늘의 현실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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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도 잘 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는지, 이 부당한 현실이 참담하다. 국내 최고 대학을 나온 저자의 등장만으로 문단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문단만큼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곳은 드물기 때문에 문단의 문턱조차 넘지 않은 저자의 등장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 책 「타워」를 읽어보니 내용 또한 불편하다. 사실 이 책을 구입 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작가 중 한 명인 박민규의 추천사 때문이었다. ‘100년 후 한국 문단은 작가 배명훈의 존재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정도의 추천사 였는데, ‘박민규가 저런 말 할 정도면 배명훈의 책도 박민규의 그것만큼 재밌겠는데’라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오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블랙코미디를 의도한 것 같지만 그 정도 효과를 받지는 못했다. 674층에 인구가 50만이나 되고 주변국들과 철저히 격리된 빈스토크, 작은 고시원 한 칸이 주변국 아파트 세 채 값이라고 하는 빈스토크 한 층 한 층이 올라갈수록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무너질 바벨탑이라고 혀를 끌끌 찾지만 결국 60년의 세월이 가져다 준 그곳의 안락함과 우월함에 압도되어 폭탄을 해체해버리게 만든 빈스토크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손가락질 하지만 속으로는 들어가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가진 곳, 빈스토크
삼성 생각도 나고 한국 생각도 났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욕망의 합과 그것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문명발달의 합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더 클까? 맑은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컵에 시커먼 간장을 부으면 금세 섞여 하나의 용액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욕망의 합과 문명발달의 합이 섞여 버릴 수도 있겠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몇 편이 하나로 묶여 있다. 각 편마다 다른 주인공과 소재가 등장하지만 구조나 의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히려 분산되는 느낌이다. 아예 가벼운 농지거리 정도의 목적이 아니라면 애초에 하나의 작품으로 구조를 짜고 기승전결을 확실히 그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빈스토크가 상징하는 의미가 결코 가벼운 농지거리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에 대한 기시체험(데쟈뷰)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지만 현실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674층의 빈스토크보다 높아지면 높아졌지 결코 못하지 않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욕망의 합을 674층이라고 한정지을 수는 없다. 욕망과 탐욕의 크기의 비대함을 상징하는 숫자가 674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지금의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층은 철저하게 자신들 편이다. 그들에게 국가나 국민은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끼리의 갈등이다. 언론에서 흔히 남남갈등이라 표현하는 그것이다.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이념추구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 그래서 기존 정치와 국가 주요 의제에 관심을 끄게 만드는 것. 그것이다. 빈스토크에서는 수평주의자들과 수직주의자들로 함축된다. 수평주의자들의 공론장이고 스트레스 해소창구이던 520층 카페 빈스토크가 없어지면서 사람 간 의사소토의 창구도 사라져버렸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520층을 지켜내지 못하면 520층 역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p.255) 우리가 지켜야 할 사수해야 할 520층은 무엇일까?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3년 반 동안 이런 것들의 박탈이 가져온 허탈함과 결핍은 굳이 자세히 말하기 피곤할 정도다. 매번 어이없게 지는 싸움이 반복되다 보니 아무리 비상식적인 결과가 나와도 ‘그러려니... 다 그렇지 뭐’ 정도의 반응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저들이 바라는 바다. 빈스토크 674층 꼭대기에서 한 가득 비웃음을 머금은 저들이 바라는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지치거나 피곤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긴 싸움이다. 내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확인하고 씨익 웃으며
“너도 쫄지마 씨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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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408m, 674층, 거주인구 50만 도시 하나를 옴겨 놓은 듯한 빈스토크라는 건물..
실제 이러한 건물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땅투기, 부동산 가격 이런 걱정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을텐데..
아쉽다. 현실에서 부자층과 서민층이 나눠있듯이 이 건물 내에서도 부자층과 서민층이 나뉘어져 있다.
꼭 회사로 보면 부장과 대리 이런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은 현실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사회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다. 타워라는 책은 많은 장르로 이루어져 있다. SF형식, 추리, 동화, 일반소설... 기타 등등 많은 것들이 합해져 있다. SF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도서만큼은 읽으면 괜찮은 듯 하다.
난 이 책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젊은 작가가 이러한 책을 도대체 어떻게 썻을까 이다..
78년도 생이면 32세정도 인데... 시대는 훨씬 이전 및 그 시대를 반영을 하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내 판단하에 맞다면 사람은 역시 책을 많이 보고 읽어야 선견지명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내용이 옆으로 빠졌는데 이 책은 총 6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 그 6가지의 내용들은 읽어보면 다들 알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문제점과 상당히 맞는 부분들이 있다. 참씁쓸할 따름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웃긴 것은 소설이다보니 갑작스레 엉뚱한 내용, 기발한 상상 현실에서는 말이 안되는? 웃긴 내용들이 많다.
그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 동원박사 세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 에서부터 나온다.
내용은 생략은 하되 결론부터 말하자면 권력의 최고자는 [개] 라는 사실이다. 내용을 잠깐 살펴 보자면
상류사회에서 선물용으로 빈번히 쓰이는 제품중의 하나인35년산 술병에 전자태그를 붙이게 되고 그 전자태그를 통해 술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데 파악도중에 권력의 최고자가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가장 지능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실제 동물이나 각종 기타 등등과 같이 살다보면 사람보다 개가 훨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항상 배울 것이 많다는 것
평등하고 자유가 묻어 있는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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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 배명훈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르는 674층 건물국가 빈스토크(beanstalk ; 재크와 콩나무에 나오는 그 콩나무줄기를 건물 이름에 붙인 작가의 센스), 그리고 그 안에서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50만명의 빈스토크 국민들. (언뜻 닫힌 한 공간을 뱁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재를 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비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최근 그의 독특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식상함을 느끼고 있기에 비교하고 싶지 않다) 건물하나로 만들어진 ‘도시국가’이지만 그곳에서도 높은 건물만큼이나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권력이 움직이며, 냉정해 보이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빈스토크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이 낯설지 않다. 그것은 아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총 6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웃음이, 정(情)이, 안타까움이, 인간의 무력함이 존재한다. 어떤 술은 화폐로 통한다로 시작하는 [동원 박사 세 사람 : 개를 포함한 경우]는 술병에 전자태그를 달아서 그 술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빈스토크의 권력관계를 분석해 차기 시장선거에 활용하는 연구를 하는 미세권력 연구소에 관한 내용이다. 연구를 진행할 수록 한 곳에 술병이 모여서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내막을 살펴보니 그 곳에 사는 건 사람이 아니라 영화에 출연하는 ‘개’(1박2일에 등장하는 인기많은 개, 상근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였고, 그 연구를 위해 동원된 세명의 박사들은 술병의 이동을 살펴보다 연구의 책임자인 정교수와 관련된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예찬]은 고소공포증이 아닌 ‘저소공포증’(30층 이하로 내려가면 공포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든 특이한 증상)을 가진 작가 K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지않지만 교묘한 규칙을 통해 제한되고 있는 바람에 자연에 대한 밋밋한 글들을 쓰는 그에게 출판사 신입 D가 찾아가 사실적인 소재로 글쓰기를 당부하고 K는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나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그의 글속에 표현하게 된다. 인터넷의 힘을 보여주는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는 이 여섯편의 이야기 중 제일 아름다웠던 이야기이다. 사막에서 실종된 빈스토크 용병을 찾기 위한 한 사람의 관심이 빈스토크 뿐 아니라 그 외의 지역에서도 거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는 국가가 외면하는 일을 국민의 작은힘으로 이루어낸다는 사실에 불끈함을 느꼈다. 그 외에도 수평운송노조와 수직운송조합이라는, 어울릴 수 없는 이념을 가진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엘리베이터 기동연습), 광장에 등장한 코끼리가 주는 공포로 인해 주객이 전도되는 이야기(광장의 아미타불), 테러로부터 타워를 지켜낸 사람들 이야기(샤리아에 부합하는) 등이 SF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SF스럽지 않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모습들, 지금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블랙코미디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사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배명훈의 타워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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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소설은 처음 읽어 보았다. 단편 소설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읽어 볼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674층의 빌딩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다는 소재가 특이해서 읽어 보았다. 타워 도시국가 빈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SF 관련 소설인 줄 알았는데 6편의 이야기 모두 현재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빈스토크에 대입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자연예찬은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던 K가 정부의 압력을 받고서 고민하는 모습과 선택 그에 따른 결말은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에 대해서 압박을 가해 자유로운 여론을 막고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비슷해 보여 씁쓸하면서도 K를 기다리던 로사와의 재회로 끝나는 결말이 맘에 들었다.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은 수평, 수직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나뉜 수평, 수직주의자들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소한 엘리베이터가 수평으로 이동하느냐 수직으로 이동하느냐부터 시작해서 갈수록 서로 미워하게 되고 결국에는 내전이 일어나는 모습은 상당히 우스워 보였다. 별것도 아닌 것에서 너와 나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지역감정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소셜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주는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권력의 힘을 술병의 이동 경로로 파악한다는 동원 박사 세 사람 등 4편의 이야기도 현실을 빈스토크에 투영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단편들이 모두 재미있고 상상력이 뛰어나 작가가 장편 소설을 쓰게 되면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