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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소설로 형상화한 심리학자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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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治癒)』 (캐럴 길리건 저/김이선 역, 마음산책,2009, 원제 : Kyra )『치유(治癒)』 는 미국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의 소설이다. 원제 키라(Kyra)는 소설의 여주인공의 이름이자 “기품있는 여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글의 구성은 1부에서 정치적 격동기에 사랑하는 남편 사이먼과 부모를 잃고 언니 애나와 탈출한 키라와 레지스탕스 아내 아이리나와 어머니를 두고 자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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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治癒)』 (캐럴 길리건 저/김이선 역, 마음산책,2009, 원제 : Kyra )

『치유(治癒)』 는 미국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의 소설이다. 원제 키라(Kyra)는 소설의 여주인공의 이름이자 “기품있는 여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글의 구성은 1부에서 정치적 격동기에 사랑하는 남편 사이먼과 부모를 잃고 언니 애나와 탈출한 키라와 레지스탕스 아내 아이리나와 어머니를 두고 자식과 도망쳐야 했던 안드레아스의 사랑과 파국을,
2부에서는 키라와 심리치료사 그레타와의 상담을, 3부에서는 안드레아스의 고백을 그리면서, 실타래처럼 엮인 20세기 유럽의 역사와 현대 건축의 흐름, 심리치료 방법론, 오페라 작품 들이 등장한다.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히는 삶과 갑자기 쏟아지는 빛 속으로 들어가는 삶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을까?”(36쪽)

사랑은 “갈망하지만 두려워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이기적이며, 몸은 여기 있어도 마음은 과거에” 머무르기에 늘 고단하고 영혼은 부유(浮遊)한다. 심리학에서 문제란 사람들이 숨을 참고 있을 때 생겨난다고 했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혹은 자기 안쪽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 때.(50쪽)...

관계 맺기는 사랑만큼이나 지난(至難)하다. 사람들에겐 각자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는 나름의 틀이 있어서 뭔가가 자꾸만 자기를 그 머물고 있는 틀의 밖으로 밀어내려 하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 경계를 넘는,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 옮기려는 위험을 감당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키라와 안드레아스는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우자를 잃었으며, 더 이상 사랑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에게 배우자와의 신의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한 틀이자 안정감을 주는 고착이었다. “뭐든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둘 다 무력감을 알고 있었다.(68쪽)”

“음악은 내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내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난 <토스카>를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이 오페라에선 다가오는 일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20세기 유럽의 역사, 파시즘, 비밀경찰, 토스카는 가수입니다. 그녀의 연인 카바라도시는 화가입니다. 토스카는‘나는 예술을 위해 살았고 사랑을 위해 살았네’ 하고 노래합니다. ”(69쪽)

안드레아스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이 키라의 마음을 열어 키라는 나샤위나 섬의 건축 작업을 하는 틈틈이 그가 무대를 꾸미는 것을 거든다. 결국 그들이 사랑을 하게 된 건 예술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이다.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나는 그가 스스로 일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우린 과연 서로에게 그럴 수 있을까?”(104쪽)

그러나 안드레아스가 갑자기 키라를 떠나면서, 키라는 다시 한 번 “관계”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입는다. “진짜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치유의 가능성.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어린 시절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왜 안 들어.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곧 알게 될 거야.(189쪽) 그리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나는 칼을 집었다. 표면을 도려내야 했다. 안을 들여다봐야 했다. 무엇이 진짜인지 보아야 했다. 느껴야 했다.“(190쪽) 결국 관계의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기 위한, 진심과 진실을 알고자 하는 키라의 처절한 결심은 그녀를 심리치료사 그레타에게로 이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 “직면하기- 발화하기- 제기하기”

심리치료는 과거의 충격적 기억이 반복되어 맴돌 때 그 자리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도구이자, 무의식을 하나하나 벗겨 상담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한다. 키라 또한 배우자의 죽음, 어머니와의 관계 등을 돌아보며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기억한다. 때로 그 과정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기도 하지만, 갈등을 겪고 의문을 품을지언정 자기 안에 답이 있으며,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또한 자기 안에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당신의 이해가 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자기들이 아는 걸 내게 말해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난 뭔가 다른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걸 믿는다는 게, 그걸 말로 표현해낸다는 게, 내겐 너무 힘들었어요. 당신은 내가 내 경험을 믿도록 격려해주었어요. 그건 엄청난 격려였어요. 그(안드레아스)가 떠나버린 후 난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그는 배반한 사람이고 나는 배반당한 사람이라는, 도덕적으로 유리한 입장처럼 보이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더 쉬웠을 거예요. 그리고 또 감사드리고 싶어요. 당신 덕분에 난 사이먼과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332쪽)”

-“관계는 치료를 위한 그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치료(治療)다.(51쪽)”

소설 속에서 치유(治癒)는 “투명하며 솔직히 자신을 내어 보이는 관계”와 맞닿아 있다. 심리적 상처의 짐을 한 개인에게 지우지 않는다. 마음의 고통이 가족, 역사, 사회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생기는 만큼 그 회복도 '관계(關係)'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관계는 치료를 위한 그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치료(治療)다.”

키라는 그 치유 상담 과정의 끝에서, 관계의 ‘벽’이 ‘문’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키라는 자신의 관계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그레타에게도 이 관계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다. ‘당신은 왜 이 상담을 유지하는지’ ‘당신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평등한 관계에서 소통할 수는 없는지’ 등등 키라의 물음은 계속된다. 이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치료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존의 수직적 구조에 대한, 작가의 심리학자로서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상담자가 심리치료사와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신의 문제를 독립적으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심리치료는 이전의 관계가 가져다준 것과 똑같은 종류의 상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내게 소설 『치유(治癒)』 는 “상처가 예상치 못한 상황/사람과의 관계에서 온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상처의 치유/회복도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역사,문학, 음악, 언어, 철학, 건축의 박학다식한 지식을 버무려 잘 차려놓은 지적 뷔페로 포만감을 주었다.
YES마니아 : 로얄 m*****8 2018.03.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