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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여러 분들이 지적하신대로 너무 한쪽에 치우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리뷰도 한쪽에 치우친 글들이 많이 있구요. 제 글도 마찬가지이겠지만요 ...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제가 가장 걱정스럽게 느낀 점은 일부 대형교회의 문제점들을 마치 한국교회 전체의 모습인양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를 비판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떡밥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다른 리뷰의 제목처럼 '누구를 위해 쓴 글인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서 밝힌 이런 문제들은 꼭 대형교회가 아니더라도 많은 교회에 어느 정도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대형교회가 다 그런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구요. 어쨌든,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론매체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형교회들이 전체 기독교를 대변한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테니 저자의 접근이 꼭 틀리다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는 시골에 있는 출석교인 500명 정도의 교회입니다. 시골교회 치고 작은 규모의 교회는 아니죠. 저희 교회는 교회재산을 어느 개인이 착복한다던가 하는 문제는 없습니다만 역시 교인들이 '목사님의 말≒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이상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고, 목사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것이므로 감히 거역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30대 중반의 젊은 층에서까지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면 이건 문제가 아닐 수 없죠. 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모인 어느 자리에서 목사님의 행동에 대해 반대의견을 얘기했더니 목사님은 하나님이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말을 하면 안된다고 펄쩍 뛰더군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담임목사께서 이런 부분을 은근히 조장하고 교인들을 '착취'하는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저는 교회일을 2가지 정도 (성가대,교사 등)하고 있습니다만, 저희 와이프는 되도록 교회일을 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때문에 어느정도 자랄때 까지는 아이들을 키우는데 더 신경을 쓰기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올해 초에 목사님이 저희 와이프를 교회일을 시키려고 불렀는데 아이들때문에 어렵다고 하니까 '믿음이 약해서 그런다. 교회는 놀러다니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리다는건 핑계일 뿐이다. 아이들이 크면 또 다른 핑곗거리가 생길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더군요. 다행히 이런 말에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만 ...
- 이 책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가 내 모친이고 형제냐'... 뭐 이런 식의 구절을 들먹이며 기독교인이라면 가족보다 공동체를 우선해야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끌고가는 것 같은데,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제자인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한 부분은 언급도 않고 넘어가더군요. 저자가 성경을 이용한 한 예가 되겠습니다 -
어쨌든 ... 저희 교회 목사님의 이중적인 면을 말씀드리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위의 예 하나로도 목사들이 어떻게 교인들을 이용하는지가 너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한 교회에 교인으로 출석한다면 어느 정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저희 교회 집사 한명의 입을 빌리자면 '교인은 500명인데 5000명 다니는 교회처럼 일을 하려한다'고 말할 정도로 불필요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의 위신을 위해서 성경적이지 않은, 그저 동네잔치 정도의 일에 끊임없이 참석을 요구 받는다면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거죠. 그런데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목사님의 말≒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무비판적으로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러 불만들을 표시하긴 하지만..) 참여한다는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저희 교회 목사의 예를 한가지만 더 들자면 얼마전 어머니께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외국에 한달정도 머물다 오신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오해할까봐서 그런데 돈이나 부동산 같은것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관광 목적도 아니구요. 어쨌든 한달만에 돌아 오셨는데 부모님댁은 저희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입니다. 저희는 피곤하실것 같아 저녁에 도착하시면 얼굴만 잠시 뵙고 오려고 했는데, 전화해 보니 저희 교회 목사님께서 이미 저녁을 예약해 놓으셨더군요. 여행에서 돌아오신 첫날에요. 상식적으로 첫날은 나이도 많이 드시고 피곤하실텐데 근처에 사는 손자손녀 얼굴이나 잠깐 보고 쉬시도록 하셔야 하는것 아닙니까? 저희 부모님은 제가 다니는 교회에 주로 나가긴 하시지만 등록교인도 아닙니다 (등록교회는 서울에 있습니다.) 저희 와이프가 저한테 물었던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돈이 없는 분들이셨다면 목사님이 저렇게 극진히 챙기셨을까?".
교회의 헌금도 큰 문제입니다. 십일조도 많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죠. 천주교회에서는 개신교만큼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십일조말고 다른 이름으로 내는 헌금이 있는걸로 알고있는데 개신교만큼 반강제로 내는 헌금은 아닌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회 말고 십일조를 이렇게 강조하는 나라는 없죠). 십일조는 야곱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 최초이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멜기세덱의 십일조가 최초라고 하는군요 ... 원문은 그냥 놔두고 수정할 부분들이 있으면 조금씩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후 레위기라던가 하는 부분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규약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나온 많은 규약들이 신약시대로 접어들며 폐하여졌습니다 (지키지말라는 것 보다는 안지켜도 큰 문제 될게 없다라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그런데 ... 개신교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구약의 모든 율법이 폐하여졌음에도 불구하고 헌금(십일조,맥추절)에 관련된 부분은 굉장히 많은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개인이 하나님께 한 약속의 의미로 볼 수 있으므로 지키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기싫어서 억지로 하는 십일조라면, 남들이 하니까 할 수 없이 하는 십일조라면 ... 과연 내가 마지못해 하는것을 하나님께서 즐겁게 받으실까하는 부분은 역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개신교회에서는 성경읽는 것 역시 강조를 합니다. 리뷰를 쓰다보니 제가 책을 내도 될 것 같습니다 ^^. 개신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목사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하나님의 명령' ← 요 주제와 비슷하긴 합니다만 ..., 목사를 교회의 어른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목사의 권위를 목사 스스로가 높이고자 한다면 이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신교 신앙의 전부이신 예수님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낮은 자를 섬기시다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것 외에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것도 굉장히 강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없이 낮아져도 비난을 받기 쉬운 이 때에 개신교의 어떤 목사들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책에 나온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말할것도 없고 제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도 개인적으로 얘기할때, 그리고 설교 중간중간에,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활동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남들이 자신을 대우해줘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길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에서 말한대로 교인들을 자기가 마음데로 부려도 되는 소유물인양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교회 담임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말에 거역하는 것을 굉장한 도전인 양 생각합니다. 자신의 위신을 헤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천주교에 반대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중의 하나는 교황에게 너무나 많은 권위가 주어진데 있습니다. 교황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권위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면죄부'와 같은 역사에 남는 촌극을 빚고 만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이런 교황의 권위에 반대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개신교회 일부 목사들은(일부 입니다. 절대 다수가 아닙니다.) 천주교 교황을 능가하는 권위와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는 이단종파인 '여호와의 증인'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는 목사가 없습니다. 교인을 대표하는 장로가 예배를 인도합니다.
인터넷뉴스인 뷰스앤뉴스 2008년 1월 28일자 뉴스 'MBC,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등 호화생활 질타'를 읽어보시면 과연 이 사람들이 스스로 낮은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을 전파하려는 사람들인지 팔아먹으려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변명은 다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목사가 3억짜리 벤틀리를 타고 몇십억짜리 호화 주택에 산다는건 질타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A: '목사님은 왜 그렇게 좋은 집에서 사십니까'
많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목사가 살고 있는 교회 사택, 목사가 타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 ... 대부분 교회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세금과 관리비등은 교회 부담입니다. 교회 부담이라는 말은 결국 교인들의 헌금이라는 말이구요. 저는 제 헌금이 이런 데 사용되는 것 절대 원치 않습니다. 물론 목사님도 사는 집이 있어야 하고, 타는 차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월급은 월급대로 나가는데 이 모든 비용을 교인의 헌금으로 부담한다는 건 정말 웃긴일입니다. 필요이상의 집과 자동차라면 더더욱이요. 교회의 헌금 중 진정한 의미의 전도와 구제에 과연 몇 %의 비용이 사용될까요? (대통령을 배출한) 소망교회의 목사니까 고급 승용차를 타도 된다. 순복음교회의 목사니까 고급 저택에서 살아도 된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의 모습이 절대 아닙니다.
우스갯 소리 한가지 더 하겠습니다.
어떤 분께서 문제점만 얘기하지 말고 대책을 얘기해 봐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저자가 책의 한 부분에 소개해 놓은 '조용기 목사님이 해야 할 회개기도'에 이미 그 대책을 말 해 놓은게 아닐까 싶습니다. 목사가 깨어져야 하고 우리나라 개신교회가 깨어져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우리나라 개신교회 목사들 모두 천주교 신부들처럼 청빈서약을 하고 모든 재산을 개교회 단위가 아닌 큰 틀에서 관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돈과 명예입니다. 목사가 돈과 명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목사들이 예수님을 팔아, 믿음을 팔아 교인들을 이용하고 착취한 모든 일들 역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은 자연히 따라 올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믿음(예배)'입니다. '오직 믿음'이냐 아니냐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믿음(예배)없는 헌금,선행,구제만으로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특히 나이드신 분들일수록, 시골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목사가 시킨 일 열심히 하고, 헌금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으면 천국가는걸로 착각을 합니다. 그래야만 천국에 가서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을 합니다. 저도 어릴때는 헌금하면 하늘 금고에 다 쌓여서 내가 죽어서 천국가면 생활비로 쓰는 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천국에도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목사들이 이런 부분을 헌금 많이하는데, 교회일 많이 하는데 교묘히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에 관해서도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 목사님들 보면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등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무지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배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교회에서 한시간 드리고 끝나는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천국은 기쁨만이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말은 세상의 관점에서 본 말이 분명합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듯이 기쁨이라는건 슬픔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세상적인 관점에서 '기쁨'만이 있으려면 천국에는 계급이 없던지 (실패하기는 했지만 무신론/유물론적인 공산주의가 이런 정신을 내세웠다는건 아이러니입니다), 계급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지 두가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목사들은 헌금을 많이하고, 교회일을 많이 해야 천국에서 더 좋은 자리 차지하고, 더 좋은 대우 받는것 마냥 설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요.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교회를 초대교회의 그 뜨거운 마음으로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 2007년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선교팀이 납치되고, 또 이명박 대통령이 자의든 타의든 선거운동기간 '장로'라는 지위를 팔았을 때 저에게 한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한국의 교회는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너지고 그 파편위에서 새롭게 기독교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쭉정이는 다 날아가고 알곡만 남아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원래 모습 그대로의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돈'을 추구하는 목사들은 다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쭉정이로 날아가 버릴지 알곡으로 남아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회를 보면 많은 교인들이 내 교회에 있는 하나님만이 진실한 하나님인양 착각을 합니다. 이 세상의 복을 위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또한 너무나 많습니다. 모두 깨어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교회에 가두어버리고 나만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은 절대로 멈추어야 합니다.
정말 한국교회가 외형의 '맘몬'을 벗어버리고 진실한 기독교로 나아가길 기대하며 이 리뷰를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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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한국 기독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계의 내부에서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고, 기독교계 외부에서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이다.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일견 동조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너무 편향적인 관점을 가지고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마도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종교를 믿고, 신봉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로 저자가 심하게 말하면 기독교를 싸그리 싸잡아서 뭉개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재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학대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신학에 대해서 정통하다고 보면 안된다는 것을 아마도 간과한 것 같다. 아마도 저자는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지나치리만큼 비판하려는 의식이 앞장섰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여러가지 문제들이 일어났고, 분명하게 그것은 성경적으로도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대형교회들의 문제를 가지고, 한국 기독교계 전체가 마치 똑같은 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시퍼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는 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명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한국 교회가 저자의 말처럼 못된 사람들만 모였고, 탐욕이 가득찬 사람들만 모여 있을까? 실제로 사회의 음지에서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봉사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인가? 음지에서 보이지 않게 교회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사회구호대책으로, 사회봉사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는 교회들은 모두 비난의 대상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저자가 너무 침소봉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대형교회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터져나오지만, 그것은 일부 목회자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목회자들도 일부 목회자들이 아닌가? 전광훈 목사니, 김홍도 목사니, 하는 몇몇 목회자들의 설교가 이 시대 모든 설교자들의 설교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 목사들의 설교가 대한민국 설교자 전부인양 오도하는 것은 분명히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교와 선포는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설교는 설명이라는 신학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이 간다. 더군다나 교회를 제국주의를 비호하는 세력쯤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사실 교회 안에도 이명박 장로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목소리가 전혀 없고, 오로지 저자 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다 통달한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심지어 교회를 비판하는 사회단체들을 보면 어떤지 알기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원금과 후원금을 더 타내기 위해 온갖 비리와 장부조작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이미 뉴스에서 보도된 적이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논리들이 마치 시민전체의 의견인양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또 한가지는 노무현,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는 옹호하면서, 그들이 저지른 잘못들은 왜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비판하느냐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기업들을 무너뜨려 북한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북한에서 핵실험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문제고,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느나라 논리인지 묻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에다가 한국교회의 전도를 제국주의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은 완전히 무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일부 비판을 위한 비판,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비판들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우너 소가 마치 전부 광우병 소인것처럼 방송했던 피디수첩의 피디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대로 화면을 편집하고 조작했다가 들통난 사건들처럼, 자기 입맛에 맛게 비판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말들을 조작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수치들만 언급하면서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더 건전한 교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책 제목을 한국의 대형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이라고 했다면, 어느 정도 수용할수도 있겠지만, 제목부터 한국 교회 전체가 그런 것처럼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큰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읽으면서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비판을 위한 비판을 시작하면, 어느 사회단체가 비판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으며, 어느 종교단체가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변양균, 신정아 사건을 통해서 들어난 불교계의 비리는 왜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왜 사회적인 인사들의 학력비리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교회 목사들의 일부 비리는 전부인양 이야기하고 있는가? 물론 그 목사들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형평성을 가지고 비판을 해야 건전한 비판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마치 학력을 속이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 전체 목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최소한 피했어야 옳다고 생각된다. 일부가 그렇게 한 것을 가지고 전체가 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 그렇게 비판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비판을 하려면, 건전한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지, 비판을 위한 비판은 서로에게 아픈 상처만 남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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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버린 한국 교회의 일곱 자화상에 대한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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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분당 샘물교회에서 아프간에 갔던 선교단 일행이 탈레반에게 납치되면서 한동안 사회에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다. 다시 한 번 기독교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감을 읽을 수 있는 계기였다. 그해 초에 개인적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아프간으로 선교를 간다 해서, 회교 율법에서 기독교 전도 행위를 금하고 있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법을 어겨 가면서 전도를 해야 하냐고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왜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하면 안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전도를 비롯해서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7가지 사항에 대해 냉철한 분석을 통해 저자 김선주 씨는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목사, 교회, 설교, 복음, 전도, 영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헌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현재 예수님의 자리에 맘몬과 물신을 받드는 자본주의 시장논리로 대체된 한국 교회가 놓칠 것이 하나 없어 보인다. 물론 주류 교회에서는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외면하겠지만 말이다. 가장 먼저 저자는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는 메신저라는 선언을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래 사제와 신도 간의 구별은 없어졌다. 그것이 바로 중세 부패한 가톨릭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유대교 전승에 의거한 제사장 중심의 예배의식이 어느새 한국교회에 침투하면서 목사 중심의 목회가 대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닌, 낮은 곳에서 우리들을 섬기러 온 예수님의 뜻을 본받아야 할 목회자들이 신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저자는 교회를 이념의 성전(聖殿)으로 규정한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로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던 교계 지도자들의 통렬한 반성 없이 해방과 한국전을 맞이한 한국 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해서 예수님의 이웃사랑의 정신을 전파하기보다는 군사개발독재와 교회의 양적 성장에만 치우친 그릇된 모습만을 보여 왔다. 뿌리가 깊지 못한 근본 신학에 대한 연구 부족으로, 자성하지 못한 일부 뉴라이트 계열의 정치목사들이 발호하는 모습에 일반 대중들은 점점 교회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형교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오늘날 교회 내의 젊은 청년들이 요구하는 가치와는 동떨어진 채 점점 율법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 입각한 시장논리로 흘러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를 등지는 젊은이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세상이 악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그들에게 실천적 모습과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세 번째 오로지 그들만의 리그에서 말뿐인 설교의 공허성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과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넘쳐나는 설교들로 인해 설교의 가치는 날로 하락하고 있다. 현장성이 결여된 미디어 설교를 실천적 삶에 참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주일예배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성과 현장에서 서로 교류하는 소통의 담론은 확보할 수가 없다. 저자가 표한하듯이 설교 시간이 “소통과 교감의 제의”(121쪽)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데 적극 찬성한다. 너무나 자본주의화된 교회 내의 모습에서 설교 또한 일련의 중산층 사교클럽의 일종의 소비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진단은 뼈아픈 지적이었다.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인 이웃사랑과 돌봄의 미학보다 교회 내에의 유니폼 크리스천들끼리의 교제에 보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교회의 유지와 보수에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네 번째 복음 편에서는 현재 대한민국 호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 이명박 장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분석을 볼 수가 있다.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도저히 기독교 출신 장로로 볼 수 없는 행태와 정책이란다. 그가 대통령 인수위 시절 기용한 소망교회 인맥에서부터 시작해서,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에 해당하는 기독교 인사들의 행태는 기독교를 떠나서 기본적인 소양은 물론이고 양심에서도 한참 멀리 벗어나 있었다. 다시 한 번 저자는 대선 전에 그렇게 이명박을 지지했던 교계 지도자들에게 정말로 복음의 차원에서 그를 검증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물론 그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 기독교 정신과 복음적인 차원이 아닌 오로지 기득권의 이데올로기에서 그를 지지한 교계 지도자와 교권주의자의 모습에서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의 위선과 허위를 꾸짖던 예수님의 모습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맨 처음에 언급했던 전도는 다섯 번째로 등장한다. 우선 저자가 모은 실례를 드는데, 아마 많은 이들이 공격적이면서도 일방적인 형태의 전도를 봐왔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전도의 취지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지만, 상황과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은 사랑한다면 나와 타자와의 분리 없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충분히 말씀과 복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 뜨거운 열정만으로 전도 행위에 나서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2년 전 역시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의 뼈아픈 자기고백과 회개에 대해 경험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데, 여느 집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회개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친다는 것이다. 여섯 번 째에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그에 대한 일례로 여의도 모 교회의 목사의 예를 들고 있는데, 전혀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회개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중에 그가 가상으로 작성한 회개문이 오히려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물론 그가 그런 회개를 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면에서 세상과 충돌하고 있는 헌금문제가 있다. 성전과 제사장 이데올로기 무장한 한국 교회들은 헌금과 십일조가 정말 쓰여야 하는 용도에 대해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건물을 짓고, 목회자들이 대한 사례비나 임대비가 아닌 세상을 구휼하는데 성도들의 헌금이 온전하게 쓰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랜드 사태가 보여 주는 교훈 또한 명확하다. 기업은 무조건 이윤을 내야한다는 자본주의적 명제와 더불어 사는 삶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정신은 양존할 수 없다는 것이 예의 사태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130억의 십일조 납부보다 1000여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창출한 이익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대중들의 환영을 받지 않았을까? 이들의 농성에 대해 이랜드의 회장이 장로로 시무했던 강남의 모 대형교회가 굳이 외면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선주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매체의 기사와 저서를 인용하기도 한다. 특히 102쪽에 나오는 경향신문에 실린 구미정 교수의 ‘강남형 대형 교회 여신도들의 신앙양태에 대한 신학윤리적 성찰’ 기사는 직접 찾아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0-80년대 개발독재 패러다임이 설교를 통해 현재 대형교회 성장 메커니즘에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구교수는 이 기사를 통해 한국 교회의 미래 지향적 가치는 “성장과 성공이 아니라, 작음과 낮아짐, 나눔과 섬김, 보살핌과 살림”이 되어야 한다고 방점을 찍는다. 아울러 예전에 을유출판사에서 나온 <가톨릭교회>라는 책을 통해 처음 만난 한스 큉의 저작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었는데, 특히 그의 명저 <그리스도교>를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과연 이렇게 문제가 많은 한국 교회에 희망은 없는걸까? 저자는 그래도 여전히 교회 안에 희망이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다만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처럼 현재 한국 교회에 깃든 맘몬과 물신주의의 탈을 벗어 버리고, 그동안의 과오에 대한 통렬한 회개를 통해 거듭나야할 것이다.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원론적인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담긴 진정한 사랑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한국 교회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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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성경공부 시작한지 2년 반 정도 된것 같아요. 아직 넘 부족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복습을 못하고 있지만 성경 말씀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답니다. 지금 현신반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배우고 있는 내용이 이책의 내용과 관련된 구절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어릴때 시골에서 교회를 다니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고 다니는것보다 이상하게 교회가 좋아서 예수님이란 단어가 좋아서 열심히 좇아 다녔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그 때는 노래만 불어도 은혜가 가슴에 넘치고 교회만 가도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의 우리나라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알아간다는 것보다 세상에 살아가지에 자신에게 필요한것을 그안에서 추구하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길을 먼저 찾아서 가는 위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합니다.
어떤분이 그런 소리를 하던데요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을 보니 와 ! 불 빛이 보이는데 교회 십자가 밖에 보이지 않더라고. 이책을 읽으며서 참 많이 고개를 호낮서 끄덕이면서 보았답니다. 또 와 ! 정말 이상한 목사들이 많구나 . 이 교회는 목사가 하나님이구나. 참 어이상실 허허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더 한것 같다 생각을 합니다. 목사란 직분을 받고 교회를 하나 차리면 밥줄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세상에 속해서 모든것을 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택해서 살아가는 선택받는 자라고 이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일까요 참 교회에서 주님의 종에게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이책의 저자 께 정말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 자신들의 잘못을 돌아볼수 있는 기회의 책을 쓴것을 저자의 말처럼 아마 인정하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치고 한국교회의 앞으로의 미래를 한번 생각할것이고. 불신하는 사람은 아마 작가를 욕하겠지요.
이책을 보고 알았어요 . 나참 이명박 장로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게 교회라는것을 정말 어이상실이네요. 우리교회 목사님 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번에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교회 말고는 다른곳은 다 나와서 위로의 글을 남겼고 애통하게 생각을 했지만 과연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글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에 바빠서 서로 미루다 보니 불참이 된것이다.
물론 그 교회안에 목사님이 중요합니다. 왜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성도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사님도 한사람의 하나님의 어린양이지요. 성도들과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우리에게 귀중한 말씀을 전하기를 바라는 중간자의 역할을 하기에 귀한 분이라고 하지요. 근데 독재라 그것은 이단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지금의 교회는 지정한 교회를 찾아보기는 넘 힘들어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수 없고 또 평생을 한 교히를 다 딜수 없고 , 내가 죽을때 까지 한 목사님께 말씀을 들을수가 없지요. 여러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많은 일도 교회 이단이란 교회도 많이 보았읍니다. 이 많은 교회 안에서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주는 교회를 찾기란 정말 힘들어요.
기독교 본래의 가치와 정신을 잃어 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비본질적인 행위를 해부하고, 그 문제들의 사회학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교회가 기독교 정신에서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특히 목사(영혼을 지배하는 권력자), 교회(이념의 성전), 설교(소비되는 권위), 복음(유니폼 크리스천의 액세서리), 전도(제국주의자의 타자화 전략), 영성(싸구려 유행 상품), 헌금(윤리를 망각한 영혼의 환각)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되돌아본다. 한국 교회, 맘몬의 신전 알까요. 정말 웃으니 나오더군요. 읽고 또 읽으면서 고개가 자꾸 끄덕이 지더라구요.
지금의 사람들에게 교회를 가라고 하면 이명박 대통령을 보고 안간다고 하던데요 ,
. 이 책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은 기독교 본래의 가치와 정신을 잃어 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비본질적인 행위를 해부하고, 그 문제들의 사회학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교회가 기독교 정신에서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파헤친다. 명분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절대 나오지 말고 , 일은 않하고 간섭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나오지 말라 스스로 포기하라
전 향상 주님께 감사 하답니다. 여러교회를 다녔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다니시면서 동행을 하시여 주신것을 향상 좋은 말씀을 겸손함을 아는 목사님를 만나게 해주신것을 지금의 교회도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벌써 10년 향상 더 서로 조심하고 말씀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노력하는 목사님들과 교회를 주신것을 ^^*
한국교회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곳으로 변했쓰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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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라고 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에게 이런말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예수는 좋아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당신들은 싫어합니다. 라고~~ ,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잘못하면 예수까지 싫어할 상황이다. 그때보다 더한 상황이 지금 이시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기독교인인 나도 한 몫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본서 “한국 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이라는 책과 같은 부류의 책들이 인터넷 상에, 그리고 서점가에 하나씩 늘어남을 볼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실망과 자기반성으로, 그것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실체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거기에는 기독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것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먼저 큰 틀에서 보았을 때에,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아 심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 삶의 자리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까지 한국의 기독교가 이지경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나도 한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말씀하신 글에서, 교도소에 가서 재소자들을 만나보니, 그들과 나와 다른 점은 별반 없더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그들은 죄를 짓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교도소 안에 있는 것이고, 나는 발각되지 않아서, 밖에 있는 것이라고,
거기에 나는 동감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사회와 윤리에 크게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밖에서 생활하는 것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처음 선교사(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 그들은 그들 스스로 호칭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비판이 아닌 칭찬이었다. 그들의 언행이 본이 되었기에, 칭찬받을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반열에 오를 뿐만 아니라,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2천이 지난 한국 땅,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일도 없다. 거기에는 저자가 지적한 많은 죄된 요소가 자리잡고 부족하고 잘못된 길로 기독교가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한국교회의 삶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한국교회에 복음이 전파될 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구한말 한국에 소망이 없는 시대에 선교사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억압을 받으면서, 소망이 없는 이 나라와 민족의 백성들에게 유일한 소망과 민족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곳으로 한 몫을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제 통치 35년을 지내고, 다시 한국전 전후 좌우익으로 말미암은 이념 논쟁, 1960년대의 정치적 혼란기, 1970년대의 유신시대, 1980-1990년대의 혼란기, 2000년대의 경제적 안정기를 지나오면서, 어쩌면 양적인 성장을 많이 가져오기는 했으나, 질적 성장에 많은 관심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상누각의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가 약 120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다 보니 신학적인 반성이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관계성에 정확한 확립이나 흐름도 없었다. 다만, 현실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의 뿌리와 기반을 바로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이념논쟁에, 정치, 경제, 군사적 상황에서 분명한 연구도, 또한 바른 길도 제시하지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적 상황에서 비전을 제시하지도, 분명한 대안도 드러내지 못한 체 오늘까지 이른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이다. 그러다 보니 저자와 같은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역사 한 가운데서 어지럽고, 때로는 소망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영향력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의도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 한군데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잘못된, 죄악된 부분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당연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양면성을 살피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기록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중소형교회들이 이름 없이 헌신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수고와 헌신은 도외시 하였다. 마치 모든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것 처럼 비추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떠한 곳이든 자기 성찰이나 자기 반성이 없이는 결코 발전이나 성장, 성숙은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저자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거나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저작 의도가,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고, 다음은 한국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충심에서 쓴 부분이기에 대체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사명은 끝났는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바르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국교회에 많이 남아있지만, 이러한 책들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직도 소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의 조그마한 바램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 책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냉철한 자기 반성을 통하여, 자신들을 돌아보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기독교 비판의 도구로 삼기 위한 근거로 삼아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저자가 기록하지 않은 한국교회의 순기능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양면성을 가지고 두루 살필 수 있는 혜안도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과,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그리고 한국교회의 건강한 앞날을 위하여 좋은 방향을 제공해준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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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세상이 병들고 죽어가는 것은 교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에 기독교적 정신과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정신이
빈곤한 집단일수록 종족의 우상에 빠지기 쉽다. 사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없는 집단일수록 종족의 편견에 갇히기 쉽다.
한구기 교회가 이명박 장로를 지지하고 동반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종족의 우상에 빠졌기 때문 이다 교회는 있지만 예수의 복음을 상실했기 때문에 비본적질적인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표지 앞장-
기독교의 근본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은 포괄적 언어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의 하는짓거리가 반공이데올리기와 이분법적 사고와 다원주의,신자본주의에 빠져 그 근본 원리에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 비기독교인들에게 개독교라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 이라 본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화가 치밀었다 .사실 나는 교회내에서는 집사의 직분을 같고는 있지만 이 세상에서 살아갈때는 부끄러워 교회집사라는 말을 꺼린다. 그 이유는 지금의 교회에서 일 어나고 있는 모든것 들이 부끄럽기 그지 없는 생각을 해서이다 언론에 비추어지는 목사들의 발언이나 설교가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도 있지만 그 설교속에 제사장이라는 권위의식과 정 치적 행태를 보면서 내가 믿고 있는 주님의 말씀에 동떨어지는 행동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서 이기도 하다
추부길 목사의 사탄발언(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모든게 사탄이다 라는 이분법적 시각)과 자신 의 성도를 마치 소유물인양 발언한 전광훈 목사(회생 제사에 참여한 자들처럼 성도들이 목회 자 앞에 희생하기를 바라는 것)이승만 정권부터 독재시절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이들에게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인권 탄압을 묵인하거나 도리어 앞장서서 주도한 범죄행위들을 보면 내 가 믿고 있는 예수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부끄럽기 짝이없다. 그 실상을 나열하면 이승만 장로의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반기독교적 행태,서북청년단,국민보도연맹(30만명학살) 자유당 정권과 유신독재,5공화국으로 이러지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인권탄압 묵인하거나 앞장선 목사(김준곤 목사-> 조찬기도회때 박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라고 기도 하고 우라나라의 군사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킨 것이라고 했으며,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한다고 한 인물)전두환 5.18 학살의 공로로 대장 진급을 하던날 정진경 목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했다) 이들은 독재자에 대한 칭송을 하고 고통당하는 많은 시민을 악의 세력 즉 사탄으로 매도한 내가보기엔 적그리스도이다 그리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 행사의 한 방법을 집회에 대해 사탄 운운하는 이명박 장로 와 추부길 조용기 김홍도(교회가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양 성도들의 피땀으로 낸 헌금으로 부귀 영화를 누리는 비윤리적 비도덕적 사이비 목사)등과 같은 목사들은 이승만 박정희의 화신과 마 찬가지 인물임에 틀림은 없는것 같다.
역사을 되집어보면 기독교 장로라는 것들이 대통령 해먹어서 잘 된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아마도 한국교회는 기독교 유니폼만 입은 사람만을 뽑았던것은 아니었을까...여담이지만 나는 대통령선거때 장로라고 하면 아예 뽑질 않았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적 나는 성당에 다녔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성당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다시든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카톨릭에서 개신교롤 개종을 했다 그 이유는 카톨릭에서의 구원관과 신앙에 대한 나의 갈급함을 개신교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것에 가슴이 아팠다 하나님의 일곱 촛대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하루속히 회개하고 주께 돌아와야 할것이다. 안타깝다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릴만한 사람이 없는 이땅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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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그 동안 내가 생각을 해왔던 많은 기독교의 이면을 너무나 잘 이야기 해 놓은것 같다. 어릴적 마음적으로 믿어왔던 그러한 교회는 요즘에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직장 다닐때 원장님이 교회를 다니다 보니 교회 관계자 분들이 많이 찾아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 중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내가 보기에도 눈싸리 찌푸릴정도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분들도 많았던 생각이 든다. 그 교회 위치가 서울에서도 알만한 곳에 위치하다보니 신도들도 능력이 있는 분들이 많으셨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다보니 같은 교인이면서도 서로 모른척하는 이면서이라고나 할까... 목사님의 사모님이라고해도 나이가 많으신분이 굽실굽실 거리는 모습에 정말 이래야 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의 모습중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구두 바닥에 먼지하나 뭍히지 않았던 그 구두를 보고 이 분은 과연 어떠한 마음으로 목자가 되셨고 어떠한 생각으로 신도들을 대할까 하는 생각도 한적이있다. 난 예전에 정말 수수한 모습으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할때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에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다가 너무나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도 없이 신도들에게 말만 잘하는 것으로 입으로만 전도하는 목자의 길을 걷는것이 아닌가하는 실망감도 컸던적이 많았던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분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이 책에서도 나온것처럼 한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지체가 아니라 맘몬의 신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나 역시 느끼는 바이다. 한국 교회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섬기는 주의 종이 아니라 맘몬의 사제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십자가만 있는 곳이면 어디든다 하나님의 교회인 줄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상징인 십자가를 내세워 자본주의적 용망을 좇고 있는 현실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한국 교회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선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정신을 많은 분들에게 전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요즘에는 종족의 우상을 섬기는 모습으로 변한다면 사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없을것이고 고로 종족의 편견에 갇히기 쉽지 않을까 싶다. 지금 현재의 우리 교회는 교회는 있지만 예수의 복음을 상실했기네 비본질적인 일에 몰두 하는 모습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버린 한국 교회의 일곱 자화상이란... 목사-영혼을 지배하는 권력자 교회-이념의 성전 설교-소비되는 권위 복음-유니폼 크리스천의 액세서리 전도-제국주의자의 타자화 전략 영성-싸구려 유행상품 헌금-윤리를 망각한 영혼의 환각...........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이라한다. 이제라도 우리의 교회의 모습은 교회 본질의 기독교적 정신과 가치를 지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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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하수상한데 대통령까지 등장시켜서 한국교회가 저지르고 있는 죄악을 읽고 있노라면 기독교인으로써 낮 부끄러울 뿐이다. 아하 그럼에도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일곱 가지 밖에 안 된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하나... 하는 생각이든다. 내가 신학을 할때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가?! 목사를 믿는가?!’라는 물음은 늘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였다. 한국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을 읽기 전에도 비슷한 책을 몇권 더 읽었다. 하나같이 교회의 비판 적인 내용이었다. 동감한다. 그러나 근거없는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뿐 어떤 교훈이나 자아성찰 또는 회심을 주지못한다. 그런 이유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에도 그런한 책들을 읽어 보라고 교우들이나 성도들에게 권하지 못했다.
이책은 다른 성격을띤다. 근거와 논조 그것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죄악. 난 바로 이런책이 목회 일선에서 수고하고 계시는 사역자들이 꼭 읽어봐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는 한국교회의 죄악... 그 통렬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 들여야한다. 자기들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고 믿음 생활이네 하면서 부끄럼도 없이 예배당을 배회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야 설교자는 설교(상품가치가있는)할 맛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누가 소리쳐 말 못한다.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이비 또는 이단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과 살아가면서 그 속에녹아 잔맛을 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못 해석하는 작금의 한국 교회에 누가 당신들은 그러한 잘 못을 저지르고 있소 라고하면 오히려 이단으로 사이비로 몰아부쳐 무너지지 않을것 같은 여리고마냥 단단히 싸메고, 두눈가진 사람을 화형시키는 조국교회는 설교를 상품화하고, 영성을 판매대에 진열하며, 말도 안되는 설교에 축복해주마하고 십일조를 강요하는 썩어빠진 흙탕물이 되어버렷다. 우리는 아니 나는 회개해야한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안는 사람도 알고 있는 조국 교회의 부조리와 부패와 거짓 선지자들을 오직 믿음으로 극복하려했던 용기없던 시간들을 말이다 길선주 목사님의 새벽 기도의 회개는 지금 조국 교회가 필요로하는 기도임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그러나 책을 다읽고 나서 한가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뭘....?” 서두에서도 말한것처럼 대안이없는 비판은 그져 비아냥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을 감히 추천 하지 못 한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내 모습에 자신이 없어서일것이다. 그럼에도 이책이 한국교회를 각성시키는 좋은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꺼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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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예수님은 진짜 존재할까? 지구촌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그 나라의 종교들은 외부인들이 보지 못하는 부패가 존재한다. 가톨릭,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을 국교나 다수 종교로 신봉하는 나라들은 권력과 돈에 너무나 집착해 있다. 외국의 사례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독립 영화들이나 인터넷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한국교회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역사를 보면 기독교와 관련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야사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들은 뒤로 하고 일단 책에서 다룬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책은 크게 7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목사, 교회, 설교, 복음, 전도, 영성, 헌금이 그것인데 유심히 생각해보면 문제의 근원은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목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으로는 그의 추종자들이라 생각된다. 한국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맞물려 신자유주의가 크게 팽배해 있는데, 기독교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목사들은 돈과 권력을 신봉하는 것이 당연하게 된 이 시점에서 치부를 밝혀본들 큰 이익은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개념 없이 이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있다고 생각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뒤로 한 채 맹목적인 믿음만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간혹 뉴스를 보면 기도원에서 죽은 사람을 환생시킨다고 오랜 기간 동안 시체를 방치하거나 멀쩡한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명박 장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와 관련된 주변을 자세히 다루면서 비판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라 생각된다. 물론 불교도 이런 부류의 문제가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신정아 사건의 중간의 지방의 스님이 연루되었고 유명한 스님들의 학력위조들도 있었던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기억한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기독교의 경우는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손가락질을 받는 정치와 경제, 권력의 선두에는 항상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 종교의 인연으로 나라를 수세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체는 목사와 장로로 압축된다. 책에서도 과거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친일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렇게 된 것도 이승만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은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지만 매국노들은 철저하게 척결했다고 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한국은 친일파를 떠않으면서 기독교에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로 인해 은연중에 신분은 세습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독교 역사 100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인은 한분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은 100년 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얼마 전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까지 알려지고 있다. 책을 보면 한국의 기독교는 정당이나 대기업보다 더 무서운 이익집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입으로만 기독교인이지 행동을 보면 사악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리 주변에도 기독교인들은 자기 욕심에 사로 잡혀 주위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끌어들이는 사람 수에 따라 직분이나 명예가 주어지는 것일까? 이명박 장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모두가 자기 밑에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종말은 하나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듯하다. 미국도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세계를 평정하면서 많은 충돌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뒤로 한 채 하나님을 찾고 있다. 한국정부도 미국의 뒤에서 따르는 추종자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기독교는 욕심을 전제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만일 이 책을 기독교인들이 본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칼 막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한바가 있다. 히로뽕이나 코카인보다 더 무서운 세뇌를 통하여 그들의 폭력이나 만행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신은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