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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한창 심야라디오 프로를 즐겨듣던 때에는 새로 나온 책광고를 들으며 너무 들어서 외워버린 광고를 마음 속으로 따라 외워보는 것도 그 시절 라디오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앵무새 죽이기, 내 영혼의 닭고기수프 같은 제목들을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몇 개월간 들어온 결과 지금까지도 그 책들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제목으로 머리속에 남아 있다.
'세상의 모든 딸들'도 그 시절에 그렇게 라디오 광고에서 열심히 광고를 해대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할리퀸 로맨스를 읽느라 소위 '일반적인' 또는 '작품성이 뛰어난' 책을 읽는 데에 쓸 시간이 없었던 터여서 위에서 열거한 책들을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읽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각 1000원에 상/하 한권씩 두권을 샀다. 그렇게 해서 앵무새 죽이기도 얼마전에 사서 읽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색다른 책이다. 이 무시무시한 제목(내가 역시 여자라서 그런가보다.)에서도 느껴지는 심오함이 책 두 권을 가득 채우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정말 그 시대 그 시절 여인들이 저렇게 심오한 사고와 수준있는 대화를 나누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은.
배경이 원시시대가 아닌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지혜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에 도구를 쓰고, 불을 피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네 발로 기고, 고기를 얻기 위해 곰과 맘모스를 사냥하고 심지어는 늑대가 새끼를 위해 토해낸 것들까지 먹어야했던 그 시대. 세상의 모든 딸들의 이야기는 거기, 그 곳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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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렇게 살고, 또 이렇게 죽는 거야.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그렇게 살아왔어. 아이를 낳고,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그렇게 살다가..... 야난, 너는 내 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p.1-103
과연 그것만이 진실의 전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랑이의 뒤를 따르는 까마귀도 될 수 있지만, 호랑이와 동행하는 다른 어떤 짐승도 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p 2-83
세상의 모든 딸들은 결국 세상의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레이랙도, 팀도, 에르호도, 심지어 가장 강한 고기의 남자인 스위프트조차도 여자의 몸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이류로, 여자는 천대받거나 무시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남자를 이 땅에 오도록 만든 존재로서 대접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p 2-83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월등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
남자들의 독단과 거만함을 욕하기 전에, 여자의 삶이라 해서 결코 비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p2-300
나는 끝내 아기를 낳았다. 이 아이가 누구의 아기가 되었든 나는 마침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나는 강인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지만 아기를 낳고 보니 이제 더 이상은 비참해지지 않을 자신이 생기는 것 같았다. p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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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두 살의 여름, 나는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다. 회사로부터 병가를 받아 4주간 집에서 칩거하게 되면서 엄마가 올라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 이상 나에게 방학이라는 시간이 오지 않게 된 후 이렇게 엄마가 한 집에 오래 살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엄마는 집청소, 내 병수발, 내 고양이화장실 청소, 막내도시락, 더불어 따발총같이 한 번 발사되면 멈추치 않는 잔소리와 야밤중에 내게 걸려오는 전화 관리감독까지 그동안 행사하지 못했던 엄마로서의 의무과 권리, 책임과 목적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완벽하게 수행하신 후 추석을 지내러 시골집으로 내려가셨다.
3주를 엄마와 지내면서 불필요한 마찰, 분명 많았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새삼 그동안 우리가 떨어져 산 시간이 너무 오래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엄마와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더 많게 되는데 이제와서 서른이 훌쩍 넘은 병든 딸과 여전히 꼬장꼬장한 경상도 엄마와의 동거가 조용하고 평화로울리 없다.
하지만 잠깐씩 다녀갈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자세히 보니 우리 엄마도 참 많이 늙으셨더라. 팔도 흐믈흐믈하고, 머리는 백발마녀인데다가, 이마의 내천자는 어쩜그리 점점 또렷이 짙어만 가는지. 옛날에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하던 그 무섭던 엄마가 지금은 엄마 한마디에 열마디를 쏟아내는 아니 퍼붓는 병든 딸 눈치보느라 혼자 울먹하는 모습을 보니 맘이 너무 아팠다.
얼마 전 선생님들과 '엄뿔'얘기를 하다가 선생님 한분이 그러셨다. 어떨 때 딸이 막 성질내고 말 함부러 하고 그러면 (신은경이 김혜자에게 하듯이) 정말 딱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고. 그 말을 듣고 난 정말 깜짝 놀랬고, 그 동안 내가 엄마에게 퍼부었던 각종 비난의 모진 말들과 장면들이 촤르르르 눈앞에서 흘러갔다. 엄마는 내 뒤에서, 또는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울음을 참았던 것일까.
책에서 나온 말처럼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는 '어머니'의 존재가 그 자신의 아이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비참한 순간을 겪어오고 또 견뎌왔던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엄마 생각이 났다.
힘든 치료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보면서 아픈 나보다 더 인상쓰고 옆에 지켜주던 엄마. 나도 언젠가 이 세상 모든 딸들처럼 어머니가 되면 그 땐 엄마 이마의 그 진한 내천자 속에 숨겨진 오열과 비참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견딜 수 있게 해준 모성애를 알 수 있을까.
훌쩍, 엄마한테 잘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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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나의 인연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오던 때 광고 카피는 이것이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오호라, 이 얼마나 선정적인 문구란 말인가. 엄마처럼 밥순이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겠지. 자아실현이랍시고 사회에서 들뛰다가 결국 엄마의 모성애를 느끼고, 혹은 내가 그 모성애를 발휘하며 눈물을 흘리며 끝나겠지. 아아... 싫다. |
|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은 참으로 색다르고 독특한 소설이다. 재미도 재미려나와 무언가 강요하지 않는 깊이와 작품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시대인 지금에도 변한 것이 없는 여성의 지위와 인생에 관해서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고 있다. 정말 독특한 느낌이 나는 소설이다.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씌여진 잔잔한 전개의 페미니즘소설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 어떤 직접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야난의 인생담을 풀어놓는다. 그저 아주 오래 전 석기시대에 평범한 한 여인이 이렇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그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고난과 부침, 시련을 보여준다. 그 어떤 페미니즘소설못지않게 진지하면서도 결코 지루하거나 공격적이지 않은 작품, 그러면서도 어느 소설못지않게 도전적인 의미의 작품이다. 여성독자이건 남성독자이건간에 꼭 한 번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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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을 앞두고 읽었던 듯 하다. 오래된 일기장. 쓰다만 일기장을 쓰려니 몇 편의 독후감들이 있더라.
아마 '엄마처럼 살지 않을테야'때문에 읽었는지, 아니면 엄마가 읽던 책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여튼 읽을 땐 참 재미? 있게 읽었다. 세 권이나 되고 글자도 작았는데 한 순간에 읽었다. 분노하고 감정이입하고 울고 갑갑해하고 내가 여자라는 것에 통탄하면서, 물론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듯하다. 배경은 원시시대인데, 아마 지금과 감정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을 거 같다.
이 때 나는 아직 결혼도 전이고 엄마가 되기도 전이다. 그 때의 나는 오만하고 어리석고 어렸다.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잘 짜여진 직물같으나 끝단 처리가 엉망인 것 같다. 엉성한 결말이고 납득이 안가는 결말이다. 다른 방향일 순 없었을까하는. <이 책은 인류학자로서의 통찰력과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원시부족 여인들의 삶을 통해 여자의 존재가치를 극명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 작품> 코리의 어머니가 코리 앞에서 아이를 낳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던 것 같다. 충격적인 묘사였다.
이게 내가 쓴 독후감이다.
역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