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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어머니>등 우리에게 친숙한 펄벅 여사! 그녀에게 정신지체아인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접함으로써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장애아들에게 어떤 거리감, 동정심, 무서움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장애아동을 가진 가족들은 어떤 특별한 유전적 결함이 있거나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장애인 딸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게 느껴졌다. 조금도 놀라운 사실이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무조건 "정말 감동 깊었어요." " 정말 훌륭한 책 이예요."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죄스러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정확히 말 할 수 있는 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와 장애 아동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함으로써 장애는 유전이 아니며 부모도, 태어난 아이들도, 그 누구도 잘못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펄벅 여사의 입장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글쎄... 아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내 아이가 장애아 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쩌면 창피하게 생각하고 남들에게 숨기려 할 지 모른다.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장애아동을 가진 다른 훌륭한 부모들처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장애 아동을 자녀로 두게 되는 일은 흔하진 않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우리 주변에서 한, 두 번쯤은 장애아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아동을 가진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의 냉대를 받고 있다. 장애아를 병신이라 놀리고 자신의 아이와 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접해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 그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우리의 아이들도, 그 누구의 아이들도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장애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인상깊은구절] 단순히 참는다는 것은 시작에 불과 합니다.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삭여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괴로움 가운데에도 하나의 연금술(鍊金術)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괴로움도 지혜로 변할 수 있고 그것이 쾌락은 가져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행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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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란 그것을 완화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은 슬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번 죽은 부모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은 아닙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자연스런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내 고칠 수 없는 신체적 장애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입니다. 불구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과는 다른 생활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뜻하는 것입니다. 완화할 수 있는 슬픔이란 생활에 의하여 다소나마 잊을 수 있는 슬픔을 말하는 것이지만 완화할 수 없는 슬픔이란 생활까지도 마구 삼켜 슬픔 자체가 생활이 되어버린 기막힌 슬픔을 말합니다.p60 슬픔 자체가 생활이 되어버린 기막힌 슬픔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난 아직까지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장영희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장애라는 것에 관심이 가져졌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불편함과 슬픔이라는 것을 보통사람들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비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건강이라는 것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닌 언제나 감사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라지 않는 아이를 읽기 시작했다. 위대한 작가라는 명성 아래에 장애아이를 가진 어머니라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작가가 아닌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글 한 구절 한 구절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한없이 해맑고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진다. 어머니 이기에 희망을 저버릴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중국에서는 앞 못 보는 사람도 절름발이도 벙어리도 그 밖의 기형아도 모두 정상인들과 함께 조금도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으며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중략… 한걸음 더 나아가서 중국 사람들은 하늘이 점지하여 준 이상 어떻게 태어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운명으로 본인의 죄도 아니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한쪽에 불행이 있으면 그 반면에 반드시 하늘이 주는 보상이 있다고도 믿고 있었습니다. P35 장애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가장 상처받는 일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인식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장애인과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가 융화될 시간이 분명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운동들은 국가에서 나서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사회복지분야에서 많은 복지사 분들이 힘쓰고 계시지만 이 역시 종교문화처럼 그들의 문화이다. 일반인들은 사회복지분야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상처는 싸매고 감싸 안기만 한다면 곪아서 터질 수도 있다. 이제는 그 상처를 위험하더라도 드러내놓고 치료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자리지 않는 아이와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사람들이 많이 접해봐야 할 것이고 말아톤과 같은 영화들이 더 많이 상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애라는 것이 특별한 사람들의 기막힌 고통이 아닌 함께 나누어야 할 고통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