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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이 아파 책 한 권 읽기가 힘든데다 조금은 억지로(?) 읽은 이홍우씨 책때문에 책 읽기를 더욱 힘들어 했는데, 어제 오늘 나는 책 두 권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교과전담이라는 환경이 한 몫을 해 준 탓도 있지만, 한 치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이계삼선생님과 윤지형선생님의 필력도 큰 역할을 해 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분들이 담아내고자 했고 말하고 싶었던 한국사회와 전교조의 역사가 가장 큰 힘이 돼 준 건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눈이 아팠던 건 책 읽기가 싫었던, 마음에 든 책이 없었던 걸 아는 내 몸의 이상반응이었던 걸까? 아무튼 나는 오늘 교사, 교육운동의 상징이었던 전교조의 역사를 윤지형선생님 덕분에 한 번에 훑어 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교직에 들어서기 전부터 난 전교조와 인연을 맺을 수 밖에 없었던 객관적인 조건이 있었다. 늘 내 곁에는 해직교사들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몹시도 잔인했던 89년 그해를 기점으로 전교조와 관련된 소식은 교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교육운동의 상징은 전교조였고 해직된 선배들과 만나는 일은 대단한 만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교대를 졸업하면서 만나게 된 선배를 시작으로 신규발령이 나면서나는 자연스럽게 지회를 오가며 후원회 활동을 했다. 그때 스치듯 만나뵈었고 언제나 다정한 격려와 웃음을 전해주시던 류경렬선생님도 뵐 수 있었다. 95년 11월 밀양으로 근무지를 옮겼던 해. 전교조 교사대회를 마치고 돌아가시던 전세버스가 뒤집혀 큰 사고가 나 따님을 잃으셨다는 엄청난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모른다. 이 책에 그 이야기도 담겨 있어 그 시절이 떠올라 한동안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밀양으로 가기 전 1994년 복직이 한창 전개되던 해. 2년차로 접어들어가던 그 해. 내가 근무하던 곳으로 복직을 하신 차선생님을 만난 건 운명이기도 했다. 이후 차선생님은 지역활동가로 지부활동가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셨다. 지금도 가끔 만나면 그 시절을 이야기 하곤 한다. 밀양으로 넘어와서는 중등과 초등선생님들 많이 만나게 된다. 부산교육연구소 일을 잠깐 할 때 만났던 이광호선생님도 빠뜨릴 수 없겠다. 이분들 모두 내가 전교조 교사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활동가로서 어떤 품성을 지녀야 하는지 몸으로 잘 보여주셨던 분이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한참 모자라기만 했던 난 그분들과 헤어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게 한 없는 정성을 쏟아주셨던 고맙디 고마운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분들은 내가 전교조 교사로 살아가야 할 당위와 명분을 충분히 주셨다.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전교조 조합원임을 당당히 내세우는 까닭도 다 그분들 때문이다.
이런 고마운 분들의 삶과 역사를 읽는다는 건 내게는 무척 벅찬 일이기도 했다. 문득 지난해 우리교육 사무실에서 진주씨를 만났을 때, 괜찮은 책 하나 나왔는데 받아 읽겠냐며 이 책을 건네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이 책을 펴낸 편집자의 자부심이었을 그 환한 얼굴을 지금도 생생하다. 이 책은 전교조가 왜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었는지, 그 고귀한 희생과 죽음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으며 지난 과거지만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까닭이 무엇이며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여러가지 상념들도 스쳐지나갔지만, 눈물이 나도록 가슴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죽음은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김수경 학생, 신용길선생님, 배주영선생님....그리고....그리고...
사랑과 희망이 꽃피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던 전교협교사들, 사학비리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저항하셨던 수많은 선생님들, 특히 연탄 중독으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신 나이 스물일곱 꽃다운 배주영선생님이 스승의 날 쓰셨던 짧은 일기는 긴장 속에 글을 읽던 단단한 내 마음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정말 묘하게 기쁜 하루였다. 선생이란 이름으로 '스승의 날'을 맞이하단, 교사의 본질. 스승이 되기 위해 지금 내가 몸부림치고 있는걸까?(1985년 5월 15일)"
"눈물이 흔한 요즈음. 깊어 가는 가을. 길가의 코스모스도 이제 앙상히 죽어간다. 여문 씨앗만 남고 온통 바래지고 스러지는 죽음이라 다음을 기약하긴 하지만 못내 서글프다. 아이들과 나도 저렇게 헤어진 걸까.(1989년 10월 24일)"
2010년 오늘의 전교조. '미친 존재감'이라는 신조어가 시끄럽게 떠도는 시절에 이젠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든 전교조의 오늘 모습을 이제는 조금 떨어진 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세상은 서슴없이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만들 수도 있다는 엄포를 내놓는 시절이 됐다. 그러나 나는 윤지형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전교조를 향한 이 세상의 험악한 엄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외로운 전교조지만, 조금씩 본래 모습을 찾아가리라는 믿음도 얻었다. 이 책을 쓰신 윤지형선생님은 이 일련의 '변명'이 '전교조'를 위한 그것이 아니라 '전(全) 교사'를 향상 송가로 읽히기를 소망한다 하셨다. 진정 이 책을 많은 교사들이 또는 이 땅의 어른들이 또는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담아 읽는다면 저자의 소망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저자의 소망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참교육을 위해 힘껏 싸우셨던 선배교사들의 정신과 마음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아, 내일은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이다. 그런데 마을에 사시는 한 가구가 집 지은지 2년이 넘어 오일칠을 해야한다며 주민들을 소집했다. 기꺼이 가겠노라 했다. 그 집은 다름아닌 한 때 해직교사 부부였던 분들이다. 우리 마을에는 해직출신(?) 선생님들이 네 분 계신다. 어려운 시절을 보낸 두 부부들과 한 마을에 사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모른다. 내일 그분들을 만나 함께 일하며 막걸리 하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막걸리 좋아하시는 미술선생님에게는 좀 더 자주 술을 권해야 할 것 같다. 고생 많으셨노라고. 이제 후배가 선배님들의 짐을 조금은 덜어드리겠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