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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작품은 마치 구로사와의 영화 라쇼몽처럼 다양한 면면을 지니고 있어서 통념적인 해석이라는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이다. 하이데거의 니체, 들뢰즈의 니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쓰여지는 사람이다. 클로소프스키의 니체는 자칫 차라투스트라의 이미지로만 각인될 위험이 있는 니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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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이야기하는 이는 많지만, 니체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줄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다. 설령 만난다 해도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니체의 그것보다 난해하기 일쑤여서 니체를 제대로 읽고 싶은 독자에게는 걸림돌이 된다. 보통 니체 혹은 니체의 저작에 대해 가장 훌륭히 안내자 노릇을 하는 레퍼런스로는 ‘하이데거의 니체’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이 꼽힌다. 거기에 만약 3대 레퍼런스로 하나를 더 꼽으라면 바로 이 책 ‘니체와 악순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책이 갖는 위상은 하이데거나 들뢰즈의 니체에 비해 대단히 독특하다. 스스로 “나는 기인이다”라고 했던 클로소프스키는 실로 수수께끼 같은 업적을 남긴 위대한 천재이자 르네상스맨이었다. 그런 그가 일생 동안 천착한 주제가 바로 니체다. 니체에 열광하는 무리가 걸핏하면 인용하는 ‘사유의 높은 음조’를 해석하며, 니체가 ‘파도’에게 말한 한 구절을 빌려온다. “그대들과 나, 우리는 같은 기원에서 생겨난 것이다. 같은 혈족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클로소프스키는 이렇듯 카오스처럼 흩어진 니체의 문장과 사유의 조각들을 붙들어 그것을 다시 극한까지 밀어올린 다음 니체의 사유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그의 니체가 실제의 니체와 얼마나 접근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등반가가 에베레스트에 남긴 깃발은 에베레스트에 오른 자만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저작이 니체라는 철학자에게 부당하게 덧씌워진 오해를 제거하고, 니체 이후의 철학을 계승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고집 세고 도도하기로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마저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내가 니체 자신과 함께 읽은 가장 위대한 철학책입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니 이 책이 니체 연구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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