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1%
  • 리뷰 총점8 29%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정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정글" 내용보기
정글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아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간 접해온 미디어와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빽빽함, 축축함, 눅눅함, 음침함, 복잡함, 그리고 알 수 없는 공포감.   출간된 지 104년이나 된 이 책 '정글'은 제목처럼 칠흙같은 정글에 빠져 아무리 빠져나오려 몸부림쳐도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말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정글" 내용보기

정글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아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간 접해온 미디어와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빽빽함, 축축함, 눅눅함, 음침함, 복잡함, 그리고 알 수 없는 공포감.

 

출간된 지 104년이나 된 이 책 '정글'은 제목처럼 칠흙같은 정글에 빠져 아무리 빠져나오려 몸부림쳐도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말해준다.

 

책의 배경이 된 1900년대 초반 미국은 유럽인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땅과 그곳에서 나오는 무궁무진한 자원들

땅에 삽만 갖다대면 노다지가 발견되는 환상의 보물섬이었다.

 

막연한 환상의 세계에 정착하기 위해 실제로 유럽의 많은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미국으로 달려가던 바로 그 시기였다.

 

작가는 리투아니아의 청년 유르기스가 그의 아름다운 부인 오나와 오나의 여러 친척들이 이러한 달콤한 꿈을 안고 미국 시카고의 가축수용장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들의 막연한 환상의 세계이던 미국은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 있었고, 유르기스가 처음 일을 시작한 가축수용장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의 추악함과 속내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어도 열심히 일을 하기만 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여겼던 유르기스의 희망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린다.

 

대규모 가축수용장을 가진 사용자(기업가)들은 시정부, 법조계, 언론계 모든 분야에 걸쳐 그들의 카르텔의 위력적인 힘으로 떡주무르듯 쉽게 요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노동자에 대한 더욱 맹렬한 착취로 이어졌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아이마저 죽은 뒤 모든 희망을 잃고 폐인 생활을 하다 당시 미국의 서민들과 이민자들에게 열풍을 일으킨 사회주의에 귀의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당시 대통령이던 루즈벨트는 시카고 정육업계와 육가공업계 그리고 가축수용장의 비위생적이고 불법적인 행태를 철저히 조사해 <식품의약품위생법>을 그해 제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다 일고 난 후 나는 더욱 서글퍼졌다.

100년 전 자본주의시대와 100년 후 지금 자본주의시대의 추악한 자화상이 그대로인거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 시기이던 20세기초 이러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등장해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종속되기 전까지 자본주의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자본주의를 대체하거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돈으로 위시되는 자본은 '물신'이 되어버려 사람들의 경배 대상이 되어버렸다. 인종이 무엇이건 종교가 무엇이건 가치관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우리는 이 '물신'의 정글안에서 치적치적 살아갈 뿐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최소한의 안전을 누리며 사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램일것인데, 이놈의 나라에서는 잘사는 나라들만 모여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가질 수 있을까?를 상의하기 위해 그 바쁘시고 대단한 위세의 양반들이 모여있단다.

 

G20이 개최되는 나라에서 아직도 노동자가 분신자살을 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그놈의 쥐이십인지 뭐 홍보하느라 그리 난리를 치면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어야만 했던 그 참담한 뉴스는 단신정도로 취급해 버리는 이 냉혹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여전히 우리는 그 정글안에 살고 있다.

진창인지도 모를 채 너무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벗어나고자 하는 별 몸부림조차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쯤이나 이 진창의 정글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l****h 2010.1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현재는 과연 얼마나 진보했는가?
"현재는 과연 얼마나 진보했는가?" 내용보기
리투아니아에서 신세계로의 이주를 꿈꾸며 유르기스 일가족은 미국 시카고에 도착한다. 그들을 반긴 것은 지독한 냄새와 연기로 둘러싸인 가축수용장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육가공 업체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만행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이 소설에서는 리얼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공통의 감정은 구토와 역겨움일 것이다.
"현재는 과연 얼마나 진보했는가?" 내용보기

리투아니아에서 신세계로의 이주를 꿈꾸며 유르기스 일가족은 미국 시카고에 도착한다.

그들을 반긴 것은 지독한 냄새와 연기로 둘러싸인 가축수용장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육가공 업체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만행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이 소설에서는 리얼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공통의 감정은 구토와 역겨움일 것이다.

'정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제인구달의 '희망의 밥상'이라는 책에서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육가공 업체의 적나라한 비리를 인용하며 육류 섭취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함께 채식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미국의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을 탄생시키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설립을 촉발시킨 책....

도대체 어떤 책일까 굉장히 궁금했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힘 있는 자가 약한자를 포식하여 제 배를 살찌우는 정글과 다를 바 없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미숙한 자본주의에 의해 여러가지 발생하는 부정적 병폐로 수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전개하며 결국 그들에게 사회주의 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고 또 희망이라는 결론을 낸다.

사실 옮긴이도 설명하지만 사회주의가 그들을 구원해 줄 하나의 희망으로 표현된 것은 작위적은 부분이 없잖아 있어 초판에서는 그 부분을(29장~31장) 생략해 출간했다고 한다.

업튼 싱클레어는 실제로 사회주의를 자신의 이상적 사회로 생각하고 실제로 정치에 뛰어들어 그러한 이상향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책의 출간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그 썩어빠진 부패를 알게되고 그로 인해 여러가지 긍적정 효과를 유발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촉발로 과도기적 자본주의의 여러 부분들을 개선해 나가면서 발전하게 될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900년 전후의 참혹했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시대상과 투영하며 과연 현재는 얼만큼 진보했는가? 아니면 변화없이 답보하고 있는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t******2 2012.08.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혐오스럽고 역겨운 자본의 모습 [정글]
"혐오스럽고 역겨운 자본의 모습 [정글]" 내용보기
'생활고에 세상 등진 여성 간신히 목숨 구해(청주)',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출청소년 편의점 상습 강,절도(서울)', '고문 후유증에 생활고로 518 유공자 자살 잇달아(광주)', '생활고에 2층 난간에 목 매달아 자살(개봉동)', '생활고 비관 70대 할머니 자살(대구)', '생활고 비관 자신의 집에 방화한 40대(거제)', '보육원 퇴소 10대들 생활고 압박 강도(광주)'...    3월 22일 다음 포
"혐오스럽고 역겨운 자본의 모습 [정글]" 내용보기
'생활고에 세상 등진 여성 간신히 목숨 구해(청주)',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출청소년 편의점 상습 강,절도(서울)', '고문 후유증에 생활고로 518 유공자 자살 잇달아(광주)', '생활고에 2층 난간에 목 매달아 자살(개봉동)', '생활고 비관 70대 할머니 자살(대구)', '생활고 비관 자신의 집에 방화한 40대(거제)', '보육원 퇴소 10대들 생활고 압박 강도(광주)'... 
 
3월 22일 다음 포털 사이트에서 '생활고'란 단어를 입력한 후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온 기사들이다. 청소년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사건사고와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월 20일 통계청의 우리나라 상대빈곤율(가처분소득 기준) 발표에서 지난 2007년 14.8%, 2008년 15.0%, 2009년 15.2%로 높아지고 있는 수치가 사회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상대빈곤율이란 소득이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수준별로 나란히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의 50%를 밑도는 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절대빈곤율도 2007년 10.2%, 2008년 10.4%, 2009년 11.1% 등으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한겨레 기사 2011-2-20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464290.html)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어디일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미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보다 더 잘 살까? 미국이 제3세계에 자신들의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는 자유, 평등, 기회는 얼마나 잘 보장되어 있을까? 20세기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에게 미국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서 자랑하고 전파한 자본주의, 자유시장의 모습을 이 책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미국을 철저하게 따르는 중이다.
 
이 책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리투아니아 이민자들이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장악한 시카고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근로조건, 거주상황 등으로 인해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곳은 '정글'이었다.
 
1900년대 초 '황제의 숲'으로 알려진 리투아니아의 브렐로비치라는 산악지방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평화롭게 살던 20대 초반의 유르기스는 말 시장에서 처음 본, 아름다움 미소를 지닌 오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나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된 유르게스는 미국이 리투아니아와 달리 자유, 평등, 기회의 땅이라는 소문을 듣고 부푼 꿈을 안고 모든 재산을 처분한 다음 오나, 그리고 오나의 가족들(모두 12명)을 데리고 미국 시카고에 도착한다. 시카고까지 오게된 동안 재산 대부분을 지출하였고 시카고에 자신들이 편하게 거주할 마땅한 집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카고에서 처음 본 거대한 쇠고기 공장과 가축 수용장을 둘러보면서 유르기스는 "끔찍해라. 내가 돼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네."라고 속삭인다. 
 
유르기스와 일행들이 꾼 꿈이 헛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며칠도 걸리지 않았고 그들은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위하여 직장을 구해야 했으나 당시 시카고는 유르기스 일행과 같은 이민자들과 실업자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취업은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유르기스와 어른 몇 명은 지옥같은 공장에서 장시간 일해야만 했다. 추위, 악취, 먼지, 피, 기름, 땀이 범벅된 공장 안에서는 쉴 틈도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유르기스는 오나와 결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들은 한 때 무한경쟁 속에서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도 장만하고 돈도 모으는 등 희망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가들과 그 하수인들이 쳐놓은 이중, 삼중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처음 강철같은 체력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유르기스는 오래지 않아 집도 빼앗기고 체력과 정신이 고갈되고 소중한 가족들을 하나씩 쓰러져갔다. 유르기스가 시카고의 구조적인 현실을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빼앗긴 후였다. 고통과 절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방황하고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다가 유르기스는 사회주의자들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이 책은 출간된 이후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당시 대통령이던 루스벨트의 조사와 후속조치를 통해 식품안전에 관한 법률,제도와 식품의약품안전청(FDA)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책을 발간했던 더 중요한 이유, 즉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관심이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변해버린 결과로 인해 허탈감에 빠져야 했다.
 
<정글> 속의 이야기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로 끝난 것일까? 책의 말미에 소설가 방현석이 '작품해설'에 쓴 것처럼 "시간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이 책이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존 로빈슨의 <음식혁명>에 다시 거론된 것은 아직도 자본가와 쇠고기 산업이라는 악마가 지구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본, 자본가들의 추악함과 역겨움은 여전하다. 그리고 미국의 추악한 쇠고기 산업은 지난 2008년 한국에서도 '광우병 파동'을 일으켰고 다행이도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육식의 공포와 쇠고기 산업의 폐해를 알게되었다.
 
<정글>은 광우병 공포와 쇠고기 산업의 추악함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에도 여전히 열악한 취업기회와 근로조건, 물가상승과 불안한 보금자리, 자본주의적 욕망과 무한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IMF 사태 이후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심화되면서 빈곤층이 늘어남과 동시에사회적으로 희망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가는지, 몰아 가는지 <정글>을 통해 냉정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난 다음에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2011년 3월 24일 ]
c****n 2011.05.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국판 난쏘공, 비단 1세기 전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미국판 난쏘공, 비단 1세기 전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내용보기
- 자본주의의 혐오스러운 맨얼굴을 들여다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지난 해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서적 23선'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이 건전하지 못하고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不穩) 이유로 장병들에게 해당 도서 23선을 금기시킨 것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는
"미국판 난쏘공, 비단 1세기 전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내용보기

- 자본주의의 혐오스러운 맨얼굴을 들여다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지난 해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서적 23선'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이 건전하지 못하고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不穩) 이유로 장병들에게 해당 도서 23선을 금기시킨 것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의 마음이 행여나 사악한(?) 도서로 인해 싱숭생숭(?)해질까봐 국방부에서 그렇듯 자상한 배려를 하였나 보다고…… 지금은 그저 웃어 넘기고 있지만 막상 그때에는 발끈했었다. "그게 말이 되? 국방부 장관은 헌법도 몰라? 응? 헌법 21조에서 분명히 명시하고 있구만.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면전에 장관이 서 있다면 한 대 갈겨주고 싶었을 정도로 화가 나 씩씩댔었다. 그런 나를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인터넷 서점들이었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 서적 23선' 이라는 제목으로 책들을 팔아대는데 그 책들은 모두 베스트 셀러에 오르면서 불티나게 팔린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웃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정말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었다. 하하.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 책을 아마 국방부 장관은 읽지 않은 듯 싶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 혹여 장관님이 이 글을 보시게 되더라도 노여워하지는 마시기를) 아마 읽었다면 불온 서적 23선 속에 이 책을 끼워 24선으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니깐.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뜨겁게 열리던 지난 해, 비록 한 세기 전에 쓰여진 책이긴 하지만 오늘 날의 도축장 공정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도축장과 소세지 공장의 그 더러운 실태를 낱낱이 폭로하는 이 책을 장관께서 보셨더라면, 분명 이 책은 불온 서적으로 선정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화장한 얼굴보다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 아름다운 여성을 더 예쁘다 이야기하는데, 불행히도 자본주의의 맨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겉모습은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색을 써서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반대로 추악하고 더럽고 구토가 날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작가 업튼 싱클레어는 그의 저서 <정글>에서 자본의 욕망이 얼마나 무섭고 야만스러운 것인지를 아주 구체적이고 꼼꼼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끌어내리거나 죽이고 상처를 입혀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 자본주의의 실체는 정글 속에 굶주린 거대한 맹수와도 같았다. 자본의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욕망만이 살아숨쉬는 정글 속에 내던져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마치 다리 없이 태어난 사슴이나 날개가 부러진 새들과 같았다. 아무런 힘이 없었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어떠한 권리도 갖지 못하면서 의무만 잔뜩 지고 있는…… 그들은 차라리 노예였다. 언제 해고가 찾아올지 몰라 추운 겨울 공장 안에서 자던 아이는 바닥을 기어다니던 쥐에 뜯겨 다음 날 아침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고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도축장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일을 하던 건장한 남자들이 부상을 당해 손이나 다리를 쓸 수 없게 되버리면 보상은 하나도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쫓겨났다. 감독관에게 오랜 기간 추행을 당한 여성 노동자는 해고가 두려워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늘 실업난에 허덕였고 일할 사람은 많았다. 기계 부속품이 마땅치 않으면 빼버리고 다른 것으로 교체하면 되듯이 그들도 그러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의 작은 톱니에 불과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 세기 전에 쓰여진 이 책이 꼭 그때의 이야기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번째는 도축장 공정의 위생상태가 그때보다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고(일찍이 100년 전에 법까지 만들면서 식품 안전에 신경 썼다는 미국에서 왜 아직도 광우병 소가 발생하고 O157 병균이 나오는 것인가) 두번째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이 그렇듯 위험하고 야만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숭상하고 떠받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감정도, 심장도 없이 자본의 욕망만을 따르는 자들이 있는 한 <정글>은 100년 전의 한물 지나간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이 땅 위 어느 곳이나 정글이 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매서운 눈 속에 노출된 연약한 노루, 사슴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부자 아빠'가 좋은 아빠이고 10억을 모아야만 성공하는 사회. 꿈과 비전을 키워야 할 20대에 재테크에 미치라고 소리치는 사회……. 언제부턴가 가장 좋은 덕담은 건강하세요도 아니고 행복하세요도 아닌, '부자되세요'가 되어버렸다. 이런 사회에서 돈이 없는 자는 더욱 더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위치는 물론이거니와 그 인권까지도……. 우리는 지금 소설과 다를 게 없는 정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c*********7 2009.11.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본주의라는 괴물
"자본주의라는 괴물" 내용보기
한 노동자의 결혼식이 열린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즐기는 피로연이 끝나면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에 대한 기쁨보다 피로연에 들어간 비용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그것도 낮선 땅에서 외로운 삶을 택한 이주자들. 이주노동자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까?   ‘유르기스’는 젊고 힘 있는 청년이었다. 패기가 있었고 주어진
"자본주의라는 괴물" 내용보기

 

한 노동자의 결혼식이 열린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즐기는 피로연이 끝나면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에 대한 기쁨보다 피로연에 들어간 비용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그것도 낮선 땅에서 외로운 삶을 택한 이주자들. 이주노동자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까?

 

‘유르기스’는 젊고 힘 있는 청년이었다. 패기가 있었고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만사에 자신만만했고 어떤 어려움도 뚝심있게 헤쳐나갈 용기도 가지고 있었다. 결혼한 처와 태어난 자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돈을 벌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빛은 늘어나고 집세를 값느라 굶는일이 늘어났다.

 

그가 어렵사리 들어가게 된 곳은 도축가공공장이었다. 먹는 ‘고기’를 생산하는 곳. 소나 돼지를 잡아서 자르고 다듬는 과정과 피를 빼고 창자를 꺼내어 씻는 과정, 큰 도막을 잘게 자르는 과정, 뼈를 발라내는 일, 비곗살을 따로 모으는 일, 남는 찌꺼기 살들을 모으는 일, 포장하는 일등이 그곳의 일이다.

 

부패가 가능한 식품을 다루는 곳은 위생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위생을 위해선 ‘청소’라는 공정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구와 설비, 그리고 노동자의 의복과 청결을 위한 수세 시설등은 고스란히 공장운영자의 투자비용으로 추가되기 때문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장주의 선택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살이 많은 곳. 쥐와 파리, 바퀴가 극성이다. 자연스럽게 그것들의 사체가 가공육류에 섞이기도 한다.

 

도시전체에 냄새가 흐른다. 냄새는 여간해서 빠지지 않으며 쌓이고, 쌓인다. 냄새의 근원지는 공장이다. 도살장으로 시작해 몸통을 절단하고 몰을 따는 곳에는 피가 고여서 썩어가고 벽에 튀어 있는 살점들과 핏물이 말라붙어서 검게 딱지를 이루고 있는 곳은 처음인 누구나 토악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매일 일하는 이들은 냄새에 익숙해진다. 다만 세균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것이란 병에 익숙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유르기스와 수 백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그런 곳에서 일한다. 고기를 자르고 또 자르고 또 자르는 일. 공정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생산량이 줄기 때문에 공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그를 위해 힘센 젊은이들이 자르고 자르다가 자신이나 동료의 신체를 자르기도 한다. 반복되는 급한 근육의 사용과 환기도 안되는 부패와 오염의 공간에서의 작업이 주는 병에 걸리거나 아프면 바로 잘린다. 공장입구에 줄을 서고 기다리는 수 많은 미취업이주자들에게 자신의 자리가 돌아가기에 아파도 아플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노동의 덫’에 빠지고 만다.

 

일의 대가는 말도 못하게 형편없다. 집세를 내기에도 식료품을 사기에도 항상 부족하다.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밥과 거주공간을 위한 돈. 그 돈조차 벌기 힘들다. 갓난아기조차 굶기 일쑤고 걸음마를 하는 나이엔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 동냥을 하든 신문을 팔던 알아서 먹고 사는 법을 배운다. 유르기스의 아내 ‘오나’는 작업반장에게 몸을 팔아서 통조림통을 칠하는 직장 일을 유지하고 유일한 기쁨인 자식은 포장도 해주지 않는 집앞 도로의 진창에 빠져서 목숨을 잃는다. 위험에 노출된 작업자들은 매일 다치고, 병들고, 잘리고, 죽는다. 마치 기계의 부속처럼 ‘소비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자본주의가 적절히 통제되지 않을 때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집안식구들 모두 어디든 무슨 일이든 벌어도 결국 얻어오는 것은 병, 상처, 소외와 자신의 무능함을 책망하게 되는 절망의 아픔뿐이었다. 아이를 잃고, 직장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은 불공정계약에 속아서 계약한 집도 잃게 된다. 방황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곳엔 아내마저 돈이 없어 먹지 못한데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평등과 기회의 땅으로 알고 꿈을 위해서 헌신하던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자신들이 억압과 부정, 기회의 불평등이 주는 악몽과 고난의 진창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빼려고 해도 빠지지 않는 늪에 빠진 듯 서서히 잠기고 허우적댈수록 더 빠져드는 세계.

 

노동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의 노동자의 모습을 지나친 느낌마저 들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내는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은 발간 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착취’에 대한 묘사다. 자본이 인간성을 잠식하고 마치 노예처럼 부릴 수 있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섬뜩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이 ‘고기’에 대한 비위생적인 생산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을 읽고 미국에서 FDA가 생기게 되고 관련법과 육류 검역법을 낳았다. 너무 ‘식품위생’을 강조하다가 중요한 가치를 놓칠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노동에 관한 가치와 자본주의가 그 가치를 압살하는 방식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작가의 의도는(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사회속의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 자본주의 정치와 경제구조의 국가가 가진 문제점을 한 인간의 생존과 투쟁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다.

 

여전히 이물질과 비위생적인 식품류는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 특히 기회를 얻고자 이당에 꿈을 가지고 오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긴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그놈’들 까지 챙길 여유가 있겠는가.

YES마니아 : 골드 s******e 2009.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영미] 정글
"[소설/영미] 정글" 내용보기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사회주의를 다룬 의식 소설이라든가, 이 책과 같은 폭로소설 등을 거의 읽지 않았다. 내 흥미를 끌만한 책을 골라 읽었고,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가 마주치지 않는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이 책도 그렇게 늘 있었다. 1906년 책이니 벌써 100년을 독자들과 마주한 채로 말이다.
"[소설/영미] 정글" 내용보기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사회주의를 다룬 의식 소설이라든가, 이 책과 같은 폭로소설 등을 거의 읽지 않았다. 내 흥미를 끌만한 책을 골라 읽었고,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가 마주치지 않는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이 책도 그렇게 늘 있었다. 1906년 책이니 벌써 100년을 독자들과 마주한 채로 말이다.

 

  이 책은 쉽지 않다. 물론 읽기에 쉽지 않다는 부분도 있지만 내용 자체에서 주는 거부감도 상당하다.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을 내용들을 끄집어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 불편한 진실이다.

  <정글>은 20세기 초의 미국 도살장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열악한 환경과 비위생적인 음식가공 등을 다루고 있다. 100년 전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이 이야기가 읽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 탓일 것이다. 그 전에도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던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했고, 현재에도 이주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썩어버린 소로 소시지를 만드는 것처럼 현재에도 화학약품으로 계란을 만들고 벽돌을 갈아 고추가루를 만드는, 음식을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만드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을 얻기 위해 고뇌하는 실업의 문제도 여전하다. 사회의 병폐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이다.

  때문에 <정글>을 읽는 내내 편치 않았다. 비록 많은 부분이 20세기 초와는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니 어느 부분에서는 더욱 나빠진 것도 있다는 점이 거슬렸다. 100여년간 우리는 진보했다기 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인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책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직시하는 일.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s*****1 2011.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내용보기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것이 밀림의 맹수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이빨과 발톱은 정정당당하기나 하지 인간처럼 비열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권력으로 여직원을 성 노예로 만들고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을 수록에 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정글>의 배경인 20세기 초는 시민의식이라든지 노동조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내용보기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것이 밀림의 맹수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이빨과 발톱은 정정당당하기나 하지 인간처럼 비열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권력으로 여직원을 성 노예로 만들고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을 수록에 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정글>의 배경인 20세기 초는 시민의식이라든지 노동조건, 사회 시스템이 미숙해서 소설에 나오는 일들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풍요해졌다고 하는 현재에도 시간만 흘렀지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신자유주의니, 경제를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해야 하느니 하면서 만들어내고는 비정규직은 시카고의 공장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공장 앞에서 일자리를 구걸하는 일용직 노동자들과 뭐가 다를까요?

사회구성원이면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할 안전망도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가정이 붕괴되는 한국사회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낍니다.

책은 꽤 두껍습니다.

내용 또한 우울합니다.

그렇지만, 제 아들이 어느 정도 책읽기가 가능하면 반드시(강제적으로라도) 읽게 할 책입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서는 이 책을 아들이 꼭 읽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도문 중엔 '세상 부패에 물들지 않게 하시며, 온갖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들이 어떤 인생을 살지 확신을 할 수 없지만 <정글>에 나오는 탐욕에 미친 인간이기보다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탐욕은 돈 많은 자본가도 몸이 재산인 노동자도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하는 괴물인듯싶습니다.

그 악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인간이 인간을 배려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일까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w****d 2009.05.28.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