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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숨겨진 메시지(2006)> - 브라이언 맥클라렌 저 1.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잘 이해시키기 위함이셨고, 하나는 듣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기 위함이셨다. "예수님이 비밀스럽고 간접적이고 미묘한 가르침을 베푸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의 메시지가 단순히 정보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보다 중요한 것, 즉 듣는 자의 영적 변화를 촉구한다. 비유는 가르치는 자와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마음을 일깨워준다. 듣는 자를 유도하여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비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듣는 자를 전문가나 학자나 박사가 아닌 어린아이로 만든다." 2. 저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여러가지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 비밀은 비유로 설명해서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성격 자체가 워낙 비밀 스럽기 때문이다. 숨겨져있기도 하지만 섞여져 있기도 하고, 화학적으로 결합되어있기도 하므로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그분은 왜 무장을 하거나 정치 세력을 결집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사셨을까? 왜 희생양이나 원수나 증오의 대상조차 설정하지 않으셨을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거듭 밝히신 대로 하나님 나라가 폭력이나 피 흘림, 또는 증오나 보복을 통해 발전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 속한 또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반죽에 들어 있는 누룩이나 땅속에 심겨 있는 씨앗처럼 표면 아래에서 천천히, 은밀하게 발전한다. 믿음과 함께 자라난다. 사람들이 믿을 때 그 나라는 현실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화해와 용서와 사랑을 통해 확장된다. 사람들이 낯선 이와 원수를 사랑할 때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영토를 확보한다." 3.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비밀은 하나님과의 상호 관계성에 그 핵심이 있다. 서양의 환원주의적이고 기계론적 이해는 여기에서 벽에 부딛힌다.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이 겸손하실 수 있는 이유는...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들이고, 그 우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존재로부터 나오는 겸손이야말로 참 겸손이다. "우주는 하나님과 상호 관계를 맺는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라는 예수님의 초청은 유기적인 우주를 받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려면 서구적인 현대 사회의 자연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이며 기계론적인 우주관을 뛰어넘어 관계에 바탕을 둔 좀 더 폭넓은 우주관을 받아들여야 한다. … 표적과 기사는 유기적인 우주관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표적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현실을 보여주는 증거라오. 또한 그것은 기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오. 표적과 기사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인간의 모든 잣대를 허물어버린다오.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것이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오." "나는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그런 의미로 받아 들인다.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증거이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무언의 메시지다. 아울러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졌다는 사실, 즉 하나님 나라(그 나라의 평화와 능력과 자유와 치유)가 지금 여기에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4. 예수님의 사역, 특히 마귀의 축출은 개인적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인 악의 현현을 위함이기도 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개인을 사로잡던 사탄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와 세상을 사로잡고 있던 악을 드러내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음으로까지 이끌고 갈 정도로 모든 것을 드러내게 만드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귀신 축출은 악한 영들이 세상에서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을 띤다. 귀신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질병과 정신질환을 유발하듯이 집단적인 차원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악한 영들은 개인을 압제하고 마비시키고 발작하게 만드는 것처럼 집단적인 차원에서도 똑같은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온 나라와 종교와 사회 단체를 억압하고 통제하고 병들게 만든다." "예수님은 숨은 악을 드러내심으로써 사악한 ‘영들’이 정부(로마 제국, 헤롯의 꼭두각시 정권), 정치적 파당(열심당, 헤롯당), 종교적 파당(바리새인, 사두개인), 종교적 관료 체제(대제사장), 전문 직업(서기관), 가정(“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 23:9, 8:22))과 같이 가장 고귀한 인간의 제도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셨다." 5. 그러나 이 세상의 악은 예수님의 복음의 비밀스러움을 더욱 가리려고 노력했고, 왜곡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했다. 계속해서 퍼져나가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세속적인 것으로 뒤집어 엎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빼앗아갔다. "하나님 나라가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기력함이다. 하나님 나라는 죽음으로써 살고 실패함으로써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기독교는 그동안 예수님의 비밀 메시지를 경시하고 곡해하고 심지어는 잊기까지 하는 잘못을 범해왔다.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하기보다 세상을 저버리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평화를 이루고 다른 쪽 뺨을 돌려 대며 울타리를 뛰어넘어 한때 ‘이방인’으로 불렸던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데도 오히려 전쟁을 지지하고 인종 차별을 영속화하고 정의롭지 못한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6.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속량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성금 다가갈 수 있게 만드신 우주적인 사건이다. 하나님 나라와 이 세속적 나라는 근본적으로 지향점이 다르다. 그러나 그 '나라'라는 속성으로 인해 우리는 자주 세상의 권력과 비교하고 비슷하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 나라는 물질과 정욕과 권력이라는 폭군에 맞서 싸우는 혁명적인 반(反) 문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 가지 영적 훈련을 통해 보이지 않는 폭군에게 저항한다. 첫째,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함으로써 물질과 탐욕의 권좌를 전복한다. 둘째, 기도를 통해 권력 지향적인 교만한 본성에 대항하고 보복과 복수가 아닌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다. 마지막으로 금식을 통해 육체적인 만족을 원하는 내적 충동을 극복함으로써 성욕을 비롯한 육체적인 욕망의 지배로부터 벗어난다. 이들 영적 훈련은 모두 은밀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형식과 외모만을 중요시하는 위선에 치우치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평화(샬롬)는 분쟁의 종식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균형과 통합을 이룬 ‘충만한 생명’을 가져다 준다. 예수님은 권력에 대해 여러 차례 혁명적인 발언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종교, 가정, 교육, 정부에 존재하는 지배 구조를 와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셨다. 예수님에 따르면 진정한 위대함은 지배가 아닌 섬김에 있다." "4세기 초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런 흐름이 갑자기 바뀌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공인 종교로 부상하면서 박해받던 종교에서 자유로운 종교로, 인기 없는 종교에서 인기 있는 종교로 바뀌었다. 미지의 변방 종교가 국가 종교가 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바람에 기독교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말았다." 7. 하나님의 나라는 포용적이기도 하지만 배타적이기도 하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경향을 "목적 있는 포용성"이라고 적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합당한 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나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배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진하게 모두를 포용하는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제3의 길, 즉 ‘목적 있는 포용성’을 추구한다. 다시말해 함께 동참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해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환영하지만 공동의 목적을 거부하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는 말씀은 편협한 배타주의를 거부하라는 뜻이고,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라는 말씀은 순진한 포용주의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의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불러 모아 환영하고 포용하는 데 있다. 만일 하나님 나라가 그러한 목적을 거부하는 자들을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로 전락해 자멸할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