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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야의 여름』은, 프랑스 바스크의 작은 마을 살리를 배경으로 한 근면한 젊은 의사 몽장과 대단히 매력적인 여인 카티야와의 아픈 추억을 그린 회고록이다. 죽음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혀 참호 속 학살의 현장으로 뛰어든 몽장의 첫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이라 이름 부르기 모호한 한 가족의 서글픈 진실이다.
일란성 쌍둥이 남동생 '폴'의 사고로 몽장을 찾아온 '카티야'는,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해부학이라는 의학적 지식과 더불어 프로이트를 공부했고 외모에서 풍기는 부분이나 돈키호테적 행동은 상당히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남매는 일찌감치 어머니를 여의었고 중세 시골 생활과 풍습을 연구하는 아버지와 함께 최근에 파리에서 이곳 에체베리아라는 허름한 대저택으로 이사한 트레빌 家이었다. 몽장은 카티야의 집을 자주 방문했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나 트레빌 가의 흉흉한 소문과 더불어, 카티야와의 만남을 적극 반대하는 폴의 과잉반응과 집착으로 몽장은 자주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마을 축제를 마지막으로 또다른 곳으로 떠나려는 트레빌 가문의 끔찍하고도 슬픈 비밀을 알게 되는데..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채 은둔자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비극적인 삶이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너무도 깊어 죽은 어머니 이름을 딴 세례명 '오르탕스'를 버리고 스스로 '카티야'가 되어버린 여인. 해부학과 프로이트의
저서들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이끌어냈고 이중적 의미와 두 개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들에 집착하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인격이 되어버렸다. 영원히
열다섯 살 반의 모습으로 정원을 떠다니는 영혼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카티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소설의 장르를 로맨스 스릴러라 특징할 수
있을까? 장르소설이기보다 완성된 문학 작품을 본듯하다. 마흔다섯 살의 몽장은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1914년의 여름날을 눈부신 향수와
통증으로 동반된다. 아름다운 바스크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눈부신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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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때는 내 삶에 있어서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불변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렇기에 어떻게해서든 놓치기 싫었던 사랑이었죠, 쉽게 시작된 사랑이었지만 몇번의 어려움을 겪고 이제 제대로된 사랑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영장이 날아듭니다.. 요즘은 어떻게 군대를 가는 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영장에 주어진 시간은 한달 남짓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세상이 무너져내립디다.. 어떻게 해야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혼란의 시간을 며칠 보내고 주변에선 어꺠를 토닥토닥,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데 뭘, 어쩌구저쩌구(그걸 위로라고 해..)하면서 눈물을 눈물을 그녀와 함께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힘들게 군 입대를 하곤 한동안 그녀와의 연락은 꾸준히 이어졌죠, 그러나 인생사 군대간 남자의 90%가 경험하는 실연의 아픔을 겪고 충격에 휩싸여 왜왜왜만 되뇌이며 증오를 하게 되더군요, 결국 실연의 이유를 알지 못한 체 헤어져버렸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시절의 아련한 사랑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유일한 사랑인 줄 알았던 아픈 기억은 망각이라는 시간의 희석제로 인해 사라지고 어느순간 영원한 사랑이 나타나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거죠, 2. 사랑에 있어서는 남자는 좀 바보죠, 잘 모릅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욕심이 앞서는 존재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곤하지만 늘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면서 주위를 둘러볼 생각을 잘 하지않죠, 그래서 여자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오롯이 남자만의 사랑만 받기에는 여자들은 여러가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데 남자들은 자신만 믿어라, 다 괜찮다라는 식으로 몰아부칩니다.. 여자들은 고맙고 행복하고 사랑만 따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생각할게 너무 많은거죠, 그럴때 남자들이 그런 여자의 입장을 잘챙겨서 보듬고 이해해주면 좋은데 늘 그렇듯 그때의 저처럼 치기어른 젊은 남자애들은 자신의 생각만 합니다.. 아마 지레짐작건데 그녀 역시 그런 입장에서 떠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는 가슴아픈 소설 한편 여기 있습니다.. "카티야의 여름"은 필명 트리베니언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러 장르를 섭렵하며 베스트셀러를 만드신 작가님이신데 전작들의 면면이 대단합니다.. "아이거빙벽", "메인", "시부미"등은 액션과 하드보일드와 스파이스릴러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 "카티야의 여름"은 로맨스 심리스릴러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고 반전 또한 대단합니다.. 3.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장 마르크 몽장은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인 살리에서 그로 박사라는 인물의 밑에서 보조 의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지 몽장은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을 한 후 대전이 끝나고 수십년이 흐른 후에 다시금 살리로 기억을 되살리며 돌아오죠, 그리고 그시절 마지막 여름이 기억을 꺼냅니다.. 그로 박사의 밑에서 한가롭게 의사생활을 하던 몽장은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한 여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단히 자유로운 감성이 가득한 카티야 트레빌은 자신의 동생이 다쳐서 자신의 집으로 왕진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온거죠, 그녀와 함께 에체베리아의 저택으로 가면서 몽장은 그녀가 여러방면으로 아는게 많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녀의 집에서 마주한 남동생은 그녀의 또다른 쌍둥이였습니다.. 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대단히 시니컬한 비판적 시선을 가진 매력적이지만 밥맛인 남성이었죠, 그렇게 몽장은 카티야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폴은 그런 그들의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냥입니다.. 계속 그들의 관계를 간섭하며 거부감을 드러내곤 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몽장은 카티야에 대한 사랑이 깊어만갑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조금씩 밝혀지는 트레빌가의 비밀이 몽장을 당혹스럽게 하는데,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진행이 될까요, 트레빌가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4. 작가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저 아니라도 많은 독자분들께서 특이한 그의 필명과 이력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싶으니 말이죠,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메인"을 아주 멋진 감성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말씀드린대로 작가는 여러 장르를 대단히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내공이 강한 분이십니다.. 한분야에서도 쉽지않은 메인스트림의 베스트셀러의 정점을 트레베니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섭렵하신거죠, 그리고 이번에는 로맨스심리스릴러같은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티야의 여름"은 초반과 중반에 걸쳐 일반 고전로맨스소설의 양상을 띄며 대단히 아름다운 바스크지방의 건조한 일상과 배경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문장이나 내용도 고전미가 넘치는 20세기 초반의 시대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미지와 함께 상당히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심리적 복선과 암시는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변화되기 시작하죠, 제목처럼 카티야라는 여인의 모습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상당히 입체적입니다.. 5. 사실 이란성 쌍둥이 아이를 둔 입장의 부모로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카티야와 폴의 쌍둥이적 발상은 상당부분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어색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중 하나가 성별이 다른 쌍둥이는 일란성이 될 수 없다라는 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는 일종의 일란성적 의도를 깔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허구적 발상에 근거한 이야기로 판단하셔도 무방합니다.. 여하튼 얘들은 쌍둥이입니다.. 제 아이들처럼 남녀 쌍둥이입죠, 엄마 배속에서 이넘들이 얼마나 많은 텔레파시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문득 자세나 행동적인 측면에 통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쌍둥이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인 둘만의 의지적 측면이 크다라는 부분이죠, 둘에게 어떤 위기적 상황이 닥치면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보듬아주는 편입니다.. 또한 각자의 내면에 대해 어떻게보면 가장 잘 아는 절친이기도 하죠, "카티야의 여름"에서도 이런 일면은 소설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카티야의 행동과 폴의 행동에서 우린 이들의 관계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6. 이 소설은 배경적인 측면이나 이야기의 구성이 확장되지 않고 아주 소소한 일상과 주변의 상황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과 과거의 추억만 드러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머리싸매고 고심하면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몽장이라는 시점의 화자의 이야기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죠, 그가 보여주는 아련한 사랑의 감정선을 따라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그리고 잔혹한 삶의 이면의 고통에 대한 아픔과 자신으로 인해 벌어지는 운명에 마음을 주기만 하면 됩니다.. 가슴아프게 폴의 행동을 이해하고 마음아프게 카티야의 심리를 이해하고 눈물나게 트레빌박사의 정신에 대해 공감하면 됩니다.. 단순하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로맨틱심리스릴러라고 보시면 될 듯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의 묘미도 함께, 7. 작가는 프랑스지역의 바스크지방의 내력과 장면적 묘사를 자연스럽게 내포한 문장들을 상당히 많이 드러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작품속 프랑스의 이국적 느낌을 아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바스크지방의 축제를 묘사하는 후반부의 극적인 묘사 방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축제의 열정을 느끼게 해주기게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것도 카티야라는 여인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이 되죠, 흔히 말하는 영화적 상상의 이미지속에 카티야는 정말 매력적인 여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곤 소설은 뒤이어서 벌어지는 일들이 극적으로 변화되어버리죠, 트리베니언은 분명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을겁니다.. 단순한 대중로맨스스릴러소설이라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고급스러운 문장의 묘사와 고전적 로맨스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아주 매력적인 심리적 스릴러의 반전까지 정리를 해본다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트리베니언의 문장과 그의 필명에 대해 현재까지도 존경을 표하는 지 알 수 있는 듯 합니다.. 이 작품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 사랑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는 그 어느 세상사 이야기보다 무게감이 넘쳐나는군요, 아련한 사랑의 비애를 여러분들도 한번 경험해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짜안해,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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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베니언, 최필원 역, [카티야의 여름], 펄스, 2016. Trevanian, [THE SUMMER OF KATYA], 1983. 대중의 시선은... 드라마는 익숙한 것을, 영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유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의 차이인데, 굳이 시간하고 돈을 들여 찾아가 익숙한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심리이다. 천편일률적인 TV 애정극이 꾸준히 인기인 것을 보면 그럴듯한 얘기인듯싶다. 그렇다면 소설은...? 개인적인 견해로 예전의 글이 연극의 느낌이라면, 최근에는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이다. 어떤 소설가는 머릿속의 영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는데, 익숙함과 예측 불가함 사이의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 것 같다. 여름 별장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과 사고는 스릴러의 단골 소재이다. 특별히 영웅적이지 않더라도 나름의 매력을 지닌 주인공에게 낯선 여인이 다가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여기에 어떤 심리적인 변화가 주어진다면... 익숙하면서도, 또 빠져드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대전(大戰) 발발 직전의 마지막 여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꿈같았던 완벽한 날씨에 대해 한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는 새파란 하늘, 산들바람 부는 연보라빛 저녁, 새소리와 노란 햇살이 열어주는 아침. 이탈리아에서부터 스코틀랜드까지, 베를린에서부터 내 고향 바쓰 피레네 산맥까지, 유럽 전역이 한동안 그런 이례적인 화사한 날씨를 누렸다.(p.4)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여름, 1914년 8월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했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의 고요한 바다처럼, 아니 포르테로 강한 소리를 내지르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는 오케스트라처럼, 대자연은 고지를 사이에 두고 진창에서 벌이는 4년간의 끔찍한 전쟁을 화창함으로 예견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아름답고 우아하고 쓸쓸하다. 트리베니언은 로드니 윌리엄 휘태커의 필명이다. 1938년 살리 레방, 저자는 우리에게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돌아와 고향에서 의사로 살다가 24년 전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치열한 인생의 여정에서 뒤늦게 사반세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살리에서의 첫 여름을 기록하는데, 거기에는 카티야가 있다. 내가 카티야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아주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이곳 강변 공원의 한 고목 아래 앉아 노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명상을 가장한 백일몽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길게 자란 잔디를 헤치고 다가오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밀짚모자 밑에서 내 눈이 가늘어졌다. 백일몽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녀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황당한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당당한 걸음걸이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p.16) 장 마르크 몽장은 바스크 지방의 출신으로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잠시 파시의 정신병원에 몸담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이제는 살리에 있는 그로 박사의 여름 진료소에서 일한다. 같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쌍둥이 남동생을 치료해 달라고 찾아온 여인은 걸음걸이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한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할까? 그날 이후 둘은 아주 가까워지는데, 몽장은 치료를 핑계로 찾아가 카티야와 차를 마시고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애틋하고 낭만적이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얼굴의 모든 부분이 쏙 닮아 있었다. 도톰한 입술, 도드라진 이마와 광대뼈, 단단해 보이는 턱, 숱 많은 밤색 머리. 거의 판박이였지만 성별의 차이 때문인지 그 느낌은 매우 달랐다. 같은 이목구비였지만 그녀에게는 당당한 아름다움을, 그에게는 연약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주었다. 그녀는 우아했지만 그는 가식적으로 보였다. 박정한 비평가라면 그녀는 조금 지나치고, 그는 조금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을지도 몰랐다. 그 닮음 안의 차이는 그들의 눈을 통해 가장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길고 검은 속눈썹과 옅은 회색을 띠는 아몬드 모양의 눈, 모든 게 똑같았지만 묘하게도 정반대의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차갑고 불가해한 느낌만이 풍겨 나올 뿐이었다. 그녀의 눈은 빛을 흡수했고, 그의 눈은 반사시켰다. 그녀의 눈은 다리였고, 그의 눈은 장벽이었다.(p.26-27) "카티야? 캐서린을 러시아어로 한 거죠? 하지만 당신은 러시아인 같아 보이지 않아요." "러시아인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름도 캐서린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소녀의 섬세한 감정을 무시하고 내게 오르탕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너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카티야로 바꿔버렸죠." "이름을 바꿨다고요? 법적 절차를 밟았나요?" "아뇨,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걸요. 오르탕스라고 부르면 반응을 안 했어요. 카티야라고 부를 때까지 아무것도 안 했죠."(p.40) 카티야와 폴은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이다. 하지만 몽장의 눈에 비친 그들의 인상은 그의 감정과 함께 매우 상반되어 보이는데, 성별이 다른 것처럼 우아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며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데, 역경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냐마는... 폴은 몽장과 카티야의 친밀한 만남을 반대하고 나선다. 그녀 또한 뭔가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이고... 파리 사교계의 명망 있는 집안이 모든 걸 팽개치고 시골 마을로 내려오게 된 사연, 마을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쉽게 열리지 않는 연인의 마음, 방해자... 누구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맞아요." 그녀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폴의 주장을 믿어주는 척하면서 나도 거짓말을 해온 것이죠. 우리 세 식구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진실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p.241)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고 진실을 찾아갈수록... 상처는 드러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시작은 낭만적이고 대화는 재기발랄했지만, 결국 과거의 상흔은 발목을 잡는데... 하지만 프랑스를 배경으로 이처럼 우아한 스릴러가 또 있을까? 마지막 장면의 심리적 전이는 정말 강렬하고 압권이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고 해도... 한여름에 그곳에서 카티야를 만난다면, 남자라면 누구나 몽장하고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그것이 남자의 욕심이고 어리석음일지라도... 올해 만난 최고의 심리 스릴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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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처음 접하면서 가장 눈에 띄인 건 표지였다. 아름다운 여성이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뒷면에는 같은듯, 다른 사진이 있었다. 같은 여성의 사진인데 무언가가 조금 달랐다. 같은 여성이 같은 장소에 서 있었는데, 무언가 붉은 빛이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릴러들은 핵심적인 내용을 표지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기에, 표지의 디자인만 잘 살펴봐도 어느 정도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이 두 사진이 이야기하려는 책의 내용은 무엇일까?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의 위협 속에 있던 시기에 몽장이라는 중년의 의사가 살리라는 프랑스의 휴향도시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24년 전의 여름을 추억한다. 24년 전 1차 세계대전의 광기가 점점 프랑스와 유럽을 위협하고 있던 시기에, 자연은 닥쳐 올 전쟁과 학살에 대해 미리 보상이라도 하듯이 화창한 최고의 날씨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런 최고의 여름 날씨 속에서 몽장은 카티야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들의 만남은 벤치에 혼자 앉아 사색을 하던 몽장에게 카티야가 다가 오면서 시작된다. 카티야는 자신의 동생인 폴이 자전거에서 떨어져 팔이 다친것 같다며 그를 그녀의 집으로 데려간다. 도도하면서도 마치 세상을 초연한듯한 말과 행동을 하는 카티야, 만나자마자 시비를 거든듯한 말을 하다가도 금세 다정한 말을 하는 그녀의 동생 폴, 중세에 대한 연구에 집착해 지하 연구실에 있다가 식사 때만 나타나는 그들의 아버지 트레벨... 이 집에는 모두가 이상한 사람들만 있으며, 무언가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폴을 치료하면서 카티야와 그녀의 가족과 가까워진 몽장은 계속해서 카티야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는 사이에 둘은 어느새 친근하게 서로를 대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몽장에게 폴은 경고를 한다. 절대로 아버지 앞에서 카티야와 친근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 달라고, 특히 절대로 카티야에게 신체적인 접촉은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몽장과 카티야는 점점 친밀해지고, 급기야는 몽장은 카티야을 안고 키스를 한다. 그 순간 카티야 안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나타나고, 그녀의 가정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풀려진다. 이 소설은 중반까지는 거의 스릴러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문체로 몽장과 카티야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프랑스 시골마을의 풍경과 처음 사랑을 접하는 순진한 청년 몽장의 내면이 너무나 세밀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처음에는 과연 이 소설이 스릴러 소설이 맞는가? 그리고 이렇게 사랑이야기로 전개되면서 어떤 다른 사건이 전개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카티야의 말투나 트레벨 가문의 무언가 석연치 않는 행동들에서 저자는 이미 사건의 힌트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둘의 로맨스가 달콤하게 그려져서인지 읽는 순간에는 이런 힌트를 눈치채지 못했다. 몽장과 카티야의 러브 스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소설은 무언가 일어날듯한 암시를 계속해서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혹시 트레벨 가문이 흡혈귀나, 유령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사랑 이야기에서 반전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중반부터 점점 트레벨 가문의 비밀이 언급된다. 왜 폴이 그토록 주인공에게 카티야와의 신체적 접촉을 금지시켰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후반부부터 나타나는 공포스러운 반전은 거의 압권이었다. 카티야의 본 모습이 보여지는 순간, 저자가 앞에서 깔아놓았던 복선들이 모두다 연결이 되면서 소설이 완벽하게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소설의 결말이 너무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소설의 앞부분에서 몽장의 회상에서 어느 정도 비극적인 결말은 예상했지만, 그런 예상을 뛰어넘는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결국 소설 초반의 전쟁과 살육을 앞두고 선사했던 최고의 날씨가, 주인공의 삶에서도 비슷하게 적용이 되었다. 비극적인 결말을 앞두고 주인공에게 선사했던 아름다운 만남, 그 만남 뒤에 찾아오는 끔직한 비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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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이라고 해도 거기 살기에 좀 안 어울린다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향민들이 먹고 살 만한 기반을 이미 이루고 물질적으로 부족한 바도 없으면서 왜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걸까요?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은, 사람의 정신과 영혼, 육체를 구성해 온 요소 중 절대적인 부분이, 그가 성장한 고장의 자연적, 혹은 인문적 환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You are what you are nursed by." 번듯한 귀족 가문이 왜 인적도 드물고 문화 혜택도 덜 입을 만한 시골에 내려 와 사는지, 누구의 상식으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럴 때 그들을 맞는 것은 겉으로야 따뜻한 환대 뒤에 숨은, 근거가 있든 없든 마을 전체에 돌아다니는 불측하고 불쾌한 루머이기가 십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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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그녀가 나에게 걸어온다.
표지부터 심상치 않았던 "카티야의 여름".
의사인 그에게 어느 날 책 표지처럼 다가온 그녀 카티야.
다친 동생을 봐달라며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와 똑같이 생겼지만 뭔가 처음봤을때부터 그에게 불만 있어보이는 동생 "폴"과 어딘지 이상한 아버지까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친 동생을 치료해주러 그는 "카티야"의 집을 계속 방문했고, 그렇게 점점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녀가 좋아졌지만 동생 "폴"은 그에게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하면서 "카티야"와 그의 사이를 방해하는 듯 보였다.
단순한 방해라고 하기엔 아버지앞에서 그녀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둥, 그녀와 신체적 접촉을 하지 말라는 둥
알 수 없는 말만 가득했고,
그들 가족이 왜 갑자기 그 마을로 이사를 왔는지,
또 다시 왜 그렇게 급히 이사를 가려고 하는지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중반넘어서까지도 묘한 궁금증을 배경에 깔고 그와 "카티야", 동생 "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디테일하게 묘사되면서 진행되었다.
그와 "카티야"의 관계를 기준으로 둘러싼 "폴"의 말과 행동들이 계속해서 잔잔한 긴장감을 주어서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싶었다.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그냥 그렇게 헤어지는건가?'라고 생각했을무렵
이사오기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왜 "폴"이 그런 경고를 했는지 밝혀졌다.
비밀이 한개씩 풀어지면서 막판에 몰아치듯 밝혀지는 진실들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카티야"의 엄청난 행동과 분열은 정말 충격적이였다.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다시 태어나고 싶을 정도의 큰 충격이였겠지만
그 결과는 정말 참혹하고 안타까웠다.
다시 프랑스를 찾아온 그에게 "카티야"는 어떤 기억일까?
같은 듯, 다른 앞표지와 뒷표지의 카티야가 그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카티야의 여름"은 애달프고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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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어떤 장르로 구분지어야 할까요. 하드보일드한 스릴러를 즐겨 읽는 독자로서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초반부는 "음...? 이거 뭐지? 스릴러는 아닌데? 로맨스인가?" 싶었습니다. 마치 <제인에어>같은 고전문학을 읽는 느낌이었달까요. 소설의 배경이나 소설속에 흐르는 느낌도 무척이나 잔잔하고 아름답습니다. 1920년대 프랑스의 바스크지방을 주 무대로 전개한 이야기는 그 당시 그 지방 고유의 풍습이라던지, 지방색을 느낄수도 있어서 상당히 이국적이고 느낌이 새롭습니다. 트리베니언 작가는 정말 처음 접하는 작가입니다. 이름도 못들어 봤...그런데 어떻게 많은 분들이 이 작가님을 아시는지, 정말 고수님들이 많은것 같아 저는 부끄럽지만 또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알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바스크지방의 살리라는 작은 마을에 장 마르크 몽장이라는 젊은 의사가 그 여름, 카티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도 무척이나 낭만스럽고 로맨틱합니다. 어느날, 몽장에게 다가온 그녀 카티야. 자전거를 타고 여름날 소나기처럼 몽장에게로 와서 자신의 동생이 팔을 삐었다며 집으로 왕진을 가주기를 요청합니다. 여자의 몸으로 자전거를 탄다는 자체가 예사스럽지 않았던 그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때 카티야는 분명 평범한 여성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랑인줄도 모른채 그녀에게 빠져버린 몽장. 그렇게 그녀의 집으로 간 몽장은 그녀와 똑같이 생긴 동생 폴을 만납니다. 그리고 어쩐지 그녀의 집은 묘한 느낌이 납니다. 폴은 몽장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집안일에는 신경도 쓰지않고 서재에 틀어박혀 학문연구만 하는 그녀의 아버지. 그렇지만 몽장은 그녀의 집을 오가며 그녀와 가까워지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호감을 사게됩니다. 그렇지만 폴은 여전히 그에게 냉담했고, 트레빌가에서 느껴지는 비밀스럽고 의문스러운 느낌은 커져만 갑니다. 전반부의 낭만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는 몽장이 폴에게서 조금이나마 듣게된 트레빌가의 비밀을 알게된 시점부터 자연스럽게 서스펜스소설로서의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장 쫄깃한 긴박한 스릴은 없었지만 뭔가 뒤에 밝혀질 진실이 도대체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음에 궁금증은 더해갔고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이 묘한 느낌이란! 그 와중에도 결말부분에 이르러 나타나게될 반전의 주인공으로부터는 여전히 그 낌새도 느낄 수 없을만큼 전반부와 비슷하게 평화로운 느낌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죠. 그늘진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보여지지 않는, 어쩌면 백치미가 느껴지는, 그래서 더욱 현명해보이는(무슨말인지...) 암튼, 카티야라는 인물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참 매력적인 인물입니다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이지만 정말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이 작가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 검색을 하다가 알게된 사실이지만 처음으로 검색해본 책이 <메인>이라는 책이었는데요. 이 책은 딱 저의 취향저격인 하드보일드한 경찰소설이더라구요. 어쩜 두 소설이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정도로 극과극을 달릴것 같은 장르의 느낌이 들지만 그것이 다 작가의 역량아니겠습니까. <메인>도 꼭 읽어보아야 겠습니다. 생자필멸의 진리를 깨달아야만 초월이 가능하지만 그 해 여름, 나는 너무 어렸었다. 어리석게도 내가 불멸의 영혼을 가졌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에체베리아를 향해 2.5킬로미터를 걸어 나가는 동안 내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황금빛 액체같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고, 향긋한 풀과 꽃향기가 기분 좋은 산들바람에 실려 왔다. 맑게 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산을 향해 유유히 떠가고 있었다. 생울타리에서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젊음의 활력이 마구 샘솟아 올랐다. 어느 때보다도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젔다. (17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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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이야 오빠. 남자들은 자기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유치한 농담이 여자들을 얼마나 짜증나게 하는지 몰르는 거야? 그럴 때마다 우린 못들은 척 하거나 내키지도 않는 대꾸를 해야된다구. 둘 다 싫은 건 마찬가진데...." "미안~ 니 말이 맞아. 근데 한가지 고백할 게 있는데..." "내가 부담을 느껴야되는 고백인건가? 비밀을 끝까지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님, 오빠를 동정하는 척 해야되는 거?" "어, 음, 아... 그냥 사소한 거야." "그럼 좋아 사소한 건 얼마든지 들어주께." "..너랑 달콤한 밀어를 나누고 싶어." "나 볼 일이 많아. 그것들이 알아서 처리될 때까지 낮잠을 자야겠어." "난... 너와 밀어를 나누면서 아까운 청춘을 낭비해야겠어." "좋아.. 나도 얘기할께." "응 먼데?" "오빠 생각을 했어." " ..... " "...계속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바람이 바뀔 때마다 딴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시간들이 좋았어. 오빠를 생각하는 시간.." "내겐 생각했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 ............... " "그렇게 생각해도 되니?" ----------- 책을 다 덮고 드는 생각. 사랑은 식게 마련이다. 아니, 당연히 식을 때가 와야한다. 사랑은 치명적인 열병이다. 치유되지 않으면 심장이 녹아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도 연인이었던 두사람은 그때서야 비로소 부부가 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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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는 한참 됐는데 이제서야 서평을 끄적이는 '카티야의 여름' 읽는 도중 20페이지나 빠진 파본이라는 걸 알게 됐었고 그때가 때마침 추석 즈음이라 택배가 밀려 한참 있다가 새 책을 받게된 특별한 경험 ㅋ 책 사서 저렇게 아예 인쇄가 안된 경우는 처음이라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읽으면서 오타도 발견했었는데 ㅋㅋㅋ 표시해서 출판사에 알려주려다가 지나가고 나니 잊어버렸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에서 설명하는 데로라면 시골 마을이고 언어도 다른 프랑스의 이색적인 지방인듯 하다. 주인공인 장 마르크 몽장은 바스크 지방 출신으로 인턴을 막 마친 신출내기 의사이고 우연히 그로 박사 대신 나간 진료에서 카티야라는 여성을 알게 되면서 시대에 앞서가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된다. 그러나 그녀와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막는 그녀의 쌍둥이 동생 폴과 저명한 학자이지만 조금은 특이한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면서 그는 조금씩 카티야의 집안의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카티야의 여름은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사건을 쫓는 그런 느낌의 소설이 아니다. 몽장과 카티야의 애달픈 사랑이 시작되면서 카티야의 비밀이 다가서는 몽장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분명 반전이 존재하고 모든 사건의 진실이 마지막에 그려지고 있지만 통쾌한 느낌이나 시원한 느낌보다 카티야에 대한 연민, 그녀의 가족들의 아픔이 느껴져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마지막 페이지의 저 말 처럼 내 마음 한켠도 아름답고 총명한 카티야의 인생을 대신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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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젊은 의사 장 마르크 몽장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 카티야 트레빌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과 벽을 쌓은 채 살고 있는 그녀의 가족과도 인연을 맺게 된 몽장은 카티야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키워가면서 동시에 어딘가 평범치 않은 카티야 가족들의 비밀에도 서서히 다가가게 됩니다. 자신과 카티야의 만남을 강하게 반대하는 쌍둥이 남동생, 세상과 절연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지만 가벼운 치매기를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 열정으로 가득 찬 듯 보이지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카티야...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카티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몽장은 사랑을 키워가지만 결국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카티야 가족의 엄청난 비밀과 비극적인 가족사입니다. ● ● ● 트리베니언의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봤어도 작품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펄스에서 출간된데다 최필원 님께서 번역을 하셨고 작품 분류 역시 스릴러로 돼있어서 내심 스케일이 크거나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얽히는 스릴러 스토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카티야의 여름’은 그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습니다. 굳이 유사한 톤의 작품을 꼽자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여름을 삼킨 소녀’ 정도랄까요 비극적인 결과가 예정된 로맨스, 비밀과 상처로 가득 찬 가족사, 충격적이지만 가슴 아픈 반전 등이 이야기의 주된 코드들입니다. 하지만 ‘카티야의 여름’은 그에 덧붙여 복잡한 심리극의 요소들을 더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그저 겉멋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토대 중 하나입니다.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카티야 가족들의 상황들이나 그런 분위기를 대변하는듯한 낡고 음산한 분위기의 저택, 꿈과 유령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 등도 이 작품의 심리극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후반부에 드러나는 카티야와 그녀 가족의 비극이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가장 큰 뼈대는 25세 청년의 열정 가득한 로맨스입니다. 갖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카티야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몽장의 스토리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카티야의 여름’은 딱히 장르를 명명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심리학적 로맨스? 사이코 스릴러? 고딕 로맨스? 한 마디로 쉽게 구분 지을 수 있는 단순한 소설이 절대 아니다. 이 소설은 무척이나 로맨틱하며, 동시에 잔혹하다.”라는 출판사의 소개글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억지이긴 하지만 ‘심리 로맨스 스릴러’ 정도가 적당한 분류가 아닐까 합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긴 분량은 아니지만 모든 비밀과 반전이 후반부에 쏠려 있어서 세고 독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심리극의 요소가 가미된 비극적 가족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물 흐르듯 전개되는 스토리의 재미와 반전의 쾌감을 모두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