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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 사상의학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할것이다. 이제마가 자신이 세운 사상의학이 자신이 죽고난 100년뒤에 다시 꽃피우리라는 것을 짐작한것처럼 요즘은 누구나 한의원에가면 자신의 체질부터 검진을 받고서 약으로 다스린다. 다 똑같이 처방하지만 낫는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듯이 이제마는 그런 의학의 근본부터 알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비록 아버지 이반오와 주막집 딸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의 보살핌 덕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지에 의문을 품게되고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면서 이제마는 집을 떠나 조선 팔도넘어 만주와 연해주를 돌아다니면서 견문도 넓히고 공부도 했다. 아마도 이제마가 의학 공부를 하게된것도 이시기리라고 짐작된다. 집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으나 병약한 아내마저 역병으로 죽었다. 이제마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집을나서 성리학을 공부하고 다시 외국으로 나가서 서양문물을 배우면서 사상의학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이제마는 집으로 돌아와서 환자들을 진료하며 치료 경험을 통해 그의 사상의학에 대한 큰 물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이제마가 김기석에 의해 무과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1800년대의 격동의 시기에 사람들에게 믿음이 깨지고 서로의 이익에만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가지 유혹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1894년 4월 에 의학계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의학책인 (동의수세보원)을 탄생시킨다. (동의수세보원)은 이제마가 40여년 동안 탐구해 온 학문적 성과와 진료 경험으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런 그의 의학책이 일본 제국주의가 한의학을 미신이라고 몰아붙이며 탄압하자, 우리 민족 의학의 독자적인 산물인 이제마의 사상의학도 퇴보하고 만다. 1941년 이제마의 직계후손들의 모이인 보언게가 (동의수세보원)7판을 발생한 것을 마지막으로 점점 잊혀져 갔다. 다시 사상의학이 빛을 보게된것은 1970년대 들어서 보원계에 참여하였던 홍순용 교수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사상의학회를 만들어서 1980년대에 들어서 사상체질학회가 생기므로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빛을 보게 된다. 이제마가 평생을 통해 이루어진 사상의학이 지금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는걸 보면서 그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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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이와 허준 박물관을 다녀 왔다 거기서 이제마에 대해서 간략 하게 소개 되어 있는 코너가 잇었다..
조선 시대의 허준이 잇엇다면 민족의 격동기인 1800년대엔 이제마가 있었다..
반쪽 양반의 신분으로 의학 굥부에 매달려 사상 의학을 완성 시킨 이제마의 삶속에서
그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수 잇었다
중간 중간 의학에 대한 사진들이나 그림들이 얼마전 허준 박물관에서 본 것들도 잇어서 더 반갑게 느껴 졋다..
사상 의학을 통해서 많은 이들의 치료 하고 제자를 길러낸 이제마.
몰랐던 그의 삶을 들여다 보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인 사상 의학이 더욱더 존귀 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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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의원에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 보면,
"누구는 태음인이고, 누구는 소양인이고.. 그래서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고.."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 의술 형태는 보통 사상의학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걸로 알고 있다. 사람은 각각 다른 체질과 다른 성격을 갖고 있으니 그에 따른 처방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논리다. 그럼 사상의학이란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상의학이란 한의학의 한 갈래로 우리 나라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민족 의학이라 할 수 있다. 보통 민족 의학이라 하면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 준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 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명의다. 그것도 비싼 중국 약재에만 의존했던 의료 방식을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대체하며 이룬 성과는 정말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의학이라는 게 고정되어있는 이론이나 처방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병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에 따라 의학은 계속 발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허 준 선생 이후 맥이 끊기다시피한 민족 의학을 소생시켰다는데 사상의학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상의학을 만들고 체계를 이룬 사람은 이 책의 주인공인 이제마라는 사람이다. 이제마의 집안은 함경도에서도 벼슬길에 많이 오른 명문가였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어린 시절부터 굴곡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양반이었으나 어머니는 주막집 딸이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그런 제마를 내치지 않고 아버지의 적장자로 호적에 올린다. 그리고 평생동안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다. 제마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이들을 많이 잃게 된다. 유난히 병약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자기를 친자식처럼 보살펴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열세살이 되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신다. 어른들의 죽음을 보면서 제마는 어린 나이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지며 정처없는 방랑길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방랑은 그의 일생동안 계속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방랑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사상을 배우고, 사유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성리학에 기초를 둔 것이다. 그것도 당대에 성리학의 대가라고 할 만한 기정진이 그의 스승이었다. 사상의학이라는 것도 만물의 조화와 원리를 의학에 적용한 것으로 그런 면에서 볼 때 그의 의술은 경험의 집성체라기 보다는 이론으로부터 출발하여 임상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제마는 청년기에 결혼도 하였으나 첫 부인도 일찍 잃고만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달아 잃은 제마가 의학에 흥미를 느끼고 몰두했던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것도 같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처방만으로는 낫지 않는 사례들을 계속 접하면서 각 사람의 체질과 심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이론을 내고, 검증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사상의학을 발전시킨다.
그가 살았던 조선 말기는 주변 열강이 끊임없이 조선을 넘보며 침략을 일삼고, 무능한 조정으로 인해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이 책에는 시대적인 혼란 상황과 개인적인 삶이 맞물려 사상의학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잘 드러나있다. 단순히 사상의학의 창시자로서의 이제마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고자 노력했던 그의 삶이 느껴졌다.
일제 치하에서 어이없이 사라질뻔 했던 위기도 있었지만 제자들에 의해 겨우 맥을 이어오던 사상의학이 이제는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가 사상의학을 처음 만들었던 동기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자 함이었으니 앞으로도 사상의학이 그런 역할을 잘해내며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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