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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모두 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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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접었던 바짓단을 반듯하게 펴도 수줍은 발목을 채 가리지 못해 허릿단을 느슨하게 내려 입어야 할 적의 난감함과 만나게 한다. 뒤미처 찾아온, 옷이 낯설 만큼 커버린 몸으로 인한 뿌듯함은 난감함을 유쾌함으로 돌변하게 한다. 접었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바짓단을 내리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마는, 물 빠진 하얀 자국이 칼이 지나간 흔적처럼 만들어진, 하나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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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접었던 바짓단을 반듯하게 펴도 수줍은 발목을 채 가리지 못해 허릿단을 느슨하게 내려 입어야 할 적의 난감함과 만나게 한다. 뒤미처 찾아온, 옷이 낯설 만큼 커버린 몸으로 인한 뿌듯함은 난감함을 유쾌함으로 돌변하게 한다. 접었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바짓단을 내리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마는, 물 빠진 하얀 자국이 칼이 지나간 흔적처럼 만들어진, 하나의 선을 발견했을 때처럼 생경스럽게 한다. 결국엔 미처 알지 못했던 떫었던 나와 맞닥뜨리게 한다. 성장소설을 읽노라면.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발달한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소설은 성장소설이 될 수 있겠지만 가시적인 성장이나 내면의 성장이 급등하는 십대의 시절을 빠뜨리고선 진정한 의미로써의 성장소설이라 보기 어렵다. 십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심지에 붙은 불이 여생을 환하게 비추게 될지, 아니면 타다 만 흔적만 남기게 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성장의 기폭제 없이는 삶의 불꽃을 피울 수 없다.

  나름의 기폭제를 만드는 십대를 꽤 자주 만났다. 그 중 여럿은 과거의 나와 함께 지내고 있어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반갑게 손짓하는데,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활자에서 불러낸다. 세상의 온갖 걱정을 웃음 한 방으로 날려 보내게 하는 아드리안(‘비밀 일기’의 주인공. 영국에는 4권까지 출간되어 서른의 아드리안을 만날 수 있으나 국내에서는 2권까지밖에 만날 수 없어 내 기억속의 그는 십대로 머물고 있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이 그렇고, 가출 한 번 못한 게 두고두고 안타깝도록 만드는 홀든(‘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이 그렇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고정된 로미오가 그렇고, 클레어 데인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보다 나중에 만났으나, 덕분에 셰익스피어를 펼치게 한 올리비아 핫세로 각인된 줄리엣이 그렇다. 참, 일찍 고독을 즐기며 고통에서도 마음이 찬란하게 커갈 수 있다는 것을 아프게 알려준 안네도 빠뜨려선 안 된다.

  여기에 일본 친구 한 명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법 어른 티가 물씬 풍기는 모습까지 만났지만 나는 열세 살쯤의 지로와 악수한다.

 

2

 

  나도 착한 아이는 아니에요. (1권 P. 233)

 

  유년의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착하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순한 웃음을 지으며 착해빠진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을 것이다. 약간의 머뭇거림을 여운으로 남길 지도 모른다. 그래야 어른을 제대로 속일 수 있을 테니. 다분히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며 때로는 위악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보는 이에 따라서 착한 아이도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될 수 있는 아이였다. 적당히 순수하고 잔인한, 그런 아이 말이다. 지로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모인 오하마의 눈으로 바라본 지로는 배 아파 낳은 자식보다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다. 이를 모르지 않던 지로는 갓 태어난 오리마냥 오하마를 따른다. 지로를 다른 자식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여기는 아빠 슌스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첫 번째 세계인 엄마와 할머니를 끔찍이 싫어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냉철한 자기의 교육 방침을 이해시키려는 엄마와 감출 내색조차 하지 않는 편애로 형제간에 깊은 골을 만드는 할머니는 분명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여기는 자기 또한 착한 사람일 수 없음을 인정하며 외할아버지의 물음에 진솔하게 대답할 때, 지로의 키가 한 뼘 커진 듯했다.

 

  네 나이 때는 모든 게 수행이야. (2권 P. 265)

   

  지로와 그의 친구들이 놀고 있는 풍경을 그려본다. 비 온 뒤 한층 우거진 풀숲을 헤치며 생쥐를 낚아채는 매의 눈빛으로 탐색하는 아이들. 옳거니, 메뚜기 한 마리 또 걸려들었다. 옷섶에 머리만 대롱대롱 매달린 메뚜기가 많은 아이는 승리의 기쁨에 벌써 취해 있다. 옷을 물게 한 후 몸통을 재빨리 떼어서 몸통을 내던지는 행위는 놀이일 뿐이다. 어쩜 이런 잔인한 놀이를 만들었는지, 고개를 내젓다가 과거 속 낯익은 소년의 행동을 목도하게 된다. 잠자리나 매미를 잡아 실컷 놀다 심심해지면 날개 잃은 곤충으로 만들어 놓아주던 소년. 조급함과 달리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뚱대며 도망치는 곤충을 보고서 히죽히죽 웃었던가.

  습관이 되어버린 놀이에 사유의 틈이 생기고부터였을까,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을 단순히 죽이기 위해 잡지 않았다. 메뚜기 머리를 뽑아내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된 지로처럼. 이 또한 성장하며 쌓게 되는 수행일지 모르겠다.

  경애하여 마지않는 아사쿠라 선생님의 유임운동에 나서기 위해 간절함과 의지로 점철된 혈서를 완성한 지로와 마주한 슌스케는 아들의 행동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며 비난하려 들지 않는다. 네 나이 때는 모든 게 수행이라며,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세상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십대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으나 세상의 부조리와 맞부딪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수행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슌스케였다. 아빠의 한결같은 믿음과 지지가 성장을 수행의 과정으로 만든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언젠가는 후회도 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 (2권 P. 391)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다보면 심심치 않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곤란한 순간이 찾아온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택하지 않은 나머지 하나로 인해 후회가 밀려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삶은 선택에서 제외된 다른 가능성, 그 안에서 파생된 후회의 연속이다. 현재 옳다고 의심치 않는 길을, 머잖아 자갈길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의 신념을 만들어 가는 아들에게 여전히 지지를 거두지 않는 슌스케.

  그는 아들에게 닥칠 코앞의 위기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당당히 서는 아들의 먼 훗날을 먼저 내려다보는, 자식이 좋다고 판단했다면 그걸로 족하는 아빠였다. 어떤 상황에서나 변함없는 믿음이 자식을 올곧게 성장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는 교육자였다. 이 책의 작가이자 교육자인 시모무라 고진은 피그말리온 효과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을 처음부터 의심한다면 그거야말로 헛된 노력이란다. (2권 P.171)

 

  아사쿠라 선생님과의 만남은 지로의 삶의 전환점이 된다. 믿고 싶지 않은 세상의 일부분을 믿으려는 헛된 노력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춘월정 주인의 행패나 도미테루 선생님과의 불합리한 언쟁으로 불거진 대립이 관계의 톱니바퀴 맞물림을 뻑뻑하게 하는 것 같지만 때때로 기름칠할 여유를 가져야 함을 깨닫게 하는 배움의 순간들이었음을 자각한다. 상도에 어긋나는 부당한 요구를 똑같이 부당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진실한 자의 태도가 아님을 알게 된다. 잘못된 수학 문제 풀이를 지적했을 뿐인데 교사로서의 체면을 떨어뜨릴 수 없어 지로의 행동을 건방짐으로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던 도미테루 선생님의 처사 또한 부당하였지만 충분히 이해받아야 됨을 알게 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화를 잠재울 수 없던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무덤덤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미테루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가기 전 마음을 열고 싶어 선생님 댁을 방문한 지로. 경계심을 풀지 않던 선생님은 지로의 진심을 읽고서 머리가 썩 좋지 않아 수업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역으로 환송 나올 학생이 없을 거라 판단하여 예정보다 서둘러 떠나버린, 인정받지 못한 선생님의 뒷모습은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를 내세울 순 없다는 것을 지로에게 쓸쓸히 가르쳐 준다.

 

  우리 몸엔 보이지 않을 뿐이지 늘 뱃속에 똥오줌이 쌓여 있어. (2권 P. 74)

 

  지로는 타인의 허점에 민감한 자 역시 뱃속에는 쉼 없이 똥오줌이 쌓여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서로의 똥오줌까지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한데 국가가 원할 때 언제라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청년들이야말로 애국자로 될 수 있는, 군인들의 나라가 되어가는 일본의 똥오줌도 이해해야 할까.

 

  지금 당장 고칠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처리해나가는 것이 지혜다. (3권 P. 285)

 

  미시마 유키오 단편 <우국>은 권력이 한층 더 군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된 소화 11년(1936년)에 일어난 2․26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란군에 속한 동료 군인을 쏘아 죽여여 하는 정세를 통분한 젊은 장교가 그의 아내와 함께 할복자살하는 과정을 죽음이 아름다움과 등치될 수 있도록 담아낸 수작이다. 군인의 본분을 망각케 하는 세상을 견딜 수 없었던 다께야마 중위는 이렇게 자기의 뜻을 지킨다.

  자유주의를 수호하고 개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존중하는 우애숙에도 불안한 정세는 들이닥친다. 우애숙은 군국주의로 물들어가는 일본의 청년들을 지켜내려는 강습소이다.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아사쿠라 선생님과 지로의 땀이 밴 곳이다. 새로운 시야를 열어가는 강습생을 바라보며 희망을 심었으나 우애숙은 폐쇄되고 만다. 그래도 그들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니노미야 노인의 말처럼 한꺼번에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잖은가. 현재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잔가지를 쳐내며 오랜 세월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뿌리가 썩게 될 것이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최소한 씨앗을 뿌려야 한다.

 

  강하다고 우쭐대는 건 이미 약해졌다는 뜻이거든. (1권 P. 574)

 

  강하다고 우쭐대다 일본은 패망했다. 허나 씨앗을 뿌렸던 이들이 있기에 새싹이 늦지 않게 자라 주었다. 여하튼 아사쿠라 선생님이 지로에게 건넸던 충고가 틀리지 않았군.

  후에 삶의 등불이 되어준 아사쿠라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썩 좋지 못했다. 하필이면 기분 좀 풀어 보자고 후배 트집 잡아보려던 선배가 지로에게 된통 당하려는 찰나 맞닥뜨렸다. 허나 주머니칼을 휘두르며 날뛰던 지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양이 되었다. 처벌 대신 제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생님과 마주하는 시간은 분명 지로를 보다 강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알라고, 그러면 겁날 게 없는 강자가 된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며 지로는 오래전 외가에서 몸집 커다란 레그혼과 토종닭이 싸우는 장면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암탉을 거느리는 레그혼과 달리 늘 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야 했던 토종닭이 어느 날 작심하고 레그혼과 결투를 벌였다. 그간의 설움을 갚겠다는 듯 옹골차게 덤비는 통에 한때의 세력가는 몰락하고 말았다. 지로는 토종닭처럼 자기의 영역을 힘으로 차지하려던 생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힘으로 장악한 영역은 머잖아 레그혼처럼 새로운 힘에 잃게 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강한 자는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한 자에겐 한없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된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 P. 581)

 

  아사쿠라 선생님을 만난 기쁨에 시비 걸던 선배마저 고맙게 여겨지는 지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모든 만남이 특별해지기 시작한다. 유모에게 자신을 맡긴 엄마까지 고맙다. 그간 지로의 삶을 억눌러온 사람들도 실은 어떻게든 지로를 성장시켰던 것이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그렇게 믿게 되었다.

 

 

3

 

  내가 처한 환경에서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올바로 성장할 수 있어. (1권 P. 500)

 

  지로는 엄마와 살가운 정을 나눌 시간 없이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 서로를 뼈아프게 새겼다. 물기 어린 엄마의 눈동자는 지로의 인생 항로에 북극성의 별빛이 되었다. 그렇게 밉던 할머니 또한 결국엔 감정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 관심 받길 원하는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 포용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온갖 가식을 버린 채 맨얼굴로 대할 수 있고, 항용 그렇게 대하고 싶은 유모와의 헤어짐은 온 세상을 잃은 듯 공허하였지만 그리움의 대상을 가슴에 담는 방법을 터득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할 때마다 기꺼이 둥지 속에서 품어주던 이의 부재는 새로운 세상에 한 걸음 내딛게 하였다.

내가 처한 상황을 마침내는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

  지로가 본가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형 교이치와의 경쟁이 공부방에서 함께 지내면서 수그러드는 것 같더니 ‘시’ 때문에 다시금 경쟁하게 되었다. 교지에 발표되는 교이치의 시를 능가하는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질투심에서 비롯되었지만 자기도 미처 모르는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절한 수단을 형보다 잘 활용하고 싶었다. 교이치가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경쟁할 하등의 대상이 사라진 것 같더니 형에게 애정을 쏟는 미치에를 두고 혼란스러운 사랑을 숨긴 채 아파하며 다시금 형과 자신을 저울질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로의 전부와 다름없는 우애숙이 군국주의의 횡포에 문을 닫게 되자 깊은 절망에 빠졌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번민했지만 지로는 바위와 친구가 된 소나무와 같이 자기가 처한 환경에 뿌리를 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충 매서워진 폭풍에는 오히려 더욱 깊게 뿌리를 뻗어갈 것이다. 땅속으로 깊이 박힌 만큼 튼실한 나무로 자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면서도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단다. 그런가 하면 아주 힘든 일을 날마다 겪으면서도 단 한 가지 기쁜 일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 (1권 P. 408)

 

  서른을 넘긴 지로를 만날 수 없음은 아쉬움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다. 아사쿠라 선생님을 능가할 인격자로 성장할까, 기대되다가도 고행에 가까울 지로의 삶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 미리 안타까워진다.

  하지만 지로는 기꺼이 소소한 일상에서 한 가지쯤의 기쁜 일을 찾아내어 오늘을 행복으로 만들,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했을 거다. 어떠한 시련도 행복과 이음동의어로 만들기로 작정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다.

  오하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슌스케의 한결같은 믿음은, 아사쿠라의 삶의 철학은 지로를 져버리지 않을 테니까. 지로 또한 이를 져버리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는 다른 사람이 날 사랑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1권 P. 603)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힘이 지로에게 있을 테니까. 그에 앞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 테니까. 달큼한 홍시가 되어도 무척이나 떫었던 풋감 시절의 자신을 여전히 사랑할 테니까. 내가 열세 살쯤의 지로와 악수하고픈 까닭이기도 하다.

  <지로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붉게 익어가는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자신의 감나무가 자아내는 풍경을 기대하게 한다. 더불어 한때 우리는 모두 떫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성장소설의 미덕임을 깨닫게 한다.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 소세키

 

 



YES마니아 : 골드 a*****4 2010.07.07. 신고 공감 6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들의 아이, 그 이름은 지로.
"우리들의 아이, 그 이름은 지로." 내용보기
시모무라 고진의 <지로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저자가 교사였으며 이 소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완성한 교육소설이라는 것을 어디에선가 접했고 그 하나의 이유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지로와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지로의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가 훌륭하게 자라기까지를 모두 지켜보았다.  할아버지의 깨진 주판을 제가 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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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모무라 고진의 <지로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저자가 교사였으며 이 소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완성한 교육소설이라는 것을 어디에선가 접했고 그 하나의 이유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지로와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지로의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가 훌륭하게 자라기까지를 모두 지켜보았다.  할아버지의 깨진 주판을 제가 한 일이라 하여 꾸지람을 들을 때도 아버지 슌스케에게 수영을 배웠던 개울가에도 나는 함께 있었다.  중학교 입학 시험을 앞두고 교이치와 뜬 눈으로 지샌 밤 속에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술집 여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때도, 아사쿠라 선생님의 유임을 위해 혈서를 쓰고 새끼 손가락을 동여매고 있을 때도 나는 그의 곁에 있었다.  그 녀석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웃음이 나기도 했고 함께 울기도 했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하고 목구멍이 얼얼해지기도 했다.

  지로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말썽장이고 엉뚱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의롭고 용기있는 아이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이다.  또한 지로의 어깨 넘어로 본 그의 행동들은 내게 값진 것들을 일깨워 주었다.  어느새 나는 지로가 되어 있었다.

  어느샌가 나는 오하미를 그리워했고 오타미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난 시간들을 반성했다.  양계장에 있어서 만큼은 슌스케보다 지혜롭고 당차던 오요시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나를 믿어주는 내 아버지, 슌스케를 그 누구보다 존경했다.  그리고 아사쿠라 선생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참된 인간의 길을 보여 주었다.  나는 지로였고 지로는 나였다.

  지로는 분명 개구쟁이었고 말썽장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세상을 향해 눈을 뜨며 형제간의 우애를 느끼며 할머니를 대하는 바른 태도를 실천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아버지의 자애로움으로 멋진 청년이 되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렇듯 지로는 모두가 함께 길러냈다.  어린 가슴에 불타던 분노를 그는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진정 바른 일에 앞장서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지로의 성장과 변화는 내게도 큰 교훈이 되었다.

  나는 유치원 교사다.  참 많은 어린 지로들을 매일같이 만난다.  그들은 지로처럼 개구쟁이이며 말썽장이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나는 그들도 지로와 같이 마음 한 켠에 그들만의 작은 씨앗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로가 가족의 사랑과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을 양분으로 훌륭하게 자랐듯이 나는 이 아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비료가 주어진다면 모두 또 다른 지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슌스케와 아사쿠라의 모습을 통해 진정 참된 어른의 모습을 옅볼 수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로를 믿어주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다그치고 꾸지람할 때 지로를 이해해주고 믿어주었으며 그들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지로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들은 우리가 닮아가야 할 어른의 모습이다.  나 역시 내가 만나는 나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믿어주며 나의 행동과 모습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책장을 덮었다.  지로의 이야기도 끝이 났다.  하지만 지로는 우리의 가슴에 아직 살아있다.  그의 감동적인 성장일기는 또 다른 지로의 일기가 될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고뭉치도 아니며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슌스케와 아사쿠라처럼 건장한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를 닮은 유년을 가진 수많은 아이들에게 참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지로를 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보내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가진 작은 씨앗이 푸르르게 자라 영글었듯이 모두가 지로처럼 가슴 속 작은 씨앗을 싹 틔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지로를 세상으로 나섰다.  내가 사는 곳 어딘가에서 지로를 만난다면 그 어느 때 보다도 다정한 눈길과 미소로 인사를 건내리라. 

m*********m 2010.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