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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물으면 자기는 절대 다큐멘터리를 안 본다고 한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밤(저녁이 훨씬 지난) 시간대에 방송이 되는데, "힘들게 하루를 살고 그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이제는 좀 쉬나보다,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TV에서마저도 질질 (눈물을) 짜야하는 상황이 싫다" 는 이유때문이다.
이런 심정 이해한다. 어떤 하루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숨돌릴 여유, 밥먹을 여유는 더더욱 없는 하루가 있다. 때로는 이런 하루가 일주일이 되기도 하고, 한달이 되기도 한다. 다른 것은 눈길조차 줄 수 없는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도, 찾아서 보게 되는 방송은 사회적 약자를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삶의 모습, 특히 내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혹은 봤어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다른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왜 그들은 무기력한가? 왜 무기력할 수밖에 없나? 왜 한없이 착할까? 왜 포기할까? 등 알 수 없는 근원적 물음이 생긴다.
이 책, 솔직히 지나친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권유'할 뿐이다. 그 권유에 잠시 생각을 맡길 의사가 있다면, 진지하게 이 책을 읽고 다시 삶의 의지를 향한 싹을 틔울 수 있다.
몸이 아픈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개 간호사나 의사다. 왜냐하면, 자신처럼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고 싶으니까. 병원에 있거나 병원에 고정적으로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말해주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정기적으로 가야한다는 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그 시간리듬에 맞추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아팠던 아이가 의대에 들어가서 공부한다. 그리고 의사가 된다. 딱, 이 두 문장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력과 땀과 여러사람의 아픔이 배어있을지는 상상만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지나친 희망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들이 무엇인가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난한 하루하루의 삶이 어쩌면 당신 스스로에게 축복이지 않았느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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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선생의 책에서 읽었던 "사람은 씨팔.. 누구나 오늘 하루를 사는 거야"라는 말.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누구나 하루를 사는 거라는 말.. 알듯말듯한 그 말이 길을 걸을 때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도, 술자리를 끝내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렇게 한 동안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적이 있다. 하병근 선생을 알게 된 건 2년쯤 전이다. 우연히 잡지에 실린 그의 칼럼을 읽었고, 그의 힘든 인생을 알았고,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루하루를 희망으로 살아가는 그의 가슴 아픈 도전을 알게 됐었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에게 오늘 하루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 힘든 삶 속에도 용기를 내라며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글. 내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지 못해 안타까웠고,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뚝뚝 묻어나 나는 그의 진심 때문에 힘들었다. 오늘 다시 하루를 산다는 것. 하루하루가 인생이라는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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