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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 전래동화집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전래동화를 엮어낸 책으로 돈 벌려고 하는구나'하는 반감이 조금 들었더랜다.(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기존 이야기를 엮어내는 얇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 읽을까하다가 다른 책을 읽던 중간에 잠깐 잡은 책이다. 그런데 역시 선입견은 좋지 않다. 이 책을 전래동화 엮음집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했으면 나는 따뜻한 이야기 한 편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거위인 맞다와 무답이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글쓴이 최성각(그래풀)이 시골에 살면서 자꾸만 집에 출몰하는 뱀 때문에 고민하자 지인이 거위를 키우면 뱀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바로 뱀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택한 거위를 키운 실화를 이야기로 묶어 낸 책이 이 책이다.
거위를 실제론 본 기억이 있는가? 사실상 도시에서만 자란 나에게 거위는 이야기 속의 동물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아니었나보다. 어린 시절 집 지키는 개마냥 자기 집 앞을 지난 때 거칠게 울어대는 거위에 놀랐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거위를 보기는 힘든 일. 글쓴이가 거위를 만나는 일도 인내심이 필요했다. 기다림 끝에 만난 거위는 두 마리였는데 노란 털이 부분적으로 빠져 있는 작고 연약한 병아리때였다. 작은 거위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길 글쓴이와 왕풀님의 대화에 계속 대답하듯 울어대던 한 마리에게 '맞다'라는 이름을 계속 침묵을 지키던 나머지 한 마리에게는 대답이 없다는 의미의 '무답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 이후에는 이 거위를 키우면 겪는 이야기들이다. 맞다와 무답이의 성격, 기존에 기르던 개 찰구와의 관계, 목욕 습관 등 글쓴이는 맞다와 무답이를 그냥 가축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들과의 슬픈 이별까지...
책을 다 읽고난 후 표지 하단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한 책이라는 마크가 붙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난 청소년보다 좀더 빠른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렇게 생물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낼 줄 아는, 작은 미물도 사랑하고 결과적으로 글쓴이를 슬프게 만든 이들까지도 용서하는 따뜻한 이야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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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어릴적 닭을 키운 적이 있었다. 아침마다 수탉이 울어서 잠을 설치곤 할때면 닭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암닭이 낳아주는 신선한 달걀에 반해서 닭이 있는게 낫겠다 싶기도 했고, 모이를 주려고 할때면 닭이 쪼아대서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때도 있었지만, 또 맛있는 고기를 줄때면 있는게 좋겠다 싶기도 했던 우리 어릴적 닭은 한마디로 사육하는 것이었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거나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는, 좁은 우리 안에서 사육을 한 것이다. 얼마전 친정 식구들과 모임으로 어느 토종닭을 취급하는 음식점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흑염소랑 닭이랑 그리고 오리랑 커다란 거위가 함께 방목되고 있었다. 거위가 그렇게 큰 동물인줄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책은 저자인 '환경운동을 하는 작가'인 최성각씨의 실화로 실제로 두마리의 거위를 키우면서 이름도 지어주고 언제까지나 가족처럼 지내기로 한다. 연구소 주변에 뱀이 많이 출몰하였기 때문인데, 거위를 키워보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거위를 수소문한 끝에 부화장에서 보름을 기다려 데리고 오게 되는데, 오는 차안에서 아무 대답도 없는 두 녀석에게 붙여진 이름은 '맞다'와 '무답이'이었다. 암수 한쌍으로 어린 새끼로 오게 된 맞다와 무답이는 거위 본연의 습성인 듯 맞다가 먼저 행동하고, 무답이가 따라하는 습성을 보였다. 그렇게 가족처럼 지내면서 맞다와 무답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쇠뜨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고, 우리에서 풀어놓아 키우기 시작하면서 맞다와 무답이는 연구소에 있던 찰구라는 개와 친해져서 벼룩을 잡아주는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알도 낳고 거위와 연구소의 가족들이 한식구가 되어가는 모습으로 읽는이로 하여금 흐믓해지는 찰나,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생태소설이라는 분야가 살짝 생소한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 이야기를 구성한 이야기라 쉽게 읽어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두마리의 거위를 만나게 된 계기와 거위들과 함께 하며 관찰했던 참 특별한 시간들이 읽는 내내 흐믓한 마음이 들게 했다. 초반부에 살짝 복선을 내비치며 이야기를 전개해서 소설다운 맛도 느껴지지만, 무엇보다도 왕풀 님, 산풀 님, 꿋꿋 씨 등 등장인물의 이름도 특이하고, 맞다와 무답이도 특이하고, 철구도 아닌 찰구라는 개이름도 특이하고 시골스러운 정이 느껴지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다.후반부에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지만,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인지라 어쩔 수 없었음에도 안타까운 마음 반,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으로 조금 덜 섭섭한 느낌 반이었다. 사육이 아닌, 가족같은 동물들과의 정이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참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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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닐스의 신기한 여행>에서 함께 했던 가축이 거위였어. 거위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야. 가축을 괴롭히기만 하던 닐스가 벌을 받아 난장이가 되었지. 닐스의 집에는 거위가 있었어. 거위는 원래 날지 못하는데 날려고 매일 연습하는 집거위가 있었거든. 난장이 된 닐스는 거위를 타고 여행을 많이 다녀. <닐스의 이상한 여행>을 다시 읽어봐야겠네. 내가 초등학생 때 읽은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하여튼 거위는 오리보다야 훨씬 크고, 이마가 짱구처럼 툭 튀어나온 동물이 거위야.
<거위, 맞다와 무답이>는 거위가 주인공이야. 거위가 함께 한 2년 동안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나도 거위를 본 적이 있어.어렸을 적 할머니댁 가는 길에 오리랑 거위랑 칠면조를 기르는 집이 있었어. 처음에는 하얀색이라서 백조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거위라고 하셨어. 그 이후로 할머니댁 갈 때마다 '엄마, 저건 오리지?', '저건 거위지?', '저건 칠면조지?'하고 계속 물었어. 처음에는 어머님이 대답을 해 주셨는데, 두 번째부터는 귀찮아하셨어. 나도 지금 아들이 계속 물어보면 귀찮어. 이제는 그 때의 어머님 마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는가 봐.
<거위, 맞다와 무답이>는 생태소설이래. 환경소설을 넘어서 생태소설이래. 작가들은 이름을 참 잘 만드는 것 같아. 거위 생태에 관한 연구도 아니고, 거위 생태 소설이래. 그래 이야기가 있으니까 소설이고, 거위의 삶부터 죽음까지의 에피소드가 나와 있으니까 거위의 생태가 붙었겠지. 어쩌면 환경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의미에서 생태 소설이 탄생했을지도 모르겠어.
맞다와 무답이는 거위의 이름이야. 이름이 너무 재미있어. 보통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이름을 이렇게 짓지는 않았을 거야. 별을 좋아하면 별님이, 꽃을 좋아하면 꽃님이 이렇게는 지었어도, 갓 태어난 거위를 데리고 오는 차에서 대답을 잘한다고 '맞다', 조용이 있는다고 '무답이'라고 작명을 해 버렸어. 작가가 환경운동가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어. 새와 돌멩이, 자전거와 지렁이 등에게 환경상을 제정하는 당신이기에, 세상을 다르게 보는 안목이 있기에 '맞다'와 '무답이'가 탄생했을 거야.
시골에 있던 연구소에 뱀이 나와. 뱀이 자주 등장해서 골머리를 썩였지. 거위를 키웠더니 뱀이 안 보인다는 선배의 말에 거위를 기르게 된 작가 그래풀님. 처음에는 거위가 뱀을 물리치나 했더니, 거위의 응가냄새가 워낙 지독해서 뱀이 얼씬하지 못한다는 게야. 이 얼마나 웃겨. 작가도 처음에 거위를 기르면서 응가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챘겠지. 그런데 한 동안 뱀이 보이지 않자 거위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것도 알았을 게야. 깨끗하고 고귀하게만 보였던 거위도 응가의 냄새는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지.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났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하면서도 '피하지말고, 한 번 퍼 주고 가면 되지.'라는 말도 떠오르네. 내가 퍼 주면 다음 사람부터는 안 피해도 될 거 아냐. 어쨌든 그렇게 해서 작가인 그래풀님과 맞다와 무답이는 같이 살게 되었어.
거위의 평균 수명이 40년이래. 그래풀님이 거위를 데려왔을 때가 쉰 둘이였으니, 거위가 작가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줄 알았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아. 삶에 굴곡이 있듯 거위에게도 굴곡이 있는 거야. 그래풀님을 비롯하여 연구소 식구들이 집을 비웠을 때 수리부엉이가 맞다를 채 간거야. 그게 2년이야. 맞다를 잃은 무답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거야. 사랑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거위와 함께한 2년의 기록이 생태소설로 탄생한 거야. 사고가 없었으면 더 오래 있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맞다와 무답이가 그냥 죽은 게 아니야. 알을 낳았어. 달걀보다 오리알 보다 큰 알을 낳았어. 맛이 궁금해서 그래풀님과 연구소 식구들은 먹어 봐. 맛이 어땠을 거 같아. 달걀보다는 맛이 없나봐. 그래도 난 그 맛을 보고 싶어. 맛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거야.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거든. 맞다와 무답이는 그렇게 알을 낳았어. 죽을 때 알이 세 개가 남았어. 그 알들은 부화장으로 갔어. 어떻게 되었을가? 소설은 여기가 끝이야. 부화장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거야. 궁금하지. 궁금증을 남기고 끝난 소설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
거위와 함께한 2년을 잘 기록해 두었나봐. 나도 함께 거위를 키운 것 같아. 시골의 마을도 그려지고, 연구소 자리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여유도 누리고 싶고, 그러기엔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두려워서 포기도 못하고 그냥 사는 게지. 그렇지만 우리들을 품어줄 땅이 있고, 정이 있는 곳은 도시보다는 시골이라는 생각이 들어. 모두 한 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어. 거위와 함께 한 2년의 기록을.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해. 개발만이 삶의 수준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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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생태소설이라는 조금은 낯선 장르여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이 될까 무척 궁금해서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맨 뒷장에 '풀꽃 평화 연구소 사람들' 에 대한 소개글을 발견했습니다.
화가 정상명 선생님은 사고로 잃은 딸(풀꽃)의 이름을 따서 환경단체 '풀꽃세상' 을 만들었는데
특이하게도 자연에 대한 우리의 무례함을 반성하고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사람이 아닌 자연물이나 그에 준하는
사물에게 풀꽃상을 주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풀꽃상을 받은 것들은 바로 새.돌멩이,풀,골목길,갯벌의 조개, 꽃, 지렁이, 자전거 등이랍니다.
이렇게 환경문제에 대한 조그만 시작을 발판으로 '풀꽃평화연구소' 를 개설하게 되는데,, 그 시골 연구소에서
키우던 거위의 이름이 맞다와 무답이 였던거에요..
작은 시골의 연구소와 그 연구소 한켠에서 살던 거위 두마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부화장에서 거위 두마리를 데려온 첫날, 맞다와 무답이라고 이름지어진 거위 두마리를 위해서 작가는
가래나무를 기둥삼아 천장과 벽면이 있는 작은 집을 만들어 주고, 병아리 사료와 잘게 썬 풀도 미리 준비해 둡니다.
저자는 밤마다 맞다와 무답이를 고양이로 부터 지키기 위해 막대기를 들고 보초를 서기도 하고, 과일을 주기 위한
도마질은 점점 능숙해 집니다.
저또한 어렸을때 15년간 강아지를 키웠었는데,,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동생같은 존재였기에
지금도 애틋한 감정이 많이 남아있어요.. 추운 겨울 수명을 다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린 강아지를 평소 좋아하던
뜨개이불로 폭 감싸서 땅에 묻어주던 기억.. 매일 그 무덤을 찾아가서 땅속이 추울까 낙엽을 덮어주곤 했었던
애틋했던 기억이 있기에 맞다와 무답이도 그냥 평범한 시골 연구소의 거위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달빛이 좋은 밤에는 맞다와 무답이도 달빛에 겨워서 흰 모가지를 높이 치켜들고 천천히 춤추듯이 몸을 움직이곤 했는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달밤 그들의 춤사위는 아무도 볼수 없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광경임에 틀림없었을것 같아요.
바람이 몰아치고 장대비가 내려도 그 비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는 맞다와 무답이의 모습은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는것 같았어요.. 노란 우비를 입고, 빨간 장화를 신은채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짓는 아이들 말이죠.
밭둑가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작가의 등을 부리로 가볍게 톡톡 치던 맞다.. 이렇게 사람과 동물 사이에 주고받는 말없는
교감은 제 마음도 찡하게 만들었네요..그리고 그렇게 등을 가볍게 쪼아댈때, 모든 동작을 멈추고 맞다의 부리를 온전하게
느끼기 위해 숨을 죽이던 작가의 모습에서 말없이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대화에 저또한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연못가에서 깨끗히 목욕을 마치고 뽕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는 맞다와 무답이의 모습속에서는 시골 연구소의
평화롭고 한적함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책에 푹 빠져들때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직접 목격을 하진 못했지만, 이 녀석들을 호시탐탐 노리던 수리부엉이의 공격을 받아 두녀석은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거지요..
또 한번 어릴때 키우던 강아지 생각이 확 밀려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별은 예고가 되지 않기에,,
어떤 준비도 없이 한순간에 찾아오곤 하지요.. 늘 곁에 있었고,, 매순간을 같이 하던 강아지를 잃던 날,
딱딱하게 굳어가는 녀석의 몸과 다리를 겁도없이 만지면서 슬퍼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 저자는 그렇게 2년간 함께 했던 맞다와 무답이를 위해 자작나무 무덤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는 맞다와 무답이
사이에서 나온 세개의 알을 2년전 맞다와 무답이를 처음 만났던 그 부화장에 가져다주며 돌아옵니다.
부화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맞다와 무답이의 새끼를 볼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지요..
이렇게 한 남자와 두마리의 거위의 2년간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저도 사랑하는 강아지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나서 더이상 다른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었습니다.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에,, 언젠가는 이별을 하게 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제 생각이 조금 틀렸는지도 모르겠네요.
동물보다 좋은 뇌를 가졌다고 해서 꼭 더 오래 사는것은 아니쟎아요. 사람은 물고기 처럼 수영을 잘하지도 못하고,
새처럼 하늘을 날수 없으며, 공작새처럼 멋진 털을 가진것도 아니고, 곰처럼 힘이 세지도 않습니다.
단지 두손 두발을 사용하고 두뇌가 조금 더 발달했다고 해서 다른 생명체를 지배할수 있는건 아니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음앞에서는 다 똑같은 존재일 뿐이랍니다.
책을 덮으면서 똑같이 2년전 딸아이를 처음 가슴에 품던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감동과 벅참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던 그때.. 여자이기 때문에 누리는 고통이 감동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렇게 생명의 소중함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네요.
내 자식뿐 아니라, 남의 자식도, 그리고 작은 생명체 하나하나도 모두 고통과 감동의 순간이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모두 소중한 존재일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안타까운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맞다와 무답이를 대신해서 키우기 시작한 , 다시는 수리부엉이가 채가지 못하도록 '철근' 이와 '구리' 라고
이름붙혀진 두마리의 거위가 제 목숨을 다하도록 오래오래 평화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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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위, 맞다와 무답이 >>
생태소설이라는 말이 딱 맞게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듯 했다. 글을 읽으면서 나도 맞다와 무답이를 키우고 있는 착각이 들정도로 사소한 하나까지 마음을 쓰는 그래풀님. 왕풀 님, 산풀 님, 꿋꿋 씨... 이름도 자연과 너무 가까운 이름이다. 들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평범할수 있는 거위 한쌍이 이렇게 살아있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꽥! 꽥!... 답을 잘한고 해서 숫컷 맞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암컷 무답이. 뱀이 많이 나와서 우연찮게 거위를 키우기로 하는 그래풀님은 거위가 뱀을 쫓는지, 잡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먼저 가족이 되어버린것 같다. 거위가 나도 책속에서만 봤던 동물들이라 어떤지... 사랑스럽게 그려놓은 그림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거위와 함께 조금씩 익숙해지고, 작은것 하나도 웃으며 넘길수 있었던 이 책의 사람들을 보면 평화로와 보인다. 거위의 밥을 훔쳐먹는 들쥐를 어떻게 할까 의논을 하고... 결국 들쥐밥까지 넉넉하게 마련해놓는 인심이란. 덕분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것 같아 흐뭇하고 가슴 따뜻했다. 40년을 사는지... 철썩같이 믿었던 거위 한쌍을 잃었을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눈물날만큼 가슴아팠지만 그 역시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모습까지. 어디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수 있는지 그 끝을 아니 그 최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말대로 반년정도만 독자의 가슴에 남길 바라며 있는 그래도 써 내려간 이 글들은... 좀 더 오래 독자의 가슴에 남을것 같다. 나역시 그러하다... 거위를 만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껏 느끼게 해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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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시골에 살았어도 거위를 키우던 집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오리랑 거위를 구분하라고 하면 잘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처음 거위인 맞다와 무답이의 이름을 듣고는 그 뜻이 궁금했는데 알고나니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사연을 담고 있었다. 환경 운동가와 함께 살다 하늘나라로 간 거위 두 마리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보는 것은 좋아해도 애완동물이나 가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거위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
'거위 맞다와 무답이' 환경 단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 거위 맞다와 무답이의 그림 같은 일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물이라고 해도 마음을 나누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고, 가족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위의 수명이 40년이나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그런 긴 수명만큼 살지 못한 맞다와 무답이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생태 소설이라 그런지 거위의 생태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세밀하게 그려진 삽화를 만나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서 그런지 더욱 감동스럽게 느껴지고, 아이랑 함께 보기에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요란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자연과 함께 하면서 그 소중함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등 여러가지를 느끼고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우연히 거위를 보게 되면 좀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맞다와 무답이가 남긴 세 개의 알이 잘 부화가 되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잘 되어서 어린 거위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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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위를 실제로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저 사진이나 티비를 통해서 봤을 뿐이다. 그래서 일까 거위라는 이름은 노래제목이나 프랑스 요리가 먼저 기억날 뿐이었다. 그렇게 거위에 대한 상식은 무지그 자체였다. 그런 상태에서 생태소설인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만났다.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작가의 집은 산골짜기에 있는지라 뱀이 많다. 그래서 뱀을 없애는 방법으로 거위를 키우라는 어떤 시인의 말을 듣고 작가는 그 마을의 부회장 집에서 거위 한쌍을 분양받게 된다. 이 거위가 바로 맞다와 무답이다.
맞다와 무답이란 이름은 어떻게? 동물에게도 이쁜 이름을 지어주는 요즘 맞다와 무답이는 어찌보면 참 촌스럽고 성의 없어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왜 많고 많은 이름중에 맞다와 무답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가 부회장집에서 거위 두마리를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에 작가가 하는 말에 거위 한 녀석이 "괙 괙!"하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작가의 말에 꼭 맞장구를 치는 것 같아서 맞장구 친 놈의 이름은 맞다로 했고 나머지 한놈은 대답을 안해서 무답이란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인 맞다와 무답이가 탄생한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집 책을 읽다보면 맞다와 작가의 교감장면이 있는데 ( 부리로 작가의 등판을 쪼는 장면) 가슴이 훈훈해지는 장면이다. 또한 작가가 동물이나 식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책 곳곳에 나와 있는데 아마도 작가는 책을 통해서 자연과 동물 사람이 서롤 어울려 살아갈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맞다와 무답이 강아지 찰구 그리고 작가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것 처럼 말이다.
슬픈이별 작가는 맞다와 무답이와 2년여 시간을 같이 살았다. 처음에 거위의 생명이 40년인줄 알고 자기보다 더 오래 살 생명이기 때문에 선조를 만나 같이 사는 것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맞다와 무답이를 대했다. 그러나 살다보면 여러가지 변수가 생기는 법이다. 생태계의 사슬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그저 탈이었을 뿐이다. 그 결과 맞다는 하늘에 무답이는 땅에 묻었다.
이책은 작가가 2년동안 같이 있었던 맞다와 무답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거위를 키우는 생태과정을 소설로 담은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봐도 좋을 만큼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상식도 주는 일석 삼조의 책이다. 더불어 중간중간 그려진 그림은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거위의 상식은 수명이 40년 정도라는 거, 물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 목욕을 좋아한다는 거.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는 거, 주인을 잘 따른다는 거, 그리고 거위간의 애정이 돈독하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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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 "세상이 개떡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일용할 양식처럼 이 소설을 복용"하라는 이외수님의 추천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가슴속에 황무지를 간직하고 있다면 죄인이므로 그럴 때 내리는 처방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고요. 또, 약발도 끝내군다고요.^^ 끝까지 다~ 읽고 난 지금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은 아름답다고........ <<거위, 맞다와 무답이>>는 생태소설입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계시는 최성각님께서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키운 2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어떻게 거위라는 동물을 키우게 되었는지... 이름은 왜 맞다와 무답이가 되었는지... 이들이 어떻게 커 가고 그 주위 사람들이나 동물들과 어떻게 어울렸는지.... 어렸을 적 이웃집 거위 때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있던 그래풀(최성각 작가님의 별명)님이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키우며 부성애를 느끼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예쁩니다. 들고양이와 친해지려 애쓰던 노력도 뒤로 하고 거위들을 지켜내기 위해 불침번을 서고, 밥그릇의 밥을 생쥐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목격하고 고민에 고민 끝에 밥그릇을 천장에 매달 궁리도 하고, 곁을 잘 두려하지 않는 거위들에게 섭섭함도 느끼는 그래풀님이 어찌나 공감이 가고 애틋하던지요. 거위라는 동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연구소 사람들이 맞다와 무답이와 함께 하며 사계절을 나고서는 거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도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저돌적인 맞다와 언제나 조용히 순종적인 듯한 무답이의 모습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느껴집니다. 느긋하고 순리대로 흐르는 맞다와 무답이의 삶이 마치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애교도 부리고, 때론 불평도 할 줄 알고, 꾀도 부릴 줄 아는 맞다와 무답이를 보며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맞다와 무답이의 죽음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까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맞다와 무답이가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이외수님의 말씀처럼, "어떤 나무들이 이파리를 나부끼고.... 어떤 새들이 알을 품고.... 어떤 음표들이 반짝거리..."게 만드는 책입니다. 짧지만 그 감동은 배가 됩니다. 내용 뿐만 아니라 어휘 하나도, 문체도 반짝반짝 빛이나 이 책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잊혀진 동물이라는 거위를 저도 키우고 싶어졌습니다. 넓은 마당이 있고, 연못이 있는 그런 곳에서 꿈처럼... 바람처럼.. 거위 한 쌍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제 가슴에도 나무 이파리와 새와 반짝이는 음표가 가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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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말 기분 좋은 책이다. 기분을 좋게 한다. 유쾌한 걸음걸이가 생각나는 두발 달린 짐승. 거위, 맞다와 무답이. 이 책을 쓰신 최성각 선생님은 ‘환경운동을 하는 작가’이시다. 모든 일에 그래그래... 그러자 라는 긍정적인 사고는 이 분을 ‘그래풀’이라고 부른다. 작은 시골에 ‘풀꽃평화연구소’를 짓고 새와 돌멩이, 지렁이와 풀들에게 상을 준다. 이름하여 ‘풀꽃상’. 이 책에는 왕풀님과 산풀님도 나오는데 그 분들은 최성각 선생님과 함께 환경운동을 하시는 풀님들이다. 이분들은 “우리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들이 망친 자연에 대한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잘못했다고 말하기로 결심”하셨단다. 이 집에 거위, 맞다와 무답이가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뱀이 많은 곳에 거위를 놓으면 뱀이 없어진다는 어느 시인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왕풀님과 함께 집에 까지 오면서 새만금사업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뒤에 있던 거위 한 마리가 꽥꽥거린다. 그렇게 꽥꽥거리는 울음이 ‘맞다맞다’로 들려서 ‘맞다’가 되고 아무 말이 없는 거위는 대답이 없다하여 ‘무답’이가 된다. 시골 엄마집에 가면 소가 ‘음머음머’하고 울고 닭은 ‘꼬꼬꼬꼬’하며 울고 오리는 ‘꽥꽥’거리고, 토끼는 ‘깡충깡충’한다. 세 살배기 우리 아이는 하부지, 할머니, 음머, 꼬꼬, 꽥꽥, 깡충깡충... 연달아서 말한다. 외갓집에 전화를 해서도 이 말만 반복해서 한다. 아가 품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이 책 속에 있다. 나 어렸을 때도 이런 동물들은 우리와 함께 컸다. 그때는 돼지도 있었고 염소도 있었다. 어스름 녘이면 염소를 가지러 산으로 갔었다. 어느 날은 염소 목에 걸린 끈이 나무에 돌돌 말려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을 쳐들고는 울고만 있는 염소를 풀어서 어둑해질 때까지 풀을 먹이다 집에 오는 길이 무서워 덜덜 떨었던 일도 이 책을 읽다보니 기억이 난다. 맞다와 무답이가 2년여 동안 이곳에서 사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는 너무 평범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상습적인 구호나 권고문이 아니라 삶으로 녹아져 나오는 그 진솔한 이야기. 그래서 더 아름답다. 엉덩이를 조금씩 좌우로 흔들긴 해도 그 모습이 대단히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는 거위. 거위를 키우면 뱀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거위가 용맹스러워서 뱀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거위의 똥냄새가 지독해서 뱀이 코를 막고 얼씬도 안한다는 이야기에 살은 붙은 게 아닌가 싶게 지독하단다. 거위가 반기면 왠지 나도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한껏 으쓱해진다는 그래풀님이 그렇게 사랑한 맞다와 무답이가 어느 날 죽음을 맞는다. 그래풀님이 없는 사이에 수리부엉이가 맞다를 잡아간 것이다. 너무 슬픈 무답이는 스스로 죽음을 맞는다. 자작나무 아래 묻히는 맞다의 털들과 무답이. 내 가슴 속에 푸른 나무 이파리들이 나풀거린다. 책표지에 볼록하게 반짝이는 맞다와 무답이를 가만히 만져본다. 체온이 느껴지는 이 손끝. 더 깊은 마음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는 저 바람의 흔적이 참 좋다. 아마도 맞다와 무답이를 사랑했던 왕풀님과 산풀님. 그래풀님이 일으킨 그 바람 때문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