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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분이라는 게 언제든 뜯었다 붙일 수 있는 싸구려 벽지처럼 마음을 먹는다고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평소에 하지 않던 싱거운 농담 몇 마디를 던지고 나면 그럭저럭 나아질 때가 있습니다. 되지도 않는 농담 몇 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고 조금 가벼워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우울하거나 심각했던 일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버거워만 보이던 세상 일들이 '까짓것' 하면서 한껏 허세를 부리게도 되죠.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발표된 오늘, 기분도 꿀꿀해서 괜한 농담을 몇 마디 던졌더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무슨 좋은 일 있느냐'며 되묻더군요. 평소 위트와 농담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란 걸 잘 아는지라 '더 이상의 썰렁개그는 참아주세요' 하는 의사표시였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다 보면 작가의 모국인 헝가리도 '지랄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클라우스가 헝가리의 역사가 부끄러워 국경을 넘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상) - 비밀 노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쌍둥이 중 한 명인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어 떠나고 다른 한 명의 쌍둥이인 루카스는 할머니 집에 홀로 남게 됩니다. 소설의 구성을 복잡하게 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중) - 타인의 증거>에서 클라우스와 루카스의 삶을 교차하며 보여주는 것도 그럴 듯해 보입니다만, 작가는 전적으로 할머니 집에 남은 루카스를 위주로 소설을 전개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클라우스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클라우스는 떠났고 루카스는 남았습니다. 혼자가 된 루카스는 자신의 삶을 추스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가축을 돌보고, 농사일을 하며, 늙어 거동조차 어려운 신부님의 끼니를 챙기고 소일거리 삼아 같이 체스를 두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근친으로 기형아를 낳은 야스민을 만나게 됩니다. 루카스보다 두 살 위인 야스민은 자신의 아이 마티아스를 버릴 생각이었죠. 루카스는 자신의 집에서 그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루카스는 신체적으로는 불구이지만 똑똑하고 총명한 마티아스를 유난히 예뻐합니다. 혁명의 여파로 웬만한 책은 모두 사라지게 되자 루카스는 도서관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클라라를 만납니다. 루카스는 엄마뻘인 클라라에게 마음을 두게 되고, 매일 밤 마을의 끝에 있는 그녀의 집을 찾아갑니다.
클라라의 남편 토마스는 혁명의 와중에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지요. 온통 클라라에게 마음을 뺏긴 루카스를 뒤로 하고 야스민은 도시로 떠납니다. 그녀의 아이인 마티아스는 루카스의 책임으로 남겨집니다. 루카스는 마을의 외곽에 있던 할머니의 집을 처분하여 빅토르 씨의 서점을 인수합니다. 마티아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어떻게든 아이들과 어울려보려 했지만 극심한 따돌림과 폭력으로 결국 학교를 포기하게 됩니다. 루카스는 홀로 남겨진 마티아스를 위해 또래의 아이들에게 서점을 개방합니다. 책일 읽고 그림도 그릴 수 잇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지요. 그곳에 아그네스와 사무엘이 방문합니다. 아그네스의 남동생인 사무엘은 마티아스와 비슷한 나이였습니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클라라마저 떠나고 아그네스에게 관심이 있었던 루카스는 그녀와 사무엘을 집으로 초청합니다. 온통 사무엘에게 관심을 두는 듯한 루카스의 태도에 마티아스는 질투를 느끼고 끝내 자살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였을지도 모를 마티아스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자 루카스는 실의에 빠져 지냅니다. 할머니의 묘 근처에 마티아스를 묻고 매일 그곳을 찾던 루카스는 결국 그것도 귀찮아 마티아스의 유골을 캐내어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의 집에는 루카스의 엄마와 이복 동생, 마티아스의 유골이 걸리게 되었고, 루카스는 페테르 씨에게 서점과 자신이 쓴 비밀 노트를 맡깁니다.
"젊은 날에 신을 섬기도록 해라, 불행한 날이 닥치기 전에, 그리고 네 입에서 '나는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p.97)
루카스가 사라진 마을에 국경을 넘었던 클라우스가 나타납니다. 소설은 이제 결말을 향해 치닫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지요. 페테르 씨는 클라우스에게 루카스가 쓴 비밀 노트 다섯 권과 서점을 넘깁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호적에 등재되지 않았던 클라우스는 세 번에 걸쳐 체류 연장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본국 송환을 요청받습니다. 소설은 'D대사관에 보내기 위해 K시 당국이 작성한 조서'를 끝에 배치함으로써 의미심장한 결말을 예고합니다. 과연 루카스는 실제로 살았던 인물인지, 클라우스는 정말 쌍둥이였는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도 흐릿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 새나 꽃을 기억하듯이 내 아내를 기억하고 있지. 그녀는 인생의 기적이었어. 그녀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게 가볍고, 쉽고, 아름다웠지." (p.149)
한 개인에게 지난 일이란 거짓말처럼 아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이나 기억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한 나라의 역사를 두고 누구는 왜곡되었다, 그렇지 않다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자신의 짧은 인생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데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제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받게 되는 것이지요. 단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어떻게든 밀어부칠 수 있겠지만 그 비난의 말은 누가 들을지...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그런 큰 실수를 할 수 있어. 우리가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생긴 뒤지." (p.214)
추세에 역행하여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대한민국의 국정화 놀음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만 국론 분열과 반쪽짜리 대한민국은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몇 가지 거짓말로 구성되었던 것인지 후세의 역사는 낱낱이 밝혀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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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3부작으로 된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성장하였고, 14세 때 기숙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가족과 떨어져 생활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21세의 나이로 조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한다. 역사교사인 남편과 갓난아이의 단촐한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5년 동안 시계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시계공장도 그만두고 남편과도 헤어진다. 소설을 쓰기 위해 불어를 공부했고, 시와 희곡으로 출발했던 그녀의 작가 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1986년 내놓은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중 첫번째 작품인 <비밀노트>로 그녀는 유러피안 프라이즈 불문학 부분(the European prize for French literature)을 수상했고,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상) - 비밀 노트>는 작가와 그녀의 오빠를 모델로 쓴 소설이며 전쟁 상황에서의 인간성 파괴를 그리고 있다. 대도시의 전쟁을 피해 소도시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진 쌍둥이 형제를 주인공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할머니 댁에 도착한 순간부터 쌍둥이 중 한 명이 국경을 넘을 때까지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다. 그야말로 비밀 노트인 셈이다. 글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듯한 삭막하고 건조한 문체로 진행된다. 우스운 얘기를 무표정한 얼굴로 말할 때 더 배꼽을 잡게 되는 것처럼 전쟁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인간성과 도덕이 상실된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저 담담하게 그려진다. 순수해야 할 열 살 전후의 아이들에게 비친 생존의 현장은 참혹하다기보다 끔찍하다. 그런 현장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잔인한 모습으로 성장한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할머니의 집은 소도시의 외딴 마을에서도 5분쯤 더 걸어들어 간 곳에 있다. 그 다음에는 흙먼지만 이는 길이 이어지다가 그나마 울타리로 막혀 있다.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곳으로, 거기에는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다. 그는 기관총과 쌍안경을 가지고 있으며, 비가 올 때는 초소에 들어가 있다. 우리는 나무들로 가려져 있는 그 울타리 너머에, 비밀 군사기지가 있고, 그 기지 뒤에는 국경선과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안다." (p.5)
할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마을에서 '마녀'로 불린다. 할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소문과 억척스러운 생존 본능 때문이다. 할머니는 닭과 염소 등 동물들을 돌보고 농사를 지으며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장에 내다 팔든가 지하창고에 숨긴다. 남는 방 하나를 외국군 장교에게 세를 주었으므로 쌍둥이는 부엌에서 생활한다. 할머니 방과 장교가 머무는 방은 늘 잠겨 있다. 조금씩 적응이 된 아이들은 만능 열쇠를 만들고, 폭력에 길들여지기위해 서로에게 매질을 가하는가 하면 어떤 욕설이나 모욕적인 말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욕을 하며, 성경을 보며 읽고 쓰는 공부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악기와 마술까지 배운다. 전쟁은 아이들로 하여금 독종을 지나 괴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할머니집 인근에는 언청이 딸과 아주머니가 산다. 토끼주둥이로 불리는 언청이 딸은 시내에서 구걸을 하거나 이따금 신부님에게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여주고 돈을 받는다. 쌍둥이는 물을 긷기 위해 샘으로 갔던 토끼주둥이를 괴롭히는 불량배들로부터 그녀를 구해주기도 하고, 신부님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기도 하고,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다. 외국군 장교로부터 외국어를 배우기도 하고 귀머거리나 벙어리인 양 행동하기도 한다. 살기 위해 그들이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든지, 용서하여주십시오. 이 추악한 세상에서 길잃은 어린 양들입니다. 이 타락한 시대의 제물이 된 이 어린 것들은 스스로 저지른 짓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이 더럽혀진 어린 영혼을 구해주시고 당신의 무한한 자비와 축복 속에서 정화시켜주시옵소서. 아멘." (p.168)
전쟁이 끝나고 쌍둥이의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갓난아이 하나를 안고 나타난다. 쌍둥이는 같이 가자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 날아온 폭발물에 엄마와 아기가 맞아 죽는다. 남자는 이내 떠난다. 얼마 후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아버지가 쌍둥이를 찾아 온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아내가 어디 있는지 추궁한다. 죽어서 집 앞에 묻었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결국 묻었던 자리를 파내자 뼈만 남은 엄마와 아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그 뼈를 자신의 다락방에 걸어둔다. 뇌출혈로 한번 쓰러졌던 할머니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쌍둥이에게 물려주고 죽는다. 사상범으로 의심받는 아버지는 해외도피를 결심하고 국경을 넘으려 한다.
"- 가세요, 아빠. 다음 번 순찰은 20분 후에 있어요. 아빠는 팔 아래 판자 두 개를 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판자 하나를 바리케이드에 기대놓고 기어올라간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손으로 귀를 막고 입을 벌린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석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p.219)
자신의 아버지를 이용하여 쌍둥이 중 한 명이 국경을 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들에게 죄의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군인 여러 명에게 강간을 당하고 죽은 토끼주둥이를 보았을 때도, 신부님을 돌보며 자신들의 옷을 세탁해주고 목욕도 시켜주던 여자가 죽었을 때도 쌍둥이는 그저 덤덤할 뿐이다.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한 이 소설은 전쟁의 광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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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심장은 먹먹해지다가, 울렁거렸으며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과 같았다. 세 권의 책을 3일 동안 읽었음에도, 마치 2006년 나의 가을은 이 책으로 시작하여 이 책으로 끝난 것처럼 길고도 아득한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은 아름답지 않다. 아니 너무 무겁고 어둡다. 1권에서 시작된 충격, 경악, 잔혹함은 2권과 3권에선 다른 모습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그 흡입력은 그저 블랙홀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문체는 단조롭고 건조하다. 화려한 묘사도 없고, 감정도 배제된 체 간결하게 서술된다. 감정이 배제된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1권의 <비밀 노트>인, 쌍둥이들의 커다란 노트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지극히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를 닮았다’라고 쓰면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1권, p 33) 전쟁으로 인해 어린 쌍둥이 형제는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진다. 마녀라 불리는 할머니 밑에서 쌍둥이들은 고된 노동과 욕설과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다. 고통과 더위와 추위 그리고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그 형제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신체 단련하기, 침묵하기, 부동자세 훈련하기, 단식 훈련 등이다.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옷을 벗고 혁대로 서로에게 매질을 가하는가 하면, 서로의 뺨을 얼얼해지도록 때리기도 한다. 사람에게 사랑 받지 못한 불구의 소녀는 개와 성교를 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으려 하고, 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딸은 천형처럼 곱추 자식을 낳아 동네에서 쫓겨나는 등 1권에서는 근친상간이나 수간, 동성애, 살인, 변태성욕자 등 어두운 세상에서나 있음직한 자극적인 상황들이 조리되지 않은 체 날 것 그대로 난무하고 있다. 인간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죄악들이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 참혹하다. 작가는 그 죄악이라는 환부를 덮거나 감싸는 것이 아니라 쿡쿡 찌르며 아프지,하며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이 어린 영혼들이 편안히, 즐겁게 살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은 전쟁 중이다. 3권에 걸쳐 공통된 배경이란 전쟁중이라는 사실. 전쟁은 인간의 삶을 참혹하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전쟁의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대신에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황폐화되어 가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쌍둥이 클라우스와 루카스는 일란성 쌍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샴쌍둥이 쪽에 더 가깝다.(물론 육체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붙어 있다는 의미로) 어렸을 때부터 이들의 부모는 이들이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1권의 말미에서 그들은 아버지를 계획적으로 살인을 하고, 아버지의 시체를 밟고 국경을 넘음으로써 드디어 ‘우리’가 아닌 개체, 즉 개개인의 삶을 산다. 2권, 3권은 끝없는 모순과 혼돈의 연속이다. 인물도, 플롯도, 스토리조차 일관성 있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며 진행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프랑스의 작가 프루스트나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누보로망 계보를 잇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명이인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진실 사이를 시소 타기 한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거짓인지는 이 책을 다 덮고 나서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 거짓이고 사실이며, 어디까지 진실인가를 논증하며 따져 보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이 소설은 그저 존재를 증명하는 소설이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존재란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이다.(사르트르적 실존주의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실존에 앞서 본질이 선행되고 있지만 인간은 본질에 앞서 실존이 우선한다. 그것은 곧 인간이란, 상황이나 관계에 있어서 혹은 사유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여러 모양으로 변주되고 있음을 말한다. 어떤 틀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은 스스로 불확실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다. 신분 증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표이지만 이들에겐 신분증이 없거나(1권에서) 아니면 위조된 신분증을 갖고 있다.(2권,3권) 즉, 그들은 불확실한 존재들이다. 난 이 소설을 불확실한 존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 때로는 사실보다 거짓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사실은 있는 정황만을 설명하지만, 거짓은 인간의 감정, 생각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자신의 진실을 위장하기 위해 거짓의 옷을 입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으면 거짓의 옷만 벗기면 된다.(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진실이다. 읽는 내내 누가 루카스이며 누가 클라우스인지 혼란스러웠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어차피 소설이란 허구이며, 허구 속에서 진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일 터이니...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지만 소설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며 소설을 읽는 시간엔 차라리 낮잠 자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순간 내 얼굴은 화끈거렸고. 심한 모욕감에 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그토록 위대한 수많은 소설은 무엇인가? 그 날 난, 그 분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을 원고지 분량 23장의 빽빽한 글로 이메일을 보냈다.(개인적으로 돈독한 친분관계가 있고, 또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분이기 때문에^^) 좋은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난 그 말이 생각났고, 괜히 화가 났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또 화가 났다. 누가 뭐래도 난 죽는 날까지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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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듯한 광고 문안가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받은 책입니다. 이희인님이 헝가리를 여행하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10여년 전에 부다페스트를 처음 방문했을 적에는 거리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5년 전에 놀러갔을 때는 확 바뀐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의 하나였지만 동맹국측으로 가담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분할되었습니다. 10세기말 설립된 왕국이 강국으로 올라서기도 했지만, 오스트리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서면서 국토의 이합집산이 거듭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의 압박에 따라 국토회복을 노리고 추축국에 가담하였지만, 역시 패전하였습니다. 종전 시 소련군에 점령되어 공산화되었다가 1989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헝가리 대중들의 신산한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소개되었습니다만 원래는 『커다란 노트(Le Grand Cahier, 1986)』, 『증거(La Preuve, 1988)』, 『세 가지 거짓말(Le Troisieme Mensonge, 1991)』 등의 제목으로 5년에 걸쳐 각각 발표된 연작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는 부제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우리말 제목이 이야기의 흐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권의 책을 읽다보면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야기의 흐름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이야기는 꾸며진 이야기라고 할 것 같은데, 그 점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동일한 시간대에서 있었을 수 있는 다양한 사건을 동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나갔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 개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연결하여 해석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맥락을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상권의 주인공은 쌍둥이 형제인데 이름이 나오지 않고 우리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한 사람은 국경을 넘어가고, 한 사람은 고향에 남게 됩니다. 중권에서는 쌍둥이의 이름이 밝혀지죠. 국경을 넘어간 것은 클라우스이고 고향에 남은 것은 루카스입니다. 루카스가 화자가 되어 고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펼치는데, 가족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상권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상상에서 나온 것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권에서는 헤어졌던 쌍둥이 형제가 만나게 됩니다. 특히 중권의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루카스가 실종되고, 이번에는 클라우스가 화자가 되는데, 국경을 넘어갔던 사람이 사실은 루카스였다는 설정인데다가, 그렇게 넘어갔던 루카스가 사실은 고향 마을에서 활동하는 듯해서 더 헷갈립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권에서는 국경을 넘은 사람이 작성한 조서에 세 가지 거짓말을 적었다고 밝혔습니다. 1.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2. 이 소년은 18세가 아니고, 15세이다. 3. 이름은 클라우스가 아니다. 이 세 가지 거짓말은 작가가 설정한 또 다른 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읽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마치 상권에 등장하는 형제가 화자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와 같은 분열적 구성은 전쟁을 통하여 침략군과 해방군이 교차되는 등 정체성이 분열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하권에 들어서 화자가 다시 ‘나’로 바뀌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따른 정체성이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전쟁은 싸우는 군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의 삶을 질곡으로 몰아넣어 살아남기 위해서 별난 짓도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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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2편의 제목은 <타인의 증거>다. 세 편의 소설은 따로 발표 되었고 이 세 개를 합쳐서 한권으로 국내에서 출판되었지만 내용은 연결된다. 연작소설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을텐데 각기 별개의 소설로 읽어도 충분히 각자의 완결성이 주어진다. 1편 비밀노트(노트북:원제)에서는 쌍둥이 소년의 시점에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 시점으로 글이 쓰여졌는데 마지막에 둘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분리되며 끝난다. 할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나타나자 소년은 아버지가 국경을 넘는 것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이 기회를 틈타, 소년들 중 하나가 아버지의 죽음을 밟고 국경을 넘는다. 이 어마어마한 반전은 소년들이 국경지대에 지뢰가 많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면 자신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희생양으로 친부가 선택된다. 지뢰가 있는 곳을 피하면서 국경을 넘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것. 먼저 간 사람이 운이 나쁘면 죽고 뒤따르는 사람은 그 죽음을 밟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까지 아이들은 계산해두었던 것이다. 자신을 씻긴 하녀를 비롯해 살아남기 위해 악과 선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인을 연습해온 아이들에게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게 새삼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헤어짐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리라는 철벽같은 하나의 시선, 하나의 시점, 하나의 공유된 감정과 행동이 자의로 인해 분리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의 계획대로 아버지는 지뢰를 밟았고 그들 중 하나가 그 시체를 밟고 국경을 넘고 1편이 끝나고 2편은 남아있는 한명 루카스의 시점 위주로 3인칭으로 전개된다. 2편에서는 형제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루카스가 국경 마을에서 몇명의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루카스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하나 하나가 그대로 개별적인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도 충분한 거대한 사연들이 녹아 있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군이 점령한 땅은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가 도시 전체를 오싹하게 드리우고 있다. 야스민은 아들 마티아스와 함께 루카스의 집에서 동거한다. 그녀는 친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데리고 쫓겨난 후 거처할 곳이 없어 배회하다가 루카스의 눈에 띄어 루카스의 집에 신세를 진다. 혁명세력에게 남편이 죽임을 당한 클라라는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역시 루카스의 눈에 띄어 연인이 되는데, 35세로 루카스와는 엄마 될 나이이다. 어릴 때부터 학용품을 사 가던 서점 주인 빅토르는 애틋하게 지내던 누이가 방문 후 서점 문을 닫고 자신이 사는 곳으로 가서 책을 쓸 것을 권하자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중독이었던 술을 끊고 루카스에게 서점을 팔고 고향 누이의 집으로 돌아가나 책도 쓰지 못하고 술도 끊지 못한 채 누이를 속이다가 결국 누이를 살해한다. 앞집 사는 불면증 노인은 죽은 부인이 공장을 소유한 외국인의 딸이었는데, 죽은 부인은 공산화 후에도 공장을 지키기 위해 외국인 신분을 계속 유지하다가 암살을 당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노인은 아무 권리도 없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내쫓기고 방황하다 겨우 당서기 페트로의 도움으로 거리의 청소부 자리를 구해 구걸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조금씩 루카스와 알게 되면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야스민과 클라라는 그 이후 루카스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야스민은 엄마가 죽은 후 이모와 결혼한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장애아를 낳았다. 그 일은 아버지의 일방적 폭력이 아닌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갈구해온 서로를 향한 육체적 욕망이 한계를 만나 어쩌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선을 넘은 것이다. 아버지와 딸의 정사 행위는 야스민의 입을 통해 그대로 루가스에게 전달된다. 후에 루카스는 어머니와 같은 나이의 클라라를 사랑하게 되는데, 야스민의 근친상간적인 욕망에 끌리어, 아버지의 역할을 그대로 모방하지만, 만족하지는 못하고(아마도 그런 행위에서는 역겨움을 느낀듯) 대신 클라라의 모성애에 대한 욕망을 실현함으로서 재현하는 듯하다.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야스민은 그 일로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자 추운 겨울 집(이모이자 양모)에서 쫓겨나고, 작은 도시에서는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얼어붙은 강가에서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하지만 실행하지 못한 채 있다가 루카스의 눈에 띄게 되어 루카스가 할머니 방을 내어주고, 아이를 양육하기 시작한다. 루카스의 진짜 비극은 이 마티아스라는 장애아이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시작된다. 아이는 곱추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장애아인데 루카스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고양이와 강아지를 선물하는등의 애착 관계를 만들어간다. 아이에게 그렇게 헌신적인 것과는 반대로 처음에 한두번의 관계 이후 야스민과는 상호간의 선을 분명히 했지만 나중에 엄마벌의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 이후 야스민에게 더욱 냉담하게 굴고 아이도 이를 눈치채어 루카스를 경계한다. 야스민은 아마도 루카스를 사랑한 듯하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날 계획을 세웠었는데, 어느날 아이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루카스가 아이에게 알리고, 루카스는 혼자 아이를 맡아 기른다. 할머니가 남겨준 집과 금부치들로 빅토르의 서점을 인수한 루카스는 아이를 데리고 도시로 이사를 오고 아이는 학교에 가지만 학교에서 매일 괴롭힘을 당한다. 보다 못한 선생은 루카스를 찾아와 아이를 퇴학시킬 것을 권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루카스가 생각해낸 것은 서점을 아이들의 독서실처럼 꾸며서 자연스럽게 루카스와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루카스의 도서관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린다. 그러던 중 그 어린이들 틈에 있는 금발의 아름다운 아이 한명에게 루카스의 시선이 꽂힌 것을 발견한 마티아스가 루카스의 손등을 송곳으로 꽂아 상처를 입힌다. 정상이고 아름다운 아이를 쳐다보지 말라는 경고다.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루카스가 책을 보며 한 장도 넘기지 못한 것도 마티아스는 놓치지 않는다. 그 예쁜 아이에 대한 질투는 극도의 절망을 부른다. 엎친데 덮친 건 그 아름다운 소년이 마티아스와 유대를 가지게 되어 집으로 초대한 누나벌 소녀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루카스와 남매가 마티아스가 먼저 들어가 있던 문을 열고 들어온 후 마티아스는 그 절망의 절정에 다다른다. 마치 가족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셋은 마티아스에게 이질적이고 비정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대조되고, 그들 사이의 갭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루카스가 나간 사이에 마티아스는 사이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그동안 공산주의와 소련군의 억압에 항거하는 민주화 세력이 힘을 얻게 되는 상황에서 당서기관 페트로는 외국인의 보호를 받다가 실패로 되돌아간 민주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살아 나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만 클라라의 행방은 모른채 시간이 흘렀고.. 아이를 잃은 루카스는 묘지에서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절망하고 시간은 흘러 흘러 수십년을 건너뛴다. 여기서 루카스는 두 가지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 하나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다. 3편을 보면 루카스가 어릴 때 총상 때문에 불구가 되어 재할 치료를 받느라 부모왜 분리되는데 아마도 그 아이에게 자신이 투영된 것이리라는 추측이다. 아이는 또한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글을 깨치는 것 그리고 원차 않는 사람의 자식인 것 등등이 3편에서 묘사되는 1편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의 어린시절과 흡사하게 닮았다. 두번째는 클라라에 대한 집착인데 처음에 클라라를 쫓아다닐때 클라라는 어린 소년이 나이많은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화도 내고 쫓아버리고 귀찮아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굴하지 않고 그녀의 정부를 뒤쫓아 폭행하고 도시에서 쫓아내고 그녀를 치성으로 돌본다. 어릴 때부터 언청이에게 먹을 것을 갖다주고 또 이번 편에서도 야스민과 마티아스 신부를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한하게 베푸는 루카스이면서 동시에 차가운 얼굴로 자신의 가치와 계획에 장애가 되는 사람은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번 편의 가장 반전은 루카스가 야스민을 죽인 것이 드러나는 대화 장면에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서방과 동방 국가간의 왕래가 자유로와졌을 때 클라우스가 도시에 모습을 나타내는데 알고 보니 클라우스가 클라우스가 아니라 루카스였다. 야스민의 시체가 할머니의 집 뜰에서 발견되자 부리나케 국경을 넘은 루카스가 클라우스라는 자신의 형제 이름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루카스는 서점을 대신 맡아보며 살아가고 있는 페테르를 찾아가지만 끝까지 루카스가 아님을 주장한다. 페테르는 루카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돌아온 클라라를 돌보며 루카스가 살던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둘의 대화에서 루카스는 야스민을 죽인 건 자신의 마티아스에 대한 욕심이었고, 마티아스의 비극에 대한 책임은 바로 그가 마티아스의 엄마를 죽인 데서 시작되었을 암시한다. 2편의 내용중 자신이 클라우스라고 하며 루카스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1편에서 한몸처럼 살던 클라우스가 전혀 모습은 커녕 그 흔적도 드러내지 않는다. 페테르와 몇몇 사람들에게 클아우스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만 그곳에서 오래동안 그를 알던 사람들까지 클라우스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리고 1편 끝날 때 그렇게나 궁금했던 이유 두 사람이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들은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슬픈 이별인가. 그런데 1편의 내용을 보면 그들 둘이 늘 함께 다녔고 서점 주인도 아이들을 기억해야 할텐데 아무도 그를 쌍둥이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음을 주지해야 한다. 1편의 모든 내용은 외롭게 살아온 루카스가 자신의 분신으로서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3편에 가면 더욱더 아리송한 관계들이 얽혀 새로운 형상을 만둘어낸다. |
| 내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알게 된 건, 위의 표지로 [오늘]에서 출판된 <나를 반하게 하는 것은 별을 꿈꾸는 악동들의 눈빛이다>를 헌책방에서 만나면서부터이다. 1991년 12월 25일에 초판 발행된 책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이라고 하는 출판사는 이스마엘 카다레의 소설 <돌로 새긴 연대기>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알리기도 했으니, 눈 밝은 출판사라고 할 수 있다. 뒤에 덧붙여진 옮긴이의 말에도 나와 있듯, 출판될 당시에는 이 소설이 세 편으로 이어지는 연작소설이 아니라 단 한 편의 장편소설로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한 편의 소설로만 알고 있었고 그렇게 읽었다. 이 소설을 접하고 처음 읽었을 때 무척이나 당혹스러웠고, 신선하고도 혐오스러운 충격을 경험했다. 나중에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이름을 통해 세 편의 소설로 구성되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꽤나 당혹스러웠다. 뭐랄까, 첫사랑이 끔찍한 악몽으로 난도질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내 기억에서 사라졌던, '개의 망막에 면도날이 닿기 직전의 스틸 사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섬뜩한 이미지처럼 이 소설은 짧은 문장을 예리하고 짧은 꼬챙이처럼 급소를 피해 독자를 마구 찔러댄다. 담담하게 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투로 또박또박 윽박지르는 작가의 문체는 메마른 사막처럼 황량하고 이 짧은 단락마다 담겨 있는 이야기의 풍경은 사막보다 더 삭막하고 괴기하고 역겹다. 문제는, 이 내용이 분명히 현실일 것이라는 혐의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 안의 화자는, '우리'라는 화자를 써대고 있어서 쌍둥이 형제를 지칭하는 게 아니고 독자들을 함께 끌어들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생존을 위해서, 살아 있을 때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으면서 자신들을 단련해나가는 쌍둥이들의 행동을 담담하게 읽어나가다보면 내 주변의 풍경이 너무나 무서워진다. 내가 이토록 행복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거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아주 빠르게 휘발될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의 공포와 비극을 실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느꼈던 충격과 거의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저지 코진스키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기이하게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과 거의 흡사한 영혼을 가졌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아코타 크리스토프는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서 1956년에 소련의 압제를 피해서 프랑스로 망명했고, 저지 코진스키는 1933년에 태어나 1957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유럽이라는 지리적인 환경이나 공산주의의 압제와 폭거를 피해 망명했다는 점과 거의 비슷한 연배로 전쟁과 끔찍한 참상을 어린 시절에 일상의 삶으로 경험했을 것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이 두 작가가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소설의 주인공인 루카스와 클라우스인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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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지금 여기서 더 자라나기는 할까? 주인공 쌍둥이들의 영민함과 영악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이지만 그 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뭐든지 함께 하던 이 쌍둥이들이 어째서 왜 마지막에 서로 갈 길을 달리 했는지.. 궁금은 한데 이들의 머릿속을 헤아리기에 나는 너무 아둔하다. 미처 상상조차도 할 수가 없다. 단 하나 말할 수 있는 거라면, 이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언제고 꼭 다시 만날 거라는 거다. 이게 <비밀노트>에서 내내 내가 깨달은 내용이다. 참 난감하게도, 난 이 쌍둥이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그 이름조차도 모르는데 내가 무엇을 더 알 수 있겠는가..^;;;
p.11 우리가 온 지 엿새째 되는 날, 할머니가 집을 나설 때, 우리는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손에서 돼지먹이가 든 무거운 통을 빼앗아 들었고, 염소들을 냇가로 몰고 갔으며, 할머니가 손수레에 물건 싣는 일을 도왔다. 할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장작을 패고 있었다. 식사 때 할머니가 말했다. -이제 뭘 좀 안 모양이구나. 지붕 아래서 자고 배불리 먹으려면 그 정도 일은 해야지. 우리는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일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사람을 구경만 하는 것은 더 힘들어서 그래요. 더구나 노인을 일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이에요. 할머니는 비웃었다. -개자식들! 내가 불쌍하게 보인다 이 말이구나? -아니에요, 할머니.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을 뿐이에요. 오후에 우리는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간다. 그 이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한다.
p.49 -그래, 하지만 너희도 들키면 안 돼.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지? 너희 엄마한테도. 우리가 대답했다. -우린 안 들킬 거예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엄마도 없는 걸요. 우리가 먹을 것과 이불을 가지고 그에게로 다시 가자, 그는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친절하구나. 우리는 말했다. -우리는 친절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다만 아저씨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들이니까 갖다주는 거죠. 그뿐이에요.
p.206 -너희들은 전신마비가 어떤 건지 모른다. 뭐든지 다 보이고, 들리는데 난 꼼짝도 할 수가 없는 거야. 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너희는 배은망덕한 놈들이야, 내가 헛수고를 했지. 우리가 말했다. -그만 우세요, 할머니. 소원대로 해드리겠어요, 정말 그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p.219 -가세요, 아빠. 다음 번 순찰은 20분 후에 있어요. 아빠는 팔 아래 판자 두 개를 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판자 하나를 바리케이드에 기대놓고 기어올라간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손으로 귀를 막고 입을 벌리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석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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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에 한 권씩 사흘 동안 읽었다.
<Road>를 읽었을 때와 유사한 기분이 든건 시 같이 쓰여지고 읽히는 때문이었을까 세기말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세 권을 다 읽었을 때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길고 긴 이야기를 마친 탈진한 노할머니를 대하는 기분이랄까.
세 권은 각각 독립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이자 함께 만나 읽는 사람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눠진 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환상-거짓말-진실-거짓말-환상-진실로 이어지는 길고 긴 하나의 이야기였다.
한국어 제목은 역자의 취향에 따라가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지만 프랑스어 원제를 그대로 옮긴 영어 제목은 <The Notebook> <The Proof> <The Third Lie> 이다. 한국어 제목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세 개의 이야기를 분리해주기도, 또 엮어주기도 하는 효과적인 제목은 원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은 다 거짓인가? 환상인가? 이건 읽는 사람의 상상과 판단에 달렸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럽고 모순에 가득찬 이야기를 완전한 느낌으로 만들어 낸 작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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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내 인생의 책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으로 인해 독서의 세상으로 뛰어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중에 독서광이던 친구의 강압에 못이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도 그냥 그렇고 책도 얇은데 왜 굳이 3권으로
만들었냐~ 이런식의 투정을 부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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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맙소사!!!!
벌레가 기어가다 경련을 일으키듯~
책 1권을 읽고 난 완젼
전기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
그리고는~
바로 2,3권을 미친듯이 주문했었고
책이 내 품에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은 어찌나 길던지
내가 이렇게 열을 올리며
책을 주문한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을것이다.
![]()
3권을 다 읽고
그 기분은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만이 알 수있을것이다.
3권 제각각 읽는 독자들을 마비시켜버리는 작가의 힘!!
책을 읽은 후 며칠간 아니 몇주간 주인공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 기분!!!
이 책의 내용은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 책을 읽고 나랑 같이 말해보자"라고 말하고 싶다.
![]()
이렇게
이 보석같은 책은
나의 삶을 바꿔 놓았다.
언제 어디서든 책 한권이라도 옆에 있어야
맘이 편해지는 독서광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요즘은 운전도 시작해서
차 안 여기저기 책이 쌓여있다.
비가 오는날 차 안에서
즐기는 독서
그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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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쉰살밖에 안 됐어.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난 책 한 권쯤 쓸 수 있을 거야. 여러 권도 쓸 수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난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타인의 증거> 중에서)
어떤 작가가 신문 인터뷰에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 호기심에 이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책은 읽는 내내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고, 가장 인상 깊은 책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의 여성 작가로 1936년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56년 소련의 압제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 아래, 상,중,하 세 권으로 나뉘어 각각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사실 저자는 2,3년에 걸쳐 각각의 책을 출간했으며 각각 다른 시점으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쓰여졌다. 거창한 제목도 그렇고 3가지 부제도 혼란스러운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절망과 충격과 혐오와 고독은 한결같다. 실제 저자가 전쟁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 군상들을 너무나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고, 이런 메마른 문체와 괴기스러운 전개방식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통은 더욱 강렬하다. 이런 면에서 다른 전쟁소설이나 성장소설과는 매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상)권의 <비밀노트>는 1인칭 복수인 ‘우리’가 등장한다.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이름 철자의 순서만 다른 쌍둥이 형제가 전쟁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시골 할머니의 집으로 보내진다. 참혹하고 혐오스런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을 단련시키는데 참담한 욕설과, 사랑의 감정, 혹독한 매질, 단식에 무뎌지기 위한 훈련을 하고, 살아남는데 필요한 지식을 쌓는 훈련도 한다. 살인과 강간, 동성애에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을 만큼 모든 감정과 현실에 무뎌지며 나름의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결국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하나는 국경을 넘으며 헤어지게 된다.
(중) <타인의 증거>에는 홀로 남게 된 루카스의 청년기를 그리고 있다. 혼자가 된 루카스는 차라리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책에선 정말 클라우스라는 쌍둥이 형제가 실재했는지, 아니면 루카스의 ‘비밀노트’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은 아닌지 독자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하) <50년간의 고독>에서 루카스는 결국 클라우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절대적인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 바람은 클라우스의 부정으로 사라지고, 결국 죽음을 맞으며 끝이 난다. 인간의 존재는 어떤 증거나 타인의 시선으로만 그 존재를 실제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것인지 묻고 있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달려있는 듯이. 둘 주위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 군상들은 전쟁의 참혹한 피해자들이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한번도 아프다거나 슬프다거나, 고통스럽다고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 몸의 언어는 외로움과 고통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비밀노트>는 유럽대륙, <타인의 증거>는 작은 도시,<50년간의 고독>은 한 가정으로 이야기의 범위가 축소되는데 이 세 권 각각의 주제가 주는 스케일은 변함이 없다. 전쟁을 신이 내린 최고의 재앙이라고 한다. 우리는 학창시절 내내 매년 반공의 날을 정해 그림을 그리고 작문을 하고 묵념을 했다. 어린 시절 구입한 창작동화 시리즈에는 삼분의 일 이상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런 교육이 전쟁에 더욱 무감해지게 만든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거의 전쟁과 관련된 모든 걸 거부하며 영화도 책도, 관련된 이슈에도 무감해졌다.
이 책에서도 극악한 전쟁에 의해 고통받는 인간 군상들을 한없이 건조하고 냉정하게 버려두고 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고통과 공포는 극대화된다. 유럽의 어느 비평가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을 ‘검은 다이아몬드’에 비유했다고 한다.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지인들에게 쉽게 소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제껏 몰랐던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아찔함을 나누고 싶다.
이 소설에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나는 나의 어린시절을 얘기하고 싶어서 이글을 쓰기 시작했다.K시는 물론 내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Loszeg이다.작중 인물인 루카스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내가 10살때 전쟁은 끝났다.나도 어려서 국경을 넘었다.루카스가 고국에 돌아온 나이가 바로 지금의 내 나이다(55세).클라우스 쪽은 어린시절을 같이 보낸 오빠이다.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함께였다.나는 오빠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고,나는 이 소설에서 소년으로 변신했다.이 소설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것은 이별-조국과,모국어와,자신의 어린시절과의 이별-의 아픔이다.나는 가끔 헝가리에 가지만,어린시절의 낯익은 포근함을 찾아 볼 수가 없다.어린시절의 고향은 세상 어느 곳과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1991년 9월)---Agota Kristof
(200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