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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들은 누군가 책을 읽어주면 좋아한다. 스스로 읽기에는 아직 어리고 머리가 커지지 않아, 곁에 있는 어른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온갖 생각의 나래를 펴는 게 좋아서 그럴 것이다.
그림이 들어 있으면서 글은 적게 들어있는 아이들 책이 읽어주는 사람도 읽기에 좋고 듣는 사람도 생각하기에 좋다. 긴 글로 채워진 책은 곁에서 읽어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흐름을 놓치기 쉬워 읽어주기에 알맞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도 스스로 읽어낼만한 나이가 되면 그 때부터는 읽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읽으면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2008년에 만든 영화 <더 리더 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나오는, 글을 모르는 아낙네는 어떨까? 곁에서 누군가 책을 읽어주면, 제가 가보지 못한 곳과 겪지 못한 일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바다 위를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는 즐거움에 빠질까?
영화는 소설을 바탕으로 삼아 도이칠란트 사람들이 겪은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과 까막눈 아낙네의 사랑과 삶이 겹치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2. 도이칠란트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잘 살게 된 마이클 베르크(랠프 파인즈)는 1995년인 오늘보다 1958년 노이슈타트에서 열다섯 살의 나이로 겪은 일들이 생각난다.
키만 컸지 아직 열다섯인 마이클(데이빗 크로스)이 배움터에서 집으로 오다가 아파서 먹은 걸 다 올린다. 지나가다 아픈 마이클의 얼굴을 닦아주고 골목길을 치우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이는 전차에서 차표를 받는 차장일을 하는 서른일곱 살의 한나 슈미츠(케이트 윈슬렛)다.
나이로 보면 엄마와 아들뻘인 이들이 엉뚱하게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나아간다. 이제 사랑에 눈을 뜨려는 마이클로서는 스타킹을 신는 한나의 맨 다리만 봐도 싱숭생숭하고, 마이클의 그런 마음을 눈치 챈 한나는 혼자 사는 터라 외로웠고 풋풋한 마이클이 끌리기도 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몸은 어른이 된 마이클과 홀몸으로 지내는 어른인 한나가 그냥 가위바위보나 하고 이야기나 하며 지낼 수는 없는 법. 나이가 맞지 않지만 서로 몸이 끌리는 탓에 살을 섞고 만다.
그런데 책을 읽어주면 한나가 좋아해서 마이클은 잠자리를 할 때마다 한나한테 온갖 책을 읽어준다. 호메로스가 쓴 <오딧세이아>를 읽어주기도 하고, 안톤 체홉이 지은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기도 하고, 디 에이치 로렌스가 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어줄 때는 "내 몸에 사내가 들어오자..." 하는 대목에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듣고 있던 한나가 맞대꾸를 한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역겨워..."
3. 싱그럽기 짝이 없는 소피 같은 제 또래 계집아이들과 놀지 않고 나이 많은 한나에게 푹 빠져 있던 마이클의 삶은 한나가 아무 소리도 없이 사라지면서 판이 바뀐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다시 마음을 잡고 1966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는 마이클. 공부삼아 구경갔던 재판정에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린 한나를 보게 될 줄이야...
풋내기 마이클과 혼자 힘들게 사는 한나의 사랑 이야기가 이젠 도이칠란트의 아픈 역사로 옮겨간다. 지멘스에서 일하던 한나가 1943년에 나치에 들어가 수용소의 감시원을 하게 된 일과, 가스실로 보낼 사람들을 고르는 일을 했다는 것, 그 죄값을 이제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마이클이 보기에 한나는 글도 몰랐으므로 앞장 서서 시킬 수가 없어 죄가 적은데, 한나는 이제껏 숨기며 살아왔으므로 글을 모른다는 게 부끄러워 오히려 죄를 뒤집어 쓰려고 한다.
"한나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요..." 하며 법을 아는 마이클이 나서서 지켜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여덟 해만에 만난 한나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다.
4. "참 된 것을 알면서도 나서서 바로 잡지 못하면, 나중에 죽을 때까지 뉘우치게 된다" 법학 교수가 하는 말이 곧 감독의 말이다. 제 할 일을 못하면 죄를 짓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는 뜻. 뒤늦게 뉘우쳐 봐야 이미 늦을 수밖에 없고...
한나와 마이클의 꼬인 실타래는 풀 수가 없다. 한나는 젊을 때 나치에 들어간 것이 잘못이고, 나라와 겨레가 뭔지도 모른채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었으니, 그 죄값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마이클은 한나와 첫사랑을 잘못 엮어간 탓에 한나 말고는 다른 계집과 같이 살 수가 없고, 한나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까지 굴비 엮이듯 엮였을 때 빼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 했고, 그래서 늘 마음에 쇠고랑을 차고 살아야 했다.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본디 책에서 그리 썼겠지만, 한나와 열다섯 살인 마이클이 살을 섞는 일은 좋게 볼 일이 아니다. 너무 어릴 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으로 익힌 사랑은 어른이 되어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어느 나라든, 현실에선 어린이를 꼬드겨 잠자리를 한 것으로 보고 한나가 죄값을 받게 되어 있다.
<스캔들 노트>에서는 케이트 블랑쉬가 어린 사내와 잠자리를 하고는 죄값으로 큰집에 가는 것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는 그 일로 받는 죄값은 없다. 이래도 될까?
5. 어른인 마이클의 삶과 아이인 마이클의 삶이 두 갈래로 나아가면서, 이들과 엮어 있던 까막눈 아줌마 한나와 다른 아낙네들이 도이칠란트 역사를 바탕으로 사랑과 삶을 보여주는 게 좋다. 생뚱맞게 딸과 함께 하는 끝무렵을 빼면, 씨줄과 날줄이 잘 어울린 영화다.
한나의 굴곡진 삶을 30대부터 예순일곱 살까지 이어가며 보여준 케이트 윈슬렛은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가슴을 드러내고 알몸을 보여주면서도 그 대목에 맞는 얼굴을 보인다. 마이클이 따지듯 저를 사랑하냐고 물을 때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눈에 아린다.
어른이 된 마이클을 맡은 랠프 파인즈보다는 어린 마이클을 맡은 데이빗 크로스가 더 돋보인다. 영화에 나올 때가 풋내가 나는 열아홉 살이지만 서른 넷의 무르익은 케이트 윈슬렛과 짝이 잘 맞다.
한 해 앞서 극장에서 못 본 터라 잽싸게 디브이디를 샀지만, 요즈음 영화 디브이디 치고는 조금 못하다. 화면이나 소리는 그런대로 괜찮고, 예고편도 들어 있다. 보너스로 한나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뀌는 얼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영화에 깔리는 가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세월에 맞게 무대를 어떻게 꾸몄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쩌다가 소설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배우들을 뽑게 되었으며, 나온 배우들은 영화를 찍으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잘라낸 장면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뭔 디브이디를 이렇게 만들었는지...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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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윈슬렛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작품이기 때문에 무척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초반기에 너무 노출신만 나와서 실망감이 들 때 쯤 메말랐던 내 속의 감정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판에서 한나가 무기징역을 받자 눈물을 쏟아내던 마이클의 모습이 첫째로 가슴에 남는다.그녀의 치부를 알기에, 그래서 그녀가 그만큼의 죄가 없단 걸 알기에 차마 수치스러움에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그녀의 속사정을 알기에 그리고 가장 가슴이 아픈건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걸 알기에 그저 눈물을 흘려주는 것 밖에 해줄 수 없었던 마이클. 마지막 대사에도 나오듯이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그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마이클 자신도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던 걸까..(이장면에서 데이빗 크로스에게 반했다. 거짓이 묻어나지 않는 순수한 눈물에 말이다.) 시간이 흘러 꼬박꼬박 책을 읽는 소리를 녹음에서 보내주는 마이클에게 한나는 서투르고 짧지만 결국엔 편지를 써서 보낼수 있게 됬고 수감 20년째, 드디어 감옥을 나오게 된다. 감옥을 나오기 전 마이클은 잠시 한나를 만나러 갔지만 자기도 모르는사이 한나를 피했고 이때부터 직감했다. 그녀가 살 의욕을 잃었다는 것을. 20년의 세월을 오직 그가 보내준 녹음 테이프에 의지하며 자신의 치부도 극복 할 수 있었는데 정작, 그렇게 도움을 주고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마이클조차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해 마이클을 떠나야 했고, 수용소 관리원으로 일해야 했고, 그리고 죄를 뒤집어써야만 했던 그녀.. 한나가 목숨을 끊을 때 사용한 도구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한번 알려줬던 '책'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얼마나, 얼마나, 드디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서 얼마나 기뻐했는데. 후반부에 계속 눈물이 흘러 누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한나의 서글픈 인생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여운과 슬픔을 많이 남기는 영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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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책의 감흥이 오래 남아서 책을 덮은 뒤에도 책을 가만히 만지작거리곤 했다.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그다지 적극적으로 보려하지는 않았다. 책이 보여준 감흥을 전달해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수 있겠는가..
하지만 영화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책과는 또다르게 좋았다. 그것은 케이트 윈슬렛이 분한 한나를 새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1인칭 화자가 바라보고 느끼는 한나가 묘사된다.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전해듣던, 그래서 뭔가 흐릿하고 명확치 않았던 한나의 모습이 영화에서는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런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여배우가 워낙 명연기를 펼쳐서이기도 하겠다.
그녀의 불안함과,박탈감,절실함이 드러나는 표정이 뇌리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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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책을 보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끝까지 모르겠는 것은,
그녀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적절한 행동이었을까..하는 점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아버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각자 자신만의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존중받아야한다. 이건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한나가 갖고있는 비밀도 정말 그런 것일까..
비밀이 드러났다면, 한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을 만큼의 상처를 받았을까, 아니면 자신이 미쳐 뽑지 못한 등에 박힌 화살을 누가 대신 뽑아준 것처럼 자유를 얻었을까..
그것이 알려지면 못 견딜 것만 같아 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서 터져버리면, 그 때 부터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또..그것을 누가 알고, 누가 판단한단 말인가..
그러니..재판이 끝날때까지 외면한 것은 타당한 행동이었단 말인가. 그게 한나를 존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
모르겠다.
책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영화속에서 한나의 모습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하겠다며 투신하려는데, 그건 네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 존중하지요.라며 멀뚱이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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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카메라를 들이대는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했던 영화입니다. 주인공들의 벗은 몸은 야하기 보다는 차라리 인간 그 자체입니다. 섹시하지도 징그럽지도 않은 인간의 솔직한 몸입니다. 저는 한나를 위해 남자 주인공이 마이크를 잡고 책 내용을 녹음하는 장면에서 그만 울어 버렸습니다. 실컷 울고 나니 속도 후련했습니다. 참 좋은 영화입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주드>에서 부터 유심히 지켜보았었는데요, 세월의 흔적이 보여 더 좋았습니다. 주드에서는 아이를 먼저 보내는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 저며 왔는지 모릅니다. 더 리더 포스트는 진작에 영화관에서 배부되는 작은 포스트를 화일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담에 좋은 추억이 될거라고 확신합니다. |
![]() 결국은 케이트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는 더 리더였다. 그녀에겐 얼마나 값진 상이였을까? 아마도 이 상은 단지 이 영화 하나로만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대체 이게 뭔가...
더 생각해 보려는 노력은 덮어두고 영화는 잊혀져 갔는데,
영화 마케팅에선 열다섯 소년과의 사랑, 숨막히는 베드신 등에 초점을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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