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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용의자 X의 헌신>.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한 때를 찾아보니 2008년이다. 소설을 읽은 적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기억도 없지만 작품의 줄거리는 안다. 개봉 당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던 것이 상당히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츠츠미 신이치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까?'라는 카피 문구와 함께. 그 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츠츠미의 연기보다는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외모에 감탄했다. 잘 알려진 배우들의 젊음이 어쩐지 야속하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고 의외로 배경이나 스타일 등에서 세월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회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원작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와 등장인물 일부를 공유한다. <탐정 갈릴레오>의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후쿠야마 마사하루 역)가 <용의자 X의 헌신> 주인공 이시가미 테츠야와 대학 동문이기 때문이다. 유카와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비운의 수학자 이시가미. 어느 날, 이시가미의 옆집에 사는 모녀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시가미는 두 사람이 수사에서 비껴나게끔 알리바이를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두 사람이 의심스러우나 다른 용의자도 증거도 딱히 없는 상황. 막막해진 수사관들이 도움을 청하지만 유카와는 거절한다. 하지만 수사 물망에 이시가미의 이름이 오르자 관심를 가진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깰 수 있는 추리는 가능한 것일까?
하나오카는 화류계 과거를 청산하고, 도시락 집을 열어 열심히 사는 미인(미인인 것이 강조된다). 기둥서방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고, 학생인 딸 미사토를 넘보고 건드리니 이혼 후 아무도 모르게 이사온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전남편이 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다시금 딸을 위협하자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몸싸움은 살인으로 귀결된다. 옆집에서 그 소란을 들은 이시가미는 모녀를 돕는데, 그는 적성에 맞지 않는 고등학교 수학선생으로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대학에 남지 못했다. 우울과 무기력을 오가던 그에게 열심히 살고, 서로를 사랑하는 하나오카 모녀는 지켜보는 것만으로 활기를 주었던 것이다. 죽으려 했던 자신을 구원한 빛. 그렇게 등장한 사랑이라는 주제.
영화에서 그려지는 이시가미의 사랑은 숭고한 자기 희생에 가깝다. 하나오카 모녀에 대한 사랑은 결핍을 채우는 소유나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고 그려진다. 그러나 유카와의 멋진 외모를 부러워하는 듯한 모습은, (현실은 비록 훤칠한 배우 츠츠미 신이치이지만) 변변찮은 자신의 모습이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슬픔이다. 모녀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상상 이상의 일을 벌일 수는 있지만 정작 용기내어 다가가지 못하는 찌질함. 정적인 외면 아래 들끓는 과격성이 일본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엽기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얼마 전 보도된 연쇄살인 사건도 그렇고... 아가페로 포장되나 근저엔 에로스가 있으니,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만 하기엔 찝찝하다. 이시가미는 줄곧 어두운 안색이지만 영화 말미에서 처음으로 빛을 받는다. 천정에 수놓인 아름다운 색상의 수학문제처럼 모든 것이 잘 풀렸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켰다는 만족도 색을 더한다. 이런 기묘한 만족감은 이어지는 장면에서 산산조각나는데, 이런 사고방식이 매우 일본스럽다. 현대소설을 읽을 때도 또 고전소설을 읽을 때도 느끼는 위화감.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튀는지 늘 놀랍다. 현대소설이든 고전소설이든 그다지 빠질 것 없이 그런 낯선 체험을 하게 되는데, 정말 일본인 특유의 정신세계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다. (자의/타의 할 것 없는) 고도의 이기주의. 그에 기초한 타인의 희생을 미화하는 것. 카미가제, 칼의 역사 위에 발생한 할복자살 같은 놀라운 문화의 연장선에서 말이다. 반복된 역사이고 지금도 다르게 보여지니(책임자 급의 우두머리가 사과하면 넘어간다든가 도게쟈같은 것) 이를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폭력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할복에 관해 잘 그려진 작품으로는 <아베 일족>이 있는데 담담한 문체가 설명하는 상황이 잔인하고 끔찍하다. 그야말로 피의 역사다. 아무튼 이시가미의 사고방식은 다른 작품에서도 봐 와서(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범죄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본작품의 특징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소재는 비슷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특히 이시가미의 범죄에 대한 설명이 '헌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점에서 말이다. 추리물이라기엔 약간 무리가 있고... 일본 영화 특유의 극적인 연출이 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아 감독을 찾아보니, 드라마 <메꽃>의 영화판 감독이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화 <메꽃>도 보고 리뷰를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내용에 대한 평은, 이미 원작에 대한 서평으로 이야기와 중복되니 생략하고, 영화의 큰 역할인 "영상"으로 본다면, 추리(스릴러)의 장르에도 불구하고, 큰 자극적인 장면연출없이, 충분한 긴장감을 이어갈 수 있게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 원작에 비해, 복선을 많이 깔려있어서 (이시가미가 쇼윈도에 비친 자기를 보는 장면, 노숙자 없는 벤치를 연출하는 장면) 뒤의 결말(사건의 풀이)를 예측하기는 더 쉬었다.
![]() 배역캐스팅은, 비교적 상상했던 이미지들과 잘 맞았고, 좀 냉철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유가와, 수학밖에 모르는 외골수, 이시가미, 그리고 곱게늙은(?) 야스코 모두, ![]() 원작, 영화...이제 시간이 된다면 드라마를 볼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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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규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하여 불만가득한채 보기 시작했다.
보기싫은 이유는 단하나.. 제목이 맘에 안들어서이다.
제목만 딱봐도 추리영화임을 알겠고 X가 들어간걸보니 수학이 연상되어 머리
가 아팠다. 난 숫자만 보면 머리가 멈추곤한다. 수학기피증이라고나 할까.
영화를 중간쯤 봤을까... 나도모르게 집중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보기시작했다. 한시도 눈을 떼면 안되는 영화. 바로 용의자 X의 헌신이
다.
천재수학교사가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고자 만들어낸 천재적인 알리바이와 그
알리바이를 깨려는 천재물리학교수와의 대결. 보통 추리영화에는 몇가지의
복선이 깔리고 마지막 반전으로 관객들을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천재
수학교사의 말한마디와 눈빛하나 행동하나 하나가 전부 복선이며 반전을 열
었을땐 그저 감탄만 나올뿐이다. 물론 그에 동반된 슬픔도 같이 맛보아야하
지만..
시나리오를 쓴 작가를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고 싶을정도로 치밀한 대본에 놀
랄 수 밖에 없었다.
이천십년에 첫영화로 매우 만족도가 높고 몇일 이야기꺼리가 생겨서 기분이
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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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추리소설류를 좋아하다보니 처음 '용의자 X의 헌신' 책을 대했을때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더군다나 이 원작은 2006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최근에 개봉한 영화 <백야행>의 원작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더 끌려서 읽고 싶었지만 여차저차해서 못읽게 된 이야기.. 하지만, 말글이 아닌 비쥬얼 영화로 만난 '용의자 X의 헌신'은 좀 특이하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영화답지 않게 조용한 느낌으로 다가왔으니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두 남자의 뜨거운 대결이 시작됐다. 어느 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망자가 ‘토가시 신지’임이 판명되자, 그의 행적을 조사한 ‘우츠미’ 형사는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로 전처 ‘야스코’를 지목한다. 하지만 그녀의 완벽한 알리바이에 수사의 한계에 부딪힌 우츠미는 천재 탐정 ‘갈릴레오’라 불리는 물리학자 ‘유카와’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사건의 전말을 확인한 유카와는 용의자의 옆집에 사는 남자가 대학시절 유일하게 수학 천재로 인정했던 동창 ‘이시가미’란 사실에 그가 야스코의 뒤에서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시가미와 접촉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단 정답은 반드시 있어.” 서서히 드러나는 천재 수학자의 치밀하고 완벽한 알리바이의 실체.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한 남자의 뜨거운 헌신이 밝혀진다! 이렇게 영화는 추리극답게 사건을 던져준다. 즉, 두 모녀가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그둘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전남편이 찾아와 돈을 뜯으며 행패를 부린다. 급기야 전 남편의 행패를 보다못한 두 모녀는 그를 죽이게 되고 위험에 빠진다. 하지만 이 현장을 옆에서 하지만, 이런 범죄 사건에 형사 인력이 투입된 가운데 소위 탐정 '갈릴레오'로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가 사건을 조사해 나간다. 그런데, 이 두 남자는 대학 동창으로 둘다 실력파 학구적 스타일로 범상치 않은 두뇌 대결을 펼치게 된다. 그러면서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수학자 '이시가미'의 범죄가 드러나는 가운데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이미 '이시가미'는 예견하고 있던일로 받아들이며 순수히 오라를 받는데.. 그런데, 그는 왜 두 모녀를 위해서 범죄를 뒤집어 썼을까? 이것은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영화나 원작의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바로 '헌신'이라는 화두다. 헌신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과 함께 그것도 숭고한 사랑에서 요하는 불가결의 필요충분 조건 아닌가? 바로 '이시가미'즉 일명 헌신남은 두 모녀를 위해 죄를 뒤집어 씌고 그녀들 대신 죄값을 치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을까? 물론, 비쥬얼의 그림을 통해서 그 수학자가 좀체 어둡고 조용한 성정으로 대변되면서 야스코를 지근에서 오매불망 플라토닉 사랑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코에 스토커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의 느낌은 처음 범죄에서 추리로 넘어갔다가 잠깐 두 남자가 산을 타며 조난영화로 가더니만 종국에는 지극한 멜로로 종결을 맺은 느낌이다. 이렇게 비쥬얼의 영화는 큰 화두이자 의문점인 용의자 X 헌신남 '이시가미'는 왜 죄를 뒤집어 쓰고 죽으려 했을까? 하는 의문의 여지를 남겼다. 아니면 자신이 자살할 죽음의 충동을 막아준 두 모녀에 대한 단순한 감사 차원의 보답이었나? 혹은 천재 수학자답게 영원한 미지수 X를 완성시키려는 자신만의 고도의 프로젝트였을까? 이래저래 의문이 드는 점들이다. 이런것은 바로 수학자 역을 한 배우의 시종일관 조용하고 암울한 연기가 그렇게 보이고 또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용의자 X의 진정한 헌신은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말그대로 용두사미 엑스(x)로 그치며 불행한 수학자의 필생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자기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영화도 추리극이라는 대전제에 의도된 실패극을 보는 느낌으로 다가왔으니.. 원작은 어떨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용의자 X의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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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2008 원작 : 히가시노 게이고-소설 ‘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2005’ 감독 : 니시타니 히로시 출연 : 후쿠야마 마사하루, 츠츠미 신이치 등 등급 : 12세 관람가 작성 : 2010.01.01. “나는 얼마나 헌신적인가?” -즉흥 감상- 동해안의 어느 인적이 뜸한 마을회관 앞.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에서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해준 작품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시간 동안 지겨움을 잊고 말았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바다위에서 폭발한 배가 하나 있었으며 그 원인이 그저 의문이라는 뉴스속보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소롭다는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상식적인 물리학적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라는 난제를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해명해내는 물리학자의 엄청난 실험을 보여주게 되는군요. 그렇게 사건 자체의 흥미보다는 물리학적인 난제를 풀어내는 것을 즐긴다는 남자는 잠시, 추운 어느 날의 이른 아침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아침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남자의 모습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어느 날. 옆집에서 발생하게 된 우발적인 살인 사건과, 그 결과로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없게 회손 된 시체 한구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인물에게 너무나도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게 되면서, 경찰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도움을 받고자 시작부분에서의 물리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건의 진실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었는데……. 으어. 그저 요즘 말로 ‘후덜덜’했습니다. 나름의 방한 복장에 낚시용품인 미니 가스히터를 옆에 끼고 텐트 안에 있었다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체온을 잃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요 근래로 바쁜 와중에 수면부족까지 느끼면서 기나긴 상영시간의 작품을 마주했기 때문에 더 추위를 느끼고 말았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뜨거운 헌신이 다른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차가울 수도 있다는 것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그저 떨면서 만남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결국 그 마침표를 확인하는 순간, 새해는 빠끔히 그 이글거리는 얼굴을 저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이번 작품을 어떤 기분으로 마주 해보셨을까나요? 물리학과 수학에는 젬병인지라 주인공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구요? 기나긴 상영시간만큼이나 이 작품의 제목을 ‘네버엔딩 스토리’로 바꾸고 싶으셨다구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데스 노트’의 극장판이라구요? 으흠. 애인님이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둘째 치고, 이번 작품이 너무나도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었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고 있는 중인데요. 음! 이거 저도 원작을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을 마주하기 전으로는 ‘추리 장르’에 대한 기피와 함께 일본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추리물’을 읽은 것이 거의 중학생일 때까지로 그 후로는 SF와 스릴러에 빠져버렸었으며, 일본은 애니메이션은 잘 만드는데 영화로 무엇인가를 만들 때면 뭔가 만화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적응하기 힘든 어떤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번 작품을 마주하면서는 ‘용의자 X는 가난한가? 왜 헌 신발 타령을 하지?’에서 위의 즉흥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작과 관련되신 모든 분들께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볼 뿐이었습니다. 그럼,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랑이해라고 하는 만큼! 이번의 2010년도 뜨겁게 살아보자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 입니다!!! 덤. 으흠, 연속극인 ‘갈릴레오ガリレオ, 2007’도 만나보고 싶어졌다고만 덧붙여두겠습니다.
TEXT No.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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