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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속에서 만났고,정작 그녀의 작품은 작년에 <자기만의 방>으로 처음 만났다.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시대에 앞서가는 인물이었는지 알고 놀랐다.물론 쉽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세련된 문체에 반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이 작품 역시 쉽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고전에 도전한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었다.이 작품은 <자기만의 방>과는 너무 많이 달라서 당황했다.시작부터 화자가 거론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고,요즘 소설들처럼 어떤 커다란 사건이나 줄거리가 있어서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전이 왜 고전이겠는가! 대부분의 고전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기법들을 만들어낸다.이 작품도 <율리시즈>처럼 1923년 6월 13일 수요일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클라리사라는 인물과 런던의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루동안의 의식을 따라 가고 있는 소설이다.무의식의 내면세계를 펼쳐내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슷한 느낌이다.앞장에 델러웨이 부인이 산책한 런던 지도가 나와 있어서 지도를 따라가면 책의 내용이 더 쉽게 다가온다.
쉰두살의 여주인공 클라리사는 그녀의 옛연인 피터 월시가 런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열여덟살때의 그녀를 회상한다.그녀는 더 이상 클라리사가 아닌 댈러웨이 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결핍과 공허감을 느낀다.그녀는 산책하던 중 많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한다.하원의원 부인이면서 파티를 좋아하는 클라리사에겐 그날 저녁에는 파티가 있다.그날 아침 과거의 연인 피터 월시가 찾아 온다.그들은 짧은 만남후 헤어지지만,많은 부분은 서로의 회상이 차지한다.그녀의 딸 엘리자베스는 당시의 그녀정도의 나이로 자랐고,피터월시는 엘리자베스 또래의 다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
젊은 참전용사 셉티머스는 정신장애로 환각과 망상에 시달린다.저자가 소녀 시절부터의 심한 신경증의 재발로 1941년 우즈강에 투신자살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그녀의 병력은 셉티머스라는 인물을 구상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셉티머스의 역할은 사회적 의식이라는 무게를 실어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피터 월시를 사랑했지만,그를 버리고 정치인과 결혼한다.그녀는 우아하고,사교적이지만 파티를 좋아하는 속물적인 여자이기도 하다.저자는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설정으로 ,파티에서 런던의 정계를 우리의 정치일번지인 여의도처럼 들여다 보여준다. 버지니아 울프가 정당을 파티로 구상했다는데 그녀의 천재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그녀의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를 때론 그녀 자신의 화법으로,때론 그녀의 기억 속의 상대방의 화법으로 이야기를 한다.그래서 딱 꼬집어 시점을 말하기 어렵다.그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포함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이 작품을 썼을 당시 그녀의 나이 탓인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성숙하다는 느낌이 든다. |
|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관심이 갔다. 그래서 우선 학교 도서실에 있는 그녀의 단편집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을 샀다. 내가 본 영화가 리차드의 소설 디아워스가 원작인. 디아워스란 영화였는데. -_- 그 소설 전반에 있어서 3명이 여자를 이어주는 카테고리가 바로 그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다소 이해되지 않는 문장과 아무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뻔한 책을 읽기에 나는 너무나도 부족했지만. 그 소설의 ㅁㅐ력적인 분위기와 읽어 내려갈수록 나도 댈러웨이가의 측근사람이 되어 가는것만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역시 옮긴이 또한 독자들의 어려움을 이미 예상한 듯 했다. 그래서 덤으로 이 작품의 해설을 붙여 주었다.(나는 이런것들은 개인적으 굉장히 싫어하지만. ) 소설의 전체 평판은 영문학의 독특함을 한글로 풀어쓰기에 그 기묘한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서술할 수 없었고 단순한 독자들을 끓어들이기엔 힘들었으며 영화의 흥행 아닌 흥행이 책표지의 전반에 나와서 다소 책을 읽기에 부담스러웠다. 아울러 나에겐 출판사를 따져야 겠다는 엉터구리 교훈을 얻게 된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매력에 보통사람들처럼 곧이대로 다가가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복잡하면서도 결코 단 한기만을 명쾌하게 말해주는 버지니아 울프의 능력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나같은 중학생이 읽기엔 불편하지만. 왠지 전업주부였다면 댈러웨이부인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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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라는 책 속에서 발견한 이 책을 친구네 책장에서 본 순간, 얼른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내용일지 항상 궁금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 일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 활개치며 성큼 성큼 뚜벅 뚜벅 걸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울부짖는 아우성 속에, 마차, 자동차, 버스, 짐차, 그리고 허청허청 발을 질질 끌면서 춤추는 샌드위치맨 속에, 악대와 손풍금 속에, 환성과 종소리와 그리고 머리 위를 나는 비행기의 기묘하게 찢어지는 듯한 폭음 속에, 이러한 것들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인생이 있었다. 그리고 런던이 있었고, 6월의 이 순간이 있었다. (p11-12) 읽는 동안 괜시리 마음이 들뜨고 찬란한 6월의 한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댈러웨이 부인이 자신이 직접 꽃을 사와야겠다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되었다. 그날 밤에 그녀는 파티를 열 예정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논할 때면 항상 이야기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댈러웨에 부인이 꽃을 사러 가면서 길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하나하나 연상되는 생각과 함께 나열된다. 그녀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의식을 우리는 놓치지 않고 지켜 볼 수 있다. 어떤 여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결혼 생활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을 것 같이 그에게는 생각되었다. (p66) 물론,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누군가의 생각을 알게 된다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내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번민하고, 짐작하고, 후회하고, 이렇게 의식의 나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소설은 자꾸 자꾸 사람을 끌어들인다. 누군가의 생각을 이토록 진지하게 들어주기도 오랜만이었다.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 등 이제까지의 여류 작가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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